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학 리뷰

당선이라는 과녁에 총알을 <총잡이들> 후기

굶주린 소설가 지망생들의 이야기.

by Nos

예전에 노량진을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인턴을 하면서 친해진 분들과 함께 술을 먹기 위해서였습니다.

왜 하필 노량진이었냐면, 그곳에서 수험생활을 했었던 분이 있어서 맛집들을 소개해준다 하여 자연스레 모이게 되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노량진을 처음 방문한 소감은 '우중충한 도시'였습니다.

아무래도 수험생들이 자신의 청춘을 걸고 공부를 하러 온 곳이다 보니, 전체적인 분위기 자체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학원가와 번화가들이 좁은 도로에 줄지어 있고 구석구석에 고시원과 원룸들이 보였습니다.

그곳에서 열심히 공부하시는 분들에겐 죄송하지만, 외지인인 제가 느꼈던 이곳은 우울하고 피곤한 도시 느낌이 강했습니다.


소설 <총잡이들>은 바로 이곳 '노량진'을 배경으로 한 소설입니다.

다만 특이하게도, 등장하는 인물들은 수험생이 아니라 소설가 지망생들입니다.

노량진은 값싼 월세와 식비로 생활을 할 수 있다 보니, 수험생뿐만 아니라 여유가 없는 다른 사람들도 지낼 수 있는 곳이기도 하죠.

그렇게 노량진에서 소설가 지망생 몇 명이 모이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줄거리


주인공 공노명은 노량진에서 생활하는, 한 때 소설가로 등단도 했던 적이 있는 소설가입니다.

다만, 지금은 소설에 대한 마음을 접고 각종 공모전에 응모하여 그 상금으로 생활하는 '공모전 사냥꾼'입니다.

공모전 사냥은 말 그대로, 우리가 생각하는 각종 독후감, 표어, 에세이 대회에 응모하여 그 상금을 받는 걸 뜻합니다.


그걸로 생활이 되나? 싶지만, 노량진의 값싼 월세와 한 달에 20만 원 정도를 내고 월식을 끊어 식사도 해결할 수 있기에 이런 생활이 불가능하진 않은 거 같습니다.

공노명은 그렇게 노트북 하나로 글을 쓰면서 근근이 살아가는데, 어느 날 치코라는 여자를 고시원 주방에서 만나게 되며 둘은 어찌어찌 같이 콤비를 이루게 됩니다.


치코는 신입답게 글솜씨는 다소 부족하지만, 그녀만의 독특한 관점과 문체로 여러 공모전에 수상도 하게 되며 둘의 콤비는 꽤나 환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상금 분배로 인한 문제로 갈등을 겪게 되며 팀이 해체되려고 할 때 새로운 공모전 사냥꾼이 등장하게 됩니다.


소정훈이라고 불리는 다른 50대 남자 소설가가 등장하면서 말이죠.

주인공에겐 밥줄이나 다름없는 상금을 번번이 빼앗기게 되면서, 소정훈에게 접근을 하게 됩니다.

이때, 주인공의 라이벌인 황도 굉장히 매력적인 제안을 하게 됩니다.

총 상금 3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달린 소설 공모전에 대한 정보를 미리 줄 테니, 응모를 하라고 말이죠. 3억 원을 쟁취하기 위해, 주인공이 치코와 소정훈과 함께 팀을 이루게 되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책 속의 문장들


살아왔다. 아무리 삶이 버거웠다고 해도 그건 변명이 되지 않았다. 누구한테나 삶은 버거운 것이니까.


일상을 살면서, 우리가 힘들다고 아무리 투정 부려도 사실 대부분 안 들어주죠.

우리는 인생은 당연히 힘든 거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공노명도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지만, 누구에게나 삶은 버거운 것이기에 변명거리가 되지 않았다고 독백한 문장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 자체가 거대한 고시촌이었다. 널찍한 아파트에 살든, 비좁은 고시원이나 쪽방촌에 살든 다 거기서 거기였다. 세상살이 자체가 살아남기 위한 콘테스트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넓은 집에 살게 되더라도, 삶이라는 공간은 살아남기 위한 장소입니다.

비좁은 고시원에 살면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누구보다 안락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드넓은 집에서도 가슴이 꽉 막힌 듯한 기분을 느끼며 살아가기도 하죠.


주인공 공노명은 각종 콘테스트에 응모하면서 살아가는 공모전 사냥꾼이기에, 삶에 대해 좀 더 투쟁적인 관점으로 바라본 듯합니다. 아무리 글을 잘 썼어도, 공모전에 낙방하는 것은 '패배'나 다름없었으니까요.

고시촌에서 살아가며, 투쟁하는 삶을 사는 공노명에겐 인생은 살기 위한 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곳.

주인공의 가치관이 잘 드러난 문장이었습니다.


그 시절, 나는 소설만이 내 삶의 구원임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소설을 쓰겠다고, 소설가가 되기까진 다른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해결하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결심을 밝혔을 때, 아버지는 사업을 넘겨주는 계약서에 도장이라도 찍듯 말했다. "네가 해보고 싶다면 한번 열심히 해보거라."


요즘에 저도 소설을 읽다 보니, 한 번 쓰고 싶어 져서 습작을 쓰고 있습니다.

소설을 쓴다는 게 생각보다 훨씬 쉽지 않더군요..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퇴근 후 글을 쓴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업무 강도가 높거나 야근이라도 하는 날에는 그날 하루는 한 줄도 못쓰는 일이 많이 일어나더라고요.


그래서, 소설가 지망생들은 대부분 생계를 파트타임으로 해결하거나 업무 강도가 낮은 직장에서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시간 확보가 제일 중요하고, 그 시간이라는 것은 체력과 정신력도 남아있는 시간이어야 하거든요.


그 시간을 위해서, 일반 직장의 정규직 자리보다는 파트타임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인 것 같습니다. 9 to 6가 잘 지켜지는 직장이라 하더라도, 그 시간에 업무강도가 높다면 퇴근 후에 또 아무것도 하기 힘들더군요. 주인공의 심경이 너무나 이해가 되어 인상 깊었던 문장이었습니다.


END


각종 콘테스트에 응모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총알을 난사하는 총잡이로 보입니다.

과녁마다 한 발씩 총알을 쏴서, 맞추면 상금을 타고 그걸로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한 총잡이.

그에게 삶은 생각보다 불친절해서 원하는 과녁에는 한 발도 맞추지 못했지만, 그래도 총을 잡고 계속해서 쏠려고 하는 투쟁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에서 원하는 과녁에 총알을 못 맞출 겁니다.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애초에 맞추는 게 불가능한 과녁들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설령 그게 허공이라고 할 만큼 아득한 목표라 하더라도 한 발정도는 쏴볼 수 있는 게 삶이긴 합니다.

그 한 발을 위해서 누군가는 삶을 살아가기도 하죠.

과녁을 맞히지 못한다 하더라도, 총알을 한 발 쏴본 사람은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떠날 수 있겠죠.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 듯, 총잡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마지막 한 발까지 전부 쏴보는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노량진이라는 친숙한 배경이지만, 공모전 사냥꾼이라는 특이한 소재로 꽤나 긴장감을 주었던 소설.

생각보다 더 재밌고 스릴 있어서 만족하면서 본 오락소설이었습니다.

노량진에서 생활해 본 적이 있는 사회초년생분들이라면 특히나 더 재밌게 읽으실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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