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계단을 오르면서 점점 성장하고, 그렇게 삶의 이면을 맛본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우리는 왜 인생을 살아갈까요?
이 질문은 세상을 살아가는 저희 각자 모두 대답이 다를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공통적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느끼고 싶어 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인생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는 것.
그러나, 그 행복은 그저 주어지는 것일까요?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소년이 느끼는 즐거움은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소년은 어른이 되면서, 삶에서 많은 좌절과 고난을 겪습니다.
그렇게 좌절과 고난을 겪고도 삶을 살아가는 의지를 잃지 않는 것. 그 고통이 가득한 삶 속에서도 삶의 희망을 잃지 않고 끝내 행복을 성취하는 것.
청년이 되어가고 노년이 되어가면서도 삶을 긍정하는 자세야 말로 삶의 행복을 느끼기 위한 필수 조건 중 하나가 아닐까요?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성장해야 하며 그 성장은 지혜를 얻으면서 이뤄집니다.
그 성장과 지혜는 어찌 보면 단계적으로 이뤄질 것입니다.
개인마다 순서는 좀 다르겠지만요.
그 단계적인 과정을 열 한 계단으로 비유하며 작가님 본인의 성장을 다룬 '인문학적 수필'이 바로 <열 한 계단>입니다. 이 내용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각 계단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1. 문학 - 죄와 벌
2. 기독교 - 신약성서
3. 불교 - 붓다
4. 철학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5. 과학 - 우주
6. 이상 - 체 게바라
7. 현실 - 공산당 선언
8. 삶 - 메르세데스 소사
9. 죽음 - 티베트 사자의 서
10. 나 - 우파니샤드
11. 초월 - 경계를 넘어서
각 계단의 순서에 따라 내용의 수준이나 높낮이가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작가님이 걸어온 성장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나타낸 듯합니다.
그 과정에서 물론 수많은 책들을 읽었겠지만, 키워드를 나타내는 가장 적절한 책들을 고른 것 같네요.
각 계단을 오르며 소년은 삶의 갖가지 면들을 맛보고 체험하면서 청년이 되어 갑니다.
이 성장의 과정은 작가님 본인의 성장과정이지만, 읽는 독자들도 순차적으로 읽다 보면 내면의 성장을 분명히 맛볼 수 있을 듯합니다.
작가님 본인의 이야기가 재밌고 감동적이기도 하며, 솔직하게 써 내려간 이야기는 마음 깊이 공감도 됩니다.
그러면서, 책의 내용과 지식, 지혜들도 적절히 설명해 주는 책.
저는 솔직히 정말 잘 만들어진 책이라고 개인적으로 느꼈습니다.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입문서로 이 책을 읽는 걸 강력하게 추천드리고 싶을 정도로요.
그러면, 이제 책 속의 내용들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제 생각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반박할 수 없고 언제나 참인 진리가 가장 무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간은 죽는다'라는 언제나 참인 진리는 우리의 마음을 울릴까요? 그저 약간 불편함만 느끼지 않을까요?
논의할 수 없는, 언제나 참인 진리는 우리의 삶에 그렇게 큰 울림을 주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당장 눈앞의 벌레를 더 무서워하는 법이죠.
삶 속에 언제나 참인 진리보다, 내가 직접 움직여서 참으로 만드는 진리가 삶에서 더 중요하겠네요.
머릿속의 생각과 내 행동으로 현실에서 체험하는 것은 천지차이니까요.
나는 대학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이상주의자로 살아볼 기회가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부담스러웠겠지만, 나는 그저 좋았다.
청춘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한 번 살아보고, 가능성을 펼치기도 하며 더 넓은 세상을 만나볼 수도 있는 기회의 장이 펼쳐지는 시기입니다. 작가님은 이때, 책 속의 이상을 토대로 현실에서 살아보려고 한 것 같습니다. 이런 시도는 어릴 때만 할 수 있는 것이죠. 나이가 들어 사회에서, 규범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할 수 없는 법이니까요.
남들에게 약간의 부담을 줄 수는 있어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청춘의 시기에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세상을 살아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만약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의 순간으로 돌아가서 젊은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가 가진 생각과 기분과 세계관과 계획에 대해서 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나는 단 한마디도 그를 가르치려들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는 무조건, 자신보다 먼저 산 인생 선배들, '어른'이라고 불리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그 어른들은 대부분 무언가를 '가르치려'듭니다.
좋은 마음에서, 자기가 한 고생을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해주는 말이겠지만, 저는 솔직히 굳이? 싶습니다.
자신이 가르치려는 그 어린 청춘들도, 똑같이 고생을 겪어봐야 어른과 같은 진리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조언을 구하지 않는다면, 그냥 잠자코 지켜보며 응원을 해주는 게 저는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그 청춘의 생각을 한 번 들어주는 게 제일 좋은 응원이 아닐까요?
우리는 지식을 가르칠 순 있어도 지혜는 가르칠 수 없습니다.
좋은 말과 조언은 1번만 딱 해주고 그냥 청춘을 믿어주는 게 어떨까요?
그 청춘도 스스로 넘어지면서 배울 시간은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넘어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고맙고 감사하지만, 넘어져야만이 그 청춘도 어른이 되는 법입니다.
세상을 그렇게 단순하게 파악할 때에만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어른으로 성숙해 간다는 것은 세계의 복잡성을 초연하게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어린 시절엔 그냥 레고 하나만 사줘도 그렇게 행복하고 즐거웠는데, 이제는 레고 회사를 주지 않는 이상 행복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레고 회사를 주더라도, 그 즐거움이 어린아이가 레고를 얻었을 때보다 더 오래갈 수 있을까요?
