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다 마쓰루의 무도적 사고에 대한 간단 고찰
인터넷 칼럼을 읽다가, 우연히 우치다 다쓰루라는 사상가? 무도가의 책을 소개받게 되어 읽은 책이 있습니다.
<목표는 천하무적>이라는 솔직히 다소 황당한 내용의 책제목에 끌려 읽게 되었는데요.(밀리의 서재에도 있어서 읽은 게 더 크긴 하죠)
프랑스 철학을 공부하면서 동시에 무도를 수련하고, 자신만의 사상을 글로 쓰는 작가님이기도 한 이 분의 생각과 사상이 창의적이면서도 마음에 남는 게 있어 몇 가지만 알려드리려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무도의 본뜻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와 힘을 기르는 것'이며, 그게 전부입니다. '살아가는 힘'은 남과 비교하는 게 아닙니다. '살아가는 힘'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요.
무도가 단순히 격투, 호신술이 아니라는 관점이 신선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힘과 지혜를 기른다는 것은 어찌 보면 육체가 아니라 정신적인 수양까지 동반되는 말이네요.
그리고, 그 힘은 남과 다르기에 남과 비교할게 아니라는 문장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람마다 신체적인 조건이 다르듯, 그들만의 힘과 능력도 다 다를 텐데 비교를 하며 우열을 가리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은데 말이죠.
첫째, 무도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건 '지금 수중에 있는 것으로 어떻게든 해본다'는 뜻
지금 당장의 현실에서 필요한 것으로, 어떻게든 위기를 모면하고 해결한다는 사고가 무도적 사고인 듯합니다. 필요한 것이 갖춰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완벽주의보다는, 지금 당장 움직이는 무도적 사고와 행동이 현실을 살아가는데 훨씬 바람직하겠네요.
그러나 오늘날 진검승부의 장은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하루하루 생업을 꾸려 가는 '현장'이다. 거기서 실패하면 설 자리를 잃고 신용을 잃고 명망과 위신을 잃고 재화를 잃고, 경우에 따라서는 길거리를 헤매게 되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곳을 진검승부의 장이라고 한다면, '생업 현장'이야말로 우리 비전문가의 진검승부의 장이다.
우리의 생업 현장을 보통 '전쟁터'로 비유하곤 하는데,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네요.
일자리를 잃으면 돈을 못 벌게 되고, 이 돈을 못 벌게 되면 인간으로서의 '삶', 생존 그 자체에 위협을 받게 되니 승부의 장이 맞는 듯합니다.
다들 치열하게 경쟁하고 남을 이기려는 이유가 바로 삶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는 현장이었기 때문이네요.
무술 수련을 통해 개발되는 능력 중 가장 유용한 것은 분명 '문제의 가능성을 미리 감지해 위험을 회피하는' 능력이기 때문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미리 대비하여 움직이는 사고와 행동을 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막연하게 아.. 이렇게 살다가 큰일 날 거 같은데, 이러면 안 될 거 같은데라고 생각을 하지만 게으르게 행동하는 사람이 대다수이죠.
그러다가 문제가 부닥치고 나서야, 허겁지겁 행동해서 급한 불을 끄는 행동은 지혜롭지 않습니다.
무도가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힘과 지혜를 키우는 것이라면, 이렇게 미리 위험을 감지하여 행동하는 능력이야말로 무도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이 아닌가 싶네요.
배우자란 '틀니'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나'라는 자연물에 침입해 들어오는 '이물질'이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나와는 맞지 않는다. 이때 '(자신에게) 맞는 배우자를 구하기'보다 '배우자에게 (자신을) 맞추기'에 우선적으로 자원을 쏟는 사람이 무인이다. 뛰어난 무인 가운데 애처가(라기보다 공처가)가 많은 것이 그 사실을 잘 말해준다.
누군가에게 맞춰가는 사랑의 역학을 무도적인 관점으로 이렇게 해석한 게 재밌네요.
본질적으로 나와 맞지 않을 수밖에 없으니, 그 상대방에게 맞춰간다는 얘기가 조금 로맨틱하기도 합니다.
