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쉬운 시험이라도 겸손하고 성실하게 공부해야 한다.
기사 실기시험에 떨어진 민기는 남은 여름방학을 폐인처럼 보냈다.
더 이상 공부할 의욕이 다 떨어진 민기는 핸드폰을 켜서 침대에서 하루 종일 게임과 유튜브 시청을 했다.
갖다 팔아버린 컴퓨터를 다시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PC방도 간간이 갔다.
한 달 동안 미친 듯이 게임을 하면서, 민기는 겨우 멘탈을 추스를 수 있었다.
겨우 기사 실기시험 하나로 이렇게까지 멘탈이 나가는 건 이상하지만, 민기에겐 단순한 기사 시험이 아니었다. 본인 스스로에 대한 시험도 일부 포함되어 있었다.
해야 할 일을 팽개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는 것.
이것을 또 망각하고 쉽게 우쭐해 버려 시험에 불합격한 자신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혐오스러웠다.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3회 차 필기시험 하나를 더 잡아두긴 했지만 멘탈이 나간 민기는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 공부할 의욕과 마음을 다 잃어버린 민기는 다시 죄책감을 한 스푼 더 집어먹으며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마지막 학기 수강신청 때였다.
1학기에 20학점을 열심히 들었던 덕분에, 2학기때는 수강신청할 과목이 3개밖에 없었다. 합쳐서 8학점.
전공과목 2개와 교양 하나를 들으면 끝이었기에 이번 학기는 아주 널널했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마지막 학기에, 취업을 위해 이렇게 수강하고는 했다. 확실히, 9월에 개강을 맞아 수업을 들은 민기는 1학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여유로웠다.
월 ~ 목요일동안 수업은 1개 아니면 2개밖에 없었던 민기는 남는 공강시간에는 취업 관련 정보나 자료를 찾으며 보냈다.
아무런 네트워크가 없던 민기는, 공공기관 채용사이트나 일반 채용사이트, 취업 대형 카페 등을 보며 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가장 확실한 것은 기관에서 낸 채용공고문과 최종합격한 사람이 남긴 후기였다. 그 내용을 보며 읽은 결과, 공공기관에 가려면 기사 자격증은 최소 1개 ~ 3개가 필요했다. 사기업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필요한 기사 자격증 목록들은 1. 수질환경기사 2. 대기환경기사 3. 폐기물처리기사 4. 산업안전기사
이 정도였다.
이렇게 기사 자격증들을 취득하면, 공공기관이나 사기업 어디든 무슨 직종에든 웬만하면 다 서류에 넣을 수 있었다. 여기다 어학이나 한국사 1급, 컴퓨터활용능력 1급과 같은 것까지 추가하면 웬만한 공공기관은 무조건 서류를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 자격증들을 전부 취득하려면 내년 하반기까지 공부만 하며 지내야 할 것 같았다. 당장 계약직이라도 취업해서 경력이라도 쌓으려 했던 민기는 고민에 빠졌다.
일을 하면서 자격증까지 취득하는 게 맞았지만, 방학기간에도 공부를 안 하던 자신이 그렇게 열심히 살 수 있을까? 그렇다고, 일도 안 하고 본가에서 공부만 하며 1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수험생도 아니고 고작 자격증 취득을 위해서 그러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이래나 저래나, 우선은 지금 공부하고 있는 수질환경기사를 취득하고 내년에 상황 보고 결정하자.
그렇게 민기는, 여름방학 때 내팽개쳤던 약간은 꾸깃해진 기사 문제집을 집어 들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이제 개강한 지 2주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민기는 그간의 실패를 통해 본인만의 공부 원칙을 세웠다.
1. 미리 여유롭게 공부 일정을 잡을 것.
2. 데드라인을 설정하여 집중력을 높일 것.
3회 차 기사 실기시험은 11월 중순으로 일정이 잡혀 있었지만, 민기는 두 달 전부터 미리 조금씩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암기시험이기에 이렇게 공부를 하는 게 비효율적인 건 알았지만, 본인을 믿지 않았기에 조금씩 미리 공부하기로 했다. 대신, 그만큼 공부량을 조금 줄였다.
데드라인은, 18시로 정했다. 일반 직장인들이 칼퇴근을 하면 끝나는 정규근무시간.
시간을 더 늦게 잡으면 낮에 집중력이 흐트러지기도 하고, 자유시간이 애매해지기에 딱 잡아두었다.
이렇게 시간을 정하고, 민기는 여유롭게 기사실기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하루에 딱 1 회치씩 한 달을 공부하고, 2 회치씩 2주를 공부하고, 3 회치씩 2주를 공부하면 누구나 합격할 만한 공부량을 달성할 수 있다.
