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천시 특별 안전구역 속에서 커피 한 잔

커피는 어딜 가나 쓰다.

by Nos

민희는 카페를 유별나게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대학시절의 과제, 공부는 물론 취준생일 때도 카페에서 공부를 했고, 취업 후에도 카페에서 독서를 하고 글을 쓰며 휴식을 취하곤 했다.

주로 먹는 것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조각케이크였다.


대학시절에는 조각 케이크도 사치였고, 한 잔에 4500원이 넘는 프랜차이즈점은 비싸서 평소에 이용하지 못했다. 아르바이트 월급을 받는 날이나, 운 좋게 장학금이라도 받은 날에만 이용하고는 했다.

주말에는 가끔씩 을지로나 성수의 예쁘고 분위기 좋은 카페를 들러 책을 읽곤 했다. 그녀에겐 이 모든 것이 힐링이었고, 즐거운 행위였다.


취직을 하고 나서부터는 좀 더 거침없이 돈을 쓰기 시작했다. 커피와 케이크가격이 한 끼 식사보다 더 값이 나가도 주저 없이 카드를 결제하고 자리에 앉았다. 어차피, 남들이 놀 때 쓰는 돈과 비교하면 큰돈도 아니었다. 자신을 위해 쓰는 돈에, 이 정도 돈도 쓰지 못하면 앞으로 어떤 소비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카페에서 마냥 노는 것만은 아니었다. 책을 읽고 블로그에 글을 쓰기도 했으며, 여차하면 회사 일을 하기도 했다. 카페에서 일을 하기는 싫었지만, 회사생활은 만만하지 않았다.


점점 바빠지는 업무 속에, 그녀의 휴식은 점점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카페에 갈 때 더 이상 책과 핸드폰이 아닌, 회사 노트북까지 챙겨가는 본인의 모습을 보며 점점 이직에 대한 고민이 잦아질 때였다.

성천시에 좀비사태가 터졌다.




좀비 사태는 다행히, 민희가 카페에 있을 때 터지진 않았다. 그날에는 카페에 가기도 전에 연락이 와서 집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행 중에 다행이라는 말이 이럴 때 참 적절한 표현이었다.

다음 주 분기별 실적 발표가 너무 부실한 거 같다는 팀장의 우려에, 민희는 주말에도 결국 자료를 보충해야 했다. 부실할 수밖에 없는 실적을 어떻게든 부풀리려는 팀장의 고집이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었지만, 이를 위해 그녀의 주말이 너무나 당연히 소비되는 것은 이해되지 않았다.


인내심에 한계가 다다른 민희는, 이번 일만 마무리되면 무작정 퇴사를 하리라 다짐했던 그때. 뉴스 속보와 재난 문자가 속속들이 들려왔다.

대규모 재난 사태로 인해, 외출을 금지하는 메시지는 처음에 현실감이 없었다. 하지만, 이후에 울리는 사이렌 소리와 총소리가 그녀에게 무서운 현실감을 일깨워주었다.


그녀는 정부의 안내를 충실히 따르며, 집안에서 버텼다. 다행히 집에 구비해 둔 식량과 빠르게 이루어진 배급 덕분에 생존에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계속해서 들리는 총소리와 간간이 들려오는 비명소리가 너무나 무서웠을 뿐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건 바로 회사였다. 회사는 이 와중에도 민희를 가만두지 않았다.

민희의 회사는 성천시 바깥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없는 마냥 사업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그저 성천시에 거주하는 직원들을 재택근무로 전환시켰을 뿐이다. 좀비가 돌아다녀도 성천시 외부의 시간은 끊임없이 흘렀고, 일은 계속되야만 했다.


회사는 오히려, 재택근무자들의 근태를 감시하기 위해 특별 지령을 내린듯했다. 팀장이 평소보다 더 까다롭게 민희를 괴롭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첫 주가 지나자, 팀장은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민희보고 캠도 키라는 지시를 했다. 민희는 그 말이 떨어지고 나서, 바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퇴사를 선언했다.


퇴사처리는 놀라울 정도로 간소했다. 기본적인 절차를 밟고 난 뒤, 회사 노트북을 닫고 전원을 꺼버리니 끝이었다. 노트북은 언젠가 반납해야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관계로 우선 민희가 보관하고 나중에 반납하는 걸로 절차가 끝났다.

물론, 민희는 곱게 줄 생각이 없었다. 까짓 거 노트북 물어주지 뭐라는 생각으로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다. 그 자유로운 고공낙하를 끝까지 지켜본 민희는 마음 한 구석이 뻥 뚫리는 걸 느꼈다.

고작 저 조그만 15인치 화면이 자신을 그렇게 괴롭혔던 걸까.


