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사랑이 묻어난 수필집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어떠한 플랫폼도 거치지 않고 직접 구독자들에게 월 1만 원의 구독료를 받으며 약 20편의 글을 메일로 보내주는 연재.
어찌 보면 유료 연재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나 다름없는 작가님은 누굴까요?
"글쓰기는 사랑이다"라는 주제로 강연도 했었던, 바로 이슬아 작가님입니다.
그 작가님의 수필집을 드디어 다 읽게 되어 이렇게 감상문을 남기게 되었네요.
작가님이 연재를 시작했을 때는 2018년 2월이었는데, 저는 그 당시에 갓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을 준비하던 시기였네요. 그때를 돌이켜보니 정말 옛날인데, 작가님은 당시에 혁명에 가까운 연재를 시작했다는 것이 참 멋지고 신기합니다.
아무튼, 수필집을 정말 재밌게 읽어서 그 감상문을 간단히 밝히려 합니다.
작가님의 단편 수필집이 100개 정도 모여 있는데, 그 속에서 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글쓰기 교실을 운영하면서 느낀 감동적인 이야기와, 작가님의 가족들 이야기, 여행을 가서 당했던 인종차별과 섬뜩한 공포, 연애 이야기 등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때로는 너무나 자세하게, 때로는 유려하면서도 섬세하게, 어쩔 때는 이성적이면서도 분석적으로 나열되는 이야기들은 불편함, 감동, 재미, 슬픔, 분노 등등 여러 가지 감정을 일으키네요.
'이슬아'라는 한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 사람이 접해있는 다른 존재들과 세계에 대한 해석이 어우러지면서 이렇게 풍성한 이야기와 감정들이 나올 수 있구나를 느꼈네요.
여행지에서 행복해지는 건 의외로 어려운 일이지. 미리 돈을 지불했으니까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잖아. 적어도 들인 돈만큼은 행복해야 할 것 같아서, 망치면 안 될 것 같아서 초조하잖아. 한 번도 안 배워본 춤인데도 좋은 합으로 멋지게 같이 춰야 할 것 같잖아.
여행은 결국, 익숙한 일상적인 세계에서 떠나 낯선 곳에서 새로운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죠.
멋진 풍경과 새로운 식사, 휴식을 통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에서 행복을 느끼지만, 이 행복은 과정에서 온 부산물일 뿐입니다.
행복 그 자체를 목적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어, 강박적으로 여기저기 유명 명소를 들르고 음식을 먹는 피곤한 여정을 짜게 되면 오히려 행복은 저 멀리 떠나버릴 겁니다.
고생하고 서툴었던 여행이 오히려 더 기억에 남아 추억이 되듯, 무언가를 얻겠다는 강박관념을 벗고 차분하고 편하게 여행을 즐기는 순간 행복은 어느새 옆에 살포시 앉아 있을 것 같네요.
우리들은 너무 작아서 바다의 아주 끝 모서리에서도 이렇게나 온몸이 세차게 흔들렸다.
해변가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하며 감탄한 문장입니다.
바다라는 거대한 존재의 아주 조그만 손길에도, 인간은 이렇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 존재이죠.
울음에 있어서 대부분의 남자가 무능한 것 같았다. 울 수 있는 능력을 잃지만 않아도 남자들이 그렇게까지 멍청해지지는 않을지도 몰랐다. 물론 고작 그 이유가 다일 리는 없다.
여자분들이 얼마나 우는지는 모르지만, 통상적으로 남자들은 확실히 안 울긴 합니다.
사회적인 관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냥 생물학적으로 이렇게 형성되어 있는 거 같기도 하네요.