이전에 이미 공부했던 양가지 합치면 그렇게 부담스러운 공부량도 아니었다. 시험 2주 전부터는 조금 힘들긴 했지만, 이건 어느 시험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렇게 공부를 시작한 민기는, 생각보다 더 여유로운 일정에 당황했다.
기사 시험은 2시간 공부하면 끝이었기에 공강시간에 공부를 하고도 시간이 남았다. 이 남는 시간 동안 민기는 다른 공부를 병행하기로 했다. 기사 시험에만 집중하는 것이 좋았지만, 당장 대학졸업을 앞둔 민기는 어학이나 다른 자격증들을 취득하는 게 좋을 것 같았기 때문.
한국사 1급, 컴퓨터활용능력 1급, 토익 등등이 남아있었다.
그나마, 토익은 편입을 준비하면서 공부했던 기초가 있기에 괜찮았지만 한국사 1급과 컴퓨터활용능력 1급은 조금 골치 아팠다. 기사 시험과 병행할 수 있는 공부량인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후기를 조금 찾아보니, 한국사 1급은 암기량이 많아서 병행하기 무리였고 컴퓨터활용능력 1급 필기만 우선 취득하기로 했다. 필기까지 같이 공부 병행을 시작하자, 민기의 스케줄은 다시 타이트하게 조여졌다.
공강시간엔 무조건 도서관으로 가서 집중력 있게 공부를 하니, 저녁 먹을 시간 쯔음이 되면 녹초가 되었다.
학식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열심히 공부한 보상으로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시청한다.
이렇게 휴식하는 게 죄책감이 들 때면, 컴퓨터를 켜서 자기소개서나 취업 관련 정보를 또 훑어본다.
매번 이런 생활패턴을 반복하던 민기는 때때로 강한 회의감이 들었다.
공부를 어정쩡하게 해서 시험 불합격한 건 둘째 치고, 다들 이렇게 살고 외롭게 공부하는 게 맞나 싶었기 때문.
편입 후 항상 혼자 다니던 민기는 또래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없어 항상 의문이었다.
인터넷이나 다른 대학 커뮤니티 등등에서 비슷한 고민이나 얘기가 나오긴 했지만, 좀 더 생생하게 오프라인에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누군가를 사귀기에는 한참 늦었다.
민기는 결국 이 모든 고민과 스트레스를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했다. 인공지능에게 괜히 키보드로 고민을 타이핑해서 쳐보기도 하고, 술을 마시며 외로움을 계속해서 달랬다.
이런 시간이 점점 길어지다 보니, 민기의 생각은 조금씩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대학 동기들은 취업하고 나면 연락할 일이 거의 없잖아? 취업만 잘하면 굳이 필요한 사람들인가. 오히려 내가 잘되면 갑자기 연락할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
삐뚤어진 민기의 마음은 점점 고립되어 가며 이상한 반항심이 생겼는데, 그 반항심만큼 또 공부가 잘 되었다. 이 기사 시험이 아니면, 민기는 내세울 께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더욱 매달렸다.
9월이 끝나가던 달.
컴활 1급 필기를 가까스로 합격하고, 기사 실기도 기출 1 회독을 끝마쳤다.
나름대로 뿌듯한 한 달이었다.
10월에는 중간고사가 있었지만, 과목 수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하나는 과제로 대체였다. 민기는 중간고사에 별 부담을 느끼지 않고 계속해서 공부를 이어나갔다.
컴활 1급 실기를 해볼까 하다가도, 기사 실기부터 제대로 하고 방학 때 하자고 마음먹었다. 기출 2 회독을 끝마친 뒤, 절반 정도를 더 회독했을 때 10월이 끝났다.
그리고, 11월. 대망의 시험이 있는 달이었다.
시험까지 약 2주 남은 시점에서, 민기는 2 회독을 끝마쳤다. 시간은 충분했다. 문제는 집중력이다.
다시, 하루에 1년치씩 10년 치를 보고, 남은 4일 동안 1 회독을 더 끝마친 후 복습을 하면 완벽하다.
지난여름의 쓴 맛 덕분에, 민기는 시험 전날까지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고 계획한 공부량을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이미 한 번 시험을 치러 본 민기는 주관식 시험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있었다.
객관식 필기시험보다 부담감과 난이도가 더 어렵지만, 생각보다 시간은 넉넉하게 줘서 긴장만 안 하면 된다는 것.
이미 알고 있는 문제이지만, 너무 긴장해서 처음에 안 풀리기도 한다는 것 등을 숙지한 민기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시험 시작하세요.”
감독관의 말에, 수험자들은 일제히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민기는 우선, 문제들 하나하나를 전부 유심히 살펴보았다. 기출에 나오지 않았던 문제가 4개로, 이건 아예 풀 수조차 없었다. 배점을 합쳐보니 17점.
