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밖에는 과연 행복이 있을까
INTRO
장강명 작가님의 소설 중 <한국이 싫어서>는 영화로도 출판된 작품입니다.
영화를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주인공의 내면이 상세히 묘사되지 않다 보니 이해가 잘 되지 않아서 원작인 소설을 한 번 읽어보았습니다.
확실히,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문어체로 흐르듯이 구성되었다 보니 영화보다 훨씬 인물의 생각과 감정이 이해가 잘되더군요.
<한국이 싫어서>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말 그대로, 한국이 싫은 20대 후반의 여자 주인공 '계나'가 호주로 이민을 가고자 결심하며 일어나는 일입니다. 3년째 금융회사에 다니지만 회사에서는 딱히 전문성이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남자친구와는 '신분 차이' 때문에 서러운 일만 당하던 계나.
한국에서는 더 이상 밝은 미래가 그려지지 않아서, 아예 호주로 떠나게 됩니다.
워킹홀리데이처럼 가벼운 게 아닌, 시민권을 취득하는 '이민'을 선택한 것이죠.
그렇게 유학원에서 영어를 배우던 계나는 '제인'이라는 약간 철없는 남자도 만나고, 인도네시아의 부잣집 아들 '리키' 등등을 만나면서 호주를 체험하게 됩니다.
호주는 확실히 대한민국보다 나은 점도 많았지만, 계나는 국외자로서 2등 시민임을 체험하는 순간도 많았습니다. 호주에서는 또 다른 어려움에 처하며 역시 어딜 가나 세상 살아가는 것은 만만치 않음을 느끼지만 그래도 대한민국보다 낫다고 생각하며, 행복하기로 다짐하며 계나는 세상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계나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소설이 끝나고 평론가의 해설이 나오는데, 평론가는 계나가 행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특정 조건에서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내용은 이따 뒤에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책 속의 문장들
내가 여기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건...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직장은 통근 거리가 중요하다느니, 사는 곳 주변에 문화시설이 많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일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 걸 따져.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죠. 지금도 쓰이고는 하지만, 한 때 엄청 쓰였던 적이 있습니다.
학업, 취업 등에 있어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고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세 글자로 드러낸 말이죠.
대한민국에서 잘 살기 위해서는 확실히 타고나야 하는 부분과, 필요한 능력들이 다소 있긴 합니다.
계나는 그런 것들을 전부 물려받지 못하여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라고 자조합니다. 하지만, 저는 저 뒷문장에서 따지는 조건인 1. 통근 거리 중요 2. 문화시설 많음 3. 자아실현 이걸 따지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수도권에서 출퇴근 시간 지옥철을 한 번이라도 타보신 분이 계신다면, 통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실 겁니다.
저는 공항철도, 2호선, 9호선 급행, 김포 골드라인, 7호선 등을 다 겪어봤는데 정말 진이 다 빠집니다. 사당역에서 거의 100명에 가까운 사람이 일렬로 줄 선 걸 보면서 아연실색하기도 했습니다.
이게 매일매일 반복되면, 적응이 되기는 하지만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주변의 문화 시설도, 문화생활을 즐기지 않는 분들이면 굳이 그런 게 필요하냐고 하겠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이게 또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저도, 그냥 집에서 책 읽고 영화 보면서 글만 써도 행복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주변에 아무런 인프라도 없는 허허벌판인 거는 싫거든요. 저처럼 내향적인 사람도 인프라가 어느 정도 있는 수도권에서 살기를 원하는데, 밖에서 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이런 게 중요하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자아실현.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무슨 자아실현이냐만은, 이 또한 누군가에겐 연봉, 복지보다 훨씬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는 거죠. 좋아하는 일을 해야만이 자아실현이 가능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그렇게 자아실현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또, 무조건 대기업 아니면 연봉이나 복지, 네임드가 뛰어난 직장을 가는 걸 '성공'의 기준으로 여기는 풍토 속에서 안 흔들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런, 대한민국의 풍토가 사실 정상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이런 걸 참고, 버텨내며 살아가지만.. 그 '버텨내는 것'을 유독할 수 없는 유형의 사람도 분명 있는 거고, 우리는 그런 사람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직장 여성 - 남자 대학생'의 관계는 그런 위기들과는 완전히 달랐어. 말하자면 그때까지 우리 관계는 롤러코스터였어. 오르막이 있는가 하면 내리막도 있고 탈선 위기도 겪었지만 어쨌든 같은 자리에서 함께 흥분하고 함께 소리를 질렀던 거야. 반면 내가 직장인이 되자 한 사람은 유원지 밖에,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유원지 안에 있는 것 같은 상황이 됐어.
