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은 누구나 '잠'을 자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이 '잠'을 위해 소비하는 시간을 아까워한 적이 다들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수험생은 말할 것도 없고, 직장인들도 바쁜 시즌이 되거나, 아니면 그냥 잠들기 싫을 때(일어나면 또 출근해야 하니까) 잠을 미루게 되죠.
잠은 음식처럼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긴 하나, 아무래도 잠에 쓰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잠자는 시간 1시간만 줄여도, 그 시간동안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이 아른 거리죠.(저 같은 경우는 쓸데없는 유튜브를 보는데 시간을 많이 쓰긴 하지만)
그래서, 요즘은 학창 시절에도 카페인이나 에너지음료를 마시며 잠자는 시간을 늦추기도 합니다.
맘껏 푹 자고 일어났을 때의 그 달콤함을 누구나 알지만, 그 달콤함을 매일 선사하기에 우리 인생은 너무나도 바쁘죠.
<아무튼 잠>은 제목 그대로, 잠을 사랑하는 작가님의 일상을 다룬 에세이입니다.
잠을 너무 자서 일어난 웃픈 이야기들과, 잠에 대한 과학적인 사실들이 재밌게 녹아져 있어서 가볍게 읽기 좋았네요.
인간에게 집이란 뭘까. 또 잠이란 뭘까. 밥은 세끼 다른 곳에서 먹어도 상관없고, 옷도 필요하면 바로 사 입어도 된다. 하지만 잠은 다르다. 지금 쓰고 있는 매트리스와 이불, 베개는 우리에게 달라붙어 제2의 피부가 되고 만다. 인간의 복지는 거창하고 복잡한 것에 있지 않다. 몸에 익은 공간에서 마음 편하게 잘 수 있는 루틴이야말로 일상의 진국, 찐 행복이다. 사실 우리는 그걸 유지하기 위해, 혹은 좀 더 나은 조건의 루틴으로 업그레이드하려고, 피 땀 눈물을 바치며 일생을 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기본적인 의식주가 업그레이드될 뿐 사람들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부자들도 치킨과 맥주 같은 소소한 안주로도 행복해하는 걸 보면요.
우리가 돈을 많이 버는 이유는 그저 기본적인 의식주를 좀 더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 일지 모릅니다.
5천 원짜리 밥이 아니라 1만 원짜리 한 끼를 해결하고, 20만 원짜리 매트리스보다는 200만 원짜리 매트리스에서 자기 위해서 돈을 더 많이 벌려는 것이죠.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가구와, 일상적인 제품들에 돈을 쓰는 것이 가장 큰 복지이고 행복입니다.
낯선 수면 환경에서는 뇌의 반쪽이 다른 반쪽보다 좀 더 얕게 잠든다는 것이 수면학계의 정설이다. 깨어 있을 때의 뇌가 이곳은 덜 안전한 환경이라고 기록해 두었기에 경계 상태가 되는 것이다. 낯선 곳에서 깊은 잠을 못 자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우리가 낯선 곳에서 잠을 못 자는 이유가 있었네요.
하긴, 어디서나 낯선 곳에 가게 되면 뭔가 모르게 잠을 덜 자는 기분이 들었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네요.
밤 9시 이후에는 채권추심도 금지되고, 전쟁 중일지라도 어지간하면 휴전 상태에 들어간다. 잠자는 시간을 인정해 많은 것들이 멈춘다. 딱 세 가지만 빼고. 대출 원리금과 세금, 그리고 죽음
밤 9시 이후부터는 절대적인 평화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유머러스한 문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밤에는 휴전 상태이지만, 대출과 세금, 죽음은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이클이 돈다는 것이 섬뜩하네요.
지금의 잣대로 과거의 나를 판단하는 건 공정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치사한 일이니까. 그때는 다만 그렇게 사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을 뿐이다.
'과거로 돌아가면 그렇게 행동하지 말아야지.'
'과거로 돌아가면 이렇게, 저렇게 행동해서 꼭 지금보다 더 나은 현재를 꾸려나가야지;
우리는 항상 이렇게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때의 우리는 그게 최선의 행동이었을지 모릅니다.
현재의 우리는 과거보다 성장하였기에, 과거의 자신을 보면서 그렇게 행동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판단할 수 있을 뿐이죠. 그때의 우리는 그게 최선의 행동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따라 행동했을 겁니다.
