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을 보는 날은 하루 종일 왠지 모르게 피곤하다.
알람 소리가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관자놀이를 깊숙이 찔러댔다. 승현은 신음하며 눈을 떴다.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아침 햇살이 어서 일어나라고 눈꺼풀을 재촉했다. 찰나의 정적 끝에 엄습한 섬뜩함. 승현은 용수철처럼 일어나 핸드폰부터 낚아챘다.
오전 8시.
천만다행이었다. 어제 술기운에 일찍 잠든 덕에 시간은 충분했다. 다만 어제의 달콤했던 소맥은 이제 독한 숙취가 되어 머릿속을 콕콕 휘젓고 있었다. 딱 소주 한 병, 맥주 한 병. 그 '적당한' 배합이 늘 문제였다. “아, 진짜... 소맥을 왜 마신 거야.”
그는 펄프처럼 눅눅해진 몸을 억지로 일으켜 화장실로 기어갔다. 거울 속에는 충혈된 눈을 한 낯선 사내가 자신을 무력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이 몰골로는 합격도 불합격으로 바뀌는 마법이 일어날 판국이다. 숨을 내뱉을 때마다 미약한 술 냄새가 섞여 나왔다. 승현은 급하게 샤워기를 틀고, 양치를 두 번이나 하고, 서둘러 면도날을 세우고 나서야 비로소 '사회인'의 윤곽이 드러났다.
컴퓨터를 켜서 다시 한번 직무 관련 지식을 공부한 뒤, 자기소개를 읊조렸다.
다행히, 어제 외워둔 게 효과를 발휘했는지 약간 버벅거렸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술술 나왔다.
다시 시계를 확인하니 오전 9시.
넉넉하게 9시 반에 출발하면 10시 반까지 면접장에 충분히 도착할 것이다.
30분의 여유는 원래 기본으로 두는 것이니, 승현은 슬슬 나갈 준비를 하면 될 것 같았다.
냉장고에서 꺼낸 초콜릿우유로 속을 달래고 민트 사탕을 입에 던져 넣었다. 옷장에서 꺼낸 정장은 오랜만이라 그런지 묘하게 낯설고 빳빳했다. 하지만 거울 앞에 서니 그 불편함이 오히려 승현을 다시 세상 속으로 되돌려 놓는 기분 좋은 구속력으로 다가왔다.
출근 시간의 폭풍이 지나간 지하철 안은 한산했다. 운 좋게 자리를 잡은 승현은 핸드폰으로 면접 자료를 훑다 이내 화면을 넘겼다. 더 이상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극적인 영상들로 긴장을 분산시키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였다.
역에서 10분 거리. 이윽고 나타난 건물은 생각보다 훨씬 낡아 있었다. 주변에 흔한 식당 하나 보이지 않는 삭막한 풍경. 내부로 들어서자 실망감은 더 짙어졌다. 리모델링 흔적조차 없는 좁은 복도는 흡사 닭장을 연상시켰다. 담당자가 승현을 맞이했다.
“면접은 5층입니다. 엘리베이터 같이 타실까요?"
"네 알겠습니다."
담당자의 안내에 따라, 5층으로 가니 세미나실이 보였다.
평소에는 회의실 용도로 쓰는 사무실이었는지, 안에 이미 다른 직원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어.. 원래 저희가 면접 때문에 예약해 뒀는데, 회의가 좀 길어졌나 봅니다. 5분만 대기해 주시겠어요? 아니면 밑에 사무실에서 대기하실래요?"
"5분 정도면, 그냥 앞에서 대기하겠습니다."
"네, 그러면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계약직이라 그런가, 업무 사이에 끼워 넣은 '번외 행사'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씁쓸한 초라함이 몰려왔다. 3분쯤 지났을까, 회의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오가는 직원들은 낯선 정장 차림의 승현을 보며 하나같이 가벼운 목례를 건넸다. '뭐지? 벌써 합격이라도 한 건가?' 의아했지만 승현은 일단 본능적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받았다.
면접장은 책상 네 개를 이어 붙인 투박한 'ㅁ'자 형태였다. 승현은 코트를 의자 옆에 보이지 않게 구겨 넣고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잠시 후, 세 명의 면접관이 입장했다.
"자리에 앉으셔도 됩니다."
면접관 중 가장 어려 보이는 여성이 말했다. 아무래도, 실무자 같았다.
승현은 자리에 앉은 뒤 면접관 세 명을 차례대로 쳐다봤다.
가장 왼쪽에는 중간급 관리자로 보이는 남성이, 그 옆 중앙에는 팀장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 오른쪽에는 실무자로 보이는 여성이 차례대로 앉았다.
이제 슬슬 자기소개를 시키려나? 승현은 약간 긴장한 채 면접관을 바라보았다.
왼쪽 남성이 가장 먼저 질문을 했다.
"오시는 데 불편함은 없으셨어요? 수원이면 조금 멀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아, 지하철 1호선으로 왔어서 큰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역으로 다섯 정류장 정도만 오면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가까우시구나. 그래도, 추운데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생각보다 부드러운 분위기에, 승현은 약간 마음의 긴장을 풀었다.