대학생 연인 중 한 명이 직장을 가지게 되면, 서로 처한 환경이 달라지면서 거리가 멀어지는 걸 은유적으로 잘 표현한 문장입니다. 대학교와 직장은 아무래도 환경이 너무 다르다 보니까(보통, 직장이 훨씬 살벌하고 힘들죠) 연인 간에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같이 롤러코스터를 타며 오르락 내리락을 하던 관계가 유원지 안팎으로 바뀌게 된다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난 우리나라 행복 지수 순위가 몇 위고 하는 문제는 관심 없어. 내가 행복해지고 싶다고. 그런데 난 여기서는 행복할 수 없어"
"그래도, 우리나라가 다른 개발도상국보다는 인프라가 훨씬 좋고 국민 수준이 높다. 우리나라 의료복지는 최고다, 우리나라만큼 행정 서비스가 빠르고 좋은 나라가 어디 있냐."
하지만, 이미 이민을 마음먹은 사람에게 이런 말은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한 상황보다 내가 더 낫다고 해서, 내가 더 행복하다고 할 수 있나요?
단순화해서 비교하는 이 말은 폭력적이기까지 합니다. 또, '우리나라'가 행복하다고 해서 모든 국민이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 건 누구나 알지 않나요.
10년 뒤, 20년 뒤에 어떤 직업이 뜰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앞으로 전망 얘기하는 건 무의미한 거고, 내가 뭘 하고 싶으냐가 정말 중요한 거지. 돈이 안 벌려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좀 덜 억울할 거 아냐. 지명이가 그렇게 자기 진로를 선택한 거지. 그런데 난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몰랐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컴공이 유망하다고 하면서 코딩 학원까지 우후죽순 생겨났는데 갑작스러운 AI의 등장으로 개발자들이 또 대거 해고되고 그러고 있죠. 제가 전공한 환경공학과는 예나 지금이나 항상 전도유망합니다.(지금은 환경문제 악화로 진짜 전도유망한 거 같긴 한데..) 그러니, 앞으로의 전망을 얘기하면서 직업을 고르라는 건 사실 의미 없습니다. 그냥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게 맞죠.
하지만,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른다면 무슨 일을 해야 할까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자기에게 맞는지 잘 모를 겁니다. 그래서, 그냥 본인의 적성이나 흥미와 상관없이 일단 좋은 기업에 들어가서 일을 하자는 식으로 일을 하게 되죠. 일단,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가자는 것처럼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공부나 일을 하는 사람이 과연 행복하고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사회에서 알아주고 연봉이 높다고 해서 과연 그게 행복과 크게 직결이 될까요? 누군가에겐 그저 지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아닐까요?
계나는 이러한 풍토가 맞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람은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어. 하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순 없어. 나는 두려워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허름한 침실에 누워서 잠들 수는 있어도, 이 침실이 무너질까 걱정이 된다면 잠들 수 없는 법이죠.
이제 내가 호주로 가는 건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야. 아직 행복해지는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호주에서라면 더 쉬울 거라는 직감이 들었어.
대한민국에서 행복을 찾지 못했기에, 호주에서 행복을 찾으러 떠난다는 계나의 말은 이해가 갑니다. 소설 속 주인공이지만 응원도 하고 싶고요. 하지만, 저는 냉정하게 말하면 호주에서라고 더 쉬울 거라는 계나의 직감은 틀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아직 행복해지는 방법 자체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계나는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인생을 꾸려 나가야 즐겁고 재밌는지를 파악한 뒤 그에 걸맞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이 지긋지긋한 현실을 빨리 벗어나고자 도피성에 가까운 이민을 했거든요. 소설 속의 상황을 보면, 계나는 이렇게 도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습니다. 제가 말한 것들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죠. 그래서, 계나의 이민이 더욱 안타깝습니다.
대한민국에선 아예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없기에, 호주로 떠난 그녀의 선택은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하지만, 호주에서 인종차별을 당하고 억울한 일도 당하는 모습들은 그녀에게 또 다른 불행을 예고하는 거 같거든요. 그리고, 그녀가 행복해기지 어렵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 또한 그토록 싫어하는 대한민국의 잣대와 기준을 체화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평론가가 남겨준 해설을 인용하겠습니다.