와장창 하며 부서지는 노트북은 다소 민폐이긴 했지만, 이미 거리는 각종 쓰레기와 폐기물들이 뒤범벅이었기에 민희는 그렇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진 않았다. 그렇게 노트북을 던지고 난 뒤의 민희 생활은 생각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각종 보급품과 정부의 특별 지원 덕분에, 민희는 생활비가 거의 들지 않았다. 그녀가 생활비를 지출하는 항목은 전자책 구독서비스 같은 것들이었는데, 이 마저도 기업에서 마케팅차원에서 지원을 해주었다. 돈 없이도 생활이 가능해지자, 민희는 즐거운 마음으로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마음껏 했다.


한 달이 지날 무렵, 그녀는 오히려 이런 재난사태 덕분에 이렇게 생활할 수 있음이 감사했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되는 걸 알았지만, 행복한 건 행복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행복은 몇 달이 지나자 익숙해졌고 무료해졌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 걸까. 그녀는 조금 더 욕심을 부리고 싶었다. 바로, 카페를 가겠다는 욕심이었다.


보급품에는 커피가 있긴 했지만, 민희가 딱히 좋아하는 커피는 아니었다.

그녀는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너무나도 마시고 싶었고, 그보다 더 그리운 것은 카페의 고즈넉한 분위기였다.

처음에는 집에서 얌전히 책 읽고 글 쓰는 삶 자체가 너무나 만족스러웠지만,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다.


그녀는 집이 조금 지긋해졌고, 카페가 그리워졌다.

집의 인테리어를 바꿔보기도 했지만 집은 집이었다.

카페에서 만의 분위기와 감성은 대체가 불가능했고, 케이크를 못 먹는 것도 아쉬웠다.


이전에 보급품에서는 케이크도 가끔 특별식느낌으로 주기도 했지만, 몇몇 시민들의 건의로 이마저도 끊겼다. 성천시의 재난은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너무 잘 먹고 잘 사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밥도 공짜로 먹으면서 사는 주제에, 케이크까지 우리가 먹여줘야 하냐는 지리멸렬한 민원인들의 주장에 정부는 손을 들었다.


그렇게 성천시의 시민들은 기본적인 배식만 받으며 살게 되었다. 다만, 시민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정부에 끊임없는 요구를 하여, 마침내 '특별안전구역'이 만들어졌다.

군부대와 경찰의 방호 아래, 각종 문화시설과 오락시설을 제공해 주는 구역을 말이다.

헬스장, PC방, 음식점, 당구장 등등이 정부의 관리 속에서 영업을 시작했고, 그 안에는 카페도 당연히 있었다.


민희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정부의 안내문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읽었다.

낮 시간에만 운영되고, 군부대와 함께 움직일 것 등등의 안전수칙들과 안내문이 게시되어 있었다. 중요한 것은 입장을 위해서는 군부대의 순찰조와 함께 움직여야 했다는 것.

마치 셔틀버스와 비슷하게 운영되는 이 군부대에 합류하지 않으면, 입장이 아예 불가능했다.

다시 집으로 복귀할 때도 당연히 군부대와 함께 움직여야만 했다.


이 소식에, 성천시의 시민들은 환호했고 외부의 시민들은 비아냥거렸다.

"아니, 인터넷도 되는데 굳이 그런 오락까지 목숨을 걸고 지켜줘야 할 필요가 있나?"

"내가 낸 세금이 저렇게 낭비되나?"

민희는 이런 비아냥에 한마디 하고 싶었다. 사람이 밥만 먹고살 수 있느냐고.

코로나로 인해 몇 달 동안 집에 틀어박혀 우울해하던 시기를 다들 잊었냐고. 우리 성천시민들은 그것보다 더한 불안과 통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정부가 다행히, 이런 불만 때문에 특별안전구역 시범을 철회하진 않았다. 성천시민들에게 문자를 통해, 정해진 집결구역과 시간까지 정확히 안내를 하였다.

정해진 날까지, 정부는 안전을 위해 군부대에게 좀 더 잦은 순찰을 지시했다.

각종 건물까지 철저하게 수색을 실시한 군부대의 움직임 속에, 밤에는 간간이 총소리가 울렸다.


민희는 하루하루를 꼬박꼬박 기다리며, 맛없는 커피를 홀짝였다. 하루하루 X표를 치며 간절히 기다리던 끝에, 운명의 날이 밝았다. 민희가 살고 있던 구역에는 오후 2시에 방문 예정이었다. 행여나 더 빨리 올까 봐, 민희는 10분도 더 전에 나와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보고 있었다.

거리에는 안내 표지판이 친절하게 설치되어 있어 거기에 시민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난 시민들은 서로 어색해했지만, 이내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진짜 이게 얼마 만에 나들이인지, 설레지 않아요?"

"아, 저는 피시방 한 번 가는 게 소원입니다."

"그동안 다들 어떻게 지내셨어요?"


한 번 대화가 트이자, 여기저기서 다들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웃음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민희는 근처의 다른 여자와 이것저것 안부를 물으며 순찰조를 기다렸다.


"어어, 저기 온다!"

"와, 진짜네?"

몇몇 시민들의 외침에, 민희는 고개를 돌렸다.

완전 무장을 한 군인들 여럿이 선두를 나서고 있었고, 그 뒤로 4열 종대의 시민들이 끊임없이 걸어오고 있었다.


