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면서도 서글픈 IT 업계의 현실을 간접 경험하는 소설
여러분들은 혹시 가산디지털단지와 구로디지털단지라는 지명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호선과 2호선 역 이름이기도 한 이곳은.. 수많은 중소기업, 특히 IT 단지가 있는 곳인데요.
수많은 직장인들로 인해 아침마다 지옥철, 교통체증이 발생하는 이곳은 그만큼이나 서럽고 치열한 직장생활이 일어나는 곳이죠.
흔한 국밥집조차 점심시간에 웨이팅이 발생하는 곳인 만큼, 수많은 직장인들이 생계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곳입니다. 당장 사람인이라는 취업사이트만 들어가도, 열에 하나 정도는 가산디지털단지 쪽 회사가 채용공고를 올린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중소기업이 많은 곳입니다.
가산디지털단지 바로 인근에는 구로디지털단지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도 디지털산업단지로써 10,000개는 훌쩍 넘는 기업이 입주해 있고 그중의 과반수가 IT기업입니다.
2000년대부터 디지털산업단지로 탈바꿈하면서, 얼마나 많은 부조리가 일어나고 노동자들의 눈물이 흘렀을까요? 소설 <구디 얀다르크>는 이 구로디지털단지를 배경으로 소설의 내용이 흘러갑니다.
이안이라는 여자주인공의 삶을 통해, IT 노동자들의 현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이안은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일하고, 성공운도 조금 있어서 한때 실리콘밸리에 입성하는 게 거짓말이 아닐 정도의 성공가도를 달리게 됩니다. 하지만, 인생은 그리 호락하지 않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며 사이안은 정상에서 다시 추락하게 됩니다.
성공의 순간들은 여럿 있었고, 팟캐스트라는 방송을 진행하며 꽤나 인기도 얻게 된 주인공이었지만 얄궂은 인생의 장난으로 그녀는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지만, 그럼에도 인생은 계속해서 흘러가네요.
그 흐름 속에서, 사이안의 신랄하면서도 자조적인 내면의 서술을 통해 직장생활의 전반적인 서러움이 간접적으로 드러납니다.
세상 사람 대부분은 자신의 신념이나 믿음이 아닌 남들이 자신에게 부여한 역할에 충실하게 산다.
직장인의 관점으로 이 문장을 해석하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생계를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산다고도 해석이 되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고, 나의 본래 성격도 따로 있지만.. 직장에선 직장이 요구하고 기대하는 대로 행동하고 일을 처리해내야 합니다.
나의 신념대로 살기 위해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나의 사업을 해야 하는데 현실적인 여건은 녹록지가 않습니다. 결국,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를 표현하기보다는 상사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며 살게 되죠.
이게 직장 생활의 근본적인 스트레스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불멸을 꿈꾸던 이들은 모두 영멸 했다. 철이 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꿈을 버리고 현실적인 목표를 세워 하나씩 차근차근 이룬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릴 때는 불가능을 생각하지 않고, 무한한 가능성으로 미래를 생각하곤 합니다.
그것은 거의 공상과 마찬가지라서 '철없음'으로 표현되기도 하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제 그런 불가능보다는 현실을 생각하며 하나씩 이룰 수 있는 것부터 이뤄간다는 걸 뜻합니다.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품고 있지만, 머리로는 냉정하고 차갑게 현실을 인식하며 행동하는 것이죠.
가슴속의 빛나는 꿈을 현실 때문에 포기하는 서글픔은 어른이 되는 순간 누구나 겪게 되죠.
하지만, 현실을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가끔씩 꿈의 편린이 내 삶에서 조금씩 빛나주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삶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지속해 나가며 희망을 가지는 것이죠.
조직이라는 것에 속한 대부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을 하며 산다. 역할놀이는 속한 회사, 부서, 직위, 직급에 따라 다르고 특히 회사 고위층의 정치적 상황에 의해서도 좌우된다. 그렇게 자신의 본래 모습과 영혼을 출근과 함께 내려놓고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껍데기들이 오전부터 밤까지 있는 곳이 회사다.
직장생활의 근본적인 스트레스, 힘듦, 서글픔 등을 촌철적으로 다룬 문장이네요.
작가님의 이런 신랄한듯한 문체가 꽤나 마음에 듭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본래의 성격대로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 직장생활용 자아를 따로 만들어서 생활하시죠.
