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명저 산책

알을 깨기 위한 새의 투쟁 <데미안> 후기

세상을 부숴야만이, 새로운 세상이 나타난다.

by Nos

INTRO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소설의 제목 <데미안>

문학과 교양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읽어보셨거나 언젠가는 읽어봐야 할 소설 <데미안>을 저는 얼마 전에 다 읽게 되었습니다.


'새는 알에서 깨어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로 시작하는 그 구절의 책이 맞습니다.

이 유명한 구절대로,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세계에서 깨어나기 위해 투쟁하는 한 소년과 그 소년이 만난 데미안이라는 비범한 소년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내용에 대해 간단히 리뷰해 보겠습니다.


책 속의 문장들


자신의 감정들의 한 부분을 생각 속에서 수정하는 법을 익힌 어른은 어린아이에게 나타나는 이런 생각을 잘못 측정하고, 이런 체험들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인생에서 당시처럼 깊게 체험하고 괴로워했던 때도 드물다.


소설의 주인공인 싱클레어는 프란츠 크로머에게 돈을 뜯기며 굉장히 괴로워하는 유년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 프란츠 크로머라는 악당은, 싱클레어의 누나도 불러내려고 하는 아주 못된 녀석이죠.

이런 시달림은 데미안이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해결해 주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싱클레어에겐 삶 전체를 휘두를 정도로 막대한 영향을 미치던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유년시절의 경험들은, 어른이 되면 대부분 막연하게 생각되어 흐릿한 감정으로 남습니다.

딱히 별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되고, 그때는 왜 그렇게 휘둘렸을까 의아해하게 되죠. 그러나, 분명 아이일 때는 그 사소한 일이 엄청난 일이었을 것이며 자신도 모르게 상흔을 남겨 현재의 어른인 나 자신에게도 일정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싱클레어는 프란츠 크로머에게 굉장한 괴롭힘을 받아가며 세상에 대한 '악'의 일면을 배우게 됩니다. 유복하면서도 좋은 가정환경에서 자랐던 싱클레어가 악을 대면하며 새로운 세계의 일면을 보고, 자신이 알던 세계에 흠집이 가던 순간이 되었습니다.


헤르만 헤세 특유의 감수성과 깊이 있는 회고가 깃든 이 챕터는 읽다 보면 숨이 턱 막힙니다.

어린 시절에 누군가의 괴롭힘이, 세상 전체를 짓누르는 듯한 억압을 줄 수 있음을 느꼈던 대목이었네요.


무언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찾아내면,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우연이 아니라 그 자신이, 그 자신의 욕구와 필요가 그를 그것으로 인도한 것이다.


내 삶에 나타난 일련의 사건들은 우연도 있겠지만, 필연도 존재합니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건들은 우연보다는 필연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언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길을 자신의 선택으로 걷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길에서 겪게 되는 갖가지 사건들을 우연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요?

내가 그 길을 걷겠다고 선택함으로써, 겪게 된 모든 일들은 어찌 보면 필연이 아닐까요?


삶의 진리를 찾고자 속세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구도자가, 결국 진리를 찾게 되었을 때 그 진리를 우연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 구도자의 열망이 그를 그곳으로 이끈 것이니까요.

즉, 사람은 삶에서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얻게 된다면, 그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의 과정에서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삶을 살아가면서 가장 먼저 자신의 존재 방향성을 정립해야 하나 봅니다.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잘못된 방향으로 걷게 된다면 점점 그것에 멀어지니까요.


지금 내 삶이 너무 공허하고, 내가 원하는 바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면 자신의 방향성을 재정립해야 할 때입니다. 무작정, 살아가는 것도 어느 한 방향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기에 내가 원하는 삶과 점점 멀어지는 방향으로 걷고 있는 것이죠.

내 세상이 불안정하고 흔들리고 있다면, 어쩌면 그 세계를 깨부수고 새로운 세계로 걸어가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잠깐 멈춰 서서 자신의 삶을 점검해봐야 하는 순간이 필요하지 않나 싶네요.


아브락사스를 알면 더 이상 그래서는 안 돼. 아무것도 무서워해서는 안 되고 영혼이 우리 마음속에서 소망하는 그 무엇도 금지되었다고 해서는 안 되지.


알에서 깨어난 새는 신에게로 날아갑니다. 이때, 신의 이름이 바로 '아브락사스'입니다.

이 상징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아브락사스는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의 종착지에 있는 존재를 뜻하지 않나 싶습니다.

누군가에겐 그것이 '신'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자유'로 상징될 수 있겠네요.


어쨌든, 아브락사스는 것은 우리 개개인의 존재들이 삶에서 최후에 얻고자 하는 가치를 뜻하는 거 같습니다.

그 가치를 얻기 위해서, 어쩔 때는 죽음조차 무릅쓰고 달려 나가야 하기에 아무것도 무서워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그 가치는 누군가가 보기엔 대단히 무모하고 덧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락사스를 추구하는 나에게 타인은 어떤 충고를 할 수도 있습니다.

모험적이면서도 불안정한 그 가치들을 추구하는 것보다, 안정적인 가치를 얻으라고 말이죠.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의 말과 관념조차도 아브락사스를 알게 된 인간에겐 깨뜨려야 할 '세계'일지도 모릅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얻기 위해 투쟁하기로 마음먹은 인간은, 세상의 관념과 맞서 싸워야 하기에 그 무엇도 금지되었다고 느끼지 말고 투쟁해야겠네요.


END


사실, 너무 유명한 책이라서 꼭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책이었는데 읽다가 좀 힘든 부분이 많았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너무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말이 많아서 이게 무슨 뜻인가 싶은 구절도 많았거든요.

책의 전반적인 메시지는 알기 쉬웠기에 읽는 데는 무리가 없었지만, 솔직히 뜬구름 잡는 듯한 현학적인 구절들은 책의 몰입도를 좀 방해했습니다.

제가 문학적인 가치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 그런 걸 수 있겠지만, 읽기 친절한 책은 아니었습니다.

비슷한 주제를 가진 책이었던 <면도날>이 훨씬 더 읽기 편했던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네요.


그럼에도, 이 책이 위대한 고전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말 그대로, '스스로의 성장에 관한 철학적인 에세이'이며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자아의 성장기를 다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누구나 사춘기를 겪고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연약한 세계가 깨어지고 다시 태어나는 시기를 겪으니까요. 그 시기는 꼭 사춘기뿐만 아니라, 사회로 나온 청년이 다시 한번 겪기도 합니다.

아니, 이 세계가 깨지는 시기는 유아기 ~ 청년기뿐만 아니라 중장년기 ~ 노년기에서도 충분히 겪을 법한 일입니다.


세상에서,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기 위해 투쟁하는 시기는 누군가에게는 유년기에 일어날 수 있으며, 또 다른 이에게는 노년기에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투쟁은 내가 알던, 익숙한 세계를 부숴야 할 정도로 치열하면서도 두려움이 가득한 여정일 겁니다.

남들이 흔하게 걸어가는 잘 포장된 길도 아니기에, 더 힘든 길임도 분명하고요.


그렇지만, 기꺼이 그 길을 걷길 선택한 이들에게 아브락사스는 분명한 선물을 해줄 겁니다.

삶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가장 궁극적인 가치를 말이죠.

그 여정을 떠나는 이들이 읽으면 좋을 법한 책 <데미안> 리뷰였습니다.

만약, 데미안이 감명 깊으셨다면 <면도날>도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상으로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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