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결국 등산처럼, 오르고 올라야 그 아름다움이 보이는 법이다.
우리들은 모두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열정을 가지고 푹 빠지는 취미활동들이 있습니다.
남들에겐 별 의미 없는 활동처럼 보이더라도, 나 자신에게는 그 무엇보다 재밌고 소중한 활동들.
내 삶에서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 버린, 내가 살아가는 의미를 부여해주기도 하는 이 활동에 푹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은 시리즈가 있더군요.
바로, 아무튼 시리즈입니다.
여러 작가님들이 본인의 가장 선호하는 취미, 계절, 활동, 직업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소소하게 적어놓은 시리즈.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고 열정을 바친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 그런지, 진솔하고 재밌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더군요.
저는 이 시리즈 중에서, <아무튼 산>의 이야기를 가장 먼저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산을 좋아했어서 홀린 듯이 읽게 된 책이었는데.. 막상 책을 펼쳐보니 제가 좋아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진짜로 산을 좋아하는 작가님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장보영 작가님은 국문과를 03학번(오존학번이라고 하네요)으로 입학하여 졸업 후, 문학 공부를 좀 더 하고자 소설전공으로 대학원까지 나오셨습니다. 그 후에, 중견 출판사에 편집자로 입사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네요.
합정역 앞에서 경기도 파주 출판사로 출근하여 꽤나 성취감 있게, 재밌게 일을 하신 듯했지만 뭔가 모르게 공허함을 느끼신 듯합니다.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점점 무료해질 무렵, 산이 다가왔다고 하네요.
첫 시작은 지리산이었는데, 지리산을 등반한 이후에는 평일의 업무 스트레스와 피곤함을 등산으로 해결하셨다고 하네요.(이 정도면 그냥 천성이 아니신가 싶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국내의 유명한 여러 산을 돌아다니다가, 결국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산. 히말라야와 알프스까지 마음에 품게 되고.. 결국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회사를 나온 뒤, 드디어 꿈에 그리던 히말라야 산까지 등반하는 계획을 실행하게 되면서.. 작가님만의 스토리가 이렇게 흘러갑니다. 그 과정에서 겪은 감정과 생각의 변화들은 책을 통해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나처럼 무언가를 포기하고 왔을지도 모를 사람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느리고 더뎌도 정확하고 분명한 보폭으로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동안 무너졌던 나의 자존도, 새로운 삶을 향한 의욕도 다시 차오르는 듯했다.
새로운 길을 걷는 모든 사람들은, 다들 저마다의 소중한 무언가를 하나 이상은 포기하고 시작하는 존재입니다. 더 많은 돈을 벌 기회, 사회에서의 성공, 연인의 사랑 등등 누군가에겐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일 수도 있는 것들을 포기하는 이유는 뭘까요? 결국은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이 나다운 삶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은근히 수가 적어서, 각자의 존재들은 외로움과 두려움을 벗 삼아 걸어가야 합니다. 요즘에야 SNS, 전자책 등이 활발화 되면서 이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볼 수 있지만, 작가님이 결심을 했을 당시에만 해도 찾기가 힘들었을 겁니다. 솔직히 생각 이상으로 두렵고 힘든 여정이었을 거 같은데, 산에 대한 열정만으로 길을 찾아 나선게 정말 멋지고 용감하신 거 같습니다.
그렇게 용기를 낸 덕분에, 인생에서 원하는 성취를 얻으신 게 아닌가 싶네요.
세 계절 동안 등산학교에 다니면서 나는 산에 대한 대단한 지식보다는 산을 향한 열정과 순수를 배웠다. 어른이 되고 나서 무언가에 이렇게 깊이 빠져본 적이 없었다. 두 발로 걸어 올라갈 수 없는 산 앞에서 우리는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 냉정했고 또 뜨거웠다. 그 온도가 좋았다. 산에는 벌이와 이익에 상관없이 오직 산에 자신의 소중한 것을 내건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산에 가기 위해 돈을 벌고 일을 했다. 먹고사는 일에도 최선을 다했지만 산에 가는 일 앞에서만큼은 무엇도 양보하지 않았다. 삶의 우선순위를 산에 둔 우리에게 다른 욕망은 크지 않았다.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점점 여유가 없어지면서 무언가를 좋아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분명 학생일 때보다 돈은 더 많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지고 체력도 서서히 줄어들면서 열정과 의욕이 줄어드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렇게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빠져들 수 있는 열정을 가진 어른들이 정말 멋진 것 같습니다.
