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전 날

떨리는 마음과 불안감은 씁쓸한 술안주.

by Nos

자존심을 내려놓은 승현은 다시 계약직과 인턴 채용 공고를 뒤적였다.
정규직이라는 단어는 이제 화면 속에서만 반짝였다. 서류조차 통과하지 못했던 경험이, 그 반짝임이 얼마나 허약한지 뼈저리게 알려주고 있었다.

아직은 계약직으로 경력을 더 쌓아야 했다.
그게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걸, 승현도 알고 있었다.

인턴은 대부분 공공기관 체험형이었다. 전공과 관련된 기관 위주로 지원할 생각이었지만, 솔직히 말해 그 경험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였다. 해봤자 이력서에 한 줄 추가하는 정도. 의미 있는 경력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했다. 하지만 당장 생활비가 급한 승현에게, 자존심을 따질 여유는 없었다.

체험형 인턴은 공공기관만 넣을 예정이었기에, 당장 지원할 수 있는 곳은 계약직 두 군데뿐이었다.

보수는 정규직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았다.
체험형 인턴은 4대 보험이 보장되긴 했지만 최저시급이었고, 계약직은 연봉 3천 초중반. 세후로 계산하면 월 250만 원을 간신히 넘는 수준이었다. 명절 상여금이나 복지포인트 같은 건 기대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일한 만큼만 받는 구조였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정규직보다는 서류 통과 확률이 높다는 것.


이미 계약직 근무 경험이 한 번 있었고, 그 덕에 서류에서 탈락한 기억은 거의 없었다.
만약 계약직마저 서류에서 떨어진다면, 그건 이 취업시장에 자신이 설 자리가 없다는 뜻일지도 몰랐다.

백수 생활도 어느덧 한 달을 넘겼다.
아직 생활비는 남아 있었지만,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사실이 승현을 계속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는 서둘러 계약직 지원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여러 번의 지원을 거치며, 승현은 이미 알고 있었다. 취업은 내가 회사를 고르는 일이 아니라, 회사가 나를 고르는 일이라는 걸.
일단 여러 군데 넣고, 최종까지 간 곳 중에서 고르는 것. 그게 지금의 취업이었다.

어차피 최종까지 갈 수 있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이번 지원은 이상하리만큼 담담했다.

지원한 두 곳 모두 다음 날 이력서를 열람했다. 열람했다고 해서 바로 연락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빠르면 다음 날, 보통은 다다음 날, 늦으면 일주일 뒤였다. 승현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느긋하게 다른 채용 공고들을 살폈다.

하지만 더 지원할 곳은 없었다.
결국 그는 휴식을 택했고, 잠에 들었다.


이력서가 열람된 다음 날,
휴대전화가 울렸다.

“안녕하세요. 지원자 김승현 씨 맞으신가요? K회사 채용담당자입니다. 서류 합격하셔서 연락드렸습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혹시 현재 재직 중이신가요?”

“아닙니다. 지금은 다니는 회사가 없습니다.”

말을 하자마자, 속이 살짝 쓰렸다.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스스로를 변명해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 그러면 면접을 조금 일찍 진행하려고 하는데요. 내일 오전 11시에 가능하실까요?”

“네,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장소와 시간은 문자로 다시 안내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통화는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 짧은 통화 하나로, 승현의 내일이 결정되었다.

다음 날 오전 면접. 이렇게 빨리 잡히는 면접은 대개 사람이 급한 경우가 많았다. 느낌이 좋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의 승현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퇴사 후 처음으로 받은 면접 연락이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가야 했다.

문득 오늘 오후에 친구가 놀러 오기로 했다는 게 떠올랐다.
미안하지만, 오래 붙잡아 둘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제 승현에게 중요한 건, 놀이나 약속이 아니라 내일 오전 11시였기 때문.


아무리 백수라 해도, 이렇게까지 면접이 빠르게 잡히는 건 이상했다. 승현은 통화를 끊고 한참 동안 휴대전화를 내려다봤다. 채용공고를 다시 열어보니, 자신 말고도 지원자가 더 있었다.

지원자는 총 일곱 명이었고, 그중 첫 번째로 지원한 사람이 승현이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면접을 잡은 걸까. 아니면, 그냥 순서대로 불러서 전부 한 번씩 보는 걸까.

뭐가 됐든, 면접까지 하루도 채 남지 않았다. 직무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았다.

연봉도 그럭저럭 괜찮았고, 집에서 멀지도 않았으며 네임드 있는 기업이었다.

이 정도 회사면 승현이 고민할만한 회사가 아니었다. 합격해야 하는 회사였다.

며칠 뒤 결제될 카드 대금만 생각해도 답은 간단했다.


승현은 배부른 처지가 아니었다. 배고픈 쪽에 가까웠다.

아마 다른 지원자들도 비슷할 것이다. 이런 계약직 자리에도 석사나 경력자들이 몰려드는 이유를, 승현은 이미 여러 번 목격했다. 일곱 명을 전부 면접 본다고 가정하면, 스펙만 놓고 봤을 때 승현은 눈에 띄는 지원자가 아니었다. 결국, 면접에서라도 인상을 남겨야 했다. 열심히 하겠다는 태도와 직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경험과 더불어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사업내용, 관련 법률, 최근 동향을 잘 답변하면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인성 질문과 1분 자기소개까지 준비해 가면 계약직 면접 치고는 완벽에 가까운 준비다.

승현은 친구가 오기 전까지, 일단 1차 정리를 하기로 했다.

준비에 한창이던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나 도착했는데, 커피 하나 사갈까?”

“어, 그러면 고맙지. 날 추우니까 나는 따뜻한 걸로.”

