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돌아갑니다, 풍진동 LP 가게> 후기
아무리 음악을 듣지 않는 분이라 하더라도, 좋아하는 곡 하나는 다 있으실 겁니다.
힘들고 외로울 때, 자신에게 힘을 줬던 노래는 추억이라는 저장고에 쌓여 재생되기를 기다리고 있겠죠.
그런 음악은 단순히 청각적 신호를 넘어선, 내 삶의 일부나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돌아갑니다, 풍진동 LP 가게>는 이러한 음악을 다룬 소설입니다.
여러 캐릭터들이 자신의 삶의 일부나 마찬가지인 음악을, LP 가게에서 듣게 되고 잃어버린 삶의 일부를 다시 찾는 이야기였습니다.
죽음, 상실, 이별과 관련한 어두운 이야기도 많지만 결국 레코드판을 순회하여 밝은 이야기를 연주하는 소설.
그 내용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정원이라는 남자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정원은 죽을 결심을 합니다. 하지만, 죽기 전에 아버지가 남긴 6000장이 넘는 LP판은 다 처분하고 죽기로 합니다. 그래서, 무작정 LP 가게 하나를 열어 운영하기 시작합니다.
변두리 가게에 무작정 연 정원의 가게.
거기에 이상한 인연들이 생겨납니다.
툭툭 반말을 던져대지만,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원석이라는 아저씨.
꿈을 향해 계속해서 노력하는 청년 동만.
어린 시절 크나큰 상실의 경험을 겪은 아르바이트생 미래.
너무 똑똑한 아이 시아와 아이의 엄마 다림.
죽고자 결심한 정원에게, 새로운 인연이 생겨나면서 그의 삶은 어느새 레코드판처럼 빙글빙글 돌아가게 됩니다. 누구보다 아름다운 선율을 내면서 말이죠.
그 순환 속에, 다시 또 누군가를 잃는 아픔을 겪기도 하지만 정원은 더 이상 무너지지 않습니다.
레코드판에 설령 흠집이 생기더라도, 그 흠집마저도 음악의 일부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소설이 생각보다 무겁고, 슬픈 내용이 많았어서 그런지 몇몇 문장들이 꽤 아팠었네요.
그 문장들을 조금만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어떤 이들은 사랑한다고 말해야 할 때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저 사랑한다고 말하기만 하면 되는데, 그 사랑을 받아들일 상대방에게 한없이 미안할 때 내뱉는 말.
잘해준 거 하나 없는 거 같아서.. 못해준 것만 기억날 때 내뱉는 말이죠.
전혀 나쁜 말이 아님에도 듣는 상대방은 또 상처를 받는 말이기도 합니다.
미안할 이유가 왜 있을까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남과 절대로 비교할 수 없고 비교의 잣대조차 들이기도 싫은 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인데 말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앞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지 않도록 더 강인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문장이었네요.
스스로 말하기 전에는 상대의 과거를 굳이 묻지 않는다는 것. 어쩌면 아픈 기억을 가진 사람들의 공통점인지도 몰랐다.
상처를 가진 사람은, 그 상처의 아픔을 알기에 함부로 묻지 않습니다.
아픔을 겪은 사람만이 그 아픔에 공감할 수 있기에 더욱 신중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죠.
LP 가게의 주인인 정원부터가 죽기로 결심한 사람이며, 그 주변의 인물들도 상처를 받은 인물들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서로가 서로의 과거를 굳이 묻지 않고 현재의 자신만을 봐주는 것.
그래서 더욱 따뜻하면서도 애틋했던 LP 가게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떤 감정들은 삶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원석에게는 유독 슬픔이 그랬다. 어렸을 적 뜀박질을 하다 넘어져 무릎이 까지면 아파서 울었다. 그런데 그건 고통이었지 슬픔은 아니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아파도 울지 않았다. 고통은 참을 수 있었지만 슬픔은 죽어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삶에서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애틋한 감정부터 '상실'이라는 슬픔의 감정까지, 책으로는 절대로 공부할 수 없고 예습도 불가능한 감정들이 있죠. 삶에서 맞닥뜨렸을 때, 숨이 넘어갈 것 같아도 그저 버틸 수밖에 없는 감정들이 삶에는 분명하게 존재합니다.
슬픈 것은, 어른이 되어 갈수록 그 슬픔을 속으로 삼키고 상대방에게 분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타인에게 자신의 고통이 아닌, 슬픔을 내비치면 약점이 되고 뒷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속으로 곪아가면서까지 참아가는 소설 속 정원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공감이 갔던 문장이었습니다.
<오늘도 돌아갑니다, 풍진동의 LP 가게>는 생각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니었습니다.
가장 큰 상실을 겪은 정원이라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보니, 소설의 전반적인 감정선은 '슬픔'이었기 때문입니다.
삶에서 겪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가장 끔찍한 경험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경험일 겁니다.
죽음은 결국 산 자의 몫이기에 내가 삶을 살아간다면 언젠가 마주하게 될 경험일 수밖에요.
이 상실 앞에서 많은 사람들은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랑이 크면 클수록, 상실의 아픔은 더욱 크고 그 아픔의 크기는 나를 집어삼킬 정도로 거대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정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애초에 죽기로 결심하고 LP 가게를 열었고, 마음도 굳게 닫은 채 조금씩 저물어가던 그였습니다.
하지만, 돌아가는 레코드판 속에서 다시 찾아온 소중한 인연에 그는 마음을 다잡고 일어납니다.
삶은 결국, 레코드판처럼 순환하기 마련이라서 슬픔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기쁨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 슬픔은 레코드판에 기록되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긴 하지만, 언젠가 무뎌지는 게 또 삶이죠.
그 슬픔의 음악이 너무 크다고, 듣기를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듣는 이가 없으면 공허하고 쓸쓸한 메아리일 뿐이기 때문이죠.
들어주는 이가 있어야, 레코드판에 새겨진 사랑하는 이의 기억도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순환하는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통해 상처받은 이들이 살아가고, 모이고, 즐거워하고, 다시 슬퍼하다가 추억하기도 하는 삶의 순환 이야기.
사랑하는 이가 그리운 분들에게 추천드리는 소설입니다.
이상으로 리뷰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