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을 위한 과정은 생각보다 험난하다.
겨울방학 때 야심 차게 기사자격증을 공부하려던 민기는, 결국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
한 번 망가져버린 생활패턴과 습관은 진득하게 공부하기를 거부했기 때문.
3월에 있던 1회 차 시험을 포기했던 민기는 그대로 4학년 1학기를 맞아 정신없이 대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졸업을 위해서 20학점을 수강했더니, 쏟아지는 과제와 시험을 치르느라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4월 말까지 8개의 과목 중간고사를 무사히 마친 민기는 쉬고 싶었다.
하지만, 민기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공부인 기사시험 필기가 다가오는 중이다.
게임으로 1회 차 시험을 아예 날려버린 민기는 개강하자마자 모든 게임을 다 삭제했다.
취업에 가장 소중한 자격증 공부를 고작 게임한다고 날려버린 자신이 너무나 한심했기 때문.
한심함, 죄책감, 괴로움에 시달리던 민기는 컴퓨터도 중고로 다 팔아버린 뒤 예전에 쓰던 낡은 노트북으로 다시 복귀했다.
크게 반성을 한 민기는, 시험이 끝나자마자 이 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하여 기사시험까지 무사히 합격할 계획을 세웠다. 3주 동안 매일매일 열심히 공부하고 중간고사를 치른 민기는 주말만 딱 쉬고, 다시 공부하러 도서관으로 향했다. 기사책을 들고, 다시 도서관으로 가는 민기의 마음은 뿌듯했다.
시험이 끝난 도서관은 방학 때보다 더 한산했다. 방학이 따로 없는 대학생들은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뿐이었다.
다시 필기시험까지 3주 정도 남아있었지만, 방학 때보다는 훨씬 여유가 없었다.
8개 과목을 듣는 민기는 월 ~ 목의 시간 동안 하루에 적어도 3번의 강의는 있었고 금요일에도 공강은 아니었기 때문. 9 to 6의 시간 동안 남는 공강시간은 2 ~ 3시간 밖에 없었다.
저녁 이후로는 과제나 퀴즈 공부도 해야 했던 민기는 꽤나 부담스러울 정도로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다.
하지만, 이런 환경 속에서야 더 열심히 공부한다는 걸 깨달았기에 민기는 커피를 마시며 잠자코 공부에 집중했다.
하루에 두세 시간씩 공부를 하고, 과제나 퀴즈가 없는 날은 4시간 이상씩 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6시간 이상을 쏟아붓는다. 집에서는 침대에 눕는 순간 잠에 빠지거나 유튜브를 보면서 시간을 허비하기에 도서관에서 철저하게 하루 분량을 다 끝낼 때까지 집에 가지 않는다.
1주일 이렇게 생활을 하자, 민기는 꽤 야무지게 진도를 나갈 수 있었다.
문제는 피로도였다.
일주일의 스케줄을 마친 뒤, 일요일 밤이 된 민기는 다음 주 일정을 점검하며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조별과제 회의 한 번, 퀴즈 하나, 과제 두 개 제출 정도면 아주 양호한 편이었다. 하지만, 자격증 공부와 병행하려니 스케줄이 살인적이었다. 조별과제 단톡방도 스트레스였고, 과제도 난이도에 따라 시간이 훨씬 더 걸릴 수도 있다.
생각할수록, 겨울방학 때 한심하게 놀아버린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이미 수십 번은 자책했지만, 아직도 민기는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또 뒤척이다가, 민기는 한숨을 한 번 크게 쉬고 다시 잠들었다.
일주일은 눈 깜빡할 사이에 흘러갔다.
조별과제 때 약간의 트러블은 있었지만, 큰 차질은 없었다. 퀴즈는 망쳤고, 다른 과제들은 잘한 것도 아니고 못한 것도 아닌 상태로 제출했다. 수업은 들어도 뭔 소린지 잘 모르겠어서 그냥 녹음기를 틀어놓고 기사 공부를 했다.
수업 시간에 기사 공부를 하는 것은 양심에 찔리긴 했지만, 효과는 나름 확실했다.
계획한 진도를 확실히 뺄 수 있었기 때문. 시험까지는 이제 열흘이 채 남지 않았는데, 기출 2회독을 간신히 끝낸 민기는 자신감이 없었다.
합격 커트라인인 60점은 당연히 넘볼 수가 없었는데, 이렇게 공부해서 합격할 수 있을까?
중간고사 시험기간을 합하면, 벌써 5주째 휴식다운 휴식 없이 매일매일 공부와 과제 중이었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했는데 합격을 하지 못하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자신의 이런 고생은 합격을 해야만 의미가 있었다.