과거를 후회하기보다는, 현재의 자신을 다시 가다듬고 미래를 향해 열심히 달려 나가는 것이 더 현명한 행동입니다.
세계는 장막을 덮어쓰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설치미술 같아서 내가 잠든 사이에 결정적인 장면이 연출될 것만 같았다. 나만 빼놓고 친구들이 의미와 재미의 모닥불 둘레를 에워싸고 잇지 않을까 초조해했다. 인생의 전반적에는 부모가 어린 우리를 재워놓고 그 시간에 뭔가를 도모했다면, 이십 대 이후에는 처지가 바뀐다. 다음 날 생계가 걸린 확실한 일과가 있는 부모는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다.
청춘의 밤은 어른의 밤과 또 다름을 나타낸 문장이네요.
다음날 일자리에 출근해야 하는 부모들은 일찍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밤을 새워 놀 수 있는 사람들은 학업을 이어가는 청춘들이나 가능하죠.(물론, 엄청난 학습량을 짊어지고 있는 청춘들은 또 다르지만)
청춘시절에는 하루하루가 재밌고, 즐겁거나 새로운 일이 일어나는 시절을 보내지만 어른들은 다릅니다.
업무의 내용은 달라질지라도, 매일매일 일터에 나가서 일을 수행해야 하는 어른들은 그저 지쳐서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이제 생계 때문에 일찍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는 어른이 되고 나니 서글프네요.
자신을 긍정하고, 스스로 애씀을 알아주고, 셀프 격려할 수 있는 청춘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그걸 자기 합리화와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추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자학을 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 스스로에게 정당한 보상을 줄 수 있는 지혜를 갖춘 청춘이 얼마나 될까요.
정말 조금의 성취에도 크게 만족하며 과한 보상을 주는 사람이 있거나, 반대로 뛰어난 성취를 이뤘음에도 자학을 하면서 제대로 보상을 주지 않는 사람은 많아도 말입니다.
그 시절 간절히 바랐던 것은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거였다. 내 촉수에 걸리는 숱한 감각과 인식에 질서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그 염원이 내 능력과 재능을 벗어난 신기루 같은 것임을 자각할 때면 누군가 클로로포름에 적신 천을 얼굴에 덮은 것처럼 졸렸다.
슬픈 것은, 지성과 지혜가 싹터 정확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을 때는 숱한 감각과 인식, 감성을 느끼는 능력을 잃어버립니다. 반대로, 청춘시절에는 그런 무수한 감성을 느낄 수 있어도 이게 어떤 건지 정확히 인식하거나 언어로 표현할 수가 없죠.
인생에 다시없을, 귀중한 감정이나 경험을 하고 있다고 자각하는 순간에도 청춘은 그 순간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 순간은 어른이 되어서야 다시 자각하기 마련이죠.
어쩌면 이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지도 모릅니다. 청춘 시절의 아름다움은 시간이 지나고 난 어른이 되어서야만 알 수 있으니 말이죠. 그래서, 청춘시절을 더 아름답고 즐겁게 보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어른이 되고 나면, 그때의 추억과 기억을 되짚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니..
인생에 1/3은 어쩔 수 없이 잠으로 소비해야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1/4 ~ 1/5만 소비하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잠을 푹 자면 컨디션이 좋아지고, 건강에도 좋다는 걸 알지만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어쩔 수가 없죠.
잠은 죽어서 자면 된다고 하지만, 깨어있는 순간을 더 잘 지내기 위해서는 잠을 잘 자는 게 필수입니다.
유독 우리는 운동이나 자기 계발에 시간을 쓰는 거는 멋지고 성실하다는 관점으로 바라보지만, 잠을 자는 데에 시간을 더 쓰는 건 게으르게 보는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잠만 자는 게 게을러보일 수밖에 없지만, 그 잠을 잘 자야 깨어있을 때 더 집중해서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으니 게으르게 보는 시선을 거둬야 할 것 같네요.(물론, 밤늦게까지 쓸데없는 짓을 하다가 늦게 일어나는 건 게으른 게 맞습니다.)
좀 더 건강한 삶을 위해서, 우리는 잠에 좀 더 관대해져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