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앞두고 불안해지는 마음

칼취업은 꿈만 같은 일이다.

by Nos

기사 합격이라는 달콤한 전리품을 거머쥐었을 때만 해도, 민기는 세상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합격자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확인한 순간의 전율은 그간 도서관 구석에서 들이켠 먼지 섞인 공기를 단번에 정화해 주었다.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이라는 명목으로 밤새 게임기를 붙들고 뒹굴며 새해를 맞이했다. 2월 말 예정된 졸업식은 형식적인 절차일 뿐, 이미 모든 이수 학점을 채운 민기는 사실상 사회라는 링 위에 올라선 무명의 취준생이었다.


본격적인 상반기 공채가 시작되자 '졸업 예정자 지원 가능'이라는 문구가 민기의 심장을 뛰게 했다. 그는 호기롭게 대기업 공고들을 수집하며 전의를 불태웠다. 하지만 자소서 문항을 채우기 위해 접속한 채용 플랫폼에서 민기는 예상치 못한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

그 사이트에는 각 기업 자소서 항목별로 실시간 지원자 통계가 냉혹한 숫자로 집계되고 있었다. '지원자 수 : 54명'


민기가 노리는 직무의 숫자였다.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는 인원까지 합산하면 최소 70명, 서울 역세권에 위치한 중견기업은 이미 100명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말로만 전해 듣던 취업난의 실체가 숫자가 되어 민기의 목을 조여왔다. 소문으로만 듣던 취업난을 구체적인 숫자로 보니 훨씬 실감이 났다.


물론 그 숫자 중에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식으로 던져보는 '허수'도 섞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실무 경력을 갖춘 중고 신입과 화려한 스펙을 두른 '실수(實數)'들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민기는 냉정하게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필수 자격요건조차 채우지 못해 지원 버튼을 활성화조차 하지 못한 공고들이 수두룩했다. 남들의 들러리가 되어줄 자격조차 없는, 그는 명백한 허수였다.


어학 점수도 이미 만료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남들 다 있다는 자격증 칸은 여전히 빈틈이 많았다. 선택의 기로였다. 본가로 들어가 배수의 진을 치고 스펙을 올려 정규직에 올인할 것인가, 아니면 눈을 낮춰 계약직이라도 들어가 경력을 쌓을 것인가.


본가에서 공부하게 되면 당장의 생활비는 굳겠지만,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익숙한 풍경처럼 자신의 삶도 고여버릴지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게다가 민기는 대학 시절 내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섬처럼 지냈다. 전공 서적과 씨름하던 고독한 시간은 졸업 후에도 이어질 조짐이었다. 안 그래도 희미한 사회성이 이대로 영영 소멸해 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이 그를 잠식했다.

"학과 수업 들으면서도 기사 자격증 땄잖아. 일하면서 공부하면 되지 않을까?"


민기는 지난 방학들을 반추해 보았다. 학업이라는 강제성이 사라진 자유의 시간, 그는 방탕하게 게임만 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지금이야 의욕적으로 자소서를 쓰고 계획표를 채우고 있지만, 본가의 익숙한 침대와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밥상 앞에서 이 마음이 유지될 리 없었다. 더 나태해지면 나태해졌지, 더 성실해질 자신은 하나도 없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일단은 계약직이나 인턴이라도 시작하는 게 옳았다. 채용 공고를 훑어볼수록 '스펙보다 경력'이라는 문장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계약직 기간을 경력으로 얼마나 쳐줄지는 미지수였지만, 아무것도 없는 무경력자보 다는 나을 것이 분명했다. 대기업은커녕 중견기업도 버거운 지금, 중소기업이나 공공기관 인턴을 통해 경력을 쌓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었다.


아직 철없던 민기는 중소기업을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공공기관 인턴 공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장 지원할 수 있는 공고는 없었다. 그는 작년의 채용 공고들 시기를 분석했다. 대학을 졸업한 3월부터 슬금슬금 하나둘씩 나올 거 같았다.


서류는 스펙에 따라 점수가 차등 부여되기도 했지만, 자소서 비중이 높은 곳들이 꽤 있었다. 자소서만 잘 쓰면 스펙은 큰 흠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지금 전공을 살려 지원할 수 있는 곳이 전멸 상태였다. 중소기업보다는 안정적인 공공기관에 마음이 기울었지만, 대부분 상반기 인턴 공고는 빨라야 한 달 뒤에나 올라올 예정이었다. 면접과 임용까지 고려하면 최소 두 달은 꼼짝없이 집에서 대기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아…… 진짜 미치겠네."