"와, 뭐야? 사람들 엄청 많네!"

"역시, 그럴 만도 하지."

군중의 무리는 어림잡아도 300명은 넘을 것 같았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에, 군인들은 긴장한 듯했다. 군인뿐만 아니라 경찰들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들의 긴장감이 오히려 민희의 마음을 풀어주었다.

저 정도의 인원이 저렇게 긴장했다면, 오히려 지금 여기가 그 어디보다도 안전한 곳일 테니까.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시민들은 저희의 통제에 철저하게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선두에 서있던 덩치 큰 군인이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민들은 불만이 없었다. 당연히 따라야 하는 통제라고 생각했기에, 잠자코 그들을 따랐다.

이후에 몇 군데를 더 거치고 난 뒤, 오후 3시가 되어서야 간신히 안전구역에 도착했다.

걸어서 20분도 안 걸리는 거리를, 1시간이나 걸려서 도착한 셈이다.

민희는 약간 피곤했지만, 드디어 카페를 간다는 생각에 설렜다.


특별안전구역은 말 그대로 안전이 특별하다는 거였지, 구역 자체는 특별할 게 없었다. 다만, 원래는 없던 몽골텐트들이 각종 음식을 팔고 있는 게 축제 같은 느낌이었다. 시민들은 웃으며 텐트에 방문했다가, 비싼 가격에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아니, 무슨 닭꼬치가 만 원이야?"

"와, 이거 옥수수가 무슨 5천 원이나 해?"


물론, 불만만 가졌지 구매를 망설이진 않았다. 기본적인 배식만 하던 그들에게는 오랜만에 먹는 닭꼬치조차 환상적인 맛이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인파로 인해, 관계자들은 당황했는지 여기저기 움직이며 무전을 치기 시작했다. 정부 기관의 공무원들로 보이는 무리들은 군부대를 찾아가 좀 더 안전에 유의해달라 말을 했고, 대령으로 보이는 군인은 약간 귀찮아하는 기색이었다.


민희는 그 실랑이를 잠깐 구경하다가, 이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카페에 쓰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기존 상가에 운영하던 카페를 그대로 재활용한 정부 덕분에,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어서 오세요.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상가 건물 1~2층에 위치한 어느 카페에 도착한 민희는, 가격표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무려 1만 원이었다. 조각케이크는 1만 5천 원에 육박했다.

카페 주인으로 보이는 바리스타가 넉살을 떨며 말했다.

"하하, 좀 가격이 많이 비싸죠? 이게 아무래도, 공급하는 데에 비용이 적잖게 들다 보니.."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이랑 딸기 케이크 하나 주세요."

민희는 망설임 없이 주문했다. 어차피 몇 달 동안 돈을 거의 쓰지 않아 돈이 남아돌았다.

"네, 감사합니다. 금방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손님, 혹시 모르니 위에 자리가 있는지 한 번 보고 오시겠어요? 아마 자리는 있겠지만, 마음에 안 드실 수도 있으니.."

"괜찮아요. 결제부터 먼저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바리스타는 결제 후 민희에게 진동벨을 주었다. 그 사이에, 2층에서 몇몇 사람들이 음식을 가지러 내려왔다. 생각보다 분주한 카페의 움직임과, 사람들의 떠들썩한 목소리에 민희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정말로 자리가 없나? 민희는 불안해진 마음에, 2층으로 향했다.

계단을 밟으며 올라가는 동안, 소리가 점점 시끄러워졌다.


민희의 기억이 맞다면, 여기는 꽤 넓었던 카페였다. 그 기억은 틀리지 않았다.

2층에는 50명 이상은 족히 앉을 수 있는 좌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다만, 그 좌석들이 사람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좋은 자리는 이미 다 나갔고, 불편하고 좁은 자리만 남아 있었다.

조그만 원형 테이블에, 딱딱한 나무 의자 하나가 마련된 자리에 민희는 자신의 소지품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자신이 바랐던 느낌과 분위기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카페는 원래 시끄러운 곳이긴 했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분위기는 조용한 분위기였다. 이런 곳에서 그런 분위기까지 바란 것은 사치였던 걸까. 민희는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이어폰을 챙기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래도, 이왕 온 거 카페의 분위기를 즐기자고 다짐하던 때에,

지이이이잉.

진동벨이 울렸다. 오랜만에 들린 이 소리에 화들짝 놀란 민희는 황급히 손으로 감싸 쥐었다.

민희는 1층에 내려가 진동벨을 반납한 뒤, 케이크와 커피를 가져왔다.

드디어, 그토록 고대하던 아이스아메리카노와 딸기케이크.

평소보다 2배에 육박하는 가격을 지불했다.


평소에 사진도 찍지 않던 그녀였지만, 오늘만큼은 여러 각도에서 사진까지 찍었다.

핸드폰을 내려놓은 민희는, 드디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 입 했다.

"... 생각보다 그저 그렇네."

오늘따라 유독, 커피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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