어른과 아이의 이러한 차이는 세계를 받아들이는 넓이의 차이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린이의 세상엔 레고가 전부겠지만, 어른에게는 레고는 삶의 극히 일부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더욱 많아지고, 그것 때문에 문제는 더욱 복잡해집니다.
그 복잡성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기 위해선, 그저 초연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 자세는 일종의 '포기'와도 같아서 슬프지만, 그렇지 않으면 점점 더 복잡해지는 세계에 잡아먹힐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형이상학적인 무엇인가로 채워져 있는 공간이 아니라, 처음부터 구체적인 삶으로 가득했다.
저는 학창 시절에 공부는 하지 않고 책만 읽었던 학생이었습니다.
구체적인 현실, 의무인 '공부'를 하지 않고 좋아하는 '책'만 읽으며 살아왔던 저에게 세상은 그때 제일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수능을 망치고 편입을 준비하면서 제 세상은 어두운 현실로만 가득 찼죠.
세상은 '이상'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기에, '이상'만 바라보며 살아갈 수 없습니다.
'현실'이라는 땅을 굳건히 하고 나서야, '이상'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어린 시절에는 몰랐네요.
성실하게 땀을 흘린 사람만이, 달빛에 감동을 느끼는 법이란 것을..
달만 바라보며 하루를 지낸 사람에게, 달빛은 그저 지루할 뿐이란 걸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제 청춘은 조금 더 밝지 않았을까 싶네요.
저도 예전에는 안 그랬지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군 생활이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사람들도 힘들게 하고, 되는 일도 없고, 왜 힘든지 생각했더랬지 말입니다. 생각하다 보니까 보람도 성취도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생각했습니다. 그럼 왜 보람도 성취도 없나. 그랬더니 제가 모든 걸 대충 하려고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군대 일이란 게 그렇게 인생에서 중요한 것도 아니고. 그러니 구색만 맞추려고 한 거지 말입니다. 그렇게 저는 군 생활 전체를 중요하지 않은 일로 채우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역해서 사회에 돌아가면 지난 2년은 버린 시간이 되겠구나하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걱정이 됐습니다. 그러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20대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하찮은 시간으로 채울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짐했지 말입니다. 나한테 선물해야겠다, 군 생활의 2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서 스스로에게 선물해야겠다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뭐, 구두부터 닦기 시작했습니다.
작가님이 장교생활을 잠깐 하면서 만났던 안 병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남자들은 사실, 군대생활을 그저 버리는 2년이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버텨내는데, 안 병장은 좀 달랐습니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2년으로 만들기 위해, 사소한 것 하나도 대충 하지 않고 열심히 하며 살아가게 됐죠.
어차피 흙먼지로 금방 더러워질 구두를 성실히 닦는 것은 귀찮은 일입니다.
하지만 안 병장은 단순히 구두를 닦는 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묻는 게으름을 닦는 것이었습니다. 구두에 묻은 흙먼지들을 놔두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방치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먼지가 묻은 구두로 걷는 자신의 삶의 행보는 과연 깨끗할까요?
저는 군시절에 정말 하루하루를 먼지가 묻은 구두로 걸어갔었는데.. 새삼 전역한 지 7년이 지나서야 반성을 하게 되네요
삶은 받아들이는 방식으로만 당신에게 말을 건넵니다.
빅터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 리뷰에서 제가 비슷한 글을 적었습니다. "삶에 질문을 구하지 말고, 삶이 던져온 질문에 대답하라." 마찬가지로, 삶은 거절하기보다는 받아들이는 방식으로만 삶과 대화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거절한다는 것은 도망치는 것이며, 그 도망침의 과정에서 어떻게 삶과 대화할 수 있을까요?
삶이 던져온 갖가지 시련과 과제에 의연히 앉아서 대처해야만, 숨은 뜻을 알 수 있는 법입니다.
우리가 책을 읽음으로써 A라는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미 자신의 삶 속에서 A에 대해 체험했어야만 합니다. 세상의 모든 텍스트는 우리에게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텍스트에서 새로운 지식을 얻었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이미 우리가 그 지식에 대해 앞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성현이 남긴 글이라도, 내가 그 진리를 삶에서 체험하지 못했다면 그저 지식일 뿐이며, 금방 우리 머릿속에서 잊힐 뿐입니다. 하지만, 내가 삶에서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거나, 확실히 경험했는데 머릿속으로 정리되지 않았던 지식이 있다면? 그 지식은 내 몸에 체화가 되면서 지혜가 됩니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소년, 소녀는 어른이 되어 갑니다.
아름답고 좋은 것만 보고 겪으며 크면 좋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아름다운 동화는 아닙니다.
오히려 잔혹한 동화에 더 가까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 현실을 마주할 때, 모든 소년과 소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좌절하고 삶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성장하며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이죠.
세계의 복잡성을 받아들인 어른은, 아이의 순수함을 잃었기에 아이만큼의 '즐거움'으로 세상을 마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른의 성숙함으로 분명 또 다른 행복을 삶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행복을 찾기 위해서, 어른은 조용히 세상을 계속해서 탐구하고 고통에 맞서 싸워나가야겠죠.
인문학과 에세이를 좋아하시는 독자님이라면, <열한 계단>을 무조건 읽어보시는 걸 추천드리며, 이상으로 리뷰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