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바퀴 같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충만한 하루로 바꿀 수 있을까?
요즘따라 유난히 일상 힐링 영화가 재밌어서, 이 영화 저 영화 찾아보다가 발견한 영화가 <패터슨>입니다.
이전에 <퍼펙트 데이즈>가 도쿄의 화장실 청소부를 다룬 얘기였다면, <패터슨>은 패터슨 시의 버스 기사를 다룬 내용입니다.
두 영화는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영화입니다.
똑같이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다루지만, 그들의 환경이 좀 다르거든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은 아내와 친구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고독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패터슨>의 주인공은 사랑하는 아내와 몇몇 친구들과 애완견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패터슨>은 고독한 감성은 좀 덜하고 그저 누군가의 평화로운 일상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었네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퍼펙트 데이즈>의 고독한 감성을 좀 더 좋아하긴 합니다.)
어쨌든, 이번 영화도 일상 힐링 영화이며 <패터슨>을 보면서 느낀 점들을 간단하게 말씀드리려 합니다.
패터슨 시에 살아가는 버스 기사 '패터슨'
그의 일주일간의 단조로우면서도 반복적인 일상이 영화의 주요 줄거리입니다.
아침 6시 15분쯤에 기상하여, 사랑하는 아내에게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 시리얼로 가볍게 아침을 먹습니다.
근무지에 출근하여 버스에 앉은 패터슨은 출발 전에 노트를 꺼내어 시를 적습니다.
버스를 운전하고 나서는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다시 이야기를 나눈 뒤 저녁을 먹습니다.
이후에는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가다가, 바에 들러 가볍게 맥주나 위스키 한 잔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영화를 보면서 참 부러웠던 것은, 그의 평화로운 일상보다는 사랑스러운 아내였습니다.
패터슨은 시를 쓰는데, 그의 시를 굉장히 칭찬해 주면서도 풍부한 감수성으로 집안을 꾸미는 아내 덕분에 조금은 무뚝뚝하고 무감각한 패터슨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거든요.
히라야마의 자유로우면서도 고독한 공간도 부럽긴 했지만, 사랑스러운 아내가 채워주는 공간 또한 부럽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주말에 오랜만에 아내와 데이트를 하고 돌아왔더니, 그가 키우는 강아지가 패터슨이 그동안 쓴 시들이 담긴 공책을 갈기갈기 찢어버렸거든요.
패터슨은 망연자실하여 넋이 나간 듯이 자리에 주저앉습니다.
아내가 위로를 해주지만 패터슨의 심란한 마음은 좀처럼 풀어지지 않는데요.
어느 날, 너무 답답해서 동네를 산책하다가 폭포 앞에서 풍경을 감상하던 패터슨.
그의 옆에 웬 일본인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알고 보니 그 일본인 또한 시인이었고, 패터슨이 좋아하는 시인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패터슨은 자신의 시 노트가 찢겨서 더 이상 자신을 시인으로 여기지 않고 그저 버스 기사로만 정체성을 확립한 상태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일본인은 선물이라고 빈 노트를 건네며 말합니다.
"때로는 텅 빈 페이지가 많은 가능성을 선사한다."
이렇게 말을 건네고 그는 떠나갑니다.
패터슨은 새로운 노트를 꺼내어 다시 한 소절을 써 내려갑니다.
그는 다시 시인이 되었고, 월요일 아침이 밝아오며 영화의 이야기는 끝납니다.
자신의 소중한 시 노트가 찢겼을 때, 패터슨의 마음 또한 분명 찢겼을 겁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애완견이 아무런 악의 없이 찢었으니 딱히 화를 풀 대상도 없어서 더욱 답답했겠죠.
시 쓰기를 멈추고 자신을 그저 버스 기사로만 생각하며 살아가려던 그를 다시 살려낸 건, 다른 시인이 건네준 새 노트 하나와 그 노트에 써 내려간 한 소절이었습니다.
과거에 써 내려간 소중한 시들이 다 없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시를 쓰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니까요.
패터슨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 찬 빈 페이지에, 자신의 시를 써 내려가며 현실을 다시 채워 나가게 됩니다.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두 주인공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와 <패터슨>을 보고 나서 느낀 점은, 사람이 일상을 살아가면서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이 하루에 한 번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렇게 해야만이,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거 같습니다.
사실, 두 주인공들은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지 않고 오직 개인적으로만 일하는 청소부와 버스 기사이고, 업무를 하면서 성취감이나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직종은 더더욱 아닌 사람들입니다.
하루가 단조롭고 평화롭긴 하겠지만,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직종을 종사하는 그들에게 가슴에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은 어찌 보면 필수가 아닌가 싶네요.
패터슨은 그게 시 쓰기와, 사랑하는 아내와의 교감으로 나타나고
고독한 히라야마는 자신이 키우는 식물과, 카세트테이프 듣기, 책 읽기 등과 같은 활동들로 나타납니다.
시험연구원으로 재직하는 저도 두 주인공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책 읽기, 글쓰기, 영화 보기와 같은 활동들이 저를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 해 주며 가끔씩 재밌는 작품들을 볼 때마다 행복감을 느끼곤 합니다.(혼술을 좋아하는 것도 좀 닮았네요)
제게 이런 취미와 일상이 없었다면, 분명 어느 순간 매너리즘에 빠져서 본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거 같습니다.
제 삶 자체도 더 삭막하고 재미가 없었겠죠.
직장생활을 그럭저럭 만족하면서 하고 있지만, 제게 가슴의 충만함을 느끼게 해주는 활동은 퇴근 이후의 삶이거든요.
이 충만함은 꼭 거창한 성공을 이뤄야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가벼운 산책, 맛있는 식사, 하늘을 잠깐 바라보는 것 등의 소소한 활동으로도 충분히 가슴을 채울 수 있습니다.
이런 순간이 하루 중에 단 한순간이라도 없다면 너무 삭막하고 힘들 것 같네요.
만약, 매일 잠자리에 드는 시간에 하루를 되돌아볼 때 행복했던 순간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내일은 꼭 행복한 순간을 만들도록 노력하는 건 어떨까요? 그 노력은 분명, 그날의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 줄 겁니다.
수많은 하루가 반복되면서, 그날의 기억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는 잊히더라도 그 충만함은 우리의 가슴에 남을 겁니다. 행복은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기에, 이런 행복한 순간들을 계속해서 쌓아가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자산이 아닐까 싶네요.
이상으로 <패터슨> 리뷰를 마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