배우자에게 맞추어주면서 미리 일어날 싸움을 회피하는 능력도 무도가의 능력인 걸까요..?
우리가 승부에 열중하는 것은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적절한 패배' '의미 있는 패배'를 습득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승부에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누구도, 삶에서 한 번쯤은 패배를 맛보게 될 거지만, 그 패배는 적절하면서도 의미 있는 패배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패배에 어떤 조건이 있어야 할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패배를 통해 배운 점이 있어야 한다."
그 배운 점이 있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이기기 위해서 노력을 했어야 한다는 조건이 또 붙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했지만 패배했을 때, 사람은 그 패배를 받아들일 수 있고 그 패배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아.. 조금만 더 하면 이길 수 있었을 것 같은데'라는 후회가 남게 되면 우리는 그 후회로 더 이상의 성장을 멈추고 맙니다.
어쨌든, 어떠한 승부처에 갈렸을 때 목숨까지 걸 정도로 열심히 승부를 해야 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네요.
노화를 성숙으로 바꾸려면 주체적으로 움직어야 한다.
단순히 나이만 들면 노화이고, 무언가 끊임없이 배우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겪은 사람은 성숙이죠.
그러기 위해선 수동적으로 삶을 받아들이지 않고 능동적으로 대처해나가야 합니다.
뭔가를 배울 때는 배우기 전에 사전지식을 너무 많이 갖추지 않는 편이 좋다, 이것이 제 경험에서 나온 확신입니다. 왜냐, '유용성이나 가치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습득하려고 하면 인간은 비용 대비 효과가 좋은 방법을 찾거든요. 목적지를 알고 있으면 가장 가까운 길을 찾으려는 것과 똑같습니다.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성과를 거두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 대학 졸업 자격은 다들 유용한 것으로 여깁니다. 대학을 졸업하려면 124학점이 필요하죠. 이 두 가지 조건을 주면 최소의 학습 노력으로 학사 학위를 손에 넣는 방법을 궁리합니다.
무언가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접근하게 되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 효율로 대상을 판단하게 되면, 뭔가 어긋나게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빠르게 산을 정복하고자 하는 등산 가는, 등산길에서 마주칠 수 있는 수많은 아름다움의 가능성을 눈에 담지 않죠.
어떤 길을 걸을 때, 너무 성과와 목표에 치중하면 오히려 지쳐버리고 재미를 못 느낍니다.
차근차근 천천히 자신만의 재미와 아름다움을 인생에서 찾아가는 게 중요하겠네요.
END
무도의 목적은, 심신을 연마해 삶의 지혜와 힘을 높여 가는 것이 전부입니다. 강약・승패・교졸을 논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도가 개발하는 힘은 점수를 매겨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상생활에서 ‘무엇이든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어디서나 푹 잘 수 있다’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다’ ‘힘들 때도 싱글벙글할 수 있다’ ‘곤란한 사람이 있으면 즉시 손 내밀 수 있다’와 같은 무수히 구체적인 형태로 발현하는 힘입니다.
무도라는 것은 단순히 호신술을 연마하는 것이 아닌, '삶' 자체를 살아가는 호신술을 연마하는 관점이란 게 흥미로웠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무수한 위험과 고통을 마주치게 됩니다. 이 위험과 고통은 피할 수 있는 것임에도 지혜가 부족하거나 나의 게으름 때문에 마주하게 되기도 하죠.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사람은 무도를 수련하여 최종적으로 삶을 행복하게 꾸려나가는 힘과 지혜를 길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네요. 한 치 앞을 알기 힘든 게 사람의 인생이지만, 어떤 시련과 고통이라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기른 사람은 분명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낼 것은 분명합니다.
무수한 고통이 펼쳐진 가시밭길이라도, 튼튼한 안전화와 옷을 걸친 사람은 남들보다 훨씬 더 쉽게 길을 통과하여 아름다운 꽃밭을 보게 되겠죠.
그 꽃밭은 무도적 사고를 통해 지혜를 갖춘 이들만이 도달하고, 그 아름다움을 알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