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명저 산책

누가 더 벌레 같은 사람인가? <변신> 후기

벌레로 변신한 주인공보다 더 벌레 같은 가족들

by Nos

INTRO


이번에 소개해드릴 도서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입니다.

세계문학, 교양 쪽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들어보셨을 법한 소설이죠.

뭔가 세계문학이나 명저들은 읽기 어려울 거 같았는데, 이 소설은 정말 술술 잘 읽히더군요.

하지만, 술술 잘 읽히는 문체와 달리 내용은 서글프고 우울했습니다.

솔직히 냉정하고 잔혹하기까지 했지만, 이게 현실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네요.


그 내용에 대해 간단히 리뷰해 보겠습니다.


줄거리 (스포 강력주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영업 사원으로 일하는 성실한 청년입니다.

아침 일찍부터, 외근을 나가서 근무를 해야 하기에 평소처럼 새벽부터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잠자는 이상한 감각을 느낍니다. 사람의 신체와는 전혀 다른 듯한 기묘한 감각들을 느낀 잠자.

자신의 몸을 보게 된 그는 믿을 수 없는 모습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곧은 두 다리가 아닌, 징그러운 벌레의 무수한 다리가 눈에 보인 것이죠.

갑작스레 벌레로 변신한 잠자는 제대로 몸조차 일으킬 수 없기에 그대로, 자신의 침실에 틀어박히게 됩니다.


그의 가족들은 식사하러 내려오지 않는 그레고르 잠자가 궁금하여 방문을 열었다가, 그만 기겁하고 맙니다.

거대한 유충과도 같은 그레고르 잠자의 모습에, 그를 책망하러 온 직장 상사는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게 되고 부모들도 눈물을 흘릴 만큼 공포에 휩싸이게 되죠.

오로지, 그의 여동생 그레테만이 그나마 마음을 추스르고 음식을 갖다 주게 됩니다.


벌레로 변신한 나날은 계속해서 흘러가지만, 그의 모습은 인간으로 전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생각하는 능력은 남아있지만 그가 내뱉는 말은 그저 벌레울음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기에 소통도 불가능한 상황.


이렇게, 그레고르 잠자는 벌레로 변신하게 되면서 그의 중요한 능력을 상실하고 맙니다.

바로, 일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서 그의 가족을 부양하는 능력을 말이죠.

그의 가족들은 사실, 그레고르 잠자가 벌어오는 생활비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여동생과 몸이 아픈 어머니, 일할 의지를 잃은 아버지.

사업 실패로 거대한 빚까지 있는 그들의 가족에게, 그레고르 잠자는 생명줄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묵묵하고 성실하게 일을 한 그레고르 잠자 덕분에, 생각보다 부족하지 않은 생활을 영위하게 된 가족은 그레고르 잠 자를 분명 사랑하고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잠자가 벌레로 변신하자 가족들은 서서히 태도를 돌변하기 시작합니다.

차라리 죽기를 바라는 존재로 말이죠.


잠자는 어느 날,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등을 맞게 되고, 그 등의 상처는 계속해서 곪아가게 되며 서서히 생명의 불이 꺼지게 됩니다.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가족들을 생각하던 그레고르 잠자이지만.. 그는 결국 쓸쓸하게 죽어 쓰레기장에 버려지게 되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작품 속 문장들


이 세상이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들을 그의 가족은 최대한도로 실천하고 있었다.


가난을 묘사하는 서글픈 문장들이 많지만, 카프카의 이런 묘사도 가난의 처절함을 직관적으로 잘 드러낸 듯합니다.

주인공이 벌레로 변신하기 전에는,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며 화목했던 가족들.

하지만, 주인공이 벌레로 변신하며 경제적인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리자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을 하게 될 수밖에 없게 된 가족들의 처절함.


하지만, 저는 이런 가족들의 모습이 딱히 안쓰럽지 않았습니다.

일할 수 있었음에도, 그레고르 삼자에게 의지해서 일하지 않았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 거니까요.

잠자가 벌레로 변신한 이유는, 어찌 보면 이 가족들을 각성시키기 위한 계기를 제공하기 위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문장입니다.


잠자 부부의 눈에는 딸의 모습이 그들의 새로운 꿈과 아름다운 계획을 다짐해 주는 증거처럼 비쳤다.


솔직히, 기분 나쁜 문장이었습니다.

딸이 아름답게 성장한 모습을 보고, 부모님이 신랑감을 찾아주려는 이야기의 흐름 속에 나타난 문장이거든요.

자신의 아들이 벌레로 변한 후, 경제적 부양 능력을 상실한 채 이내 죽어버리자 다음의 희생양은 바로 그들의 딸을 선택하려는 내용.

잠자 부부의 새로운 꿈과 아름다운 계획은, 그들의 딸을 잠자처럼 자신을 부양할 수 있게 만들려는 계획입니다.


잠자가 벌레로 변한 후, 그들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모습을 봤을 때에는 그저 일할 수 있는데 삼자에게 그렇게 의지하면서 부담을 줬구나 싶었습니다. 잠자는 끔찍하게도 일하기 힘들어했지만, 가족들을 위해 묵묵히 버텼는데 말입니다. 솔직히, 저는 그가 벌레로 변신하여 가족들이 고생하는 모습이 묘사되자 약간 통쾌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렇게 잠자의 여동생이 또다시 부모님을 부양하게 될 미래를 보니 숨이 턱 막히네요.


END


벌레보다 더 벌레 같았던 잠자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이 기분 나빴던 소설입니다.

물론, 프란츠 카프카가 다 의도한 내용이겠지만요.

아무리 피로 이어진 가족이라 하더라도, 그 가족이 자신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거나 원래 하던 역할을 다 못하게 되었을 때 가족들이 보이는 냉대가 현실적이면서도 불쾌했던 소설입니다.


하지만, 저 또한 과연 제 가족 중 한 명이나 정말 친한 친구가 벌레로 변신했을 때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가족이 그냥 몸이 아파서 몸져누운 게 아니라, 흉측한 벌레로 변신까지 해버린다면 그 '벌레'를 과연 가족으로 볼 수 있을까요?


잠자가 벌레로 변신하면서 드러난 가족이라는 관계의 실체는 씁쓸했습니다.

만약, 벌레로 변신했더라도 황금알 같은 걸 낳아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다면 가족들은 그렇게 냉대를 했을까요?

그 황금알로 부자가 될 수 있다면, 잠자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는 것을 아쉬워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중에 묘사된 잠자의 부모님이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 같더군요.


집안의 가장 이었던 '잠자'가 벌레로 변신하면서, 더 벌레 같은 모습을 보인 잠자의 부모님.

이런 모습을 통해, 현대 가족의 민낯을 드러낸 이야기.


술술 읽히는 문체이지만, 읽다 보면 조금은 불쾌해질 수 있는 소설 <변신> 리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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