오른쪽 여성이 이어서 물었다.
"이력서를 보니까, 다른 데에도 계약직 경력이 있으시고 저희 부서에서 하는 업무와 비슷한 업무를 하신 적이 있으시네요. 그런데, 왜 1년 조금 넘게만 근무하셨을까요? 계약만료가 아니라 개인사정으로 인한 퇴사네요? 실례가 안 되면 이 부분에 대해 좀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승현에겐 뼈아픈 질문이었다. 당연히 면접에서 물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승현은 준비해 온 답변을 시작했다.
"사실, 그 기관에서 정규직 채용공고가 났었습니다. 당연히 응시를 했었는데, 시험에 불합격하였습니다. 불합격 이후 제가 그 부서에서 계속해서 근무를 하는 것을 생각해 봤는데, 여러모로 더 다니는 것이 애매한 거 같아서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성이 다시 물었다. 꼬리질문이었다.
"그 여러 모로가 어떤 건지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저희도 지금 계약직을 뽑고 있는 거긴 하지만, 솔직히 오래 다니는 분을 뽑고 싶으니까요."
미처 준비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이 정도 압박까지 할 줄 몰랐던 승현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제 전공과 다른 부서에서 계속해서 근무를 해도, 저의 발전과 커리어에 도움이 될까 의문이었습니다. 1년 조금 넘은 기간밖에 근무를 안 했지만, 반복적인 업무 속에서 향후 미래를 고려했을 때 다른 기관에서 업무를 계속해보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계약직이다 보니 아무래도 정규직과 조금 더 차별화되는 업무를 맡았고 그 업무가 저에게 큰 도움은 되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제가 해보고 싶은 업무는 거의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도 제가 이직을 고려하는 데에 큰 요인이 되었습니다."
젊은 여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승현의 꾸밈없는 솔직한 답변이, 이직에 충분히 고려요소가 되었음을 이해한 듯했다.
중앙에 팀장이 물었다.
"이력서를 쭉 훑어봤는데, 자격증도 많으시고 저희 부서에 꽤 적합한 인재로 보입니다. 혹시, 저희 부서가 어떤 일을 하는지 대충 알고 오셨을까요?"
면접에서 단골 질문이었다. 지원한 기관의 부서에서 어떤 업무를 하는지는 누구나 기본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질문이다. 여기서, 좀 더 디테일하게 설명을 잘하면 다른 지원자들보다 좀 더 두드러져 보이는 법이다.
승현은 제일 열심히 준비한 답변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홈페이지에서 본 내용을 간략히 설명한 후, 관련 법률과 동향, 본인이 하게 될 업무도 예상하여 답변했다.
팀장은 흡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면접관들도 미소를 짓는 게 보였다.
승현은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팀장이 계속해서 물었다.
"혹시, 승현 씨가 최종적으로 목표하는 바가 있을까요? 솔직히, 저희는 지금 육아휴직 대체를 뽑는 것이고 승현 씨는 기간제로 뽑히는 거다 보니까요. 스펙도 나름 좋으신데, 계약직으로 굳이 저희 부서에 지원한 이유가 궁금하네요. 정규직 전환이 안 되는 것은 당연히 아실 텐데요."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질문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확실히, 업계가 좁은 곳이라 그런 것일까? 아니면 1년 이상 경력이 있는 사람을 뽑아서 그런 걸까.
생각보다 만만찮다는 걸 느낀 승현은 다시 긴장하며 답변을 시작했다.
"최종적으로 목표하는 바는 당연히 정규직입니다. 어느 기관의 정규직으로 갈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지원한 직무의 정규직으로 가기 전에 실무역량과 경력을 쌓고 싶었습니다. 요즘은 사실, 정규직 전환이 거의 없어 다들 계약직으로 경력을 쌓아가는 상황이니 좀 더 의미 있으면서도 실무 역량에 맞는 경력을 쌓고자 했습니다. 지금 지원한 부서에서 하는 업무의 내용 상,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게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부서의 업무들을 수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경력도 쌓이고 제 역량도 크게 상승할 것 같습니다."
조금은 횡설수설 답변한 것 같았지만, 예상치 못한 내용에 순발력 있게 잘 답변한 것 같다.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면접관들에게 더 물어볼 게 있는지 물었다.
"경력사항에 적어두신 업무가, 확실히 저희 부서랑 겹치는 부분이 있네요. 그런데, 하셨던 업무는 저희 부서 업무의 일부이고, 실제로는 다른 업무들이 더 많습니다. 이 업무에 필요한 지식이나 역량은 조금 부족해 보이는데 혹시 이전기관에서 이런 기회가 없었을까요?"
"아, 정규직분들과 업무가 조금 차별화되다 보니,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건 사실이었다. 아마 다른 기관들도 비슷한 행태일 것이다.
계약직들은 보통 잡무에 많이 투입되니까. 면접관도 이해한다는 듯 이 부분은 더 질문이 없었다.
