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자격증 공부 3편

이게 뭐라고 이렇게 힘든지.

by Nos

필기시험 합격의 기쁨을 잠시 누렸던 민기는, 이후 쏟아지는 과제와 퀴즈를 견뎌내야만 했다.

일주일 정도 맘 놓고 푹 쉬고 싶었어도 쉴 틈이 없었던 민기는 중간중간 짧게 휴식을 취했다.

여전히 친구가 없었던 민기는 또래들과 어울리고 싶어도 어울릴 수가 없었다.


기사 필기시험이 끝난 그다음 주, 강의실에서 한창 기사시험으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민기는 잠자코 있어야만 했다.

“아, 나 55점으로 탈락했어. 좀 만 더 열심히 공부할걸.”

“야, 난 일주일 공부했는데 60점으로 합격했어. 공부 좀 하지 그랬냐.”

일주일 만에 합격한 친구는 위장일 확률이 높았다. 2주면 그럴듯한데, 일주일 만에 합격하려면 머리가 정말 좋아야 하거나, 기존에 이미 공부한 내용이 있어야 했다.

머리가 그 정도로 좋다면, 민기가 다니고 있는 대학에 오진 않았을 것이다.

아마, 1회 차 때 불합격하고 2회 차인 지금 합격하고 나서 너스레를 떠는 것일 테다.


4학년 전공수업은 확실히, 취업 관련하여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갔다.

민기도 그 대화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자신은 아웃사이더이기에 그저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다.

기사 시험뿐만 아니라, 공모전, 어학, 회사 등등 많은 이야기가 끊임없이 오가는 네트워크가 부러웠다.

민기가 이야기를 꺼낼 때는 그저 조별과제가 있는 수업에서 간간이 의사를 내비칠 때였다.

기말고사는 정말 빠르게 다가왔고, 민기는 폭풍처럼 과제와 시험을 치렀다. 남들은 기사시험보다 더 압박감을 느끼는 것 같았는데, 민기는 오히려 기사시험보다는 한 결 마음이 편했다.

학점은 일단 잘 받기를 포기한 상태이다 보니, 너무 자괴감이 들지 않을 정도로만 성적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3주 동안 다시 기말고사를 미리 준비하고 치르고 나니 여름방학이 다가왔다.

성적은 그래도 요령이 조금 붙었던 걸까. 8과목을 수강했음에도 3.5점대를 돌파하여 민기는 기분이 좋았다.

교양 덕분에 점수가 확 오른 거긴 하지만, 그래도 3.5점을 넘은 것이 어딘가.

이번 여름은 현장실습도, 계절학기도 없었기에 맘 놓고 놀 수도 있었지만 민기에겐 더 이상 그런 청춘의 여유는 없었다. 기사 시험 실기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나니,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었다.

저마다 여름의 더위를 보내는 방법은 다르겠으나, 민기에게는 수험생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있었다.

에어컨을 튼 채,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시면서 공부를 하는 것이다.

외로움이라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어찌 보면 가장 알차고 시원하게 여름을 보내는 방법이긴 했다.

아니, 사실은 이것 말고 다른 방법의 여름나기는 허락되지 않았다.


민기는 거의 반 강제로 책상에 앉아 기사 실기책을 펼쳤다.

지난 겨울방학이었으면, 반사적으로 하는 행동은 컴퓨터를 키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남들은 이제 여름방학을 맞아 여행을 가거나 휴가를 보내며 재밌게 놀고 있을 때, 민기는 케케묵은 자취방에 앉아 공부를 해야 했다. 어차피 놀 돈도 없고 놀아봤자 후회하겠지만 괜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기사 실기 시험까지 당장 3주가 남았기에,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 했다.

순공으로 따지면, 하루 6시간은 무조건 찍어야 했다.

민기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벌써 두 달째 휴식다운 휴식 없이 계속해서 공부를 하다 보니 쉬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컸다. 두 달 동안 시험기간모드로 내내 살아왔으니 긴장을 풀고 쉬는 게 맞았지만, 그러면 기사 시험은 물 건너가는 판국이었다.


이런 생활을 수험생들은 몇 년 동안 계속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겨우 두 달 동안 비슷하게 흉내 내며 공부한 것도 이렇게 힘든데, 이걸 1년도 아니라 더 넘게 공부한다고?

민기는 열심히 공부를 하는 수험생들에게 혀를 내둘렀다.

다른 수험생들을 생각하니, 본인이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어쨌거나, 시험을 치르고 나면 이제 적어도 2주는 정말 풀로 쉴 수 있으니까.

다시 또 다른 기사 시험 필기를 준비해야겠지만,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쉴 수 있는 게 어딘가.

'그래, 정신 차리고 3주만 더 힘내보자.'


다시 마음을 다잡고, 책상에 앉아 실기시험책을 펼쳤다.

1000page가 넘는 필기시험책보다는 두께가 얇긴 했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소설책의 3권 가까이 되는 분량이었다. 필기시험 때 공부했던 내용이 거의 그대로 나오긴 했지만, 문제는 서술형이라는 점이었다.

