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공부가 안된다면.
민국은 흔하디 흔한 대한민국 공시생이었다. 딱히 하고 싶은 일은 없지만, 중소기업을 가고 싶지는 않았던 인서울 4년제를 나온 청년. 아예 철이 없는 건 아니었기에, 몇 군데 중소기업을 다녀보긴 했다.
한 때 열정을 다 바쳐 야근도 다 해보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몸과 마음만 피폐해졌고, 통장 잔액도 항상 여유롭지 않았다. 그는 결국 망설임 없이 사표를 썼다.
그 후, 잠깐의 방황 끝에 그는 공무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재취업을 하기는 쉽지 않았고, 나이도 문제가 되었다. 입사에 있어 가장 차별이 적은 곳은 결국 공무원이라 생각한 그는 망설임 없이 도전했다. 민국은 그동안 모은 돈과, 부모님의 지원을 고려하면 적당한 고시원에서 인강을 들으며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는 짐을 싸들고 성천시로 향했다. 노량진을 가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첫 자취 생활은 노량진이었기에, 이제는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 값싼 컵밥이나, 고시원 같은 것은 없었지만, 그만큼 쾌적한 생활이 가능한 곳이었다. 그의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 성천시에 좀비 사태가 터지기 전까진 말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스터디카페에서 공부를 하던 날이었다.
3개월 치 요금을 결제 한 민국은 통장 잔액을 보고 약간의 한숨을 쉬었다.
‘아, 이거 저녁은 라면이나 먹어야겠네.’
자취방에서 공부가 도저히 안되던 민국은, 최근 들어 스터디카페를 다니기 시작했다.
걸어서 5분 거리였고, 커피와 간식 무료 제공에다 깨끗한 좌석들은 공부하기 쾌적한 공간이었다.
문제는 가격. 한 달에 15만 원이 넘어가는 지출은 민국의 계획에 없는 지출이었다.
공부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마인드였기에, 아깝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돈을 충당하기 위해 얼마 없는 문화생활비와 용돈까지 다 써버리니 하루하루가 우울했다.
일주일 내내 밥만 먹으며 살던 민국의 인내심은 빠르게 동이 났다.
'도저히 이렇게는 못 살겠다.'
민국은 스터디카페 비용만큼 딱 일일알바를 뛰기로 결정했다.
딱 이틀 정도만 갔다 오면 충분했다. 일요일은 공부를 쉬는 날이었으므로, 격주로 갔다 오면 괜찮을 것 같았다.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뒤적거리며 고민에 빠진 그때, 난데없이 스터디카페에 사이렌이 여기저기서 울렸다.
[성천시 이상 징후 발생]
[현재, 성천시 곳곳에서 이상 징후를 보이는 시민들이 다수 발생하여 시민을 공격 중입니다. 외출 중인 시민은 신속히 귀가하시기 바라며, 별도 안내가 있을 때까지 외출을 금지합니다.]
조용한 스터디카페에서 울리는 소리는 요란했다. 처음에는 문자의 내용에 반신반의하던 그들이었지만, 누군가의 절규에 사실임을 깨달았다.
"저... 저기! 사람을 뜯어먹고 있어요!!"
눈이 빨갛게 충혈되고, 온몸에 핏줄이 징그러울 만큼 돋아난 '좀비'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스터디카페에 있던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불과 5분 전까지만 해도 조용했던 곳은 사람들의 비명으로 아비규환이 되었다.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야 됩니다! 저거 누가 봐도 좀비잖아요!"
어떤 남자가 소리쳤다.
"무슨 소리예요? 여기서 틀어박혀서 진압될 때까지 참는 게 낫죠."
다른 여자가 반박했다. 민국은 누구의 의견을 들어야 할지 알 수 없었으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여기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의 본능적인 직감은, 이곳을 탈출해서 자취방으로 도망가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창문 밖의 좀비는 사람을 뜯어먹는 데에 정신이 팔려 있었고, 다른 좀비들은 보이지 않았다.
민국은 미친 짓이지만,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터디 카페에는 난간을 통해 나갈 수 있는 뒷문이 존재했다. 뒷문으로 나가서, 조금만 뛰면 민국의 집은 바로 코앞이었다. 그동안 수험생활을 위해 열심히 달리기도 했었기에, 그는 자신 있었다.
그냥 스터디카페에서 버티는 것도 괜찮았지만,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여기는 출입구가 얇디얇은 유리로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출입구뿐만 아니라 각 스터디룸도 투명한 유리들로 구분되어 있었다. 인테리어로는 예뻤지만, 방호용으로는 최악이었다. 좀비가 조금만 힘을 줘도, 부서질게 뻔한 이곳은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민국은 잠깐 고민했다. 이들을 도와서, 탈출을 도울 것인가? 아니면 그냥 혼자 살아서 도망갈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사실, 더 이상 고민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그냥 같은 공간에서 인사도 없이 공부만 하던 사이가 아니던가. 그들의 목숨까지 왜 굳이 챙겨야 하는가? 비염 때문에 재채기 조금 했다고 눈치도 주던 사람들이었다. 고민이 끝난 민국은 짐을 챙긴 후, 사람들을 비집고 나갔다.
사람들은 아직도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민국은 출입구를 막고 있는 남자 한 명을 어깨로 툭 친 뒤, 문밖으로 나갔다.
"어어? 거기 어디 가요?"
어깨가 밀쳐진 남자가 소리쳤다. 민국은 소리를 무시한 채, 뒷문으로 나갔다.