민기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두 달. 누군가에게는 짧은 휴식이겠지만, 사회적 소속감이 없는 취준생에게 두 달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다. 여기저기 앓는 소리가 나오는 현 취업시장에서 자신의 자리가 없다는 건 생각보다 더 큰 압박인 법이다. 그럼에도 중소기업을 갈 마음은 없는 민기.


그는 남는 시간에 기사 자격증 하나를 더 취득하여 스펙을 높이고자 했다. 인턴 공고가 뜨기 전까지 할 수 있는 가장 생산적인 활동은 역시 이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학생 때 따는 것과 취준생 때 따는 것은 마음의 여유가 달랐다. 이미 4학년 때 따뒀어야 할 자격증을 왜 졸업하고서야 따는지.

자격증 취득까지 걸리는 약 5개월의 시간 동안, 자신이 지원할 수 있는 공고들을 몇 십 개나 놓치는 걸까?


가슴이 답답해진 민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았다.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누군가는 지옥철에 몸을 싣고 투덜대면서도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증명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오직 민기만이 이 좁은 방 안에서 정지된 화면처럼 멈춰 서 있었다.


그는 다시 노트북을 켜고 메모장을 열었다. '두 달간의 백수 생존 전략'이라고 적었다가 지웠다. 대신 '버티기'라고 두 글자만 남겼다. 이 시간을 단순히 허송세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호흡을 가다듬는 과정이라 믿고 싶었다. 비록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지만, 인턴 공고가 뜨는 그날까지 이 불안한 고독을 연료 삼아 스스로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야 했다.


민기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다시 게임 어플을 지웠다. 그리고 도서관 대출증을 확인했다. 아직 졸업을 하지 않은 그는 대학생 신분이다. 대학의 도서관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당장에 할 수 있는 게 자격증 공부뿐이라면, 이거라도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핸드폰을 꺼내 아침 6시로 알람을 맞췄다. 7시에는 집에서 나와 도서관으로 향해서 공부를 할 것이다. 직장인과 비슷한 생활 패턴을 가져야만, 이 죄책감과 불안에서 해방될 것 같았다.


민기는 내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가로등 불빛이 유난히 시렸다. 세상을 향한 문이 굳게 잠겨버린 것 같았다.


민기는 어둠 속에서 천장을 응시했다. 오늘따라 방 안의 공기는 유독 무겁게 내려앉아 가슴을 압박했다. 마치 이 어둠이 거대한 늪이 되어 자신을 통째로 집어삼킬 것만 같은 공포가 밀려왔다. 다른 이들은 이 막막한 터널을 어떻게 통과하고 있는 걸까.

외로움은 예리한 칼날이 되어 가슴속을 헤집었다. 숫기 없고 말수 적은 성격 탓에, 대학 4년을 오직 강의실과 도서관만을 오가며 섬처럼 보냈던 시간들이 뼈아픈 후회로 돌아왔다. 그저 묵묵히 공부만 하면 정직한 보상이 기다릴 거라 믿었던 자신의 순진함이, 아니 그 멍청함이 견딜 수 없이 원망스러웠다.


민기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구름 사이로 드러난 달빛이 방 안을 창백하게 비추고 있었다. 오늘따라 그 빛은 위로가 아닌 서늘한 냉소처럼 느껴졌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이런 외로움과 차가움을 견뎌내며 어른이 되고, 직함을 얻고, 누군가의 몫을 해내고 있는 것일까. 창밖 멀리, 서로의 어깨에 기댄 채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대학생 무리가 보였다. 그들의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민기는 그들이 나누는 온기가 부러워 자꾸만 시선을 떼지 못했다.


"하아…… 죄송해요, 엄마."

입 밖으로 낸 목소리는 힘없이 부서졌다. 한없이 초라해진 자신을 마주한 순간, 참아왔던 뜨거운 것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울적해진 민기는 다시 침대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힘이 쭉 빠져버렸기에 기절하듯 잠들어버린 민기는 악몽을 꿨다.

끝이 보이지 않은 복도가 쭉 이어진 꿈이었다. 아무리 뛰어도 끝나지 않는 복도 속에서, 민기는 비명을 질렀다. 누군가 자신을 봐주길 기대하며.


하지만 꿈에선 그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오직 달빛만이, 그의 차가운 뺨을 어루만져 줄 뿐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실망한 면접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