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키코모리나 다름없었던 편입 첫 학기
편입 첫 학기를 앞두고 걱정했던 것이 하나 있다.
20대의 시작부터 동기들과 친해지는 걸 멀리하고 공부만 했던 내가, 과연 학과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까?
동기가 아닌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그럭저럭 잘 버텨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외로움이 차곡차곡 쌓여왔던 나의 20대 절반.
걱정스러운 마음은 두려움을 불러왔지만, 또 한편으로 기대되는 마음은 설렘을 가져왔다.
하지만, 현실은 내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첫 학기는 코로나로 인해 전면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된다는 공지가 떴기 때문이다.
다른 재학생들은 집에서 들어도 되는 온라인 수업이 좋았겠지만, 나는 씁쓸했다.
나는 항상 이렇게 외톨이로 살 수밖에 없는 건가?
나는 강의실이 아니라 좁은 자취방에서 조촐하게 첫 학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온라인 수업이긴 했지만, 교수님마다 스타일은 전부 달랐다.
zoom 같은 화상회의 시스템을 바로 능숙하게 사용하시는 교수님도 있었고, 동영상만 녹화해서 올리는 교수님도 있었다. 학생 입장에서는 동영상이 훨씬 편했다.
실시간으로 들어야 하는 화상회의보다는 일주일 안에 1시간짜리 동영상만 들으면 되는 수업은, 그 편리함 만큼이나 집중도는 덜 했다.
그 편리함에 점점 잠식되다 보니, 나는 학업에 대한 열정을 점차 잃어갔다.
똑똑한 교수님들은 당연히 이를 인지하셨는지, 하나 둘 zoom 같은 화상회의 시스템 사용법을 익히시고 이걸 이용해 수업을 하기 시작했다.
카메라도 강제로 다 키게 하고 질문도 무작위로 시키거나 실시간 댓글을 통해 받는 식으로 수업 참여도를 높여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역시 강의실에 다 같이 모여 듣는 비대면 수업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교수님들도 가끔씩 zoom이 부담스러울 때는 동영상 강의로 대체하거나 과제로 대체하기도 했다.
내가 생각한 첫 학기는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나는 편입시험을 칠 때 봤던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내 지난날에 대한 보상을 조금이라도 받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역시 좀 더 차갑고 냉정하달까.. 4평도 안 되는 원룸에서 그보다 훨씬 더 작은 13인치짜리 노트북으로 듣는 수업은 나를 더욱 작고 외롭게 만들었다.
게다가, 수업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고 난생처음으로 듣는 영어강의에 나는 당황했다.
이게 부산대학교의 평균인가..? 이보다 더 좋은 대학들은 도대체 어떤 강의와 과제를 받는 걸까?
이대로 뒤처져서 포기하기는 싫었지만, 계속해서 자취방에서 수업을 듣다 보니 집중도 안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어영부영 금방 흘러가서 중간고사를 치르게 되었다.
중간고사는 그래도 비대면으로 하면 너무 많은 문제가 생길 테니, 대면으로 엄격한 통제하에 치르게 되었는데 나는 절망했다.
전적대학에서는 항상 빽빽하게 채우던 시험지를, 여기서는 처음으로 백지로 내게 되었다.
남들은 다 서걱서걱 답안지를 써 내려가는데, 내 주변만 무소음인 이 기분..
교수님이 수시로 교실을 돌아가면서 다른 사람의 답안지를 슬쩍슬쩍 보는데, 내 답안지는 텅텅 빈 백지..
손으로 가리기엔 너무 컸던 시험지와, 그 시험지보다 더 넓었던 나의 절망.
1시간 동안 꼼짝도 못 하고 시험지만 보던 나는 교수님이 이제부터 나가도 된다는 말을 하자마자, 고개를 숙인 채 시험지를 내고 뛰쳐나갔다.
아무도 나를 뭐라 하지 않았지만, 부끄러운 마음에 황급히 내 자취방으로 향했다.
나는 겨우 이 정도 수준이었구나..
아무리 공부를 안 했어도, 아예 안 하지는 않았는데 단 한 문제도 못 풀 줄이야.
다른 시험들도 그렇게 잘 치른 것은 아니었지만, 백지는 절대 아니었다.
어느 정도 공부했음에도 단 한 문제, 기초적인 문제조차 못 풀었던 내가 너무 한심했다.
한심한 중간고사가 끝나고, 나는 결국 그동안 입에도 안 댔던 술을 마시게 되었다.
홧김에 마신 술은 담배까지 피우게 만들었다.
중간고사가 끝난 4월 중순의 날은 정말 날씨가 쾌적하고 좋았다.
코로나가 기승이었어도, 청춘들은 마스크를 쓰고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그 무리에 낄 수 없었기에 혼자 외로이 동네를 거닐 뿐이었다.