울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울지 않기에 멍청해진다는 말은, 결국 감정을 제 때 배출하지 못하여 불필요한 짐들을 떠 앉고 산다는 뜻일 수도 있겠네요. 울고 나서 과거를 잊고 새 출발을 하기보다는, 과거에 사로잡혀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확실히 멍청함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게 적절한 비유와 해석일지 모르겠으나, 인터넷에서 남성과 여성의 헤어진 이후의 심리변화로 이를 설명해 본다면.. 여성은 헤어지고 나서 크게 슬퍼한 뒤 한 달 후에 말끔히 털어낸다면, 남성은 처음엔 아무렇지 않다가 뒤늦게 후회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까요?
울어야 할 때 울지 않고 쾌활한 척하다가, 뒤늦게 탈이 나버리는 행위.
감정은 때에 맞춰서 분명하게 분출해 내야 건강해지는데, 그렇지 않고 묵혀두는 행위는 여자분들이 보기에 무능해보일 수도 있겠군요.
어쨌든 면접은 뭔가 자신을 벗고 드러내는 자리잖아요. 근데 적당히 세미누드 정도로만 보여줘야 되는데, 저는 목욕탕에 입장하듯이 다 벗은 태도로 면접에 임한 거죠. 도리어 면접관들이 당황해서 '입으세요, 옷 입으세요'라고 하는 느낌
저도 여기저기 면접을 좀 보면서, 너무 솔직하거나 상세하게 대답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결과는 당연히 불합격을 받았었죠.
면접장은 어찌 보면, 적절한 모범답안이 존재하는 곳인데 거기에 너무 본인만의 주관을 담아서 답변해 버리면 오히려 좋은 대답이라 하더라도 마이너스가 될 수 있는.. 이상한 곳입니다.
작가님이 말한 대로, 세미누드만 보여줘야 하는데 오히려 의욕 넘치게 다 보여주면 마이너스가 되는 곳이죠.
우리는 솔직한 사람을 좋아하고,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싫어하지만.. 면접장에서만큼은 조금 다르게 행동해야 합니다.
선생님들의 실패나 성공은 온전히 그들의 것이어서 아무리 좋은 해답지 같은 걸 받는대도 다 내 것으로 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어른들이 해주는 조언이 공허한 이유가 위 문장에서 드러납니다.
아무리 좋은 뜻에서 해주는 좋은 말이라 하더라도, 그 말들이 본인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면 솔직히 울림이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듣는 사람인 학생이나 사회초년생들은 아직 그런 경험이 없거든요.
해답지를 받아서 그걸 그대로 받아쓴다고, 우리는 그 문제를 완전히 이해하거나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오답과 시행착오 끝에 답을 도출해 내고, 그 답이 해답지와 맞았을 때만 우리는 그 문제를 맞혔다고 하죠.
어른들은 학생들이 자신의 답을 찾아내는 그 과정이 비록 무의미하고 답답해 보일지라도, 자신 또한 그런 과정을 겪었음을 기억하고 기다려주는 참을성을 길러야 합니다.
학생들도 학생들만의 해답지를 도출해 낼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사람들을 좌절시키는 건 고생 자체가 아니라 무의미일지도 몰랐다.
어느 책에서 봤는지 기억 안 나지만, 죄수들에게 형벌을 주는 방법 중 하나가 있었다고 합니다.
아침에는 땅을 파게 하고, 오후에는 다시 땅을 메꾸게 하여 그들이 한 행위가 어떤 성취도 없게 하는 방법으로 죄수들이 고통스러워했다 하네요.
사람은 자신이 하는 행위가 아무리 힘들어도, 조그만 의미라도 가진다면 참고 견뎌낼 수 있습니다.
조직생활을 하는 많은 직장인 분들도, 자신의 업무가 어느 정도 성취감과 의미를 가져다주기에 묵묵히 할 수 있는 것이겠죠.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곳의 아름다운 풍경과 삶은 자신을 포함하지 않았었다.
이슬아 작가님이 인종차별을 당하고 느낀 감정을 나타낸 문장입니다.
외국의 아름다운 풍경과 여유로운 삶은 분명 동경할 만한 것이겠지만, 그곳에 끼어든 작가님은 거의 이방인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셨죠.
