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리는 첫 사회생활 시작
서울에 상경한 민기는 바쁜 나날을 보냈다.
상경해서 한 것이라고는, 이삿짐을 정리하고 생활용품들을 사고 꾸미는 것뿐이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저렴한 가구들을 샀기에 혼자 힘으로 조립해야 했다. 서랍, 선반, 책상, 행거 등을 조립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흘렀다. 그저 집안만 정리하다 보니, 출근 전날이 되었다.
민기는 허망했다. 제대로 쉰 적도 없는데 벌써 출근을 해야 한다니?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 되었는데?
갑자기 피로가 몰려와 침대에 풀썩 누웠다. 옵션으로 주어진 침대였지만, 생각보다 푹신한 매트리스의 안락감이 기분 좋았다.
‘아.. 하루만 더 주어지면 좋겠다.’
아침부터 밤까지, 정말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었다. 이제부터 6개월간은 제대로 쉬지도 못할 텐데, 시간을 너무 헛되이 보낸 느낌이다. 시간은 멈추면 좋겠다 싶을 때만 항상 쏜살같이 흘렀다.
내일 출근할 때 입을 정장을 다시 챙겨둔 민기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 날, 오전 7시 30분에 일어난 민기는 여유롭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지금부터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씻고 준비해도 시간은 충분했다. 냉동실에서 주먹밥을 꺼내 간단히 데우고, 그 후에 커피도 마시니 눈이 번쩍 뜨였다. 샤워를 하고, 옷까지 입고 나니 8시 20분. 좀 늦장을 부려서 그런 것일까. 그래도, 지금 출발해도 회사까지는 충분히 여유 있다.
몸에는 힘과 에너지가 넘쳤지만, 손 끝이 파르르 떨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한 차례 심호흡을 한 뒤, 힘차게 문을 연 민기는 쏟아지는 햇빛에 잠시 눈을 찌푸렸다. 오늘따라 유독 밝은 햇빛을 손으로 가리며 나오자,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횡단보도를 하나 두고, 많은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급한 사람은 신호등을 무시한 채 뛰어가기도 했다. 저 멀리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는 사람들도 합류하자, 금세 사람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사거리 교차로 신호등이 보행자 신호로 바뀌자, 일제히 쏟아지는 풍경은 꽤나 멋있었다.
그 속에 찌든 직장인의 피로는 아직 그가 알 수 없었다.
민기는 바삐 움직이는 직장인들을 보며, 회사 근처에 자취방을 잡은 자신의 판단이 맞았음을 깨달았다.
매일 아침마다 저렇게 전투적으로 출근을 하면 얼마나 힘들까.
아침의 분주한 출근길 속, 홀로 여유를 즐기던 민기는 어느덧, 근무지 앞에 발길이 멈췄다.
그때부터, 민기의 마음에는 여유가 사라졌다. 그는 잠깐 심호흡을 한 후, 정문을 열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의실로 들어가자 인사담당자가 민기를 반겨주었다.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여기서 잠깐 대기하면서, 근로계약서 써 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회의실 안에 동기들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다들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활발해 보이는 인상의 동기들도 몇몇 있었지만, 입을 꾹 다문 채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민기를 포함한 동기들은 총 6명.
얼굴을 보니, 전부 자신과 비슷한 또래 같았다. 동아리나 공모전에서 만났다면, 이미 반갑게 인사도 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저 눈치만 보면서 애꿎은 핸드폰만 톡톡 건들고 있었다.
인사담당자는 민기의 근로계약서를 확인한 뒤, 회의실 밖을 나가버렸다. 담당자가 사라지고 난 뒤의 회의실은 숨 막힐 듯한 어색함만이 흘렀다.
이 적막을 깨뜨린 건, 동기 중 한 명의 느닷없는 제안이었다.
“저희, 그래도 몇 달 동안 같이 지낼 사이인데 자기소개라도 간단히 할까요?”
“앗, 그럴까요!”
“그러면, 저부터 먼저 할게요!”
