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시끌벅적한 도서관은 조금 이상하긴 하다.
우치다 다쓰루 작가의 책이 재밌어서, 다른 책을 하나 더 집어 들었습니다.
무도가이면서도, 사상가이고 독서가이기도 한 이 일본 작가님의 말과 생각이 꽤 신선했거든요. 그렇게,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를 읽게 되었습니다.
꼭 도서관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신선하고 독특한 발상들이 많았습니다.
그 내용들을 간략히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책의 99.999999 퍼 센트를 저는 아직 읽은 적이 없습니다. 그 사실 앞에서 망연자실해집니다. 제가 모르는 세계가, 그리고 자칫하면 제가 죽을 때까지 모르고 끝날 세계가 그만큼 존재한다는 당연한 사실 앞에서 종교적이기까지 한 감동을 느낍니다. 이 많은 책 가운데서 제가 평생 읽는 책은 정말로 한정된 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만큼 인연이 있는 책인 것이지요.
어릴 때 도서관을 다니면서, 여기 있는 모든 책을 읽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가졌었습니다. 그때, 도서관에 엄숙하게 꽂힌 책들을 보며 막연하면서도 뭔가 모를 감동을 느끼곤 했습니다. 펼치기 전에는 아무것도 모를, 그저 장식품에 불과한 책 안에는 어떠한 지식, 세계가 숨어있습니다. 그 세계들이 장엄하게 꽂여 있는 광경은 도서관만이 가져다주며, 그 앞에서 모든 이용자들은 자연히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수많은 책들 중, 제가 집어 들어 읽게 되는 책은 아무리 우연이라 할지라도 필연이며, 인연입니다. 읽고 나서 곧 까먹게 되더라도, 내 기억과 영혼에 아주 조금이나마 자리를 잡게 될 인연인 것이죠.
무도를 수련하는 도장은 절의 대웅전이나 교회와 마찬가지로 초월적인 것을 불러들이기 위한 장소입니다. 일종의 종교시설이죠. 그러므로 제대로 정돈되어 있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성스러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한 필수 조건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도서관이라는 곳도 본질적으로 초월적인 것을 불러오기 위한 성스러운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초월적이고 영성적인, 어떤 '영혼' 같은 것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영혼은 이상하게도 '물리적으로' 빈 공간이 있어야만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그 영혼을 찾기 위해서는 주의집중해야 하기에, 시끌벅적한 곳보다 조용한 곳에서 더 쉽게 포착이 되는 법이죠.
이런 종교적인 공간이, 도서관에도 해당된다는 관점이 신선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책들도 결국 어떤 종류이건 간에 작가가 고심하고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일종의 작품들입니다. 작가의 '영혼'이 담겨있는 물질이죠.
그 물질들이 수 십만 권 꽂혀 있는 도서관은 신성한 곳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서관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별로 없는 편이 좋습니다. 저는 사람이 많고 북적거리는 도서관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서관은 일고 싶은 책을 빌리러 가는 장소가 아닙니다. 무언가를 조사하러 가는 장소도 아닙니다. 물론 그런 기능도 있습니다만 최대의 기능은 무지를 가시화하는 것입니다. 도서관은 우쭐대지 말라며, 이용자의 콧대를 꺾는 '정문의 일침'을 놓습니다.
도서관의 본질적 기능은 책장 사이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읽은 적 없는 책, 읽을 일 없는 책에 압도당하는 체험을 선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서관은 기본적으로 조용한 곳이고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고 합니다.
이용자마다 초월적이고, 엄숙한 그 감정을 느끼기 위해선 '타인'의 존재는 솔직히 방해되기 때문입니다.
그 압도적인 지식과 영혼의 무게 앞에서, 인간은 혼자 독자적으로 그 엄숙함을 맛보는 게 좋습니다. 그 엄숙함을 한 번 맛본 인간은 본인도 모르게 다른 인간이 됩니다.
압도적 지식 앞에서, '무지'를 가시화하여 체험한 인간은 겸손한 독서가가 되어 삶을 읽어나가게 됩니다.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일상적으로 압박해 오지 않는다면 이상적 자아로서 기능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런 책을 읽는 사람이다'라고 남들에게 과시할 수도 없고, '나는 이 책들을 (언젠가) 다 읽어야 할 사람'이라고 스스로 다짐하고 자기 교화의 단서로 삼을 수도 없습니다.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읽지 못한 책이 남아 있을 때 무언의 압박을 다들 느끼실 겁니다.
책을 다 읽어 갈 때쯤에는 또 여러 다양한 책들을 찾아서 앞으로 읽을 목록에 추가하죠.
과시욕으로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어떤 책이든 읽어야 할 책을 남겨둔 사람은 앞으로도 더욱 무언가를 배우고 읽어나가겠다는 자세를 갖춘 사람입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교화하고 성장하겠다는 자세를 갖춘 것이, 독서가들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집에 와서 제 책장을 본 사람들은 제가 거기에 있는 책을 전부 읽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생각하죠. 설마 그럴 리가요.
사실, 누군가의 서재를 방문하게 됐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죠.
"와, 이 사람은 이걸 다 읽었나? 이거 진짜 어려운 책 같아 보이는데.. 대단하다."
하지만, 서재를 갖춘 분들은 다들 알고 있듯, 그냥 홀린 듯이 책을 사놓고 꽂아만 두시는 분들도 많죠.
읽었다 한 들, 제대로 이해 못 하고 그냥 꽂아두거나 중간에 덮어놓은 책들도 많고요.
그런데도 서재에 그냥 책을 꽂아두면 뭔가 여기에 있는 책들은 전부 다 읽고 이해한 것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이것도 작가님이 말한 서재의 순기능 중 하나일지 모릅니다.
사놓은 책은 언젠가는 무조건 다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 이 압박감 속에서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무지'를 탈피하기 위해 책을 읽으며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걸지도요.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리는 공간이 아니라, '무지'를 가시화해 주는 신성한 장소라는 것.
그 장소 속에서 누구나 겸손해지고, '무지'를 조금이라도 더 없애기 위해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관점은 매우 신선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도 어린 시절 도서관을 다닐 때 신성한 느낌을 받았고 그 어느 곳보다 종교스러운 장소라고 생각하며 많은 위안을 받았거든요.
영화에서 주인공이 성당이나 교회를 찾아가면, 이상하게도 예배 장소에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기껏해야 신부님이나 목사님과 함께 주인공만 등장하죠.
그런 빈 공간에서야만이, 주인공의 고뇌에 집중이 되기 때문입니다.
도서관도 마찬가지입니다.
'타인'이 없어야, 나는 그 신성한 장소에서 무언가 종교적인 생각과 느낌이 나를 침범합니다.
그것에 이미 침범당한 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인간이 되어 삶을 읽어나갈 것입니다.
독서가분들이라면, 모두들 한 번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를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