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AI를 속일 수 있을까.
"아, 이번에 심박수에서 또 거짓말인 거 티 나서 떨어졌어."
"진짜? 근데 너 거기 갈 생각 없지 않았냐?"
"그래도 일단 돈은 벌어야 하니까 다니려 했는데, 이게 참 어렵네."
진우는 이번 최종면접에서 불합격을 받았다. 불합격 사유는 명확했다. '진실성 없음.'
진우가 경력을 쌓는 동안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 가장 체감되는 것은 이제 AI가 직접적으로 면접을 보는 것이었다. 심박수, 눈동자, 표정 등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AI 앞에서 거짓말을 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떤 원리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AI는 사람보다 더 정확하게 지원자들을 선별해 냈다. 그렇게 통과된 지원자들은 높은 장기근속과 업무 성과를 보여주어, 기업은 적극적으로 이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당연히 반발이 심했지만, 일개 취준생 무리들이 기업을 이길 수는 없었다. 취준생이나 경력자들은 어쩔 수 없이 AI를 속이기 위한 방법을 고심하기 시작했지만, 작정하고 속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가장 많은 지원자들이 탈락하는 구간은, 지원동기였다. 말로는 거창하게 자신의 꿈, 비전, 회사의 사업 번영 등을 말했지만,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솔직히 돈과 복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속마음을 AI는 어떻게 캐치해 내는지 몰라도, 너무나 정확하게 캐치하여 진실성 없음을 판별해내곤 했다.
지원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괴담이 돌 정도였다.
"심박수, 눈동자 흔들림, 표정 등등이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분명 뇌파까지 분석하여 생각을 읽는 게 틀림없다."
몇몇 면접에 도가 튼 지원자들은 이미 연기자나 다름없음에도, 여지없이 탈락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심박수와 눈동자들을 통해 거짓을 판별한다고 해도, 정확성이 너무 높았다. 베테랑 경력자들도 여지없이 탈락하고, 심지어 인사과 출신들도 탈락하는 것을 보아, 생각까지 읽는 게 사실일지도 몰랐다.
지원자들의 불만은 점점 쌓였지만, 한편으로 그 불만이 더 깊어지진 않았다. 기존의 면접은 내정자를 뽑기 위한 면접도 많았고 불공평했다. 하지만, AI는 그런 게 없었다. 지원자들이 전부 탈락해 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모두가 다 같이 탈락을 해버리는 이 상황은 아이러니한 공평함을 선사했다.
이제는 원하는 회사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진짜로 진실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이상한 낭만이 추구되는 시대. 진우는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연거푸 탈락하고 나니 이 말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그동안 형식적인 면접, 어차피 뻔한 대답과 거짓말만이 난무하는 이 구조가 싫었던 진우는 정공법을 택하기로 했다.
때마침, 이번에 갈만한 회사 하나가 채용공고가 떴다. 서류 합격 배수가 기존의 20배에서 50배로 늘었다. 어차피 면접에서 죄다 탈락을 할 테니, 최대한 많은 지원자들을 뽑겠다는 심사가 보였다. 그 노골적인 채용공고에, 진우는 자신도 노골적으로 면접을 보기로 했다.
지원자들은 이제 아무 곳에나 지원하지 않았다. 어차피, AI를 이길 수 없음을 깨달은 그들은 정말로 원하는 곳에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대기업은 지원자 수가 세 자리를 넘었지만.
진우는 이번에 채용이 뜬 회사는 진심은 아니더라도, 꽤 괜찮다는 생각을 한 회사였기에 지원해 보기로 했다.
서류는 지원자의 비언어적인 표현까지 읽을 수 없기에, AI가 거짓을 판별하지 못했다. 기존과 비슷하게 써내도 스펙이 좋다면 손쉽게 합격할 수 있었다. 쉽게 서류를 통과한 진우는 아주 솔직하게 면접을 보겠다는 마음을 먹고 면접장을 향했다.
"지원동기가 무엇일까요?"
