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소설의 대가 김동식 작가님의 에세이
기발하고 발칙한 상상력으로 재밌는 초단편 소설을 쓰신 김동식 작가님을 아시나요?
대표작 <회색 인간>을 쓴 작가님은 주물공장 노동자로 10년을 일하시다가, 인터넷 게시판에 쓰게 된 초단편소설을 계기로 지금은 어엿한 작가님으로 전국에 강연을 다니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소설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담은 진솔한 에세이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을 쓰셔서 에세이를 한 번 읽어보았습니다.
작가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글을 쓰게 된 계기, 꿈이 이루어진 과정 및 강연을 다니는 즐거움 등등 일상적인 소재가 가득한, 마음 따뜻한 에세이였네요.
사람들의 응원과 관심이 좋아서, 맹렬하게 글을 쓰다 보니 1년 반 만에 300편의 소설을 쓴 게 참 대단했습니다. 작가님은 본인 스스로 운이 좋아서 성공하셨다고 하지만, 제 생각엔 1년 반 만에 300편의 소설을 쓰는 꾸준함도 많은 비중을 차지한 거 같더군요.
김동식 작가님의 소설을 재밌게 읽고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책도 꼭 읽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재밌었던 문장 몇 가지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책 속의 문장들
실제로 내가 글을 쓸 때 절대적으로 지키는 원칙 하나는, '내가 아는 건 보는 사람도 안다'이다.
글을 쓰다 보면, 뭔가 설명을 계속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힙니다. 아무래도, 제가 이 말을 왜 쓰는지에 대해 독자들이 좀 더 상세하게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런 것 같습니다. 설명하는 글이라면 그게 미덕일 수도 있겠지만, 소설에서는 다릅니다. 섦여은 독자의 상상력을 좁히기에, 보여주기식으로 그 여지를 남기는 게 좋은 글쓰기겠죠.
사람은 돈이 많을 때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하지만, 내 기억에 의하면 돈이 없을 때 최고의 진미를 먹는다. 앞으로 내가 얼마를 번다 한들 그 시절 배고픔을 달래주었던 생라면 한 봉지보다 더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을까? 냉장고를 얼마큼 채운들 그 시절 다락방의 라면 한 박스보다 더 든든할까. 배고픈 내 어린 시절의 라면이 새삼 소중하다. 귀함은 가난과 부를 차별하지 않는다.
저도 얼마 전에, 오마카세라는 것을 한 번 먹어보았습니다. 참치회를 먹어보았는데요. 뭔가 맛있긴 했지만.. 막 정말 맛있지는 않았습니다. 저에게 있어 최고의 음식도, 수학여행 때 먹은 컵라면과 군대에서 먹었던 냉동식품이거든요. 어쩌면 가장 맛있는 음식은 풍족한 돈으로 값비싼 음식을 사 먹는 게 아니라, 주어진 자원 내에서 내가 필요로 할 때 먹었던 음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배고픔 자체가 최고의 애피타이저인 것처럼, 어쩌면 사람이 점점 풍족해지고 어른이 되어갈수록 어린 시절의 감수성과 즐거움을 점점 잃어 가는 게 아닌가 싶네요.
이때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선을 알게 되었다. 그 일이 힘드냐 안 힘드냐 보다는, 아프냐 안 아프냐였다. 일하면서 어디가 너무 아프거나,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온몸이 욱신거린다면, 그 일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저도 예전에 직장을 다닐 때, 저한테 너무 안 맞는 일을 억지로 이어가며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대상포진에 걸려버리더군요. 이마에 퍼진 대상포진은 머리와 눈에까지 번져서 편두통까지 선사했습니다. 그동안 괜찮아서 잘 몰랐는데, 어느 순간 몸에서 신호를 보내더군요.
마음이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는데 무시하다 보면, 어느 순간 몸에서 신호를 받아서 극단적인 경고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저는 대상포진에 걸렸어도 무시하고 일을 하다가, 결국 퇴사를 하고 말았었네요.
심지어는 좋아서 시작한 일도 내가 주체가 아니라면 점점 싫어진다. 좋아하는 것도 일이 되면 싫어진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듯하다
내가 주체가 된다는 것은 나의 모든 일과 스케줄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이 정한 속도와 방향에 맞춰 움직이다 보면 무리는 필연이 되고, 스트레스는 자연히 쌓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모습을 떠올릴 때 '독립적으로 하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도 아마 이 이유일 겁니다.
좋아하는 일이 분명한 사람은, 태생적으로 누군가 시키는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인간은 미래에 할 일이 있어야만 계속 숨을 쉰다고 본다. 그 할 일이란 매일 하는 직장에서의 업무 같은 게 아닌, 앨범이 발매되면 들어보기, 게임이 출시되면 해보기, 영화 나오면 극장에 가기 등이다. 이런 할 일이 많은 사람이 건강하다. 그래서 난 내가 어린 시절에 다양한 '할 것'을 확보해 뒀던 게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덕분에 정신적 근육이 단단한 사람이 되었으니까.
인생을 살아가는 큰 원동력 중 하나는 미래를 기다리는 것이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미래에도 계속해서 나오고, 발전하고, 그걸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큰 힘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남들 하는 공부를 하지 않고, 책만 열심히 읽은 아이였습니다. 그 사실이 제20대 시절을 괴롭힌 원인이기도 했는데, 지금에 와서야 생각이 좀 바뀌더군요. 그때 책을 좋아했던 덕분에 제 인생에서 다시 방향을 잡는데 큰 힘이 되어주었고, 앞으로도 평생 좋아할 취미를 얻었으며, 제가 힘들고 괴로울 때에도 책을 읽으며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학업을 게을리했기 때문에, 20대에 학벌로 많은 열등감을 느끼고 스트레스도 받았고 남들보다 다소 뒤처지게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제 평생을 기준으로 다시 바라보게 된다면 어린 시절의 그 독서는 저에게 꼭 필요한 일이 아니었나 싶네요.
김동식 작가님의 인생과 가치관, 생각을 좀 더 보고 싶으신 분이라면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이라는 에세이를 읽는걸 적극적으로 추천합니다. 주물공장에서 기계적으로 일을 하던 노동자였지만,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며 꿈을 이룬 작가님의 이야기만으로 읽는데 많은 용기와 위로를 주더군요.
일상의 소소한 일들로부터 작가님의 생각을 잔잔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던 책.
한 번쯤 읽어보시길 권장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