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천시 수험생 이야기 2편

고시원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려는 민국.

by Nos

민국이 스터디 모임 합류 문의를 넣은 다음 날, 문자로 간단하게 연락이 왔다.

[오후 2시에 고시원에서 간단하게 면담이 있을 예정입니다. 면담 후, 입주 날짜와 숙박 호실을 정한 뒤 바로 스터디 모임에 합류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뭔 스터디 모임에 면담까지 해? 아니지, 숙박까지 같이 하며 지낼 테니까 정상인지 판별은 하겠다는 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좀비 사태 속에서 제정신이 아닌 사람도 꽤 있을 테니 합리적인 절차라고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형식적인 절차일 수도 있으니, 민국은 바로 입주하기 위해 옷가지와 몇 가지 짐들을 간단히 꾸렸다. 이미 놀만큼 놀았던 민국은, 더 이상 공부를 지체할 수 없었다.

공부에 필요한 물품들을 전부 챙긴 민국은 약간 설레는 마음을 품고 집 밖을 나섰다.




고시원은 민국의 원룸에서 그렇게 멀지 않았다. 큰 사거리를 지나서 골목으로 조금만 진입하면 바로 있었다.

오후는 꽤 안전한 시간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지나가는 골목에 좀비 한 마리가 민국을 발견하고 다가오려 했지만, 철조망에 갇혀 더 이상 다가오지 못했다. 이미 굶을 대로 굶어 뼈가 앙상해진 좀비는 무섭지 않았다. 첫날 좀비 사태가 터졌을 때의 그 빠르고 쌩쌩한 좀비들이 무서웠지, 지금의 저 좀비는 그냥 굶주린 노숙자나 다름없었다.


철조망 앞에는 썩은 고기들이 널려 있었다. 좀비를 굶주리지 않게 하기 위한 정부의 방책이었다.

사람은 굶을수록 힘이 빠지는데, 좀비는 생존 본능 때문인지 몰라도 더 흉포해졌다.


'저거, 그냥 쏴버리면 안 되나? 내 참, 저것들이 인간으로 다시 되돌아올 수는 있는 건지 원.'

한 때 인간이었단 이유만으로, 좀비들은 함부로 죽일 수 없었다. 철조망에 가둬 격리시킨 좀비들은 동물원의 동물과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


"크르르르.."

침을 질질 흘리며 민국을 바라보는 모습은 여전히 흉악했다. 철조망 밑에 붙어있는 안내문에는 "접근하지 마시오."라는 짧게 경고문구가 적혀 있었다.

'웃기고 자빠졌네. 진작에 정상화될 수 있는 도시가 이것들 되살려보겠다고 질질 끌기는.'


사람으로 되돌아오더라도, 심각한 영양결핍이나 신체 훼손으로 예전으로 되돌아가긴 힘들 것이다. 그들과 관련하여 또 머리 아픈 논쟁과 정책토론들이 이어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이미 공무원 조직에서는 비상대책위원회, 각종 TF 팀들이 조직되어 성천시와 관련된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이것 때문에 공무원 채용 티오가 좀 더 늘어날 전망이라는 예측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좀비들은 이상하게도 해가 지면 공격성이 짙어졌다. 처음에는 밤낮없이 공격성을 드러내던 좀비들은 이제 낮에는 조용하고 밤에 흉악해졌다. 전문가들은 당연히 원인을 몰랐고, 추측만 난무했다.

야간에도 사실 위험성은 크게 없었다. 다만, 음주로 인한 부주의로 좀비에게 물려 감염되는 사례가 꾸준히 일어났기에 정부가 통제할 뿐이었다. 위험지역에는 경찰이 음주측정기를 들고 대기하기도 했다.


"여기부터 통제구역이니, 조금 돌아서 가셔야 됩니다."

"아, 알겠습니다."


원래는 없었던 구역에 폴리스 라인 등이 쳐져 있었다. 사람이나 좀비가 죽은 경우에 이렇게 접근이 제한되곤 했다. 소독약이 강하게 나는 걸로 봐서, 아마 누군가 좀비를 살해한 듯 한 모양이다.

묘한 긴장감이 퍼져 있는 길거리를 돌아, 사거리를 지난 민국은 어느덧 고시원에 도착했다.