"네, 저는 이 회사의 연봉과 복지가 아주 마음에 들고, 근무지도 제 자취방과 가까워서 좋습니다. 이전에 하던 업무와 연관성도 있는 데다가, 회사 평점도 좋으니 제 기준에 아주 과분한 회사라 지원했습니다."
면접장에는 중앙에 AI 면접관들 셋과, 사람인 면접관 하나가 있었다. AI는 미동도 안 했지만, 사람은 꽤 당황한 듯했다.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가 있는 게 뭔가 웃음을 참는 거 같기도 했다.
중앙의 AI 면접관이 턱을 괴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동작이었다.
"음.. 만약 저희가 돈을 적게 줬다면 지원 자체를 안 했을 건가요?"
"네, 당연합니다. 근로자가 근무를 하는 가장 큰 동기 중 하나는 연봉과 복지입니다. 이 부분을 충분하게 보상해 주는 회사이기에, 지원했습니다."
사람 면접관은 더 이상 웃음을 참기가 힘든 지, 고개를 돌렸다. 연거푸 헛기침도 하던 그는 얼굴이 조금 새빨개진 거 같았다. 진우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AI도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회사를 돈만 보고 다니게 되면, 연봉이 동결되거나 성과급이 낮아질 때 퇴사를 할 수도 있겠네요? 아니면 돈 자체가 익숙해지면 그냥 회사를 갑자기 관둘 수도 있겠고요."
"면접관님. 일단, 돈은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최소한의 기준에 맞는 월급을 받는 날은 항상 기분이 좋습니다. 게다가, 여기서 상여금, 성과급, 복지비 등등의 돈이 합해지면 '금융 치료'가 이루어집니다. 이 치료는 생각보다 훨씬 큰 근로의욕을 불러일으킵니다."
사람 면접관은 서류를 세우고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으로 보아, 소리 죽여 웃고 있는 게 분명했다. 진우도 사실 웃음을 참기 힘들었지만,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다.
다른 AI 면접관이 질문했다. 음성 톤으로 보아 여성 면접관을 토대로 만든 듯했다.
"정말 돈 외에, 다른 순수한 지원동기는 없나요? 자아실현이나 이런 거 말이죠."
진우는 속으로 헛웃음을 삼켰다. 자아실현이라.
"제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자아실현과 같은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제가 지원한 직무는 자아실현과 거리가 멉니다. 그저 반복적으로 주어진 업무를 매뉴얼대로 수행하는 일인데, 이걸 통해 자아실현을 한다는 건 오히려 정신 나간 질문 아닙니까?"
진우는 답변을 하자마자, 아차 싶었다. 너무 솔직하게 말한다는 컨셉에 잠식되었던 것일까. 공격적으로 답변한 것은 솔직함을 넘어 무례했고, 이는 면접에 있어 결정적인 악영향을 끼칠 것 같았다.
다행히, AI는 딱히 관심이 없는지 계속해서 질문을 시작했다.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어떻게 대처할 건가요?"
"안 따르렵니다. 부당한 업무를 할 거면 본인이 직접 해야죠."
"상사가 꼭 필요한 업무라고 한다면요?"
"그럴수록, 오히려 본인이 직접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하직원한테 시키는 것은 나중에 책임도 뒤집어씌우려는 더러운 수작이 아닌가요?"
진우는, 이제 자포자기했다. 이미 망한 면접, 그동안 쌓인 말들을 하기로 결정했다.
"성격의 장, 단점을 말해주세요."
"단점부터 말하겠습니다. 단점은 보시다시피, 좀 무례하고 싹수가 없는 거 같습니다. 장점은, 워낙 낙천적이라 힘든 일도 금방 잊는다는 것이죠."
오늘의 면접은 금방 잊긴 힘들 것 같았다.
"갈등상황에서 팀워크를 발휘하여 해결한 경험이 있나요?"
"힘을 발휘하여 해결한 적은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제가 좀 체격이 좋아서요."
"푸하하핫!"
사람 면접관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었다. 진우도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입으로 필사적으로 가렸지만, AI는 어차피 바이오리듬을 읽어서 진우가 웃고 있는 걸 알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AI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면접을 마무리하려고 질문을 던졌다. 진우는 마지막까지 하고 싶은 말을 하기로 결정했다.