시험이 끝난 주의 동네는 한적하고, 조용하고, 봄인데도 고독하면서 쓸쓸했다.
내 생각과 달랐던 학창생활과 나의 수준.
그 비참함은 공허한 마음을 가져왔고, 내 공허한 마음은 오갈 데가 없었다.
마음이 공허하면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폭식을 하게 된다던가?
항상 식당가에서 저렴한 한식을 먹던 나는, 배달음식을 먹게 되었다.
마라탕, 치킨, 초밥 등을 먹었지만,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외로움은 점점 깊어져갔고 나는 점점 미칠 것 같았다.
결국 내 외로움의 끝은 술로 향했다.
사실, 나는 전적대학의 처음 O.T에서 딱 한 번 술을 먹고 그 뒤로는 술을 거의 입에 댄 적이 없었다.
술은 웬만하면 다 같이 마시는 건데, 나는 혼자서 아웃사이더처럼 생활했으니까.
그래서, 취하는 게 무슨 느낌인지 잘 몰랐다.
별로 좋은 건 아닌 거 같은데, 왜 그렇게 사람들은 다들 술을 마실까?
나는 궁금증과 외로움으로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근처 편의점에서 참이슬을 한 병 사 왔다.
간단한 안주거리와 함께.
종이컵에 조금씩 따라가며, 떨리는 마음으로 첫 잔을 마셨는데 좀 썼다.
처음 마셔본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더 썼던 이 술잔.
그래도, 그때의 내 인생보다는 덜 썼기에 나는 연달아 마셨다.
안주를 잠깐 먹고 물을 마신 후 두 번째 잔을 마셨는데, 취기가 바로 올라왔다.
기분이 갑자기 확 좋아졌다.
확 좋아진 기분은 더 과감함을 불렀고, 바로 세 번째 잔을 마시게 되었다.
이 세 번째까지의 과정은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약간 헛구역질이 나긴 했지만, 확 달아오르는 취기는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결국 1병을 비우는 데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혼자 마시니까 술 먹는 속도를 조절할 수가 없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전거처럼 곤두박질 마신 나는, 술을 더 마시고 싶었다.
대낮에 취한 나는, 언덕길을 비틀거리며 내려가 편의점에서 다시 술을 사 왔다.
컵라면과 소주 1병을 더 사면서, 홧김에 담배도 하나 샀다.
취기가 오르면서 갑자기 세상이 우습게 보였고 무서울 게 없었다.
담배가 뭐 대순가? 내가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은데, 담배 한 대 따위가 뭐 그리 큰 문제겠는가?
나는 컵라면과 남은 소주 한 병으로 2차를 달리기 전에, 담배를 한 대 태우기로 했다.
군대에서도 안 폈던 인생 첫 담배였다.
어머니께 미안했지만, 담배 피우는 남자도 많고 형도 담배를 폈기에 피면 뭐 어때? 하는 심정으로 폈다.
담배도 뭐 별 거 없었다.
처음에 조금 콜록거리다가, 한 대를 피고 나니 별 거 없었다.
어라? 벌써 끝난 건가?
나는 다시 담 배 한 개비를 더 폈고 이것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뭔가 느낌이 올 때까지 계속 피다 보니 5개 정도를 연달아 폈는데, 그때서야 또 약간 기분 좋은 느낌이 오는 거 같았다.
그래도, 술만큼이나 드라마틱한 효과는 없었다.
이미 거의 취한 나는 술보다 더 내 마음을 끄는 것이 없었기에 자취방으로 다시 향했다.
컵라면 국물처럼 소주도 다시 더 들이켰던 나는, 어느샌가 슬쩍 잠이 들었다.
숙취는 새벽에 요란하게 찾아왔다.
새벽에 갑자기 잠이 깬 나는 속도 너무 안 좋고 머리도 깨질 듯이 아팠다.
끊임없이 토하다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면 물도 토했다.
그렇게 점심까지 토하고 나니 좀 나아져서 국밥을 먹으러 갔다.
하지만, 몇 숟갈 못 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가 대체 뭘 한 걸까?
인생 처음으로 담배를 피우고 술도 그냥 쭉쭉 들이켰던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힘들 때마다 정면으로 맞서 싸우지 않고 도피해 버리는 나의 버릇은, 편입을 합격하자마자 또다시 나타났구나.
나란 인간은 결국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한심하구나.
중간고사가 끝나고도, 내 1학기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여름방학을 맞이하게 되었고 여전히 아무런 사람도 만나지 못한 채 방에 틀어박히게 되었다.
그 고독 속에서, 이 정도면 나는 의연하게 잘 대처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힘들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방에서 아무도 없는데 혼잣말을 하고, 갑자기 울다가 미친 듯이 웃기도 하며 점점 무너져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