뒷문을 통해 발코니로 나가자, 거리는 아수라장이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 울부짖고 도망치는 소리가 들렸다.
민국은 빠르게 거리를 스캔했다. 사람들은 많았지만, 좀비는 보이지 않았다.
아까 사람을 물어뜯은 좀비는 건너편에 있는 게 분명했다. 지금 그 좀비 하나를 보고, 사람들이 전부 정신이 나간 듯했다. 지금이 아니면 도망칠 기회는 없다. 확실하다.
민국은 난간을 붙잡고, 몸을 늘어뜨려 아래로 뛰어내렸다. 높이는 그다지 높지 않았기에, 가볍게 착지한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민국이 사는 원룸까지는 100미터도 되지 않았다. 아무리 오래 걸려도, 10초면 충분했다.
그 10초는 민국의 인생에서 가장 길게 느껴졌지만, 그는 별 어려움 없이 원룸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빠르게 연 뒤, 허겁지겁 본인이 사는 4층까지 올라간 민국은 자신의 방에 도착했다.
"하아.. 살았다."
아수라장인 바깥처럼, 민국의 방도 아수라장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민국의 방은 1시간 이내에 정리가 가능했다는 것. 바깥의 소란은 며칠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비명 소리는 점점 커지고, 동시다발적으로 들리기 시작했고, 그에 따른 좀비의 소리도 점점 커졌다. 민국은 커튼으로 창문을 부리나케 가린 뒤, 살짝 들추어 바깥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두렵지만, 방에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바깥을 바라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거리에 한 두 마리만 있던 좀비들은 어느새 무리를 지은 채,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은 영화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좀비가 되어버린 그들은 사람보다는 야생동물에 가까웠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그들의 속도를 보며, 민국은 자신이 운이 좋았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아무리 빨라봤자, 저 좀비들의 속도만큼 나올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물어뜯기고 있었다. 그 참혹한 현장을 바라보던 민국은, 4층에 살고 있음에 안도했다. 엘리베이터도 없어 생활에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었지만, 이럴 때만큼은 큰 도움이 되었다. 좀비가 계단을 타는 것을 바라본 뒤론 더더욱. 사람처럼 두 발로 가지런히 걸어가진 않았지만, 네 발로 기어가며 올라가는 모습은 공포스러웠다.
좀비 사태가 터진 지 30분쯤 지났을까.
타타타탕.
투두두두두.
멀리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군부대가 출동한 듯했다. 어쩌면, 예비군 부대인지도 몰랐다. 보통 같으면 심장이 철렁할 총소리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안심되는 소리였다. 민국은 그제야, 스터디카페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살았을까? 죽었을까? 만약, 사람들과 스터디카페에서 버텼으면 다 같이 구조될 수 있었을까?
그 답은 좀비사태가 진정된 이후에 알게 되었다. 처참하게 부서진 스터디카페의 모습을 통해, 민국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죄책감과 씁쓸함은 어쩔 수 없었다.
좀비사태가 터져도, 국가가 전복되지 않는 이상 사회는 꽤 정상적으로 흘러갔다.
도시 하나가 마비된 정도로는 사회의 흐름에 큰 영향을 줄 순 없었다.
정부는 성천시의 생존자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중에 하나는, 성천시의 수험생들이 정상적으로 시험을 응시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각종 기사시험부터, 공무원 시험까지 감독관과 경호원들을 고용하여 불이익이 없도록 한 것은 좋았다. 문제는, 민국은 아직 시험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초보 공시생이라는 점이었다. 그는 아직, 기출문제 회독도 제대로 못한 수험생이었다. 그에겐 시험장소가 아니라 공부장소가 중요한 문제였다.
좀비 사태가 터진 후, 각종 재난 지원과 보급품으로 인해 생활비가 거의 안 들게 된 점은 너무나도 좋았다. 기본적인 의식주만으로도 100만 원 이상은 무조건 고정지출이 발생했는데, 이 돈들을 아끼게 되며 스트레스가 줄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하게 되었다.
민국은 집에서 계속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침대, 컴퓨터, 핸드폰이 없는 곳에서만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오전 9시부터 밤 10시. 그가 스터디카페에서 공부하던 스케줄은 더 이상 이용할 수가 없었다.
스터디카페는 안전상의 이유로, 이용이 불가하거나 오후 3시까지만 짧게 이용할 수 있었다. 그 마저도, 장사가 잘 되지 않아 폐업을 하기 일쑤였다.
민국은 미칠 노릇이었다. 집에서 공부가 안 되는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했다.
'나 같은 사람이 분명 있을 텐데. 다들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 걸까?'
생존자들 중에, 현 상황에 안주하고 있는 사람도 많겠지만 미래를 바라보는 이들도 분명 있을 터.
특히 수험생들은 합격이라는 미래를 그리는 존재들이기에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 미래에 좀비사태는 생활비에는 도움을 주긴 했지만, 공부에는 악영향이었다.
그는 인터넷과 메신저 채팅방 등을 여기저기 뒤져본 결과, 관심이 가는 곳 하나를 찾아냈다.
<성천시 합숙 스터디 모집>
<고시원에서 같이 동고동락하며, 공부할 스터디원을 모집합니다. 월 20만 원에 고시원 독서실 24시간 이용이 가능하며, 숙박까지 가능합니다.(식사는 개인 보급품 이용 바람) 관심 있는 분은 아래의 연락처로 문의 부탁드립니다.>
'월 20만 원이면 내가 다니던 스터디카페랑 가격이 비슷하잖아? 근데 숙박이 가능하다고?'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민국은 홀린 듯이 연락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