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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자본주의자> 에세이 후기

숲 속에서도 자본주의의 이점을 누릴 수 있을까?

by Nos

INTRO


과도한 학업이나, 업무에 치인 분들 중 일부는 이런 생각을 해보셨을 겁니다.

'아, 진짜 다 때려치우고 그냥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게 살아보고 싶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 꽤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하는 분이 조금 계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포기하고 맙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특히나, 가정을 꾸려서 아이까지 있으신 분들은 아예 생각조차 못할 거 같습니다.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 문제가 많지만, 그래도 ‘돈’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필수 소비재들을 손쉽게 구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숲 속의 자본주의자> 작가님은 결혼하여 가정까지 있음에도 이런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물론, 완전한 자급자족은 아니고 소일거리를 하시면서 경제적 활동도 하고 계시지만, 자연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생활을 하고 계시죠.


미국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빵을 굽고, 글을 쓰고 이것저것 좋아하시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작가님은 ‘도피자’가 절대 아닙니다.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나와 동아일보 기자로 4년간 일하시고, 미국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까지 받으셨으니 고학력자에, 엘리트라고 봐도 무방하죠. 이 정도면 경제적으로 꽤나 부유하게 살아갈 직업을 얻어서 살아가실 수도 있을 법한데, 이 모든 걸 포기하고 남편과 아이와 함께 행복을 찾아 시골로 들어가시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 용기 덕분에 행복하게 삶을 살아가고 계신 거 같고 글 속에서도 그 행복함이 소소하게 묻어 나오더군요. 책을 읽으면서 작가님이 확실히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어서 재밌었습니다. 사회에 찌들어진 우리들에게 뭔가 영감을 줄 만한 문장들도 있었고요. 그 내용들을 간략히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책 속의 문장들


나도 내 삶의 골수를 맛보고 싶었다. 나만의 의미와 이야기를 발견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 자신의 ‘나다움’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꽤나 공이 드는 작업이다. 그런 삶의 독특성, 의미, 재미를 주목하고 찾아낼 사람은 우주에 나 한 사람밖에 없다. 섬세하고 주의 깊게, 너그럽게 천천히 들여다봐야만 보인다. 내게 시골은 이런 생각에 마음껏 빠져 있을 만한 넉넉한 공간과 시간, 그리고 적은 생활비를 의미했다.


‘나다움’을 발견하는 작업은 일단 성인이 되고 나서야 가능한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에선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이런 발견을 시작한다고 해도 무방하죠. 능동적으로 세상을 탐구하기 시작하는 청춘의 시절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자신을 조금씩 알아 갑니다. 누군가는 빠르게, 누군가는 느리게 자신을 알아가면서,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결정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직업을 선택하고 어느 도시에서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본인’의 몫이며 선택사항입니다. 남들이 다 우러러보는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치열하게 취준생활을 시작할지, 아니면 좀 더 본인의 진로를 탐구하고자 소일거리를 시작하며 살아갈지,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이직할지 등등은 전부 본인이 책임져야 할 사항인 것이죠.


작가님에게 있어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의 배경이 되는 곳은 시골이었습니다. 적당히 일하면서 삶의 여유와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곳. 그곳을 위해, 지금까지 쌓아온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시골로 이주하신 게 참 대단하네요.


신기하게도 이런 생활을 계속할수록 나는 깨닫는다. 이토록 외진 곳에서 살아도 사회와 나는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이런 자유를 누리는 일 역시 자본주의 하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숲 속에서 내가 뼛속까지 자본주의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셈이다. 나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자본주의는 내 멋대로 살아가기에 가장 좋은 제도다.


작가님은 일반적인 사회가 아니라, 시골에서 살아가길 선택하셨지만 자본주의를 부정하진 않습니다. 작가님이 원하는 삶의 형태를 유지하는 데에는 자본주의는 필수거든요. ‘돈’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대부분의 물품들을 구매하고,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기에 시골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또, 작가님은 빵을 구워 식사를 해결함과 동시에 소소한 용돈벌이를 하고, 글을 씀으로써 수입을 얻기에 시골에서의 삶이 가능한 것도 사실입니다. 작가님은 많은 수입보다는 적당한 수입을 얻으면서 자연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여유를 즐기는 것이 가장 소중한 것임을 알기에 이러한 삶을 선택했고, 그 삶은 자본주의 덕분에 유지가능함을 알기에 현명하게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빵을 굽고 파는 일이 창조적인 기쁨, 놀이의 즐거움이 되는 선에서 멈춰야 한다.


작가님이 처음 빵을 굽는 과정에서, 굉장히 재밌고 흥미를 많이 느끼셨다고 합니다. 숙련도가 올라가면서 장사를 해도 충분히 팔릴 만큼 좋은 빵을 생산하게 됐지만, 대량으로 만들고 영업시간을 늘리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의 목적, 기쁨과 놀이의 즐거움이 되는 선까지만 하기로 타협을 하고 멈춘 것입니다.

본격적으로 제빵을 시작하게 되면, 즐거움은 사라지고 돈을 보는 수단이 됨으로써 창조의 기쁨이 사라지니까요. 이렇게 리미트를 걸 수 있는 게 작가님만의 능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였으면, 솔직히 시골에서 제빵을 함으로써 어느 정도 수입이 생기는 걸 포기하지 않았을 거 같거든요.