아무리 결과가 아니라 과정도 중요하다고 하지만, 자격증 시험이란 건 냉정하게 결과만 남는 법이다.
59점 불합격은 아무도 그 과정을 봐주지 않고 60점 합격만이 의미 있는 법.
과정도 아름답다는 말은 적어도 시험을 준비 중인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시험에 떨어진 사람에게는 그 무수한 과정이 하나도 안 남는 법이니까.
그렇기에, 시험이 가까워질 때마다 민기는 조금 더 조바심이 났다.
남들 다 노는 기간에 도서관에 틀어박혀 공부만 한 것에 보상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민기는 오늘도 도서관에 틀어박혀 공부만 했다. 공부를 하는 동안, 계속해서 자신에게 이런 의문이 들었다.
'청춘 시절에, 이렇게 공부만 하는 게 맞는 걸까?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공부할 땐 공부하고 놀 때는 또 확 놀지 못한 민기는, 분명 미래에 이 시간을 후회할 것 같았다.
오늘 해야 할 공부를 잘 끝내긴 했지만, 민기의 마음은 착잡해졌다.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민기의 눈에는 청춘을 즐기는 대학생들이 보였다.
손 잡고 걸어가는 커플, 술을 먹은 무리들, 운동이나 춤을 추러 가는 듯한 동아리 사람들 등등
자신은 전문직 시험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기사 시험을 준비하는 흔한 공대생 중 하나일 뿐이다. 근데도 이렇게 고독하게 청춘생활을 해야 하는 걸까.
사실, 민기가 이렇게 생활하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 잘못이었다.
편입생 신분으로 기존의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으면 본인이 노력해야 했다. 기사 시험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선택한 것이었으니 열심히 공부를 해야 했고, 20학점이나 듣는 건 제 때 졸업하기 위한 것이다. 민기는 본인의 미래를 위해 그럭저럭 잘 생활하고 있는 편이다.
그리고, 청춘이라고 맨날 놀고 술 먹는 모습도 잘못된 이미지다. 본인의 꿈이나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혼자 고독하게 지내는 것도 청춘이다.
하지만, 민기는 그런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도 마음은 울적했다.
1년 동안 친구다운 친구도 만들지 못하고, 혼자 게임이나 공부만 하면서 살았기에 외로움은 점점 짙어져 갔다. 오늘은 유독 그 외로움이 짙었던 민기는 늘 가던 편의점에 소주 1병과 컵라면, 과자를 주섬주섬 담았다.
자취방에 돌아온 민기는 소주 컵이 따로 집에 없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다시 편의점으로 가기 귀찮았기에, 그냥 병나발을 불기로 했다.
입으로 조금씩 한 입 양을 조절하면 되지 않겠는가.
우선 소주 한 잔을 대충 입으로 마신 다음, 과자를 집어 들었다. 컵라면도 보글보글 끓으며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처음엔 조촐했지만, 먹다 보니 꽤나 만족스러운 안주였다. 문제는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었다.
민기의 나이보다 오래된 원룸,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는 생활 습관은 케케묵은 풍경을 연출했다. 창문 밖은 그저 다른 집의 벽돌만 보일 뿐이었기에 민기는 그저 집안을 바라보며 마셔야 했는데 괜히 더 울적해졌다. 빨래, 공부할 책, 프린트물 등으로 어질러진 방안을 계속 보니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혼자 더 빨리 소주를 들이켰다. 30분 만에 금세 1병을 다 비운 민기는 스트레스가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3분 컵라면처럼, 자신의 스트레스는 30분이면 풀린 느낌이었다.
물론, 인스턴트가 완벽한 영양을 갖춘 식품이 아닌 것처럼, 지금의 스트레스도 완벽히 풀린 건 아니었지만.
취기가 확 돌게 된 민기는 문단속을 한 번 더 확인한 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시험은 이제 일주일이 남았다. 민기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이미 봤던 문제를 세 번째 보는 시점이 되었다. 머리 좋은 애들은 이렇게 3회독만 해도 합격을 하는 시험이었다. 하지만, 민기는 분명 봤던 문제임에도 처음 보는 것처럼 생소하거나 또 틀리고 있었다.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자신이 이렇게 멍청했던가? 이미 맞춘 문제를 다시 푸니까 틀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는 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점점 과제와 퀴즈가 많아지고 있었기에, 시험이 끝나고 나면 다시 과제지옥에 빠질 생각을 하니 심란하기도 했다. 과제 지옥을 파헤치고 나오면 다시 기말고사 기간이고, 기말고사 기간이 끝나면 기사시험 실기를 또 준비해야 한다.