계산 문제는 풀이과정도 명확히 써서 유효숫자도 맞춰 적어야 점수를 다 맞을 수 있는 시험.


책의 이론 설명 부분은 대충 훑어보니 볼 필요가 없었다.

필기시험 때 이미 본 내용들이기도 하고, 어차피 기출만 열심히 공부하면 합격하는 시험인 걸 필기시험 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민기는 바로 기출문제를 펼치고, 연습장을 옆에 펼친 후 해설지를 보며 따라 적기 시작했다.


필기시험을 공부하면서 이미 공부했던 내용들이었지만, 계산문제는 조금 더 복잡했다.

그래도,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문제는, 이걸 다 암기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가뜩이나 암기를 잘 못하던 민기는, 문제집을 펼쳐보며 암기해야 할 양을 가늠했다.

실기시험은 보통, 10년 치 3 회독을 해야 안정권이라고 했다. 1년엔 총 3회의 시험이 있었고, 각 회마다 문제는 20개 내외였다. 그렇다는 말은, 대충 계산하면 600개의 문제를 암기해야 했다.

이 중에 반복해서 나오는 문제들을 넉넉하게 1/3이라고 하더라도, 400개를 암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잠깐만.. 이거 가능한가?'

암기해야 되는 양이 생각보다 방대했던 민기는, 이게 지금 가능한지 의문이 들었다.

인터넷에서는 3주 동안 내내 벼락치기를 하면 얼추 된다고 했는데, 본인처럼 암기를 잘 못하는 사람이라면?

해설을 보면서 2시간 동안 1회 치를 방금 풀었으니, 하루에 나갈 수 있는 진도가 1년 치였다.

10년 치 3회독이면, 대충 한 달 정도는 시간을 잡았어야 조금 여유 있게 진행할 수 있었다.

이론상으로는 합격할 만큼의 공부량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7년 치를 3회독하는 게 딱 3주 동안 하루에 1년치씩 하기 좋았다.

하지만, 기출문제는 최대한 많이 보고 외워가는 게 합격의 지름길이다. 기출에서 봤던 문제를 하나라도 더 아느냐 마느냐가 시험에서는 합격을 가르는 포인트가 된다.

책에 나와 있는 10년 치 중에 단 하나도 포기해서는 안 됐다.


'에이, 처음에는 원래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 법이지. 2회독 째부터는 시간이 더 붙을 테니 조급해하지 말자.'

필기를 공부할 때에도, 공부할 때마다 점점 암기가 되고 가속도가 붙지 않았던가.

모르는 내용보다 아는 내용이 많아질 때마다, 회독 속도와 자신감은 비례해서 늘어났다.

실기도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필기 공부했던 지식이 있으니 암기만 잘하면 되는 것이다.

생각보다 할 만할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였다.

조금 쉬다가, 다시 1회 치를 풀고 저녁을 먹으면 딱일 것 같았다.

정말 하기 싫었지만, 남들 다 따는 기사자격증 하나 못 따는 건 자존심이 크게 상하기에 열심히 공부했다.

오후 5시 30분.

2회 치를 푼 민기는 조금 자신감이 붙었다.

'뭐야? 이거 그냥 암기잖아? 생각보다 되게 할 만한데.'


너무 지레 겁을 먹었나. 생각보다 별 거 없는 실기 시험에 민기는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저녁에 소주로 혼술을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책상 위의 거울 속의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눈동자를 보니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또, 조금 해보고 허세에 가득 차서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지? 그러다가, 시험 가까이 다가왔을 때 맨날 식은땀 흘리며 벼락치기하던 거 기억 안 나? 너는 어떻게 사람이 변하지가 않냐.'

민기가 오후에 했던 공부는, 아직 제대로 한 공부도 아니었다. 그냥 해설지를 보면서 한 번 따라 쓰고 문제에 대한 감을 익혔을 뿐. 다시 풀라고 하면 못 풀 문제들이 태반이었다.

거울 속의 민기가 한 말이 맞았다. 그냥 해설을 보면서 풀었으니 쉬워 보이는 것이지, 막상 시험장에서 풀었을 때는 똑같이 풀 수 있을까?

'너, 지금 이렇게 놀다가 또 다음 주에 후회할래? 맨날 일주일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하면서 후회하지 말고, 지금 당장 더 공부해. 충분하게 공부하고 가야 후회라도 안 하지.'

민기는 너무 자신을 정곡으로 찌르는 말에, 거울을 향해 외쳤다.

"야, 너 혹시 미래에서 온 거냐? 거울 속에 갇힌 거야?"


누가 보면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행동이지만, 자취방 속 민기는 어떠한 부끄러움도 없었다. 1년 넘게 혼자 다니다 보니 혼잣말이 조금 익숙해지기도 했기에, 민기는 조금 더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알겠다 알겠어. 조금 더 공부하고 밤에 야식으로 맥주 한 잔 할게. 그러면 돼?"