돈은 현재의 삶을 유지하는 수단이자, 미래를 대비하는 자원이 되어주기에 벌 수 있을 때 또 바짝 벌려는 자본주의 습성을 솔직히 저는 못 이겼을 거 같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즐겁고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선에서 멈출 수 있는 능력이 작가님만이 가진 ‘지혜‘인 거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나의 욕망을 소중하게 탐구하다 보면 나와 다른 욕망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점점 너그러워지는 나를 발견한다.


자신의 욕망을 소중히 탐구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행위입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욕망을 탐구하고 행복을 찾다 보면, 이런 과정이 타인에게도 얼마나 소중한 건지 느끼게 되죠. 고통과 슬픔을 겪은 자만이 그 고통을 겪는 사람을 진정으로 위로하고 공감해 줄 수 있는 것처럼, 욕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칭찬하고 성공적이라고 여기는 삶은 여러 가지 삶의 모습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는 왜 각기 다른 온갖 삶의 방식들을 제쳐두고 하나의 삶의 방식만을 과대평가해야 하는가?
- 월든-


수없이 다양한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형태도 그만큼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런데 왜 우리는 하나의 삶만이 정답이라 생각하고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걸까요.

각자가 속도가 다르고, 욕망과 가치관이 다를지언데 왜 우리는 전부 정해진 트랙을 걸어가야 하는 무언의 압박을 받을까요. ‘사회’라는 이름 속에서 우리는 꽤 많은 억압을 받지 않나 생각합니다.


'매일 일관된 기분과 에너지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회적 규칙의 뻣뻣한 코트를 억지로 솔기를 잡아당겨가며 입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에 맞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첫걸음을 뗐다.


직장에선 힘들거나 슬픈 일이 있어도, 일은 해야 하고 인간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본인의 감정대로 행동하는, 소위 말하는 ‘기분파’처럼 행동하는 것은 사실 다른 동료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죠. 그렇지 않기 위해, 억지로 텐션을 유지하는 것은 항상 코트를 빳빳하게 다리는 행위와 비슷합니다. 조금 헝클어트리고, 주름 잡히더라도 편하게 입고 다닐 수가 없는 게 사회생활이죠. 매일매일 그렇게 코트를 다려 입다가, 어느 순간 도저히 못 입겠어서 내팽개치는 순간이 바로 자신만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렇게 열심히 알아내야 할 만큼 나는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가장, 재밌고 신선하게 느낀 문장이자 관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탐구해야 할 만큼 중요한 사람이 아니기에, 애쓰면서 본인을 탐구하지 않는다라는 것. 작가님이 자존감이 낮은 게 아닙니다. 본인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게 아니라, 그저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죠.


‘나는 어쩌면, 그냥 평범한 소시민이고 취향도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평범 그 자체야. 딱히 특별한 꿈이나 능력도 없으니 역사에 남을 것 같지도 않아. 그저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니, 스스로에 대해 치열하게 탐구할 필요가 있을까?’


어느 단체나 조직에 속하든 사람은 대체로 중요한 위치에 있어서 영향력을 행사하길 원하는데, 그런 욕망을 포기하고 다른 곳에 집중하는 작가님의 모습과 철학이 담긴 문장이었네요. 그래서, 사회의 시선에 따르지 않고 본인의 욕망에 따라 시골집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인생에 의미와 목표를 정하지 않는다. 내 인생이 무슨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나에게 재미있어 보이거나, 궁금한 것, 마음이 내키는 것을 순간 단위, 하루 단위로 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지구를 살다 떠났고, 역사에 남은 사람들은 극소수입니다. 그 극소수중에서도 우리가 아는 위인들은 몇 없죠. 슬프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역사를 살아갈 뿐이지 역사에 남을 사람은 아닐 겁니다. 사후에 내가 누구인지조차 잊힌다면 솔직히 인생에 그렇게 큰 의미가 있을까요? 그냥, 오늘 하루하루를 감사하고 재미있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가장 의미 있는 행위가 아닐까요.


내가 꿈꾸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오랜 기간 노력하며 살아가겠지만, 특별히 그런 게 없다면 하루 단위로 즐거운 일들을 하며 살다 가는 게 ‘여행자’ 다운 모습이 아닐까요.


END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고, 사회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렇지만, 자본주의라는 제도를 잘 이용하여 ‘돈’이라는 자원을 어떻게 잘 수급만 한다면 사회와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숲 속에서 살아갈 수는 있습니다. 자본주의 덕분에, ‘돈’을 어떻게든 벌기만 하면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을 구매할 수 있으니까요.


작가님도 이를 잘 이해하고 고찰하여, 자본주의 제도하에서 숲 속에서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조율을 많이 하신 듯합니다. 남부럽지 않은 직업을 가지고 경제적으로 꽤 풍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가정이지만, 그것을 포기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게 정말 멋있었습니다.


욕망을 추구하되, 욕심에 눈이 멀어 필요 이상으로 무리하지 않도록 하는 것.

좋아하고 즐기는 일이 필요 이상의 무리로 인해,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이 되지 않도록 조절하는 지혜.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는 어려운 이 지혜를 발휘한 작가님의 책.

풍족하진 않지만 풍요로운 영혼의 숲을 가꾸는 작가님의 책을 한 번쯤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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