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맥캔들리스의 삶을 더 자세히 보고 싶다면.
영화 ‘인 투더 와일드’를 아시는 분이 있나요?
속세를 거부하고, 알래스카의 거친 야생 속으로 들어가 자급자족을 하는 삶을 살다가 4달 만에 목숨을 잃은 청년의 이야기. 그 영화의 원작이 된 논픽션이 있습니다.
바로 <야생 속으로>라는 작품입니다.
솔직히, 영화 ‘인투 더 와일드’를 재밌게 봤어서 이런 논픽션까지 읽을 필요가 있을까 했습니다.
크리스 맥캔들리스의 삶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생생하게 보고 감동을 많이 느꼈었거든요.
하지만, 역시 책은 또 다른 느낌으로 저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책만이 줄 수 있는 상세한 정보와 크리스맥캔들리스의 생각과 감정들을 천천히 읽을 수 있었거든요.
아주 똑똑하고, 부유한 미국의 엘리트 청년이 왜 그렇게 일반적인 사회를 거부하고 야생으로 들어갔는지, 그 야생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갔는지가 책에 잘 나와있습니다.
책에선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 맥캔들리스의 무모한 도전을 비난하고 비아냥했다고 나오는데요. 저는 이상하게도 이 크리스의 마음과 정신, 감정들이 모두 이해가 되었습니다.
저 또한, 야생으로 달아나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본 게 아니니까요.
저에게는 크리스 맥캔들리스가 아주 용감하고, 자신의 삶과 생명 자체에 온전히 집중하며 살아가고 싶어 한 여행자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감명 깊게 읽고 밑줄까지 그으며 많은 생각을 했네요.
그 문장들을 조금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그가 찾고 싶어 한 것은 위험과 역경, 그리고 톨스토이의 삶과 같은 금욕적인 삶이었다. 그리고 야생에서 지내는 동안 맥캔들리스가 넘치도록 발견한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매 순간의 안정적인 삶보다, 하루하루가 생경하고 생명이 흘러넘치는 삶을 원하는 유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 가끔씩, 주말마다 등산을 하며 삶의 '일부'만 자연을 즐기는 게 아니라, 삶 자체를 자연에 바치는 사람들 말이죠. 그 사람들에게 있어 자연은 그저 휴양지가 아니라 삶 자체의 터전이 되는 '야생'이 되곤 합니다.
주인공 크리스는 성공적인 삶이 보장된 엘리트였지만, 그는 이런 사회의 삶에 아무런 흥미와 재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히치하이킹을 하고 단기 알바를 하며 여행을 다니다가 결국 그의 가장 위대한 도전을 하기 위해 알래스카로 향하게 됩니다.
크리스는 우스꽝스럽고 성가신 의무, 그러니까 대학 졸업이라는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지난 4년을 보냈다. 마침내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숨 막히는 세상, 비현실적 관념과 보호와 물질이 넘치는 세상, 존재 그 자체의 울림에서 단절되었다고 느끼며 슬픔을 맛봐야 하는 세상에서 해방된 것이다. 애틀랜타의 서쪽으로 차를 몰면서 크리스 맥캔들리스는 자신을 위해 전혀 새로운 삶, 여과되지 않은 경험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삶을 만들어가기로 했다. 이전의 삶과 완전히 단절되었음을 상징하기 위해 이름도 새로 지었다
야생의 삶을 살고자 하는 크리스에게 있어, 속세에서 취득해야 하는 모든 자격증, 학위들은 그저 ‘가짜’에 불과했을 겁니다. 특히나, 속세를 살아감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라이선스라 할 수 있는 ‘학위‘는 허울의 극치일 뿐이죠. 크리스는 머리가 비상하여 성적도 잘 받고, 대학생활도 그럭저럭 잘했지만 오히려 그에겐 답답한 감옥 같았을 겁니다.
그에게는 자연만이 숨통이 트이는 유일한 장소이며, 안락한 보금자리와 같은 곳이었죠.
