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입을 마음먹은

그 혹독한 외로움의 길.

by Nos

바람이 서서히 차가워져 코 끝을 빨갛게 물들이던 어느 목요일 저녁이었다.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고, 거리에는 더 이상 필요 없어졌다는 듯 문제집과 참고서들이 버려져 있었다.

어찌 보면 성인식과도 다름없는 그날은 수능이 끝난 날이었다.


하지만, 그날 진수는 웃을 수가 없었다.

겨울보다 더 차가운 현실, 무능함, 죄책감이 그를 사로잡았기에.


어머니가 고생했다며, 진수의 손을 꼭 잡고 고기를 사주려 했지만 그는 거부했다.

평소처럼 집밥만 해주면 충분하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기어코 맛있는 반찬들을 많이 해주셨다.

잡채, 돼지갈비, 진미채 등등 진수가 좋아하는 것들 투성이었다. 하지만, 진수는 몇 숟갈 못 뜨고 방으로 들어가야 했다. 울음이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거 같았기 때문에.

어머니는 진수의 표정을 보고, 아무 말도 않으셨다. 수능은 잘 봤니, 어땠니 등등의 말도 일절 하지 않는 배려가 오히려 더 가슴이 아팠다.


방으로 돌아오니, 각종 문제집들이 눈에 보였다. 푸는 둥 마는 둥 했던 이 문제집들은 어머니가 전부 없는 살림에 장만해 주신 거였다. 차라리 공부에 뜻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어머니의 돈을 헛되이 쓰게 하진 않았을 텐데.


진수는 책상에 이마를 박은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겉으론 소리를 죽였지만, 속으론 누구보다 격렬하게 자신을 자책했다.

어머니는 왜 그렇게 나를 믿어준 것일까.

이 못난 아들이 뭐라고.


책상에서 고개를 든 진수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책상 위가 그의 눈물과 콧물, 침으로 지저분했다.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는 오늘의 아픔을 절대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나의 20대 청춘은 편입에 성공하기까지 절대로 빛나게 하지 않겠다고.




대학교에 입학한 진수는 혼자 다니기 시작했다. 학과행사에도 참석하지 않고, 도서관만 다니며 공부를 했다.

1학년 1학기부터 공부를 하는 대학생은 드물었기에, 진수는 다소 특이한 취급을 받았지만 괜찮았다. 그에게는 무엇보다 편입을 위한 학점을 쌓아놓는 것이 중요했으므로.


성적은 당연히 과탑이었다. 학과 평균점수가 50점인데, 진수는 혼자 85점을 받으며 1등을 하기도 했고 나머지 과목은 더욱 격차가 벌어졌다. 1학년 2학기부터 바로 전액장학금을 받기 시작한 진수는 기분이 좋았다. 어차피 떠날 대학. 여기에 등록금을 한 푼도 내기 싫었기 때문이다.


진수는 과탑을 하게 되어, 여기저기 소문이 났다. 1학년 동기들은 어려운 과제나 시험이 있을 때마다 진수에게 은근히 친한 척을 했다. 진수는 그들의 속셈을 뻔히 알고 있었지만, 어차피 학과생활을 피곤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친절히 알려주었다.


그의 생활 패턴은 단순했다. 강의 - 도서관 - 집 이렇게 3박자만 이루어진 그의 대부분 생활은 동기들과 당연히 어울릴 수 없었다. 술조차도 처음 O.T때 한 번 마신 이후로는 일절 입에 대지 않았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독하다고 생각했고, 그 독함만큼이나 성적표는 정직했다.


진수는 2학기에도 과탑을 했고, 혼자 조용히 입대했다.

힘들었던 군생활 속에서도 진수는 편입을 위해 영어 공부를 했다. 군생활은 모범적으로 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고립되어 동기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순박한 20대 초반 남자애들은 그를 꽤 좋아했지만, 그의 마음속 어둠을 알게 모르게 눈치챘는지 일정 거리를 두었다.