도착한 고시원은 비정상적 일정도로 깔끔했다. 새롭게 페인트를 칠한 듯한 고시원은 이곳 풍경과 어울리지 못해 이질적이었다. 기이하게까지 느껴지는 모습에 민국은 잠깐 망설였지만, 여기까지 와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민국이 핸드폰으로 연락하자, 현관에서 남자가 나와 문을 열어줬다.

스포츠머리에, 면도까지 깔끔하게 한 남자였다.

"아, 오늘 오기로 한 김민국 씨인가요?"

"네, 맞습니다."

"반갑습니다. 빨리 안으로 들어오시죠."


고시원의 내부는 외견과 비슷했다. 화이트톤으로 깔끔하게 꾸며진 곳은 조그마한 로비도 있었다. 택배수납함과 분리수거함 등이 출입문 근처에 비치되어 있는 것이 인상 깊었다.

로비의 안쪽에 놓인 테이블로 안내한 남자는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캔커피 두 개를 들고 왔다.

"마시면서 간단한 얘기만 나눠볼까요?"

"네, 좋습니다."

따뜻한 캔커피의 감촉은 기분 좋았다.

"무슨 공부하세요?"

"저는 공무원 9급 준비 중입니다. 직렬은 환경 쪽입니다."

"아, 공무원 준비하시는구나! 저희 쪽에도 공무원 준비하시는 분이 한 두 분 계세요."

남자는 씩 웃으며 말했다. 이빨이 참 가지런하고 깨끗했다.

남자가 계속해서 말했다.

"여기까지 오셔서, 돈까지 지불해 가며 공부하려는 이유를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집에서는 도저히 공부가 안 돼서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이랑 같은 공간에서 독서실처럼 공부하는 게 저한테 딱 맞는 거 같아서요."

"그렇죠, 혼자서는 그냥 공부가 안돼서 오신 거죠?"

"네."


남자는 민국을 약간 빤히 쳐다봤다. 민국은 긴장했다.

"흠.. 딴 소리긴 한데, 좀 잘생기셔서 큰일이네요."

이건 또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아, 딴 게 아니라 여기 오신 분들 중에 갑자기 연애하시는 분이 계셔가지고. 다들 그냥 모른 척해주느라 진땀 빼고 있거든요."

"아, 저는 시험이 급해서 연애할 생각 따윈 없습니다."

민국의 말은 진심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연애는 사치 중에 사치였다.

그 뒤로도 남자는 여러 가지 질문을 했지만, 시시콜콜한 것이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 공부했냐 등등. 뭔가 친목을 하려는 느낌에, 민국은 에둘러 대답했다.

"그럼, 이제 지내게 되실 방귀경 좀 하실래요? 보통 제가 간단하게 청소는 해드리는데, 추가적인 청소는 입주하시면 직접 하셔야 됩니다."

"네, 제가 당연히 청소해야죠."

민국의 방은 2층이었다. 고시원은 생각보다 넓고 컸다. 복도도 넓었고, 문 사이의 간격도 넓었다. 고시원이 아니라 원룸 같았다.


"지내게 되실 호실은 207호입니다. 아, 참고로 독서실은 제가 소개를 안 해드렸는데 1층에 있어요. 한 번 구경해 보세요."

남자의 안내에 따라 207호에 들어선 민국은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방이 넓었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옆에 화장실이 있었고, 조금 더 들어가서 문을 열면 침대와 책상, 옷장, 조그만 냉장고가 구비되어 있는 방이 펼쳐졌다. 성인 남성 3명이 누울만한 빈 공간도 남아있는 걸로 보아, 4평은 되는 듯했다.

"음.. 방이 생각보다 넓은데 월세가 왜 이렇게 싸죠? 여기 사람 죽었나요?"

민국은 서슴없이 말했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이렇게 조건 좋은데 가격도 싼 매물은 무조건 의심부터 해야 하는 법이다.

남자가 헛기침을 했다.

"어우, 엄청 저돌적이시네.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여기 있던 분이 좀비가 돼가지고 그렇습니다."

"좀비가 된 사람들이 몇십만 명은 될 텐데, 겨우 그거 가지고요?"

