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멀어버린다는 것은 영혼이 멀어버린다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의 소중한 일상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감각기관은 '눈'일 겁니다.
다른 감각기관들도 물론 중요하긴 하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정말 눈앞이 캄캄할 정도로 절망적이죠.
<눈먼 자들의 도시>는 바로, 이렇게 눈이 멀었을 때 사회가 어떻게 되는지를 그려낸 소설입니다.
줄거리(스포주의)
어느 날, 도시에서 차를 운전하고 있는 남자가 갑자기 눈이 멀게 됩니다.
백색의 밝은 빛이 시야 전체를 덮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된 거죠. 그 남자를 시작으로, 사람들은 급속도로 눈이 다 멀게 됩니다.
전염병으로 예상한 정부는 초기 감염자들을 격리 시설에 옮기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격리시설에서 먹거리를 위한 투쟁이 일어나고, 그에 따른 추악한 인간 본성이 드러납니다.
인간의 존엄성도 그에 따라 무너져 내려갑니다.
이러한 모습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소설 속 인물을 통해서 보이기도 합니다.
처음으로 눈이 멀었던 남자를 진찰한 안과의사도 눈이 멀었지만, 그 의사의 아내는 면역이 있는지 눈이 멀지 않았거든요. 눈먼 자들이 가득한 도시에서, 혼자 눈을 뜬 채로 이러한 참상을 바라보는 아내의 시점은 참혹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렇게, 세상은 점점 질서가 무너져내려 가면서 인간의 존엄성이 위협받지만 그 속에서도 끝까지 존엄성을 지켜내기 위한 몇몇 인간들의 투쟁이 일어납니다. 시간이 흘러, 세상은 다시 빛을 되찾으며 소설은 끝이 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볼 수 없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을 볼 권리가 없어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았던 의사의 아내가 마음으로 속삭인 내용입니다.
아무도 자신을 볼 수 없는데, 자신은 타인들의 참혹함과 존엄성이 위협받는 모습을 보는 것이 경멸스럽게 느껴진 거죠. 우리가 누군가를 볼 수 있는 권리는, 그 누군가도 우리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상에 녹아든 행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 문장이었습니다.
누군가 나를 쳐다보지도 못하는데, 내가 그들을 쳐다보며 감상하는 게 폭력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더군요.
난 평생 사람들 눈을 들여다보며 살았어, 사람 몸에서 그래도 영혼이 남아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게 바로 눈일 거야, 그런데 그 눈을 잃은 사람들이니. 내일 사람들한테 눈이 보인다고 말할 거예요.
눈이 멀었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영혼도 멀어버렸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나타낸 듯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교감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창'은 바로 눈입니다. 그 눈이 멀어버렸으니 사람은 마음과 영혼으로 서로 교감을 하기보다는, 그저 입 밖으로 내뱉는 '소리'만으로 교감을 하게 되어 사람들이 더욱 잔혹해진 듯합니다.
존엄성이란 값으로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조금씩 양보하기 시작하면, 결국 인생이 모든 의미를 잃게 되기 때문
인생에서 무언가를 하나씩 내려놓고 포기하게 되면, 공허함에 빠지게 됩니다.
지킬 게 없어지면, 자신의 '삶'조차도 딱히 지켜야 할 의미가 없어지는 거죠.
눈이 먼 사람들이 점점 횡포를 부리게 됨으로써, 인간성과 존엄성이 시험받게 될 때 누군가는 굳이 힘들게 존엄성을 지키며 사람들을 격려했습니다.
그 이유는, 결국 사람이 사람다움을 포기하게 될 때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 자체를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눈이 멀더라도 마음의 눈은 멀지 않아야 한다는 도덕심이 인상 깊었네요.
눈먼 것이 드문 일이었을 때 우리는 늘 선과 악을 알고 행동했어요, 무엇이 옳으냐 무엇이 그르냐 하는 것은 그저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서로 다른 방식일 뿐이에요, 우리가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가 아니고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지 말아야 해요.
눈이 멀지 않았을 때에는 사람은 서로를 볼 수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간섭할 수 있는 사회에서, 도덕은 필수였습니다. 무엇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도덕'은 사회적으로 타협한 약속이며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방식이었던 거죠.
그러나, 사람들이 눈이 멀게 되면서 타인은 그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외부를 볼 수 없게 되면서, 내면에 집중하게 된 인간들은 사회적인 약속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스스로의 욕망에 집중하게 된 인간들은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의사의 아내가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잔혹한 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의사의 아내가 말하고자 한 바는 '계속해서 타인과 소통하여 내면의 타락을 방지하라'는 것이었던 겁니다.
삶은 눈이 멀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존재처럼 연약하니까, 어쩌면 진짜 그런 건지도 몰라요, 어쩌면 삶은 진짜 어디로 갈지 모르는 건지도 몰라요
우리의 삶도 어찌 보면 눈먼 사람이 걸어가는 길과 비슷할지 모릅니다.
똑바로 걷고 있는 듯해 보여도, 누군가가 바라보기엔 비틀비틀 위태해 보이기도 할 것이고 갑작스럽게 방향을 틀어 걸어가기도 하니까요.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삶의 속성을 눈먼 존재로 비유했던 것이 인상 깊었던 문장이었습니다.
시간은 도박판에서 우리 맞은편에 앉아 있는 상대예요, 그런데 혼자 손에 모든 카드를 쥐고 있어요, 우리는 삶에서 이길 수 있는 카드들이 어떤 것인지 추측할 수밖에
인간의 삶은 시간이란 존재 앞에서 한없이 연약한 존재죠.
강렬한 모든 감정들조차 시간 앞에선 무색해지기 마련이니까요.
이 가혹한 운명은 마치, 어떠한 패도 쥐어지지 않은 채 카드 게임에 참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상대방이 쥐어지고 있는 카드 중 몇 장을 예측하여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야말로 도박인 것이죠.
그렇다면, 내가 고를 수 있는 카드 중에서 시간을 이길 수 있는 카드는 무엇일까요?
저는 '흔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영겁의 시간이 지나더라도, 나의 흔적을 남길 수 있다면 나의 승리인 것이죠.
그 흔적은 사람들마다 남기는 방식이 다르겠지만요.
눈이 먼다는 것은 단순히 앞을 볼 수 없음이 아니라, 영혼이 멀어버려 인간성조차도 멀어버린다는 것.
앞만 보며 걸어갈 수밖에 없는 사람의 운명에, 그 앞조차도 제대로 볼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지를 그려낸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 리뷰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