다시 복학을 한 날, 진수는 캠퍼스의 설렘도 잊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몇몇 같은 시기에 복학한 동기들이 아는 척을 했지만, 진수는 적당히 인사하고 도서관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대학 때 알뜰히 모아둔 돈과, 높은 성적 덕분에 학교 자체 알바도 할 수 있었던 진수는 생활비가 오히려 조금 남았다.

남는 돈은 이후 보증금이나 생활비로 쓰겠다는 생각으로 조금씩 저축도 했다. 남들 한 번쯤은 가는 여행 하나 가지 않은 채, 그는 그렇게 묵묵히 공부를 했다.


여전히 과탑을 받으며 생활하던 그는, 외롭고 지치고 마음이 허해졌다. 어느 여름날, 만 원도 하지 않는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가방을 멘 채 터덜터덜 걸어가는 진수. 우연히 유리창에 비친 그의 초라한 모습을 본 진수는 갑자기 회의감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편입을 한다고 해서 행복할까. 이게 정말 자기가 원하던 길이 맞나?

이제 2학기를 막 개강한 도서관은 당연하게도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공부를 하는 인원은 세무사와 같은 전문직 시험을 준비하거나, 몇몇 공시생들 말고는 전무했다.


그의 공허한 마음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갑작스럽게 슬럼프가 온 그는, 공부를 잠깐 내팽겨진 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같이 학교 알바를 하던 친구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고 의아애하며 물었다.

"어라, 편입 시험 치셨어요? 이제 공부 안 하시네요?"

"아, 그냥 요즘 공부가 잘 안 돼가지고 잠깐 쉬고 있어요."

"와, 진수 씨도 공부가 안 되는 날이 있으시구나."


시험기간이 아님에도 공부를 하던 그의 모습은 배경과도 같았다. 항상 묵묵하게 책과 노트를 펼친 채 공부하던 그의 모습을 알게 모르게 응원해 주던 친구들은 진수를 걱정했다.

진수는 그 마음이 너무나 고마웠지만, 평소에도 과묵하게 생활을 했던 그는 요란을 떨 수 없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할 뿐이었다.

"어, 그러면 오늘은 공부 안 하실 테니 저녁에 시간 좀 나시는 거 아니에요?"

진수랑 평소에 몇 마디 대화를 나눴던 여자가 느닷없이 술자리 제안을 했다.

"어.. 뭐 그렇죠?"

진수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러면, 우리 술 마시러 가요!"

"뭐? 술?"

갑작스럽게 술자리가 잡혔다. 여러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어 대화에 참여했고, 진수도 참석한다는 의사를 내비치자 너도나도 놀랐다. 내일은 해가 뜨지 않는 거 아니냐며 유난히 호들갑 떠는 사람도 있었다. 해가 뜨지 않으면 그만큼 술을 더 오래 마실 수 있을 테니 좋은 거 아니냐는 술고래 친구도 합류하며, 떠들썩한 분위기가 생겼다.


그렇게, 진수는 갑작스럽게 생긴 술자리에 참석하여 술을 마셨다. 정말 오랜만에 마시는 술에, 그는 주량을 조절하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고자 연거푸 들이마신 술은 뒤늦게 술기운이 올라왔고 그는 갑작스럽게 취해버렸다.

그 취한 와중에, 그는 자신을 초대했던 여자의 옆모습을 보았다. 평소에도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오늘따라 더욱 예쁘다고 생각이 들었다.

'미쳤나.. 지금 뭔 생각 하는 거야.'

이럴 때가 아니었다. 시험은 100일도 남지 않았다. 이제 슬슬 공부하던 내용을 정리하고 암기노트를 만들어야 했다. 술을 연거푸 마시는 와중에도, 그의 마음은 편입 시험에 가 있었다.


하지만, 얄궂게도 그의 마음은 느닷없이 기승을 부렸다.

진수는 그녀에 대한 마음이 점차 커짐과 동시에, 공부에 점점 손을 놓게 되었다.

아무리 마음을 다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그의 마음은 결국, 진수가 원하는 결말로 이끌지 못했다.


그는 원하던 대학에 불합격했다.

그 후, 가장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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