남자는 뒤통수를 긁었다. 표정도 약간 찌푸린 걸로 보아, 말하기 싫은 느낌이었지만 민국은 확실하게 알아야 했다. 말없이 남자를 응시하며 민국이 대답을 채근하자, 남자는 주저하며 말했다.


"바로 이 방 안에서, 좀비한테 물렸거든요."

"아, 역시 그런 거였군요. 어쩌다가.."

남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게요. 왜 문을 열어서 이 방안에 물려서 죽었는지 원. 군인 한 명도 이곳에서 물려서 죽었어요. 총 3명의 남자가 죽은 셈입니다."

"다른 방들은 가격이 싼가요?"

"음.. 다른 방도 사실 좀비 사태 이전보다 가격이 내려가긴 했지만, 이 방이 제일 쌉니다. 다른 방은 40만 원 정도예요."

"이 방부터 빼고 싶어서, 20만 원으로 싸게 올리셨던 거였군요."

남자가 난처해했다. 표정에 약간 미안함이 묻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본인도 양심에 가책을 조금 느끼는 듯했다.

"네,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이 방으로 하겠습니다."

"헉, 괜찮으시겠어요?"

"네, 전 어차피 귀신이나 이런 것 하나도 안 믿거든요. 좀비는 그렇다 쳐도, 귀신같은 게 진짜 있겠습니까. 그냥, 오늘부터 바로 입주할게요?"

민국은 가지고 왔던 트렁크 가방을 현관으로 밀어 넣었다. 남자는 트렁크를 쳐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아, 왜 가방을 들고 오셨나 했더니, 바로 입주하실 생각이었구나. 저야 감사하죠. 밑에 내려가서 입주계약서 간단하게 작성하실까요?"

"네, 그렇게 합시다."


민국과 남자는 1층에 내려가서 사무적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독서실 구경까지 마쳤다.

스터디 모임에 대한 규칙은 별 거 없었다. 매일 아침 9시까지 모여서 간단하게 점호를 하고, 전날 공부량을 말해준다. 휴일은 각자 원하는 날로 정해서 하되, 일주일에 최대 2일까지 제한한다.

저녁 공부는 밤 10시까지는 기본적으로 유지하고, 그 이상의 시간은 자율 참여로 한다.

재밌는 것은, 직장인처럼 연차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었다. 1년 기준으로 15일의 연차 제도를 운영해서, 각자

원하는 날에 휴가신청서를 작성해서 남자한테 제출하는 것이었다.

민국은 연차 제도는 좀 의아했지만, 딱히 큰 의문을 품지는 않았다.

'연차 안 쓰면 연차수당이라도 주나? 웃긴 일이네.'


회비를 바로 결제한 민국은, 본인의 방으로 돌아와서 소지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를 다 하고 나니, 그제야 고시원에 입주한 게 실감 났다. 너무 무턱대고 입주한 건 아닌가 고민했지만, 어차피 기존에 쓰던 스터디카페 비용과 얼마 차이 나지 않으니 상관없다.


챙겨 온 책 몇 권을 들고, 독서실에 도착한 민국은 의아함을 느꼈다.

독서실 자리는 넉넉하게 40석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앉아 있는 사람은 5명도 되지 않았다.

그중에 1명은 자리에 엎드려 낮잠을 자고 있었고, 다른 1명은 열심히 핸드폰 게임 중이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꽤나 체계적인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는데, 독서실에서 핸드폰이나 낮잠 같은 것은 통제를 안 하는 것인가?

그건 개인의 자율인가?

설마, 공부 말고도 다른 목적이 있는 곳인가.


민국은 207호라고 적혀있는 독서실 책상에 앉았다.

사물함까지 구비되어 있어 공부하기 편한 책상이었다.

다만, 이상하게도 너무나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뭐, 주기적으로 청소하는 거겠지.'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려던 민국은,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다른 사람의 숨소리마저도 느껴지지 않는 이 조용함.

이상하게 가슴이 갑갑했다. 민국은 바지 주머니에 넣었던 핸드폰을 조심히 손으로 꺼냈다.

화면을 켜지 않은 핸드폰을 자연스럽게 쥔 뒤, 각도를 틀었다.

민국의 뒷모습이 보이도록.


그 화면에는 민국을 노려보는 남자의 모습이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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