4월 중순부터 7월 말까지 약 100일 동안 아무런 휴식도 없이 공부를 해야 한다.
아직, 기사시험 필기도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았는데 앞날의 미래를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다른 공대생들도 전부 이렇게 살고 있는 건가? 민기는 이게 정말 맞는 건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진짜로, 이렇게 다들 살고 있다고?
계속해서 틀리는 문제와, 이런저런 생각으로 골치 아파진 민기는 커피를 사러 밖으로 나왔다.
어스푸름한 저녁노을과, 그 노을 사이를 암막하게 걸어가는 대학생들. 시험도 끝난 이 시간에 책가방을 든 대학생들은 분명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수험생이렸다.
민기가 편입을 할 때 원했던 모습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지만, 어느새 자신도 무거운 발걸음에 동참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자신은 어딜 가나 공부만 하면서 무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방인이었다.
민기는 자조하며 웃었다. 자신의 인생은 커피의 쓴맛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쓴 것 같았다.
'그래, 내 팔자가 이런 팔자면 받아들여야지. 남들보다 달콤한 맛을 보지 못한다면, 이런 자격증 하나라도 더 따둬야지'
씁쓸한 커피를 들이마시며, 민기는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시험일자가 다가올수록, 민기의 스트레스는 더더욱 심해졌다.
마시는 커피도 늘었고, 억지로 잠을 청하기 위해 술을 마시기도 했으며 담배도 손에 댈 뻔했다.
시험 3일 전, 모의고사를 한 번 쳤는데 합격점수 미달이 나왔을 때는 책상을 주먹으로 한 번 내리쳤다가 손을 부여잡고 뒹굴거렸다.
고작, 기사시험 하나 때문에 이런 감정을 느끼고 책상까지 내려 칠 정도라니.
민기는 본인이 너무 한심했다. 남들은 척척 붙는 자격증을 이렇게까지 고생해야 하나? 아니면, 남들도 다 이런 과정을 겪었는데 숨기는 걸까.
아픈 손을 부여잡고, 멘털도 붙잡은 뒤 민기는 다시 공부에 임했다.
시험 전날.
민기는 가까스로 누구나 합격할만한 공부량인 기출 5회 치 4회독을 끝마쳤다.
이 정도 했는데 떨어지면, 정말 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말도 못 할 수준이다.
남들은 4년 치 3회독을 해도 붙었다느니, 일주일 벼락치기 해서 합격했다는 말도 있었지만 민기는 이제 믿지 않았다.
스스로 공부해 본 결과, 그 정도 공부량으로 합격할 수 있는 시험은 절대 아니었기 때문.
그저 합격한 사람의 가벼운 허세일뿐이다.
어느 정도 공부를 끝마친 민기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드디어 시험을 치르게 된 민기는 공학용 계산기 하나를 챙긴 뒤 시험장으로 향했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수험생들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어서 빨리 시험을 치른 뒤, 집에 가서 푹 자고 싶었다. 시험장에 입성하여 간단한 안내를 받은 뒤, 정신없이 시험을 치렀다.
시험은 생각보다 칠만 했다. 확실히, 문제은행식이라 그런지 공부했던 내용들이 많이 나왔다.
어떤 문제는 보자마자 답이 기억날 정도였다.
민기는 시험을 치면서 문제를 풀 때마다, 미소가 조금씩 지어졌다. 100문제 중에 70문제 이상을 풀었을 즈음, 무조건 합격일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100문제를 다 풀고 나서도 시험 시간이 넉넉하게 남았기에, 한 번 더 점검을 한 뒤 제출을 했다.
클릭을 하자마자 바로 시험결과가 나오기에 떨릴 법도 했지만, 내심 합격을 확신했기에 주저 없이 클릭했다.
점수는 70점. 과락 없이 무난하게 합격했다.
자칫하면 소리를 지를 뻔한 민기는, 흥분한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시험장을 나왔다.
칠칠치 못하게 눈물이 왈칵 나왔다. 화장실에 들어가 휴지로 살짝 눈매를 훔친 민기는 다시 한번 속으로 환호를 지르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험장 밖을 나왔다.
남들이 보기엔 겨우 필기 하나로 유난이다 싶겠지만, 민기에게는 큰 발자국 하나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더 큰 고난이 남아있었다.
객관식이 아닌, 100% 주관식인 기사 실기 시험은 민기에게 뜨거운 여름을 맛보게 해 주려고 준비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