거울 속 민기는 그저 하염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이 다시 돌아온 민기는 저녁을 해결하러 밖으로 향했다.


그날, 민기는 가까스로 목표했던 공부량을 마치고 맥주를 마셨다. 해야 할 공부를 다 하고 마시는 맥주는 죄책감도 없었고 꿀맛 그 자체였다. 무더운 여름, 밤에 마시는 맥주가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던 민기는 나름대로 알찬 공부 계획과 보상체계를 만들었다.

'오전에 1회 치, 오후에 2회 치, 저녁에는 쉬면서 맥주.'

열심히 공부하고, 스스로 보상까지 주는 이 공부법을 맥주공부법이라고 명명했다.

그렇게, 민기는 일주일 내내 맥주를 마시며 공부했다. 과연, 효과가 탁월하긴 했지만 맥주도 질리고 몸에도 그렇게 좋은 것 같지가 않았다.

그 다음 주에는 보상을 맥주가 아니라, 다른 배달음식들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음식인 마라탕, 족발, 김치찜, 삼겹살 등등으로 말이다.


이렇게 2주 동안 공부를 하던 민기는, 뭔가 잘못된 것을 느꼈다.

공부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몸무게가 좀 늘었다. 3kg 정도로 말이다.

사실, 이 정도는 시험기간에도 찌는 수치였기에 별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일주일 남은 시점에서 더 이상 보상 체계를 뭘 줘야 할지 애매했다.

저녁에도 공부를 더 해야 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실기 시험공부는 생각보다 진도가 크게 나가지 않았다.

10년 치의 양은 생각보다 방대했고, 어려운 문제도 간혹 나와서 골치 아팠다.

반복되는 문제는 예상한 만큼 꽤 있었지만, 모르거나 어려운 문제도 많았다.

시험까지 일주일이 남았는데, 계획했던 공부 스케줄보다 뒤처지고 있었기에 저녁에도 공부를 해야 했다.


이때부터, 민기는 이상하게 집중력이 살짝 흐트러졌다.

밤에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밤에 어차피 공부를 할 것이니 지금은 잠깐 쉬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변질되었다. 하루 종일 공부만 할 수 있는 절제력을 갖추지 못한 민기는 밤에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가뜩이나, 남들보다 외롭고 힘든 청춘생활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알게 모르게 피해의식도 있었던 민기.


아침에 원래 집중해서 공부를 하던 민기는 어차피 밤에 공부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조금만 힘들거나 피곤해도 바로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시험이 일주일 밖에 안 남은 시점임에도.

이러는 행동 자체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잘 알았음에도 이런 행동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한 공부가 아까워서라도, 하루 종일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게 논리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옳은 행동이다. 하지만, 그 이성적인 행위는 무너진 마음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민기는 아침에 1시간 정도 공부를 한 후,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잠을 자거나 게임을 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점심시간에는 원래 쉬는 것이니 쉬고, 그 이후에는 낮잠을 잤다.

낮잠의 이로움에 대한 온갖 과학적인 사실들을 핑계로 대면서.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3시였는데, 약간의 죄책감 때문에 공부를 하다가 30분도 안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 나서, 안 하던 헬스, 집안일 등등을 핑계로 자리를 비웠다.


갔다 오고 나서 다시 어영부영 공부를 하고 나면 금세 저녁시간이었다.

원래는 하루 종일 공부하느라 고생한 자신을 위해 비싼 배달음식을 먹으며 보상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애매하게 놀아버린 민기는 스스로 그런 보상을 주는 게 맞는지 의문이었다.

오히려 공부 안 한 자신을 벌줘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에 미친 민기는 일부러 저녁을 단출하게 먹었다.


이런 식으로 3일을 보내고 난 민기는, 시험까지 4일 남은 시점에서 다시 정신을 차렸다.

대학생활 때 익힌 벼락치기 본능이 가까스로 민기를 정신 차리게 한 것이다. 이번 시험에 떨어지면, 2학기에는 아무런 기사자격증 없이 취업준비를 해야 함을 느낀 민기.

그제야, 자신의 한심한 3일이 떠올랐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왜 또 한심한 짓을 반복한 걸까. 이 한심한 3일만 제대로 보냈어도, 민기는 계획대로 공부량을 채울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확실히 늦었다. 남은 3일 동안 최대한 많이 공부하고 시험이 쉽게 나오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시험이 3일 남은 시점부터, 민기는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여 공부하기 시작했다.

모든 대학생들이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발등에 불 떨어졌을 때야 발생하는 집중력으로 공부했다.

정신을 차릴 때마다, 시간이 훅훅 지나가 있을 정도로 집중한 민기는 목표했던 양만큼은 아니지만 합격을 기대해도 좋을 정도의 공부는 하고 시험장에 나섰다.


하지만,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민기가 치른 시험은 유독 난이도가 어려운 시험이었다. 민기보다 2배는 더 공부했던 수험생들도 떨어지게 된 시험에서, 민기 또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민기는 다시 자괴감에 휩싸이며 다음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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