민기는 딱히 자기소개를 하고 싶진 않았지만, 이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제안한 사람부터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차례차례 발표하는 모습이 아직 대학 동아리 같았다. 그들 중에는 경력이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없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심지어 아직 대학생도 있었다.
민기의 차례가 되었다.
“저는 김민기라고 합니다. 원래 경남 쪽 사람이고요. 이번에 졸업하자마자 운 좋게 인턴이 구해져서 일하려고 상경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네, 잘 부탁드려요.”
민기의 소개를 끝으로,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그 침묵에, 타이밍 좋게 인사담당자가 들어왔다.
“다들 얘기 한 번씩 나누셨나요? 이제, 직원분들에게 인사드리러 가볼까요?”
“넵!”
담당자의 말에, 다들 일제히 일어나 뒤를 따랐다.
또각또각 거리는 구두소리가 다들 자기만의 박자에 따라 들리다가, 이윽고 하나의 박자로 맞추어졌다.
한 걸음마다, 민기의 심장은 두 번 박동했다. 사무실에 거의 도착하자, 그의 심장박동은 세 번으로까지 늘어났다. 사무실은 평범했다.
드라마에서 묘사한 사무실 그대로, 좁지도 넓지도 않은 적당한 책상에 파티션들로 나뉜 공간들.
그 하나의 공간마다 직원들이 앉아 있었다. 드라마는 비현실이었지만, 지금의 이 공간은 민기에게 지극한 현실이었다.
그 현실감에 그의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담당자가 적당히 안쪽으로 들어오고 난 뒤 걸음을 멈췄다. 자연스럽게 민기와 동기들은 멈추어 앞을 바라보았다. "오늘부터 우리와 같이 일하게 된 신입 인턴들입니다. 다들 환영해 주세요."
담당자의 말에 직원들이 고개를 돌렸다. 다들 알게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시선은 좀 따가웠지만, 미소는 따뜻했다. 민기는 그들의 눈보다 입을 보았다. 떨리는 심장이 그나마 좀 진정되는 듯했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일하게 된 김민기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임연희라고 합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차례차례 인사가 시작되는 풍경은 조금 코미디 같았지만, 민기에겐 다큐였다.
동기들도 민기와 다를 바 없는 듯했다. 목소리의 떨림이 민기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았다.
인사를 다 마치고 나자, 담당자는 걸음을 되돌렸다.
“저희가 층이 여러 개라서, 각 층마다 인사를 드려야 해서요. 다시 저 따라오시면 됩니다.”
’맙소사, 이걸 여러 번 또 해야 한다고?‘
민기는 벌써부터 피곤함을 느꼈다. 그 피곤함은 동기들도 마찬가지였는 듯, 그들의 걸음소리는 처음보다 약간 둔탁해졌다.
인사를 다 마치고 난 뒤, 담당자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안내받은 민기.
부서마다 한 명씩 인턴이 배정되었는지, 인턴들은 각 층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의 부서는 가장 꼭대기 층에 있었고, 사람도 제일 적었다.
처음에 담당자가 그냥 던지다시피 안내했기에, 민기는 쭈뼛쭈뼛 다가갔다.
그 모습을 제일 먼저 발견한 팀원 중 한 명이, 민기를 반갑게 맞이해 줬다.
“어, 오늘 오시기로 한 인턴 분 맞으신가요? 저는 김인호 대리입니다.”
김인호 대리의 인사에, 다른 팀원들도 덩달아 일어나 인사했다.
“반가워요. 저는 아마, 사수역할을 하게 될 이한수 사원입니다.”
“아휴, 젊은 사람이 오셨구나, 저는 이미란 팀장이고 김민영 과장님은 오늘 출장이라 못 뵐 수도 있겠네요. 일단, 이 자리에 앉으세요.”
민기를 포함하여, 총 5명밖에 되지 않는 조그만 부서였다.