위협과 성희롱을 당하면서, 작가님은 그 배경에 존재하긴 했지만 무채색으로 밖에 존재할 수 없었던 허무함과 절망을 나타낸 문장이네요.
그러나 요즘에는 어쩐지 질문을 아끼게 된다. 어떤 대답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아주 많은 양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중 어떤 것은 너무 슬프거나 아프거나 안타까워서 듣는 이에게 자동으로 책임이 부여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누구나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겁니다.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친구라 하더라도, 그 내면에는 어떤 슬픔이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어릴 때는 사람을 알고 싶은 마음에, 또는 욕심에 이것저것 질문도 하고 조금은 무례할 만큼 캐묻기도 했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질문을 삼가고 경청하게 되는 이유는 이러한 이유 때문이겠죠.
누군가에게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게 되었을 때, 그 대답이 무거운 대답이라면 나도 일부 분담해줘야 하니까요. 그 대답을 이끌어낸 질문을 던진 것에 대한 책임이 있으니까요.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점점 덤덤해지고, 무채색이 되어가면서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커지긴 합니다.
하지만, 삶은 항상 예기치 않게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고통과 슬픔을 안겨주기 마련이라.. 우리는 항상 조심해야 하죠.
그래서 우리는 웬만하면 즐거운 이야기나, 드라마, 영화, 맛집 같은 이야기만 하는지도 모릅니다.
점점 더 커져가는 삶의 무게에서 조금이라도 가벼움을 느끼고 싶을 테니까요.
시트콤에선 어떤 일이 벌어져도 30분 후면 다 괜찮아지니까요.
시트콤은 20분 ~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참 별의별 사건이 많이 터집니다.
우리 일상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을 사건들이 시트콤에선 터져도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안 터지면 재미가 없으니 기상천외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죠. 그만큼, 등장인물들은 창피를 좀 당하지만요.
어쩔 때는 보는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황당한 일들도 많이 일어납니다.
그렇지만, 30분이 지나 시트콤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사건들이 사라집니다.
인생도 시트콤과 비슷합니다.
시트콤 자체가 사람의 삶의 일부를 담아낸 드라마이니 당연히 비슷할 수밖에 없지만.
아무리 힘든 일, 슬픈 일, 괴로운 일이 내 삶에 침투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해결되거나 별 일이 아니게 되죠. 시트콤의 30분이 인생에서는 몇 년이 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를 성장시켜 줄 일임을 생각하며 당장 눈앞의 한 걸음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겠네요.
예전에 이슬아 작가님의 강연 글쓰기는 부지런한 사랑이다를 보고 글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작가님의 글을 읽고 나니, 왜 부지런한 사랑인지에 대해 이해가 깊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작가님의 글 속에는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넘쳐났기 때문입니다.
대상을 유심히 관찰하고 곱씹어 생각한 뒤, 다시 언어를 정제화하여 기록화하는 이 과정.
그렇게 대상을 불멸화하여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이러한 행위가 사랑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사랑일까요.
작가님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리고 작가님 자신에 대한 사랑이 넘쳐났던 수필집.
이야기의 끝에는 작가님을 사랑하는 친구들의 추천사가 또 담겨있었습니다.
재밌게 읽은 이 수필집의 내용들은 다양한 주제와 테마, 감정들이 섞인 수필들이지만 결국 이 모든 글의 저변에는 작가님의 은은한 사랑이 묻어나 있습니다.
작가님을 친구로 둔 사람들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네요.
물론, 그 친구분들 또한 작가님만큼 멋지고 사랑이 넘쳐나는 사람이기에 곁에 있을 수 있는 거겠지만요.
앞으로도 작가님이 걸어갈 삶의 길에는 부지런한 사랑이 묻어나겠지요.
그 사랑 속에서 더 많은 이들이 불멸화되길 기원하며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