그리고 기출에 나왔지만 어려워서 긴가민가 한 문제가 4개. 맞힐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는 문제로 배점 20점이다.
나머지는 기출문제에서 약간 변형되긴 했지만, 문제 푸는 데에 크게 지장이 없고 암기도 확실히 해뒀던 문제들이었다.
즉, 이번 시험은 합격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기출의 70% 이상이 시험에 나왔다는 건, 난이도도 쉬운 편에 속한다는 것이다.
민기의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가 지어졌다. 문제를 대략적으로 파악한 민기는 그렇게 하나하나 소중하게 풀어나갔다.
1시간이 지나자, 민기는 모르는 문제를 제외하고 아는 문제들 답안을 다 작성할 수 있었다.
기출에 나왔던 거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못 푼 문제들은 다시 한번 유심히 봐야만 했다.
이미 풀었던 문제들을 검산하고 난 뒤, 기억이 안 나는 문제를 풀기 위해 다시 집중했다.
30분이 더 지났을 무렵, 퇴실 가능 시간이 되자 교실에 있는 수험생 절반이 시험장을 나갔다.
민기도 풀 수 있는 문제는 전부 다 풀었다.
확실히 맞춘 문제들의 배점을 계산해 봐도 60점이 이미 넘었다.
다만, 분명히 기출에서 봤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 문제 하나가 계속 발목을 잡았다.
이걸 못 푼다고 해서 시험에 불합격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안전하게 합격하기 위해 어떻게든 풀어내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렇게, 민기는 나머지 문제들을 다시 한번 점검한 후, 기억이 안 나는 문제 하나를 집중적으로 풀기 시작했다.
계산문제는 아니었다. 계산문제였으면 이것저것 식을 전개하거나 공식이라도 끄적이다 보면 기억이 났기 때문에.
단순히 어떤 이론을 설명하라는 내용이었는데, 이게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30분이 더 지나자, 시험 종료까지 30분이 남았다.
그때까지 남아있던 수험생은 민기 혼자였다. 어차피 주관식 시험에서는 기억이 안 나거나 못 푸는 문제는 아예 못 풀기에 가볍게 자리를 일어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민기도 그러고 싶었지만, 이번 시험 합격이 간절했기에 쉽게 일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이 나지 않았기에 민기는 결국 자리에서 찜찜하게 일어났다.
‘아, 이 문제만 풀었으면 진짜 무조건 합격이었을 텐데.. 진짜 아쉽네.’
시험이 끝나 기분이 좋으면서도, 이 찜찜함 때문에 민기는 뭇내 아쉬웠다.
돌아가는 길에 문제집을 펼친 민기는, 자신이 못 푼 문제의 해설지를 보고 나서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하.. 이거 진짜 쉬운 거였네.”
다시 돌아가서 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민기는 그래도 합격할 거라 믿으며 교문 밖으로 나섰다.
합격 발표까지 남은 40일 동안, 민기는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다.
컴활 1급 실기를 취득하려 했지만, 이상하게 집중이 되지 않았다.
다른 스펙인 토익도 다시 해보려 했으나,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아서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기사 시험을 치르고 나니, 시간이 많이 남아돌았다.
이 시간에 민기는 그저 취업 관련 정보를 조금 살펴보거나 그냥 집에 와서 게임을 하며 울적한 시간을 보냈다.
목표가 사라지고 나니, 약간 허탈했다.
다른 자격증들을 바로 시작하면 되지만, 알게 모르게 기사 공부를 하며 좀 지쳤는지 몸이 거부했다.
누군가는 게으름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나름 두 달 동안 열심히 공부한 민기는 휴식이 필요했다.
2주가량 휴식을 하고 나니, 마지막 기말고사가 찾아왔다.
이 대학에서의 마지막 시험이라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가도,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이 귀찮았다. 실기 시험을 준비하면서 어느 정도 암기하는 요령이 생겼는지, 생각보다 더 수월하게 시험을 준비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나니, 합격발표가 일주일 정도 남았다.
그동안 계속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발표까지 많은 시간이 남아서 신경이 쓰이기도, 안 쓰이기도 했었다.
실질적인 대학생활이 전부 마무리되고 나니, 이제 신경 쓸 건 취업과 자격증이었다.
합격발표까지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채용사이트에 작성하려고 했는데, 민기의 자격증란은 초라했다.
운전면허도 사회에 나가면 따려고 했던 민기는 취업에 등록할만한 자격증이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수질환경기사가 아니면, 어디 가서 지원하기도 부끄러운 초라한 이력서.
딱히 공모전을 한 것도 아니고, 동아리를 한 것도 아니라 자기소개서에 쓸 항목도 없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는 해왔는데, 공부의 방향이 잘못되었다.