비록, 야생의 거친 숨결이 그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속세의 따뜻한 숨결보다는 덜 숨이 막혔을 겁니다.
저기, 제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저는 대학교육을 받았어요. 빈민도 아니에요. 제가 좋아서 이렇게 사는 거예요.
좋은 학위와 자격증을 땄음에도, 그에 상응하는 일을 하지 않고 단순 노무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고학력자들에게 사람들은 괜한 걱정을 하곤 합니다. 가진 능력에 비해 초라한 대우를 받는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에 하는 말이겠지만,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다들 똑똑하고, 더 나은 대우를 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부당한 대우를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죠. 그럼에도, 단순 노무나 급여가 낮은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은 본인에게 맞고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내가 좋아서 하는 활동들에는 돈을 필요로 하지 않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렇게 살고 싶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쓸데없는 참견과 걱정이 심합니다. ‘돈’에 미쳐서 ’ 즐거움, 행복, 기쁨‘ 등등의 무형의 가치는 아예 보지 않는 풍토가 가끔 숨 막힐 정도로 답답할 때가 있네요.
수많은 사람이 불행한 환경 속에서 살면서도 자신이 나서서 상황을 바꾸려고 하지는 않아요. 안전, 순응, 보존의 삶에 길들여졌기 때문이죠. 이 모든 것이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는 듯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안전한 미래만큼 인간 내면의 모험심에 해로운 것은 없죠. 인간의 살아 있는 영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험을 향한 열정이에요. 삶의 기쁨은 새로운 경험을 만나는 데서 오고, 매일매일 새롭고 다른 태양이 떠오르므로 끊임없이 변하는 지평선을 보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어요
오늘날의 수많은 사람들은 그저 ‘정착자’로 살아갑니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미지의 대륙들은 모두 정복이 되었으니 굳이 위험한 모험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정착된 삶은 그저 안전하고 뻔해서 평화로운 삶입니다. 하지만, 이런 삶이 맞지 않는 ‘모험가’들에게는 한 곳에 정착되어 매일 똑같은 풍경을 바라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어떤 위험을 마주치게 되더라도, 새로운 풍경과 환경 속에서 살아가길 택한 사람.
크리스는 이런 사람이었고, 모험가였기에 정착자들의 관점에선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죠.
거칠고 황량한 야생 속에서 굶어 죽었지만, 그는 4달 남짓한 시간 동안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누구보다 깊은 환희와 기쁨을 느꼈음에 틀림없습니다.
론, 삶에서 더 많은 걸 얻고 싶다면, 단조로운 안정감에 기대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설령 처음에는 미친 것처럼 보이더라도 뭔가를 저지르는 삶의 방식을 받아들여야 해요
정착자보다는 모험가가 삶에서 더 많은 것을 얻는 것은 자명합니다. 모험가가 되는 길은 어려우면서도 간단합니다. 일단, 그냥 저지르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그 저지름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그쳐야겠죠.
윌트와 빌리가 장래성 있는 직업을 얻으려면 학위가 필요하다고 하자, 그는 직업은 가치보다는 의무 때문에 갖게 되는 '20세기의 발명품'으로 전락하고 있으며 자신은 직업 없이도 잘 살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했다.
직업 없이도 살아갈 자신이 있는 크리스의 감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직업은 그저 의무 때문에 가지게 되는 20세기의 발명품이라는 게 조금 충격적으로 다가왔네요.
자유로운 영혼인 크리스에게 있어 직업은 그저 구속의 수단일 뿐입니다. 남들보다 오히려 더 성공적인 직업을 가져서 사회의 부유층으로 편입할 가능성이 넘쳤던 그가, 이런 걸 내팽개치고 야생을 택한 용기는 볼수록 놀랍네요.
