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상은 이미 고립이었다.

성천에서 살아가는 고립 청년의 이야기

by Nos

나는 히키코모리다. 집 밖을 나가지 않고, 사회활동도 하지 않는 백수.

세상은 날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이해를 바란 적도 없다.

나라고 처음부터 히키코모리 생활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럭저럭 괜찮은 대학을 나왔고 남들 하는 만큼 스펙도 쌓았다. 사회초년생의 열정으로 열심히 일도 해봤지만, 부질없었다.

폭언, 갑질, 일 몰아주기 등등의 온갖 부당한 대우를 받은 나는 집에 은둔했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더욱더 뭐라 하셨다. 네가 뭐가 부족하냐고.

"난 부족한 게 없어. 세상이 나를 부족하게 만들었을 뿐이야."

"다들 그러고 살아. 그런데, 너는 왜 못 참고 그렇게 사는 거니."

부모님은 당신이 그러셨듯이, 나도 그렇게 참고 살기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이런 나를 부모님과 나는 서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 감정의 골만큼 나는 더욱 깊이 방에 박히게 되었다.


그래도, 나의 밥을 꼬박꼬박 챙겨주시는 부모님의 사랑이 마냥 밉지 않았다.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 수는 없어도, 걱정되는 아들은 되지 않으리라.

조금씩 정신을 회복하여, 이제 슬슬 다시 취업을 하려고 하던 찰나였다.

좀비사태가 터져버렸다.




성천의 어느 대형 마트에서 좀비사태가 최초로 터졌다. 하필, 그날은 주말이었고 부모님이 장을 보러 간 날이었다. 어머니가 먹고 싶은 게 무엇이냐고 묻기에, 유부초밥을 먹고 싶다고 한 날. 그날을 끝으로 나의 부모님은 더 이상 돌아오지 못했다.

어머니의 "아들 미안해. 사랑해."라는 마지막 문자가 끝이었다. 영수증에는 아마, 유부초밥 관련 식재료들이 찍혀있었겠지.


좀비 사태가 터졌다고 해서, 성천의 많은 시민들이 다 좀비가 된 것은 아니었다. 정확한 집계는 되지 않았지만 30% 정도는 생존했다고 추측되고 있었다. 주말에 집에 가만히 쉬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살았고, 외출했던 사람들은 좀비가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취업할 의지를 잃었다. 부모님을 위해 다시 한번 힘을 내어 취업하려 했는데, 정작 나의 부모님은 어딜 갔단 말인가. 생활비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꼬박꼬박 이루어지는 보급은 이미 차고 넘쳤다. 거실에는 이미 1년 치는 먹을만한 식료품들이 쌓여있었다.


기본적인 식품 외에도, 여러 야채와 고기들마저도 구비할 수 있었다. 다만 없었던 것은, 어머니의 손맛이다. 어느 날, 배급으로 이루어진 유부초밥 재료들을 홀린 듯이 가져와 유부초밥을 만들어봤다. 맛있었지만, 어머니가 해준 그 맛은 없었다.

그날, 나는 눈이 퉁퉁 붓도록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의 부재가 그제야 실감이 갔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죄책감이 밀려왔고, 외롭고 괴로웠다.


나는 그날 이후로, 더 살아갈 의미를 잃었다. 몇 달 동안 참아왔던 감정이 폭발한 그날. 더 이상 살 의지를 포기했다. 어떻게 생을 마감하는 게 좋을지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을 쯔음, 문자가 왔다.


[김민재 님. 서류 전형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면접 일정 및 장소를 아래와 같이 안내드립니다.]


예전에 장난 삼아 인재풀에 등록했던 기업이었다. 성천 내에 있는 대기업이라 혹시나 하여 넣어뒀는데, 하필 지금 와서? 민재는 약간의 흥미가 생겼다.

면접 일정 및 장소를 보니 위험한 곳이 분명했기 때문.


바로, 최초의 사태가 터진 마트 근처였다.

다시 한번 아픈 기억이 뇌리를 스쳤지만, 순간 운명적인 계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더 이상 살아가기를 포기했을 타이밍에, 이런 문자가 오다니.


