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자격증 공부 1편

암기 지옥

by Nos

3학년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날.

시험을 잘 치른 것도 아니고, 못 치른 것도 아닌 어정쩡하게 치른 찝찝함이 민기의 속을 뒤집는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 했지만, 민기는 이번 학기에도 3.0 ~ 3.5점 사이의 성적을 받을 것 같았다. 1학기 때의 평점은 3.3이었다.

4학년 때 좀 더 열심히 하면 3.5 정도는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공대생의 최소 학점 기준이 3.5라는 얘기를 어디서 들었던 터라, 민기는 살짝 조바심이 났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 했는데도, 이 정도 평점이면 도대체 얼마나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걸까.

편입생이었던 민기는 족보도 구할 수 없었고, 교수님의 출제 성향도 잘 몰랐다.

취업을 위해 3.5를 맞추려 노력하겠지만, 자신이 없었다.


요즘 공공기관은 아예 평점도 기입하지 않는다지만, 공공기관 취업이 만만치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사기업을 가게 된다면 3.5는 돼야 소위 말하는 '사람'대접을 해준다고 들었다. 지금 평점으로는 사람대접을 받기는 글렀다.


그렇다고, 사람대접을 받을 만큼 잘할 자신도 없었다. 3.3 정도만 받고, 소위 말하는 '말빨'로 면접에서 대충 유야무야 넘기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말을 아무리 잘해도 서류상으로 남들보다 부족한 학점을 상쇄할 무언가가 있어야 했다.

요즘처럼 고스펙의 시대에, 남들과 차별화되는 경쟁력을 갖추려면 무얼 해야 할까.

유학, 봉사, 어학 등등은 민기와 거리가 멀었다. 학벌은 더더욱.

이것저것 고민해 본 결과, 민기의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바로, 기사자격증이었다. 특히, 민기가 속한 환경공학과는 기본적으로 2개에서 3개까지도 취득하는 경우가 많았다. 난이도가 높지 않아서 많이들 취득한다고 소문으로는 들었다.

그렇다면, 자격증으로 남들과 차별화를 하려면 최소 4개는 따야 했다.


4학년이 돼야 응시 자격이 주어진다는데, 그러면 1년 안에 4개를 따야 취업시장에서 바로 경쟁력이 있다는 소리였다. 이게 가능할까? 아무것도 몰랐던 민기는 기사 시험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웹서핑을 열심히 하며 알아본 결과, 1년에 4개를 따는 것은 불가능했다.

최대 3개만 딸 수 있었기에, 4개를 따려면 졸업 후에도 하나를 더 취득해야 했다.

일단은 4학년 때 3개를 따고, 이후 취준생 기간에 상황보고 더 따던지 하자.

판단을 끝낸 민기는 이제 자격증의 난이도와 후기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대체로 3 ~ 4주 정도면 무난하게 합격을 했고, 전공자는 인강을 듣지 않아도 괜찮다는 의견이 많았다.

게다가, 올해 시험일정을 봤을 때, 1회 차 시험은 최소 3월부터 시작이었다.

아직 12월 중순이었으니 약 3개월이 남았던 민기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아, 1달 남았을 때부터 해도 충분할 테니 2월부터 그냥 하자.'

아직 기사시험 문제집도 내년 거는 출판되지 않았다.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보니 1~2월에나 출판될 것 같았다.

즉, 지금부터 2달 동안은 자격증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여름방학에도 계절학기 수강과 현장실습을 다니며 쉴 틈 없었던 민기는 2달 동안 진짜 제대로 방학을 즐기기로 했다. 알뜰하게 모아서 사둔 최신식 컴퓨터와 모니터, 그리고 최신 폰.

전기장판과 귤까지 구비한 민기는 침대와 책상 앞에서 정신없이 놀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2월 중순이었다.

웹소설에서나 나올법한, 정신을 차려 보니 갑자기 낯선 천장이 보이는 것과 같은 현상.

민기에게는 그것이 시간이었다.

중간중간, 시간의 흐름을 깨닫기는 했다.

12월 말에 3학년 2학기 성적이 나왔다.

성적은 A+부터 C+까지 다양하게 나왔고, 예상보다 선방하여 약 3.4점을 받았다.


1월 설날에는 집에 가서 친척들을 만나고 왔었다.

아직 학생이었고, 편입해서 지거국에 들어갔던 민기는 별다른 잔소리를 듣지 않았다.

오히려, 공부 열심히 하라며 용돈도 받고 와서 기분도 좋았다.

부모님을 보며 잠깐 죄책감이 들기는 했지만, 한 달 반넘게 달콤함을 맛봤던 민기는 다시 정신을 잃고 게임을 했다.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수강신청과 등록금을 내면서부터였다.

그제야, 개강이 얼마 안 남은 걸 깨달음과 동시에, 3월 초의 기사 필기시험이 생각났다.

민기는 필기시험 문제집을 부랴부랴 꺼내 들었다.

1월에 주문했던 문제집의 두께는 1,000페이지가 넘었다.

이걸, 3주 만에 전부 독파해서 합격할 수 있다고? 민기는 인터넷에 올라온 후기들이 거짓말 같았다.

지금부터라도 미친 듯이 벼락치기를 하면 가능은 할까?


아득한 양에 정신을 차린 민기는 책을 펼쳐 전체적인 양을 보았다.