나는 다시 태어났다. 이제 시작이다. 진짜 삶이 시작되었다. 신중하게 살기 - 삶의 기본적인 것들에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직접 접해 있는 환경 그리고 그 환경과 관련된 일에 지속적으로 주의를 기울일 것. 예를 들어, 작업, 일, 책, 효율적인 집중을 요구하는 어떤 것(상황이라는 건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어떤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 가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현상에 어떻게 대처하고, 그 현상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가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 '정착자'들은 삶의 기본적인 것들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습니다.
집이 무너질 이유가 없고, 옷은 사놓은 것들 중에 꺼내 입고, 밥 또한 돈만 지불하면 쉽게 먹을 수 있으니까요(메뉴 선정은 하루에 가장 중요한 일과 중 하나이긴 하지만)
돈만 지불하면, 당연하게 주어지는 삶의 기본적인 것들. 야생에서보다 훨씬 더 쉽게 주어지기에 무의미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삶의 요소들은 야생에선 손쉽게 구해지지 않습니다. 이것들을 얻기 위해선 훨씬 더 많은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하는데, 이 과정 자체가 크리스에게는 진짜 '삶' 그 자체였던 것이죠.
그 야생을 살아감에 있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은 무궁무진합니다.
중요한 것은 벌어진 상황 자체에 어떻게 대처하는 가죠. 미리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도록 노력은 해야겠지만, 어쩔 수 없이 벌어진 뜻밖의 상황들에 어떻게 대처하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상황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성찰하는 것은 그의 삶에 가장 중요한 행위라고 볼 수 있겠네요.
사회적으로 성공적인 삶이 보장되었음에도, 모든 걸 걷어차고 야생의 삶을 택한 크리스.
똑똑한 머리와 친화력 덕분에, 속세에서 살았다면 부유하면서도 즐겁고 안락한 삶을 살았을 게 분명한 크리스. 그럼에도, 이 모든 걸 벗어던지고 야생을 살아가다가 목숨을 잃은 그의 삶은 언뜻 보면 이해가 가지 않을 겁니다.
속세를 벗어던지고 자연에서 살아가고 싶다는 강렬한 생각을 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죠.
저 또한, 20대 초반 청춘 시기에 이런 욕구를 강하게 가진 적이 있습니다. 왜 굳이 대학을 나오고 취업을 해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강한 의문을 품었었죠. 속세의 모든 것이 허례허식 같고, 저는 그냥 책만 읽으면서 살면 충분히 행복할 거 같은데 왜 이렇게 쓸데없이 열심히 공부해야 하나 싶었습니다.(그렇다고 또 엄청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았네요.)
산속 깊은 곳에 오두막을 짓고, 거기서 자급자족을 하며 책만 읽으면서 사는 삶을 살고 싶었으나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빠르게 포기했습니다. 이유는 뻔합니다. 그냥 '돈' 때문이죠.
지금도 돈만 있으면, 산 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시 속에서 유유자적하게 살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크리스처럼 야생 그 자체를 경험하진 않더라도, 자연도 체험하고 도시 속을 방랑하는 그런 반쪽짜리 모험가로 살고 싶은 욕구가 강합니다.
그런 저에게,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전부 끊어버리고 야생에서 본인 자신에게 집중하여 살아가고자 한 크리스의 삶은 간접적인 해방감을 주었습니다. 저는 아마도, 그가 마지막에 숨을 거두는 순간만큼은 딱히 슬프거나 외로워하지도 않고 야생을 받아들이며 편안하게 눈을 감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크리스는 속세의 돈보다, 자연의 풀잎을 더 사랑하는 존재였으니까요.
저는 크리스 같은 용기는 없어서, 도저히 야생 속으로 뛰어들지는 못하겠습니다. 다만, 도시를 살아가면서도 틀에 박힌 생각에 갇혀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제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며 하루하루 가슴 뛰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좋아하는 일과 활동들로 제 삶을 가득 채우는 것.
그렇게 삶 자체를 하루하루 빛나게 하고 안정감에 취하지 말고 모험으로 채움으로써 '모험가'적인 삶을 살도록 노력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