공모전이나 동아리를 하지 않은 민기는 자기소개서와 이력서에 쓸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맥이 풀렸다. 간단한 계약직이나 인턴을 하면서 경험을 쌓을 수밖에 없었다.
우선은 다른 자격증이나 어학을 공부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자신은 정규직 자리에 지원할 자격 자체가 없다.
생각을 마친 민기는 비참했지만, 딱히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지금 당장은 기사 시험 합격을 기다릴 수밖에. 일단 합격이라도 해야,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쓸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불안한 휴식을 취하던 민기는 드디어 합격 발표날 아침에 눈을 떴다.
보통 오전 9시에 연락이 온다는 후기를 들었는데, 민기가 눈을 뜬 건 오전 7시였다.
하필이면, 이 시간에 눈을 뜨다니.
9시 이후에 눈뜨길 바라고 전날 술까지 마셨건만, 오히려 갈증 때문에 더 빨리 눈을 떴다.
민기는 물을 벌컥벌컥 마신 뒤, 핸드폰을 챙기고 산책을 하러 바로 나섰다.
어차피 합격 발표가 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근처 산책로 벤치에 앉아, 게임을 하거나 숏츠를 보는 게 훨씬 낫다.
날씨가 좀 춥긴 했지만, 집 안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던 민기는 산책로로 향했다.
아직도 시간은 7시 30분이었다.
차라리, 잠이라도 더 잘 걸 그랬나? 산책을 하면서 점점 정신이 깨어난 민기는 합격 발표까지 대체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궁금했다. 산책로는 4시간 이상 산책할 수 있을 정도로 길었지만, 민기는 지금 온 신경이 날 서 있어서 산책을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왜 발표 시간은 9시 인 걸까.
저녁 5시, 6시 인 것보다는 낫지만, 아침 9시 인 것도 고역이었다.
만약 불합격한다면, 하루의 시작을 잡친 기분으로 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
사실, 어느 시간대에 합격이 발표돼도 불만은 없을 수가 없었다. 발표를 기다리는 순간은 매 초마다 심장이 떨리기 마련이니까. 아직 5000초도 좀 더 넘게 남은 발표시간까지 민기는 대체 뭘 해야 할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기도 하고, 하염없이 걸으며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그냥 건물을 바라보며 걸었지만 마음은 가라앉지가 않았다. 차라리 조조영화라도 볼 걸 그랬나?
하지만, 영화를 보더라도 핸드폰을 중간중간 확인하고 중간에 뛰쳐나왔을게 뻔했다. 그러면 다시 술을 마셔야 하나?
민기는 낮술은 몇 번 해본 적 있지만, 아침부터 술을 마시는 건 정말 도저히 아닌 것 같았다.
겨우 이 기다림 하나를 못 해서 술로 도피하는 건 말도 안 되었다.
결국, 가장 차선책은 게임을 하는 것이었다. 현실로부터 도피하는데 가장 좋은 수단이었던 '게임'.
민기에게 불합격을 안겨줬던 원인이기도 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게임을 하는 게 맞았다.
게임 한 판 하고 오면 보통 30분이 흘러가 있으니, 피시방에 가서 두 판을 즐기고 나면 얼추 맞을 것이다.
오랜만에 피시방에 와서 게임을 켠 민기는, 본인의 선택이 맞았음을 직감했다.
키자마자 정신없이 게임을 즐겼기 때문이다. 핸드폰을 마우스 앞 쪽에 세워두고 진동을 크게 맞춰둔 민기는 게임을 하면서도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시간을 잘 보내게 되었다.
두 번째 판의 게임이 끝나갈 쯔음, 핸드폰 화면이 켜지며 결과 메시지가 떴다.
민기는 팀원들에게 미안했지만, 바로 게임을 나가고 핸드폰을 켰다.
결과는 바로 확인할 수가 없어서, 원서 접수한 홈페이지에 다시 접속하여 아이디 비번을 입력해야 했다.
떨리는 마음과 손가락을 애써 진정시키며, 비밀번호를 입력한 뒤 화면이 켜졌다.
"합격"이라는 선명한 글자가 눈에 보였다.
"끄아아아악! 우와아아악!"
민기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 일어났다.
다행히, 이른 아침이라 손님들이 거의 없었서 아르바이트생만이 미친놈 보듯이 민기를 쳐다보았다.
"으하하하하하!"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 민기는, 부랴부랴 피시방 컴퓨터를 끈 뒤 계산을 하고 나왔다.
발걸음이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드디어, 이력서에 한 줄을 쓸 수 있는 자격증이 생겼다.
그 한 줄 만큼이나, 민기의 마음엔 선명한 자신감이 피어났다.
"나, 그래도 하면 하는 놈이구나?"
갑자기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민기.
앞으로 험난한 가시밭길을 밟을 예정이었지만, 지금 민기의 눈에는 장미꽃만이 눈에 아른 거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