다섯 챕터로 나뉘어 있었던 기사 시험은 이론 설명, 연습 문제, 기출 7개년 정도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론은 크게 어렵지는 않았지만, 기출문제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3주 만에 다 외우는 건 불가능할게 뻔했다. 1회 차는 포기하고 2회 차부터 볼까? 어차피, 내년에도 취업준비를 할 테니 2개 취득하자 그냥.

아니지, 이번 4학년 때 학점이랑 어학을 정말 잘 따서 경쟁력을 다르게 갖추면 되지 않나?

갖가지 합리화를 하던 민기는 다시 퍼뜩 정신을 차렸다.

‘해보지도 않고 지레짐작해서 포기하던 버릇을 아직도 못 고쳤냐? 완벽한 계획, 상황, 조건이란 건 없어. 다들 부족한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거야.‘

절실하게 편입 공부를 하던 시절을 떠올린 민기는, 시간이 없었으므로 기출문제부터 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2달 동안 게임만 하고 놀던 머리는 그렇게 녹슬지 않았다.

3시간 동안 2회 치의 기출을 해설과 함께 탐독한 민기는 뭔가 할 만할 거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강의 시간에 배운 내용보다는 쉬웠고, 기출은 역시 반복되는 문제도 꽤 있었다.

아직, 제대로 해보지도 않았기에 자만은 금물이었으나 왜 3주 만에 합격하는 사람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할 만하잖아?’

오랜만에 머리를 좀 썼던 민기는 배가 출출함을 느꼈다.

마침 저녁시간이었기에, 어김없이 편의점으로 향했다.


어둑해지고 있는 하늘 아래로, 가로등이 거리를 울적하게 적시고 있었다. 사람이 거의 없던 대학 가는 이제 제법 학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개강이 다가왔다는 징조였다.

공인중개사, 부모님, 학생으로 보이는 자취방 구하기 조합도 보였다. 민기는 첫 자취생활을 할 때 민기의 부모님도 먼 곳까지 와서 같이 방을 봐줬던 기억이 났다. 새삼, 두 달 동안 게임하며 허송세월 보낸 것이 후회됐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민기는 익숙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인사를 예의 있게 받았다. 편의점에 매일 1번 이상은 왔는데, 올 때마다 이 아르바이트생도 거의 매일 있었다.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처럼 핸드폰을 하는 게 아니라 책을 펼쳐놓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모습에 약간 자극을 받기도 했지만, 정말 자극만 받았던 민기는 자극적인 음식을 사가는 걸로 자극을 대체했다.


오늘은 가볍게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은 뒤에, 남은 공부를 마저 하면서 계획을 대략적으로 세워보자.

민기는 자취방에서 뒤처리하기가 귀찮아 여느 때처럼 편의점에서 다 먹고 나왔다.

집으로 다시 오자마자, 민기는 바로 공부를 하려 했다.

오늘 기출 1년 치를 마저 끝내고, 이론 부분 복습까지 하면 첫 날로 아주 훌륭하게 스타트한 것이었다.

하지만, 밥 먹자마자 바로 공부하려는 민기의 의지를 몸은 거부했다.

그리고 민기의 뇌는 달콤한 속삼임을 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쉬었다가 하자. 우선 핸드폰을 켜서 게임에 접속하는 건 어때?’


밥까지 먹고 약간 나른해진 민기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 게임을 하고 싶었다.

‘진짜, 보상만 얻고 바로 나온 뒤, 핸드폰 끄고 쉬다가 공부하자.’

게임을 그냥 삭제해 버리는 게 맞았지만, 민기는 10만 원가량 투자한 게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부지런히 게임을 하여, 랭킹 100위 권에 들었던 민기는 이 재미를 포기하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그동안 기다리고 있던 게임도 오늘 저녁에 오픈을 한다고 했었다.

결국, 민기는 새로운 게임을 다운받아버렸다.

새로 받은 게임은 민기가 좋아하는 요소들을 다 갖추고 있었고, 결국 민기는 밤을 새 버리고 말았다.


정오가 넘어서야, 겨우 눈을 뜬 민기는 자괴감에 몸부림쳤다.

지금, 다시 게임을 삭제하고 책을 펼치면 늦지 않은 때였지만 민기는 그럴 수 없었다.

이미, 어제 출시한 게임에 10만 원을 질러버렸고 길드까지 창설하고 단톡방도 만들어버렸다.

결국, 그날도 민기는 죄책감과 자괴감을 잠깐 뒤로 미룬 채 게임에 열중했다.

설날에 받은 용돈을 추가로 질러버린 민기의 마음에, 기사 시험은 이제 안중에도 없었다.


‘뭐, 해보니까 2주면 충분하겠던데. 이번 주는 그냥 놀자.’

핸드폰 게임은 길게 즐기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이번 주까지만 하고 끝내면 시간은 충분했다.

원래, 모름지기 대학생들은 벼락치기에 특화된 사람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민기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다음 주면 다시 새로운 핑계를 대며 공부를 안 할 것임을.

그렇게 다시 시간이 녹아내리며 민기는 무아지경에 빠졌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제 시험은 벼락치기로도 합격할 수 없을 만큼 다가왔다.

민기는 핸드폰을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난 어떻게 변한 게 하나도 없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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