무슨 업무를 하게 될지는 몰랐지만, 적어도 마지막으로 밖에 나가볼 이유는 생겼다.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 아니던가.

적어도 부모님이 계신 곳에서 좀 더 가까운 곳에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든다. 세상은 나 같이 나약한 사람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으면서, 이 사태가 터져서야 다시 찾는 모순을. 나는 비겁하고 나약한 패배자였지만, 자존심은 있는 사람이다.

무슨 생각으로 나를 다시 찾은 건지 궁금하여, 문자를 한 번 더 자세히 봤다.

한 가지 의아한 것이 있었다.

[밤에, 외부의 도움 없이 직접 걸어올 것. 단, 회사는 이와 관련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며 모든 면접자는 자발적 참여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간주함.]


회사는 이런 조치에 대해 방어하기 위함인지, 줄줄이 각종 보안 및 서약서가 안내되고 있었다.

심지어, 참석을 하기 위해서는 미리 서약서를 작성해서 제출해야만 도착된 장소에서도 추가 면접이 이루어지는 형국이었다. 비밀 유지까지 요구하는 내용들을 보니, 어처구니없으면서도 뭔가 흥미가 돋았다.

도대체 무슨 업무를 시킬 것이기에 회사는 이렇게도 방어하는가. 뭐 좀비소탕이라도 하나?


하지만, 좀비는 함부로 죽일 수가 없었다. 그들도 엄연히 이전에는 사람이었고, 누군가의 사랑하는 가족이기 때문에. 사람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개체들만 정당방위라는 명목으로 사살이 가능했다.

그럼에도, 그 좀비의 신원이 파악되고 가족들에게 연락이 가는 순간 피곤해지는 건 매한가지였지만.


세상은 좀비를 참 어중간하게 취급했다. 죽지도, 살아있지도 않은 그 무언가. 이 애매함은 모든 상황도 애매하게 만들어버렸다. 좀비를 함부로 살해했다는 이유로, '가해자'라는 말을 하며 소송을 하기도 했다.

어차피 방호복을 입었으니 안전한데, 왜 굳이 총을 쏴서 내 가족을 죽이냐는 말이 계속해서 나왔다.


이 지리멸렬한 공방전이 지겨웠던 정부와 군부대들은, 총이 아니라 곤봉과 방패로 좀비를 제압하기 시작했다. 좀비라고 해서 특별히 육체가 강화되진 않았기에 훈련된 생각보다 제압이 쉬웠다.

3인 1조 형태로 구성된 군인은, 우선 중앙의 방패를 든 군인이 좀비의 공격을 한 차례 튕겨낸다. 좀비가 주춤하거나, 튕겨져 바닥에 드러눕게 되면 잽싸게 두 명의 군인이 다리나 몸통을 가격하여 제압 후 포승줄로 묶거나 재갈을 채운다.


감염경로는 좀비의 입을 통한 바이러스 침투로만 이루어졌기에, 어지간해선 위험에 처해지지 않았다. 좀 더 숙련된 군인은 혼자서도 제압이 가능했고, 방호복에 물렸을 경우엔 즉시 감염치료를 받으면 좀비화가 되지 않았다.


지금의 좀비사태는 손쉽게 제압이 가능했지만, 그들을 애매하게 사람취급하다 보니 고착상태에 이르렀다. 나의 부모님은 어떻게 됐느냐고? 최초의 사태 때 이미 사살을 당했다. 생각해 보니 웃기는 군. 내 부모님은 그렇게 손쉽게 죽여놓고, 이제 와서 다른 좀비는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저들은 이미 죽은 이들이다. 인간으로서는 이미 버틸 수 없을 만한, 상처를 입고도 살아있는 이유는 오로지 좀비이기 때문이다.


치료제는 이미 소용이 없다. 설령, 좀비 바이러스로 감염된 뇌를 되돌린다 하더라도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는 육체는 어떻게 살릴 것인가?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기술의 발전이 이뤄지지 않는 한, 좀비는 죽은 것이다.

그저, 매일매일 똑같은 자리에서 의미 없이 하루를 보내는 존재인 나도 좀비다.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던 나는 그렇게 면접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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