윗직급으로 갈수록 그 자아는 조금 거칠고 배려심이 부족할 것이고, 밑직급으로 갈수록 철저하고 빠릿빠릿한 자아를 유지할 겁니다.
내 본래의 자아와 성격을 죽이고, 회사가 원하는 대로 맞춰서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하고 피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정도가 심하고, 도저히 못 참겠으면 직장생활이 맞지 않는 사람들인 거죠.
직장은 직장이 원하는 성과가 따로 있기에, 그 성과를 위해 본연의 모습을 죽여야 하는 직장인의 애환을 짧은 문장 안에 담았네요.
가난이 감정에 미치는 영향을 둘로 나누자면 가난해서 화가 나는 분노가 있고, 화도 낼 수 없게 가난한 슬픔이 있다
가난해서 남들 다 누리는 사소한 기쁨조차 못 누리게 되는 순간엔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반대로, 그러한 기회조차 당연하게 박탈당할 때는 슬픔이 몰려오죠.
가난하면 남들보다 훨씬 많은 분노와 슬픔을 안고 살아가야 하기에, 고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힘든 직장생활을 유지하는 이유는, 나 자신 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가난'으로 인해 불필요한 슬픔과 분노를 겪지 않게 해주고 싶어서입니다. '돈'이라는 것이 '가난'을 막아주니까요.
하지만 같은 약점을 가진 사람끼리 뭉쳤다고 약점이 강점이 되기라도 하는 일은 없다.
약점은 + 가 아니라, - 이기에 뭉치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는 강점을 가지고 있어야만이 이 약점을 상쇄시켜 줄 수밖에 없습니다.
직장에서도 둘 다 어떤 업무를 하지 못하면, 이는 고스란히 약점이 될 뿐인 것처럼요.
대기업・정규직 컨베이어 벨트에 오르지 못하거나 이탈하면 위험을 외주 받아 살아야 한다. 반만년 역사 중 가장 잘 사는 지금,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대기업의 정규직 일자리는 전체 일자리 중 5%도 되지 않을 텐데, 이 5%의 삶에 속하지 못하면 위험을 외주 받아야 합니다. 이 위험은 안정적이지 않은 계약직, 비정규직의 근로형태부터 낮은 임금과 부당한 대우 등이 있겠네요.
많은 청년들이 대기업에 목숨을 거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래도 시스템이 잘 짜여있고, 높은 연봉을 주는 대기업 정규직 벨트에 올라야만이 삶을 좀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믿으니까요.
물론, 막상 대기업에 들어가더라도 본인이 생각하는 삶과 달라서 퇴사를 하는 사람도 많지만요.
취업도 힘들지만, 막상 취업해도 직장생활이 힘들어 이직하거나 퇴사도 많이 하는 요즘 시대.
인생은 누구나 위험을 마주 안고 살아간다지만, 생각 이상으로 힘들고 고된 직장생활 속에서 많은 청춘들이 좌절하고 무너져 내립니다.
분명, 옛날보다 기술은 발전하고 경제도 성장한 게 맞는데 왜 사는 것은 더욱 힘들고 팍팍할까요?
우리는 정말 잘 살고 있는 게 맞을까요?
잘 살기 위해서, 청춘들은 대체 어떻게 직장생활을 하고 인생을 꾸려나가야 하는 걸까요?
이 고뇌를 2019년에 나온 소설인 <구디 얀다르크>가 벌써 담고 있었다는 게 참 신기합니다.
저도 여러 군데의 직장을 다니면서 조직생활을 체험해 봤지만 참 쉽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좋으면 일이 힘들고, 일이 편하면 사람이 힘든.. 둘 다 편한 곳은 없었네요.
항상 밑 직급부터 일할 수밖에 없는 조직생활과,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조직이 원하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스트레스.
이 스트레스 때문에 조직생활을 떠나서 자립을 꿈꾸는 저는, 요즘 또 방황 중입니다.
이 방황은 직장을 잘 다니고 있는 많은 분들도 다 하고 있는 것이겠죠.
조금이라도 어릴 때 이 방황을 한 번 더 하면서 도전하는 게 맞는 것인지, 아니면 남들 다 이렇게 사는 것이라며 그냥 꾹꾹 참으며 정착을 하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번 방황을 시작하는 저에게, 직장생활의 애환을 담은 이 소설은 뜻하지 않게 위로가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