옆에는 민영과장님의 자리였고, 맞은편에는 김인호대리와 이한수 사원의 자리, 제일 안쪽에는 이미란 팀장이 앉아있었다. 책상은 생각보다 넓었다. 그의 자취방에 있는 조그만 책상보다 더 넓은 듯했다. 모니터도 2개나 주어져 있었다.
그 옆으로는 각종 필기구, 노트, 사업 안내 책자 등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티슈와 물티슈까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본인의 자리를 신경 써서 정리해 준 게 분명했다.
민기의 시선을 끈 것은 파티션 위에 조그만 명패였다. "김민기 인턴"
그는 감격스러워 명패를 잠깐 바라봤다. A4에 단순하게 프린트해서 꽂아둔 명패일 뿐이지만.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꺼냈다. 예쁘게 명패를 담고 무심코 찍었다가, 무음 카메라가 아님을 깨닫고 화들짝 놀랬다.
혼자 좀 부산스럽고 요란했지만 팀원들은 바빴는지 딱히 터치하지 않았다. 민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화 소리와 키보드 소리가 간간이 들리는 동안, 그는 부산스럽게 자리를 정리하고 사업 책자를 열심히 읽으며 대기했다.
알듯 모를듯한 내용들에, 머리가 뻐근해질 즈음 김인호 대리가 말했다.
“어, 이제 점심 먹으러 갈까요? 인턴 분도 오셨는데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팀장님.”
이한수 사원이 바로 맞장구쳤다.
“우리 항상 가던 부대찌개집 가시죠? 거기 만한 데가 없죠 사실. “
“네 뭐.. 사실 거기 말고는 이 주변에 먹을 데가 없네요.”
부대찌개는 확정인 듯했다. 김인호 대리는 그제야, 민기의 존재를 깨닫고 물었다.
“어 민기 씨. 부대찌개 못 먹지는 않죠? 당연히 먹을 거라 생각해서 물어보진 않았는데..”
약간 난처해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민기는 그 배려심이 기분 좋았다.
“네, 당연히 잘 먹습니다.”
“그러면 먹으러 가시죠.”
부대찌개 집은 민기의 집 근처에 있는 곳이었다. 부대찌개 집에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틀면, 민기의 집이 나왔다. 그래서였는지, 순간적으로 집으로 가는 착각을 했다.
“여기 부대찌개가 맛있어요. 좀 조촐해 보일 수도 있는데, 진짜 맛있어서 가는 거예요.”
이한수가 넉살 좋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맛없어도 잘 먹습니다 저는.”
환영회로 부대찌개를 사주는 게 머쓱해서 그러는 걸까? 민기는 어차피 공짜 점심인 것 만으로 기분이 좋았기에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부대찌개를 한 입 먹는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진짜로 맛있어서 데려온 것이 맞았다.
“헉, 이거 진짜 맛있네요.”
“그렇죠? 저희가 괜히 데려온 게 아니라니까요.”
집 근처에 이렇게 맛있는 부대찌개 집이 있었다니. 민기는 만약, 동기들과 회식을 하게 된다면 이곳에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맛있는 부대찌개 덕분인지, 아니면 수평적인 분위기 덕분인지 몰라도 점심 식사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그래서, 은근슬쩍 호구조사를 당하면서도 딱히 불편함을 못 느꼈다.
본가가 어디인지, 여자친구는 있는지, 어디서 출퇴근하는지 등등. 사람에 따라 예민할 수 있는 질문이었지만, 민기는 딱히 상관없었다.
오히려, 대답할 때마다 귀 기울여주고 맞장구 쳐주는 모습들이 우쭈쭈 하는 느낌이라 부끄러웠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사회에 뛰어든 인턴이라서 이렇게 대해주는 건가? 그래도, 건장한 성인 남성인데 이런 취급은 뭔가 좀 그랬다. 떨떠름한 기분이었지만, 나쁘진 않았다.
부대찌개를 먹고 난 뒤에는 팀장이 개인적으로 커피까지 쐈다.