뭔가를 성취한 기억으로 조금씩 오랫동안 행복감을 느끼는 '자산성 행복'이든, 어떤 순간 짜릿한 행복감을 느끼는 '현금흐름성 행복'이든, 효율성의 잣대로 손익을 계산하는 한 계나는 행복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동생 '예나'가 사귀는, 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한다는 남자 친구를 평가하는 그녀를 보라. 계나는 본인이 여태껏 냉소적으로 비판하던 사람들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순수하게 본인의 행복을 찾아 밴드 연주를 하는 남자친구의 수익을 계산하는 계나.
이런 효율성의 잣대로 타인을 평가하는 계나는 본인의 모습 또한 그렇게 평가할 것입니다.
이런 잣대로 자신의 인생을 평가하는 계나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호주로 떠나서도, 부당하고 차별적인 일을 당하거나 불편한 일을 겪을 때마다 대한민국과 비교하지 않을까요?
그녀는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을 떠난 이민은 성공했지만, 정신적인 이민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 이민은 몇 년 안에 빠르게 성공할 수도 있고, 어쩌면 평생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 정신적인 이민이 성공해야만이 계나가 행복을 찾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진다는 거죠. 대한민국에서 불행했다면, 대한민국에서 지녔던 본인의 생각과 가치관도 탈피를 해야만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법입니다.
대한민국 특유의 '돈'과 '수익'을 생각하는 그런 가치관으로 남을 평가하는 계나는 지금 당장 호주에서 행복해지기 힘듦은 명백한 사실처럼 보이네요.
대한민국의 삶이 힘들어서, 이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소수이지만 확실히 존재하죠. 청년층들에게는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를 이겨냈더니, 원하는 기업에 취직은 안되고 중고 신입을 원하는 이런 풍토 속에서 안 지치는 사람이 있을까요.
모든 경쟁을 이겨내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길을 척척 걸어가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은 이 대한민국의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소설 <한국이 싫어서>는 아예, 이 대한민국 땅을 벗어나 호주의 땅을 밟기로 결정한 '계나'의 모습을 1인칭 주인공 시점, 문어체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소설을 읽고 나면, 다들 계나가 행복하기는 쉽지 않겠구나를 느낄 겁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라는 말이 딱 생각나거든요.
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한 가지 희망적인 얘기가 하고 싶습니다.
아예 행복할 가능성이 없는 불모지에서 꾸역꾸역 살아가기보다, 그래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개척지에서의 삶을 택한 계나의 용기가 행복의 조그만 씨앗이라고 말이죠.
그녀가 단순 노동이라도 안정적인 수입을 취득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여유를 획득해 나가며 가치관을 바꾸는 데 성공한다면, 그녀는 그토록 바라던 행복을 맛보게 될 테니까요.
어딜 가나 살기 힘든 게 사람의 인생이지만, 솔직히 저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게 확실히 만만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개발도상국과의 비교, 선진국과의 여러 시스템 비교를 떠나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딱 한 가지만 정해져 있고, 그렇게 살아야만이 행복하다는 시선이 너무나 숨 막힙니다. 비단 어른들 뿐만 아니라, 남들이 원하는 기업에 합격한 청년들도 이런 시선을 가지게 되죠.
그 시선은 청년층인 사람은 누구나 알듯이 "대기업 정규직 취업"입니다. 몇 % 도 채 되지 않는 그 삶에 속해야만 행복할 거라는 시선은 굉장히 폭력적입니다. 대한민국 청년들은 이 시선을 은연적으로 감당하며 살아가죠.
<한국이 싫어서>는 계나의 삶을 직접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대한민국의 이런 풍토를 간접적으로 드러낸 작품입니다. 왜 대한민국이 싫을 수밖에 없는지를 이민을 준비하는 20대 후반 여성이라는 인물을 통해 약간은 신랄하게 말하기까지 합니다. 이 말이 모두에게 이해받을 수는 당연히 없고, 비판할 점도 물론 있습니다.
그럼에도, 비슷한 나이대의 청년층은 소설 속에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조금씩은 있을 겁니다. 이 부분이야말로 우리가 바꿔나가야 할 부분이 아닐까요?
대한민국 성공의 기준을 벗어난 삶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저 또한 이에 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폭력적인 시선을 드러낸 적이 있는지 점검하고 반성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