“어~ 아이스 두 개.”

실없는 농담에 승현은 피식 웃었다. 연차를 내고 찾아온 친구는 벌써 1년 넘게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한때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정규직에 입사했지만, 팀장의 괴롭힘으로 두 달 만에 퇴사한 친구였다.

지금은 그럭저럭 회사에 만족하며 다녔고, 요즘 고민은 연애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가 고민인 애였다.


10분쯤 지나 친구가 아메리카노 두 잔을 들고 들어왔다.
따뜻한 것 하나, 아이스 하나. 세 달 만에 보는 얼굴이라 그런지, 괜히 반가웠다.

대충 옷을 벗고 바닥에 앉은 친구에게 승현이 툭 던지듯 말했다.

“야, 나 내일 면접 본다. 이거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가야지. 돈 벌어야 지금 마시는 커피도 부담 없이 마시지.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는 거야?”

승현은 잠깐 말이 막혔다. 그가 요즘 즐겨 먹는 간장계란밥과 인스턴트커피가 떠올랐다.
절약이라는 이름으로, 서서히 익숙해지던 식단이었다.

“뭐… 요리해 먹는 것도 재밌어. 간장계란밥 하나 해 먹을 때마다 8천 원 아낀다 생각하면 계속 먹게 돼.”

“야, 난 근거리 출장 한 번만 갔다 와도 2만 원은 더 벌어. 출장 갔다 온 날은 만 오천 원짜리 밥도 거침없이 먹게 되더라?”

“출장비는 보너스나 다름없으니 괜찮지. 그래도, 너는 본가에서 출퇴근하니까 돈 되게 아끼지 않냐?"

"그러게. 막 많이 버는 것도 아닌데도 한 달에 150 이상은 기본적으로 저축하게 되네."


친구의 저축액에 승현은 놀랐다. 같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생활은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한 달에 150씩 추가로 돈이 모이는 친구와, 150 이상을 까먹고 있는 자신.

커피가 유달리 썼다.

이렇게 쉬고 있는 시간도, 친구는 '연차'로 유급휴가이지만 승현은 무급 휴가였다.


실없는 이야기와, 조금은 건설적인 이야기들을 하다 보니 시간이 저녁때에 가까워졌다.

친구가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자고 했지만, 승현은 면접 준비를 핑계로 그를 돌려보냈다.

친구는 더 묻지는 않았다. 약간 아쉬워하며 다른 친구들과 약속을 잡으려고 연락하더니, 금방 잡고 떠나버렸다. 혼자 남은 승현은 본격적으로 면접 준비를 시작했다.

자기소개 대본. 직무 지식, 업무 흐름 등을 다시 한번 훑었다. 딱히 더 찾아볼 필요성을 못 느낀 승현은, 자기소개 연습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지원자 김승현입니다.”

대본을 보며 읊고, 벽에 면접관이 있다고 상상하며 다시 읊었다.

시간은 대충이면 됐다. 정확히 1분을 재는 곳은 드물었다.

10번 정도 반복하자, 말이 입에 붙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이제부터는 간격을 두고 떠올리는 게 더 효과적이었다.

저녁을 먹고 한 번. 자기 전에 한 번. 아침에 한 번. 면접 보러 가는 길에 한 번. 면접 보기 전에 한 번.

이 정도면 충분하다. 자기소개를 안 할 가능성도 높았기에, 더 하는 건 스트레스다.


다음으로 점검할 것은 인성 질문이다. 인성 질문은 함정만 잘 피하고,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은 적절한 겸손과 의지를 섞으면 충분했다. 몇 번의 면접 경험을 통해, 승현은 이미 그 요령을 잘 알고 있었다.

면접 준비를 끝마치고 나니 7시였다.


여기서 더 할 수도 있었지만, 면접은 결국 운이었다.

아무리 잘 봐도 이미 내정자가 있거나, 경쟁자들이 월등히 뛰어나면 탈락하는 게 면접이다.

이런 모든 요소들은 '운'으로 퉁쳐졌다. 내가 모든 게 뒤 쳐 저도, 면접관의 마음에 들면 합격할 수도 있는 게 면접이다. 그래서 그는 적당히 준비하고, 나머지는 맡기는 쪽을 택했다.


이제 면접 준비가 끝났으니, 승현은 본인이 좋아하는 루틴을 실행하기로 했다.

루틴은 별 거 없었다. 혼술이었다.

늘 먹던 국밥이 아니라, 마라탕을 먹으려는 게 유일하게 달라진 점이었지만.

숙주와 청경채, 알배추, 소고기.

맵기 1단계, 공깃밥 추가.
소주 한 병.

땅콩소스에 고추기름을 살짝 넣고, 단무지에다 물 한 컵.


완벽한 세팅이다. 10분쯤 지나니 마라탕이 나왔고 승현은 빠르게 소주를 비웠다.

10분 만에 소주 반 병 정도를 마신 승현은 술기운이 올랐다. 술기운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선 불안이 피어올랐다.


요즘 술을 마실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어도 되는 걸까.'

번듯한 직장도 없이, 아직도 진로를 헷갈려하며 시간을 보내는 자신이 한심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소주의 단 맛이 쓴맛으로 변했다.

결국, 승현은 맥주를 하나 더 시켰다.

소주의 쓴맛은 맥주만이 중화시켜 줄 수 있었기 때문. 일명 '소맥'이다.


그는 소맥을 말아 마시며, 불안과 자격지심까지 함께 섞어 넘겼다.

유달리 달콤했던 이 날의 소맥은, 다음날의 숙취를 저당 잡아 빌린 달콤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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