겨울이지만 무조건 아이스를 마시는 민기는, 공짜커피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 좋아진 기분과, 카페인의 효과 덕분일까. 오후의 사업 공부는 수월했다.
읽으면서 모르는 내용들도 있긴 했지만, 이한수 사원이 힌트를 친절하게 말해줬다.
“어차피, 읽어봤자 별 도움 안 돼요. 저희가 부탁하는 일만 잘해주시면 됩니다. 아, 그리고 할 일 없으면 공부 같은 거 하셔도 돼요.”
너털웃음을 짓는 이한수 사원의 말에, 민기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렇다고 진짜로 사업 공부를 안 할 수는 없지만, 시험공부하듯 암기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렸다.
적당히 공부를 한 민기는, 메신저를 켰다. 이한수 사원이 친절하게 깔아준 메신저에 접속하자, 벌써 메시지가 와 있었다. 동기들로부터였다.
“저희 빠르게 회식 한 번 할까요?”
“헉, 좋아요!”
“어, 제가 술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아시고..”
이미 단체 메신저방이 만들어진 걸 본 민기는, 그들의 속도에 놀랐다.
제일 늦게 메시지를 확인한 민기는 조용히 타자를 쳤다.
“이번 주 금요일에 가요.”
메신저 방을 닫고 나서, 그는 다시 조용히 사업공부를 했다. 팀원들은 아무런 터치를 하지 않았기에, 민기는 심심했다. 공부를 하다가 수시로 메신저 방을 들락날락거리다 보니, 퇴근시간이 가까워졌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는데도, 피곤했다. 아침부터 긴장을 좀 많이 해서 그런 걸까. 긴장이 풀리자, 피로가 확 몰려온 느낌이었다.
“어, 벌써 6시네. 민기 씨는 어서 들어가 보세요.”
“엇, 알겠습니다!”
팀원들은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민기는 그 모습이 약간 싸했지만, 시키는 대로 일어나 퇴근했다.
“내일 뵙겠습니다.”
“네, 들어가세요~“
가볍게 인사를 하고 난 뒤, 민기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내려가는 층마다, 동기들이 탑승했지만 직원들은 없었다.
“오늘 다들 야근하신다던데요? 많이 바쁘신 거 같아요. “
“헐, 저희도 그렇던데!”
“설마, 저희도 야근하진 않겠죠?”
“에이, 인턴은 웬만하면 야근 안 해요.”
월요일부터 야근을 하는 직원들의 모습에, 다들 불안한 모습이었다.
“에이, 야근하면 하는 거고. 금요일에 술이나 먹죠? “
“그렇죠, 뭐 야근해 봤자 얼마나 하겠어요.”
“그럼, 내일 봬요! “
“넵, 내일 봅시다.”
인사를 마친 민기는 홀로 횡단보도를 건너 집에 가기 시작했다. 6시지만 아직 어둑어둑한 밤.
번화가가 아닌 서울의 풍경은 민기가 살던 곳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네온사인들이 흩어져 제각기 빛을 내니, 그 모습은 조금 초라했다. 가로등은 듬성듬성 나 있어, 어둠과 빛이 도로에서 영역다툼 중이었다.
출근길과 퇴근길은 방향만 반대일 뿐인데, 보이는 풍경이 달랐다.
햇살을 받아 산뜻하던 가로수는 달빛 아래에서 쓸쓸해 보였다.
여기저기 걸어가는 직장인들의 표정은 아침보다 묘하게 밝아보였다. 다들 퇴근이 즐거운 듯했다.
점심때 먹은 부대찌개집을 지나, 집에 도착한 민기는 하루를 복기했다.
긴장됐던 아침,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 사업 책자, 친절했던 선배들, 재밌어 보이는 동기들.
6개월의 짧은 인턴 생활이지만, 앞으로의 직장생활이 즐거울 것 같았다.
인턴기간 동안 쌓아야 할 스펙은 많이 쌓여있었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푹 쉬자.
민기는 불을 끄고 누웠다.
서울의 밤은 민기의 방으로 조심스레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