"면접비 얼마 주는지 알려주세요."
"5만 원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진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딱히 끝났다는 안내가 없었지만, 더 이상은 창피해서 있을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진우는 친구를 만나 자신의 무용담을 펼쳤다. 친구는 반신반의하며 진우의 얘기를 들어주었다.
"야, 너 진짜 미친 거 아냐? 너 같은 미친놈은 진짜 처음 본다."
"아니, 너도 이거 답변하다 보면 그럴걸? 어느 순간 컨셉에 잠식돼서 내가 이러고 있더라니까."
"딴 건 다 그렇다 치는데, 면접비 물어본 거는 진짜.. 너 합격할 생각 없었던 거 아니야?"
"하.. 나도 그건 진짜 좀 그렇더라."
진우는 소주를 들이마시며 한숨을 쉬었다. 솔직함을 넘어, 무례했던 면접 답변은 부끄러움을 남겼다. 이 부끄러움은 소주로 잊어야 했다. 백수 친구를 불러 낮술을 마시던 그들은 1시간 만에 금방 취해버렸다.
"야, 나도 곧 면접 보러 가는데 너처럼 면접 보면 되냐?"
"미쳤어? 너 거긴 진짜 옛날부터 가고 싶어 했던 곳이잖아. 그냥 오버하지 말고 솔직하게만 해."
지이이잉.
2차를 갈려고 골목을 나왔을 때, 진우의 핸드폰에 진동이 왔다.
면접 결과 안내였다.
[1차 면접 합격 안내.]
[AI 면접 테스트 결과, 귀하의 답변에 어떠한 이상도 발견되지 않아 합격하셨음을 안내드립니다. 2차 면접 일정 및 상세 내용은 추후 안내드릴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진우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야.. 나 합격했는데?"
"뭐? 진짜로??"
의심하는 친구에게 문자를 보여주니, 친구는 정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야, 이제는 거짓이 아닌 진실이 대세인가 보다."
"진실도 진실 나름이지. 난 그냥 무례했던 거야."
"근데, 아직 2차 면접이 남았으니 이거 합격은 아닌 거잖아? 너 그냥 어떤 앤지 궁금해서 부르는 거 아냐?"
"아, 그럴 수도 있겠네."
"너, 2차 가서 두들겨 맞을 수도 있어."
"에이 설마. 2차는 전부 AI일걸?"
진우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불안한 마음은 기우가 아니었음을 면접장에서 확인하게 되었다.
"지원자 스펙이 그 정도인데, 우리가 뽑아줘야 할 이유를 말해보세요."
"지원자분 1차 때, 돈이 최고라는 답변을 했던데 우리가 왜 그 정도 돈을 지원자에게 주어야 하나요?"
"회사가 성과급을 적게 주게 되면, 그만큼 업무 성과도 적게 낼 거라는 건가요?"
AI 면접관들 5명에게 둘러싸인 진우는 사정없이 두들겨 맞았다.
'아.. 이러려고 1차 합격시켰구나.'
정신없이 압박면접을 당하던 진우는, 이미 합격이 물 건너갔음을 깨달았다. AI들도 감정이 있는 건가? 1차 면접 때 심상치 않은 지원자를 일부러 합격시키고 희망고문 시킨다는 괴담을 들은 바 있다. 진우는 이런 괴담을 AI들이 실현할 줄은 몰랐다.
이상하게, 사람이 아니라 그런지 기분이 나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런 공격을 당하고 있기엔 시간이 아까웠다. 면접비나 빨리 받아갈 진우는 중간에 나가도 면접비를 주는지 궁금했다.
그는 손을 들어서 질문했다.
"혹시, 지금 나가도 면접비를 주나요?"
"끝까지 면접을 보셔야 면접비가 나갑니다."
"언제 끝나나요?"
"귀하는 출중한 인재이기에, 1시간 동안 심층면접을 볼 예정입니다."
'웃기고 자빠졌네.'
진우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비웃었다가, 혹시나 이 생각조차도 읽는 게 아닐지 두려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