승현은 해야 할 만한 질문과 답변은 다 끝났다고 생각했고, 면접관들도 더 할 게 없는지 서로 고개를 돌리며 물어볼 게 있는지 물었다.
여성 면접관이 승현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음, 혹시 근무를 시작하신다면 언제부터 가능하실까요?"
"현재, 직장이 없어서 바로 투입 가능합니다."
왼쪽의 남성이 뒤이어 질문했다.
"연봉이나, 복리후생과 관련하여 회사에 궁금하신 점 있나요?"
승현은 솔직히, 궁금한 점이 많았다. 채용공고상에 올라온 연봉만 전부인지, 연차나 복리후생 같은 것은 너무나 당연해서 아예 기재를 안 한 건지, 구내식당은 혹시 있는지, 명절 상여금 같은 것은 계약직도 주는지 등등..
하지만, 지원자들은 보통 이런 질문을 하지 못한다. 괜히 조금이라도 안 좋은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
몇 번의 면접을 보더라도, 이런 회사 관련 궁금증은 먼저 말해주지 않는 이상 지원자가 물어볼 수는 없었다.
"아뇨 없습니다."
어쨌든, 근무 시작일이나 회사 관련 궁금증을 물어본다는 것은 좋은 신호였다.
다른 지원자들도 면접을 보고 나서 결정하겠지만, 승현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는 뜻이다.
중간 자리에 앉은 팀장이 물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이 질문에 두루뭉술하게 답변하면 오히려 임팩트를 남길 수 없다.
승현은 준비한 답변에서 조금 더 내용을 첨가하여 답변했다.
"솔직하게, 1년 남짓한 계약직 근무 경력은 면접관분들 입장에서 부족해 보인다는 점 인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만약 입사하게 된다면, 업무 관련 지식을 좀 더 적극성 있게 배우고 노력하여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좋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팀장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발언까지 마친 승현은 인사를 드린 후 면접장을 나섰다.
면접을 끝마친 승현은, 생각보다 힘들었던 면접에 진이 빠졌다.
그래도 발걸음은 가벼웠다. 면접을 되짚어 본 승현은, 다른 특출 난 지원자가 없다면 본인이 뽑힐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계약직인 만큼, 내정자도 거의 없을 것이니 김칫국 좀 마셔도 좋을 것 같았다.
'김칫국.. 김치찌개? 김치찌개랑 소주 하나로 해장술이나 마실까?'
실없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술을 마실 생각을 하는 승현. 면접이 끝나니 숙취가 신기할 정도로 다 사라졌다. 숙취가 사라지니 또 술이 당겼다. 특히, 이렇게 면접을 잘 보고 나서 마시는 술은 꽤나 달콤한 법이다.
합격 발표는 아마 다음 주 화요일이나 수요일쯤에 날 것이다. 그때까지는 또 막상 할 게 없었으니 다른 걸로 시간을 때울 수밖에. 별다른 취미가 없던 승현에게는 술을 마시는 게 최고의 취미였다.
이렇게 술을 너무 마시는 것도 안 좋은 건 알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면 신기할 정도로 또 술을 적당히 절제하는 승현이었다. 그러니, 백수일 때 술을 좀 많이 마시는 것쯤이야 괜찮지 않을까?
다음 주에 합격하면 다시 일을 하게 될 테니, 지금의 백수생활을 좀만 더 즐기자.
생각을 마친 승현은 집에 도착한 뒤 낮잠을 자고, 핸드폰을 하다가 다시 술을 마시러 갔다.
그날 밤, 승현은 단골 식당 구석에서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를 마주하고 앉았다. 잔에 채워진 소주의 투명함이 면접장의 긴장감을 말끔히 씻어내는 기분이었다. '똑'. 경쾌한 소리와 함께 목을 타고 넘어가는 알코올은 어제보다 훨씬 달았다. 면접 걱정을 덜어냈고, 합격 확률도 높았기에 더 이상 쓴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오늘 소주는 어제보다 훨씬 달콤할 것임을 첫 잔을 마시자마자 직감했다. 그리고, 오늘은 아마 두 잔까지 마시게 될 것임을 직감했다.
문득 낮에 면접장에서 만났던 직원들의 인사가 떠올랐다. "왜 나한테 인사를 했지?" 하는 의문은 이제 "내가 곧 그곳의 식구가 될 거라는 예고였나?" 하는 기분 좋은 확신으로 바뀌어 있었다. 낡은 건물과 닭장 같은 사무실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정장을 입었을 때 느꼈던 그 '사회인'으로서의 감각이 다시금 승현을 들뜨게 했다. 승현은 핸드폰을 덮고 마지막 남은 찌개 국물을 떠먹었다. 다음 주 화요일, 모르는 번호로 걸려올 전화를 상상하며 그는 기분 좋게 취기가 오른 걸음으로 밤거리를 걸었다. '내일부터는 정말 술을 줄여야지'라는 지키지 못할 다짐을 안주 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