그날은 정말 기쁨의 날이었지.
편입 시험을 치는 아침은 평온했다.
아침부터 길 찾는데에 에너지를 소비하기 싫어서 택시를 탔고, 별다른 어려움 없이 시험장에 도착했다.
10명 남짓한 수험생들이 넓은 간격으로 띄엄띄엄 앉아 있었고, 앞에는 교수님으로 보이는 분과 조교 한 분이 안내를 하고 있었다.
강의실은 전체적으로 흰색 톤으로 깔끔한 분위기였다.
긴장되면서도 약간 엄숙한 분위기였지만, 나는 마음이 계속해서 편안했다.
불합격해도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으므로 더 이상 잘할 수는 없었다.
떨어지면 그건 그냥 내 수준인 것이고 그것에 만족하며 살면 되는 것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암기노트를 훑어보고 나니 시험이 시작되었다.
첫 문제는 정말 쉬웠다.
너무 쉬워서, 이렇게 답을 적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1학년에 배우는 가장 기초적인 문제였고 다음 문제도 평이했다.
1~2학년 수준의 문제 난이도라고는 들었지만, 실제보다 더 쉽게 낸 거 같았다.
당연히 맞춰야 하는 문제들이었고 답안지 작성에 어려움은 없었지만 마지막 두 문제가 난관이었다.
합격 포인트가 딱 봐도 여기서 갈릴 것처럼 느껴지는 문제.
두 문제 중 한 문제는 어떻게 간신히 풀었으나 나머지 한 문제가 어려웠다.
이 문제만 확실하게 풀면 무조건 합격일 거 같은데, 그 정도 실력까지는 안 되는 것 같았다.
풀 수 있을 거 같으면서도 못 풀겠는 이 문제에 내 합격이 담겨있었다.
아니, 어쩌면 내 청춘이 이 한 문제에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들 느꼈을 것이다.
이 문제에 자신들의 합격이 걸려 있다는 걸.
시험 시간이 약 20분 밖에 남지 않았을 무렵, 나는 여기 부산대에 합격하지 못할 것 같았다.
가장 배점이 큰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다른 지원자들을 이기지 못할 게 분명했다.
이대로 끝인 건가? 나는 결국 이 정도 수준인가?
어떻게든 풀긴 풀어야 했다.
마지막 문제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 나는 다른 문제들의 답안지를 다시 한번 빠르게 점검하고 마지막 문제로 돌아왔다.
15분 남짓 남았을까, 갑자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대략적인 방향이 보였다.
다른 방향을 탐색해 볼 시간도 없었기에 나는 바로 탐색을 시작했다.
이 탐색이 막히면 이대로 그냥 끝나는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나는 곧바로 계산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심스러웠지만, 계산을 하다 보니 엉킨 실타래같이 꼬여있던 문제는 점점 풀어져나갔다.
그렇게 풀리던 실타래는 어느새 완전히 풀어져서, 문제의 답을 도출해 냈다.
이 답이 맞는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계산과정은 굉장히 논리적이었고 흠잡을 데 없었다.
부분 점수는 무조건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이 정도면 합격권에 충분히 들 것이다.
작성한 답안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점검하고, 시험지를 제출하고 나오니 새삼 눈물이 났다.
합격을 거의 자신하였기에 나오는 기쁨의 눈물이었다.
다음날 경북대 시험도 있었지만 나는 응시를 포기했다.
지금 생각해도,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부산대에 합격할 거니깐 굳이 경북대까지 응시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부산대 떨어지면 그냥 부경대만 해도 충분하겠다고 생각하며.
어쨌든, 나는 그렇게 시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께 시험은 그럭저럭 잘 본 것 같다고 말씀드린 후 내 방으로 돌아와 누웠다.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니, 지금까지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리에 펼쳐졌다.
수능을 망친날부터 오늘 편입 시험을 치기까지.
마음의 여유를 조금만 더 가져볼걸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편입을 치르고 난 뒤의 일과는 매우 단순했다.
그저, 집에서 먹고 산책하고 책을 좀 읽다가 다시 잠만 자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합격할 거라는 자신은 있었지만, 그건 말 그대로 나만의 생각이었을 뿐 떨어질 확률도 분명 높았다.
어서 빨리 합격 소식을 듣고 싶었기에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일주일처럼 느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걱정과 기대가 교차하면서 찾아왔고,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싶다가도 이 불안한 휴식을 조금 더 즐기고 싶기도 했다.
안절부절못하면서도 쉬고 싶은 만큼 쉬었다 싶었을 때, 합격발표 날의 아침이 밝아왔다.
오전부터 나는 불안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차분하게 기다렸다.
오전에는 역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이번에는 공원으로 향했다.
핸드폰은 진공모드로 바꾼 후 공원의 풍경을 천천히 감상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친구도 없어진 지 오래였다.
합격문자 말고는 핸드폰이 울릴 일이 없었으므로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지면 그때 살펴보자.
벤치에 앉아서 하늘과 산을 바라보다가, 다시 걸으면서 공원의 호수를 바라보기도 하다 보니 2시가 되었다.
2시가 되어도 아무런 알림이 없자, 또 1시간을 기다려야겠구나 생각했다.
정각에 딱 맞춰서 문자가 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공원에 있어도 마음이 평화롭지 못했던 나는 한 바퀴만 더 둘러보고 다시 집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2시 20분쯤이 되자, 공원 입구의 벤치 쪽으로 다시 돌아왔고 잠깐 앉았을 때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문자가 왔는 게 분명한 그 진동.
나는 심호흡 한 번을 하고 떨리는 손으로 문자를 봤다.
문자는 생각보다 길었는데, 그 긴 내용에서 나는 정말 "합격"이라는 문자를 0.1초 만에 찾았다.
순간 소리를 지를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그 소리는 그대로 목으로 삼켜져 가슴으로 향했고, 가슴에는 환희가 가득 차올랐다.
이상하게 눈물은 나지 않았다.
눈물은 이미 시험을 친 날에 울어서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그동안 내가 걸었던 길에 이미 눈물이 묻어 나왔기 때문일까.
가슴은 기쁨으로 가득했어도 표정은 이상하게 무덤덤했다.
그래도, 발걸음은 정말 가벼웠다. 나는 재빨리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에게 합격 소식을 전했고, 어머니도 기뻐하셨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어머니의 기쁨은 내가 합격해서라기보다는 내가 행복해하니 어머니도 그냥 행복해하셨던 것 같다.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나는 그제야 나를 5년 동안 짓눌러온 죄책감과 열등감이 풀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아, 드디어 나는 어머니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될 수 있겠구나.
어머니는 날 한 번도 부끄러워하신 적이 없지만.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직도 믿기지 않아서, 다시 한번 핸드폰을 열어서 합격 문자를 확인하기도 했다.
꿈이 아니었다.
오늘 하루만큼은 꿈보다 더 달콤한 현실이었기에 잠자리에 일찍 드는 게 아쉬웠지만 내일부터 해야 할 일들이 많았으므로 잠을 청했다.
나는 그렇게 편입에 성공하면서 희망찬 20대의 중반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편입 이후에 좌절과 외로움, 고독함을 느끼며 무너져버렸다.
거의 마시지 않았던 술을 마시고 담배를 처음 피우게 된 것은 부산대에 입학하고 나서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