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먹기 좋은 날은 없는 걸까.
오늘도 어김없이 그 시간이 찾아왔다. 수요일마다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이 시간. 진수는 끔찍이도 싫어하는 시간이었다. 바로 점심시간이었다.
평소에 혼자 학식을 먹으며 끼니를 해결하던 진수는, 수요일이 너무나 싫었다. 보통 때는 보이지도 않던 동기들도 학식을 먹으러 나타났기 때문. 전공 수업이 연속해서 있다 보니 다들 어쩔 수 없긴 했지만, 그 어쩔 수 없음이 진수는 싫었다.
학식은 값싸고, 맛있는 편이었다. 5,000원 정도의 가격으로 여러 반찬을 먹을 수 있었고, 특히 샐러드가 매일 반찬으로 나와서 좋았다. 가난한 자취생이었던 진수는 용돈이 다 떨어질 때면 아침을 굶고 점심을 학식으로 왕창 먹은 뒤, 저녁을 또 굶는 방식으로 버티곤 했다.
그렇기에, 학식은 진수에게 있어 생존과도 같았다. 그는 아무리 불편해도 학식을 먹어야 했다. 삼각김밥과 컵라면은 이미 지긋지긋했고, 건강에도 그렇게 좋지 않았기에 포기했다. 2천 원만 더 보태면 학식을 먹을 수 있는데 굳이 평일에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삼김 + 컵라면 조합은 주말을 위해 아껴두는 게 맞았다.
진수는 수요일마다 나름의 루틴을 만들었다. 수업이 끝날 기미가 보이면, 바로 짐을 챙기고 강의실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야만 동기들이 삼삼오오 모여걸어가는 풍경을 피할 수 있고, 줄 설 때에도 어색한 조우를 하지 않을 수 있다.
다행히 강의실의 맨 뒷자리는 출입문과 가깝기에 금방 빠져나올 수 있다.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지나 학과 건물을 지난 뒤, 바깥으로 나와 5분 정도만 걸으면 도착이다. 혼자 빠르게 걸어가면, 동기들보다 5분 ~ 10분은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식권은 그 전날 미리 구매해 놓은 걸 꺼내면 줄을 바로 설 수 있었다. 가방에 소중히 넣어둔 식권을 꺼낸 진수는 잽싸게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역시나, 오늘도 사람으로 빽빽했다.
4인용 테이블로만 이루어진 식당 구조는 혼밥러를 배려한 구조는 아니었다. 하긴, 애초에 많은 인원을 수용하는 것이 최우선 목적이니 당연했다.
곳곳에 빈자리가 있었지만, 진수는 최대한 구석진 자리를 찾았다. 혼자 먹는 거는 힘들지 않았지만, 옆에 버젓이 동기들이 있는데 혼자 먹는 건 힘들었다.
줄을 서는 내내, 식당 테이블의 현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한 진수는 마침내 자리를 정했다.
오늘은 운 좋게도 명당자리가 있었다. 퇴식구랑 가까운 데다가 4인용 테이블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자리는 혼밥러라면 누구나 탐내는 곳이었다.
음식을 받는 내내, 진수는 초조했다. 부리나케 마지막 국까지 받은 진수는 방금 봐둔 명당자리를 향해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자리가 없어 다들 우왕좌왕하고 있었지만, 진수는 방향을 이미 정했기에 누구보다 빠르게 명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명당까지 얼마 안 남았을 때 커플로 보이는 한 쌍이 테이블에 착석했다.
"아.. 이런."
진수는 빠르게 고개를 돌려 다른 테이블을 살펴봤다.
혼자서 먹고 있는 남자가 있는 테이블과, 시끌벅적하게 밥을 먹고 있는 4인 옆자리 테이블이 있었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진수는 혼자서 조용히 먹는 남자의 옆 테이블로 향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괜찮은 자리였다.
진수는 조심스럽게 남자 옆 자리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과 동기들과 후배들 몇몇의 얼굴이 눈에 보였다. 서로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그야말로 청춘 드라마였다. 자신은 저 청춘에 합류하기엔 글렀다. 진수는 조용히 고개를 내리고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오늘은 참치비빔밥과 해시브라운이 메인 메뉴였다. 비빔밥에 참치가 들어있다는 사실이 참 만족스러웠다.
가뜩이나 야채를 먹기 힘든 자취생활중에, 이런 야채를 값싸게 먹을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었다. 역시, 아무리 불편해도 학식은 포기할 수 없었다.
진수는 핸드폰을 들고 밥을 즐겁게 먹기 시작했다. 그때, 옆자리 남자가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났다. 밥이 아직 남았는데 일어나는 걸 보니 입맛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남자가 일어서면서 진수의 옆에는 갑자기 4인이 앉을만한 자리가 생겼다. 그리고, 그 옆에 갑자기 또 다른 무리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갑작스럽게 생긴 이 빈자리. 진수는 설마 하여 고개를 들었다.
같은 과 동기들이 빈자리를 보고 걸어오고 있었다.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아직 밥을 한창 먹고 있던 진수는 다른 자리로 옮기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눈까지 마주친 진수는 어색하게 고개를 박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야야, 여기 자리 비었어. 이쪽으로 와. 어? 진수야 안녕?"
"어.. 안녕"
무리에서 붙임성이 좋은 동기가 진수에게 말을 걸었다.
"같이 먹지, 왜 혼자 그렇게 먹고 있어. 다음에는 같이 먹자."
"응.. 그래"
말을 하는 사이, 동기들 무리가 진수의 옆자리로 오기 시작했다. 진수는 괜히 자신을 한 번씩 쳐다보는 거 같아 힘들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맛있었던 참치비빔밥이 지금은 목에 걸리기 시작했다.
'하.. 젠장. 옆자리 사람들 밥을 어느 정도 먹었는지까지 고려해야 하나?'
어느덧 떠들썩하게 밥을 먹고 있는 동기들 틈에, 진수는 처음부터 없던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진수는 누구보다도 동기들의 존재를 의식하며 밥을 먹고 있었다.
다음 수요일에는 아예 늦게 밥을 먹는 방법을 시도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