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탕한 작가 지망생의 이야기
우리는 대부분 한 곳에 정착하여 인생을 살아갑니다. 학교, 직장 근처에 거주지를 마련하고 그곳에 일정하게 출근을 하며, 어느 정도의 모범적인 도덕률을 지키며 살아가죠.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는,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을 어느 정도 동경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반대편의 사람을 동경하는 법이니까요. 그 떠돌이의 삶을 그려낸 소설이 있습니다.
바로 <팩토텀>입니다.
<팩토텀>은 작가 지망생 헨리 치나스키가 미국 사회의 밑바닥을 떠돌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는 안정된 직장, 사회적 성공 따위는 하나도 관심 없고 다만 하루를 먹고 마실 돈만 있으면 되는 사람이죠.
소설 속에서만 수십 개의 직장을 왔다 갔다 하며 살아가는 그는, 일정한 패턴의 삶을 반복합니다.
싸구려 모텔 전전 > 공장, 창고 등 단기 노동 > 월급 받으면 술과 여자에 탕진 > 해고 > 구직 > 틈 날 때마다 소설 투고.
이 소설에는 성장적인 요소는 없이, 이런 반복적인 패턴의 삶이 계속되며 끝납니다.
(마지막에 약간의 절망이 가미되지만요)
단어 '팩토텀'은 "잡일꾼, 만능 하인"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 제목처럼, 주인공 헨리 치나스키는 정말 잡다한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의 삶은 너무나 쾌락주의적이고, 한심해 보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인생의 노선을 절대 따르지 않는, 제도권 밖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삶이 왠지 모를 해방감을 선사해서 재밌었던 소설. 그 소설의 문장 몇 개만 되짚어 보겠습니다.
나는 고독 속에서 자란 인간이다. 내게 고독이 없다면, 그건 다른 사람에게 음식이나 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고독이 없는 하루하루는 나를 약하게 만들었다.
예술가에게 고독은 선택이 아니라 조건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혼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생존과도 같습니다. 그래서일까, 작품 속 헨리 치나스키가 일용직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근본적인 이유 역시 ‘고독’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와 깊은 유대가 생기면 안정이 찾아오고, 안정은 고독을 희석시키니까요.
그는 어쩌면 그 안정이 두려웠는지도 모릅니다. 겉으로 보면 그는 쓰레기 같은 삶을 삽니다. 술에 빠져 지각하고, 일도 제대로 하지 않죠.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고독을 사랑하는 한 남자가 있었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네요. 다만, 그 고독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괴로워하기도 하는 게 역설적이지만요.
인간의 영혼은 위장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어찌 됐든 인간은 동전 한 푼짜리 막대사탕보다는 고급 비프스테이크를 먹고 0.5리터들이 위스키를 마신 다음에야 훨씬 더 글을 잘 쓸 수 있다. 궁핍한 예술가라는 신화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주인공은 '배고픈 예술가'라는 신화를 부정합니다. 가난은 예술가를 치열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동시에 무너뜨리기도 하니까요. 주인공의 삶 속에서 가난은 그를 무너뜨리고, 억지로 직장에 나가게 하는 원인입니다.
그는 가난으로 인한 결핍, 그 결핍 속에서 오는 치열함을 예술의 동기로 삼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여유 속에서 유유자적하게 글을 쓰고 싶어 하지만, 그의 기질과 삶은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고 하찮은 일자리를 전전하게 만들더군요. 그 간극 속에서, 그는 점점 술에 빠지며 삶에 허우적거립니다.
그래서 나는 침대에 틀어박혀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실 때, 세상은 여전히 저만치 떨어져 온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당신을 목구멍 속으로 집어삼키지 않는다.
저 역시 술을 꽤 좋아합니다. 그래서인지, 주인공의 이 심리묘사가 이해가 되더군요.
술을 마시는 순간만큼은 힘들고 더러운 세상도 저만치 떨어져 있습니다. 존재는 하지만, 그 존재의 순간은 오로지 나와, 내 목구멍을 통해 넘어가는 술에 집중되죠.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나를 삼키는 게 아닌, 나 스스로 선택한 술만이 나를 집어삼킵니다. 누군가가 보기엔 한심해 보이는 그 순간이, 나에겐 크나큰 위로와 고통의 도피처가 되어주는 시간입니다. 가끔은 세상 자체가 무서울만치 잔혹해서, 저를 집어삼키려는 그 순간을 도피하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할 때가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빌어먹을 인간이 자명종 소리에 새벽 여섯 시 반에 깨어나, 침대에서 뛰쳐나오고, 옷을 입고, 억지로 밥을 먹고, 똥을 싸고, 오줌을 누고, 이를 닦고, 머리를 빗고, 본질적으로 누군가에게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주는 장소로 가기 위해 교통지옥과 싸우고,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해야 하는 그런 삶을 기꺼이 받아들인단 말인가?
주인공의 눈에, 저는 한 순간에 '빌어먹을 인간'이 되었습니다.
오전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근무지로 향하는 삶. 그 목적은 누군가에게 더 많은 돈을 벌게 해 주고, 그 돈의 일부를 제공받기 위해서죠. 이런 기회가 주어지는 것 자체에 감사까지 해야 하는 구조는 빌어먹을 구조이긴 하네요.
주인공은 그래서, 일을 더 제대로 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근무 시간에도 술을 먹고, 지각도 일삼는 그의 행동은 이런 구조를 비웃기 위함인 걸 수도 있겠습니다. 그 모습은 성실한 직장인들이 보기엔 지나칠정도로 한심하고 방탕하지만, 그 자유로움이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책 속에서 주인공 헨리 치나스키는 수십 번의 이직을 반복합니다. 일주일도 안 돼서 일을 그만두기 일쑤이고, 매번 술에 취해서 거리를 돌아다니는 모습은 방랑자를 넘어서 부랑자에 가깝습니다.
그 방탕한 삶의 끝은 당연히 절망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절망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고 그 굴레로 빠져드는 헨리 치나스키의 삶. 저는 그 주인공의 삶에 일부 저의 모습이 겹치는 걸 느꼈습니다.
저도 주인공만큼은 아니지만, 이직을 많이 했고 간간이 글을 쓰면서 살아가니까요. 심지어 술을 좋아하는 것까지 닮았습니다. 다만, 저는 주인공보다는 훨씬 절제를 하면서 인생이 엉망진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하지만요.
하지만, 생각보다 자주 헨리 치나스키처럼 막살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리기도 합니다. 그 욕망의 끝이 비참한 것을 알지만, 그 순간만큼은 더없이 달콤하니까요. 헨리 치나스키의 그 방탕한 자유로움을 보며 부럽지만 섬뜩했던 것은 저의 도피적인 행동이 겹쳐 보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방탕한 예술가의 자유롭고도 한심한 삶의 단편을 보고 싶다면, 이 <팩토텀>을 꼭 읽어보시길 바라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