장보영 작가님은 그게 바로 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등산학교까지 다니면서 산을 등반하고자 하고, 거기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삶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며 좋은 것들을 많이 배우셨을 것 같습니다.
삶에는 수많은 일들과 목적들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결국 그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기에 우선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그 우선순위 한 가지를 명확히 하여, 그 한 가지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삶이야말로 꺼져가는 마음의 불씨를 다시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 같네요.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지식보다는 열정과 순수라는 문장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애쓰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삶의 어느 부분과, 일상의 어느 시간과, 인생의 어느 구간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이 산에서는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이 끌리는 일들은 그런 일들이었다. 그건 세상 속에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이야기들이기도 했다. 그들의 정제되지 않은 거친 호흡과 날것의 언어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다. 오직 산을 향해 열려 있는 그들의 열정과 애정이 계속해서 이 세상에 전해지기를 바랐다. 내가 그 열정과 애정을 전하고 싶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결국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게 삶의 이치입니다.
그 일들이 산에서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처음에 무슨 뜻인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가까스로 제가 이해한 바는 이렇습니다.
산을 찾은 이들은 모두 다 산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그만큼 산이 좋아서, 무언가를 포기하고 찾아온 이들이기에 산에서 다시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그 분투가 이뤄지는 산속에서, 지루한 세상살이보다 훨씬 재밌고 의미 있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질주하는 사람들의 땀방울은 그 하나하나가 빛나는 법이니까요.
산에 옳고 그름이 있을까. 산을 오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각각의 방법은 평화롭게 공존해야 한다. 정말 산을 좋아한다면 내가 모르는 산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나와는 다른 타인의 산을 존중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내가 아는 산만이 옳다는 아집이 산이라는 공간에 어울리는 마음일까. 산은 경건하고 진지하게 오르는 곳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사람들의 심중에는 대체로 자기가 오르는 산이 옳다는 강한 신념이 있는 것 같다.
산은 하나이지만, 그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정말로 다양합니다.
그만큼, 산을 오르면서 얻고자 하는 것들도 전부 다르겠죠.
누군가는 정상을 향한 등반이 목적일 수 있겠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잠깐 산책을 하는 게 목적일 수 있습니다.
각자의 목적은 서로 존중받아야 하지, 비난받아서는 안됩니다.
결국은 산은 산일뿐이며, 그 산을 오르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니까요.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인 듯, 다시는 오지 못할 듯,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듯 최선의 힘을 다해 산에 오르는 것이다. 그렇게 오른 끝에야 속세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고 닿을 수 없는 궁극의 무언가 앞에 비로소 당도하게 된다.
무언가를 애매하게 열중하면 애매한 결과만이 남고, 애매한 미련과 후회가 남아 삶을 갉아먹습니다.
내 모든 힘을 다 쏟아부어봐야만이 얻을 수 있는 가치와 감정들이 삶에선 분명 존재합니다.
우리 모두에겐 각자가 오르고 싶은 산의 정상이 있는 것이죠.
그 정상은 쉽게 오를 수가 없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걸어야만 겨우겨우 오를 수 있을 법한 까마득한 목표죠.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분투한 끝에 정상에 오르게 된다면 분명 오르기 전과 다른 감정과 느낌을 얻게 될 겁니다. 등산을 한 번이라도 해보신 분이라면, 산의 정상에서 도시를 바라봤을 때 느끼는 그 감정을 알 겁니다.
세상을 잠깐 초월하여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게 되는 그 고양감.
이 고양감은 꼭 산을 올라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내가 온 진심을 다해 쏟아붓고 있는 일에서도 분명 느낄 수 있는 감정입니다.
그 감정이야말로 삶을 등반하고자 하는 모든 여행자들이 얻고자 하는 가치가 아닐까 싶네요.
저도 산을 좋아하긴 하지만,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통 오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카페나 맛집을 더 좋아하게 되면서 산과 점점 멀리하게 되었죠.
이 정도면 산을 좋아한다고 하기는 민망한 수준입니다. 말로만 좋아한다 하고, 정작 행동은 산악인이 아니라 평지인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주말마다 등산을 하고, 히말라야와 알프스까지 등반한 장보영 작가님이야말로 진정한 애호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산에 일생의 일부를 바치고, 그러면서 느낀 인생의 아름다운 교훈들을 산과 연관시켜 풀어낸 이야기.
등산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재밌게 읽어보실 만한 에세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