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적인 삶을 꾸려나가는 설렘의 감정
합격연락을 받고 난 뒤, 민기의 느긋했던 일상은 바빠졌다.
출근은 일주일 뒤였기에, 그 안에 회사 근처 자취방을 구해야 했다. 민기는 합격연락을 받은 다음 날, 하루 종일 짐을 꾸리고 그다음 날에 다시 서울로 출발했다. 집을 구하기 위해서.
짐은 딱히 많지 않았다. 옷이 제일 많은 부피를 차지했고, 그 외 노트북과 세면용품, 신발 몇 가지만 챙기니 짐은 간소했다. 나머지 필요물품은 서울로 상경해서 구매하면 충분할 것 같았다.
이번 기차에서 민기는 정장을 입지 않았다. 평상복 차림에 3일 정도는 버틸 수 있는 여행용 짐을 챙기고 나니, 출근을 앞둔 상경이 아닌 여행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긴장보다는 설렘이 더 컸다. 마음 한편에 남은 걱정은 단 하나, 마음에 드는 집을 감당할 수 있는 가격으로 구할 수 있을지였다.
서울의 원룸은 지방과 비슷한 가격으로 구하려고 하면, 반지하나 3평짜리 밖에 안 구해진다고 들어서 근심이 많았다. 민기는 500/50에, 5평 정도는 넘는 원룸에서 살고 싶었다. 이 정도면 아무리 서울이라도, 큰 욕심까진 아니지 않을까?
예전에 대학 근처 자취방을 구할 때는 어머니가 함께했다. 방의 조건들을 까다롭게 확인해 주던 모습이 기억났다. 덕분에, 별 불편함 없이 자취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혼자였다. 민기는 꼼꼼히 봐야 할 체크 목록을 머릿속에 정리한 채, 기차에서 선잠을 잤다.
점심시간 쯔음, 서울역에 도착한 민기는 햄버거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다시 지하철 호선을 갈아탔다.
1시간 정도 지난 뒤, 드디어 민기가 살고자 하는 회사 근처에 도착했다.
회사까지 걸어서 15분 ~ 20분 정도 거리였는데, 여기엔 조그만 원룸촌이 존재했다. 당연히 신축은 아니고, 조금 허름해 보이기까지 하는 외관은 친숙했다. 민기가 대학에서 자취할 때 구했던 원룸도 딱 이렇게 생겼기 때문.
다만, 부동산을 통해서 시세를 확인한 결과 10만 원은 더 비쌌다.
500에 45 정도면 5평 정도의 컨디션 괜찮은 방은 구할 수 있었다. 서울이지만 외곽지역이었고, 대학가나 번화가도 아니었기에 구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좀 더 넓은 방을 구하고 싶었지만, 회사에서 걸어갈 수 있는 위치에 이 정도 월세면 감지덕지일지도 몰랐다.
기본적인 옵션들인 전자레인지와 냉장고도 있었고, 심지어 침대도 있었다.
옷장까지 구비되어 있는 걸 확인한 민기는 여기서 바랄게 더 뭐가 있나 싶었다.
이미 방이 비어있었기에, 민기는 내일부터 바로 입주하기로 계약했다. 집주인이 간단하게 청소까지 해준다 하여, 민기는 기분이 좋았다.
생각보다 바로 집을 구하게 된 민기는 다시 지방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올 바에, 그냥 모텔에서 하루 숙박하고 다음날부터 바로 생활하는 건 어떨까 싶었다. 굳이 피곤하게 또 내려갔다 올 필요가 있을까.
곰곰이 고민을 하던 민기는 어머니에게 통화를 걸었다.
"엄마, 집 바로 구했는데, 그냥 짐 바로 부쳐줄 수 있어요? 여기서 그냥 바로 살려고요."
어머니는 잠깐 놀란 듯했다. 갑자기 바로 집을 구한 민기가 혹시나 덤터기를 씌진 않았을까 꼼꼼히 물었다.
"500에 45에, 이것저것 다 있고 회사에 걸어 다닐 수 있어요. 서울인데 이 정도면 괜찮은 거 같아요. 저 대학에서 자취할 때랑 월세 차이가 크지도 않고요."
"그래, 잘 구했네. 짐은 내일 부쳐줄게."
간단하게 통화를 마친 민기는, 하룻밤 보낼 모텔을 구했다. 면접을 보러 왔을 때랑 똑같은 곳에서 숙박하기로 했다. 다만, 저녁은 좀 더 맛있는 걸 먹기로 했다. 뭘 먹을까 고민하던 민기는, 결국 피자를 먹기로 결정했다. 모텔에 있는 큰 벽걸이 TV로 영화를 보며 피자를 먹는 것만큼 즐거울 만한 게 없었기에.
맥주도 하나 사온 민기는 맛있게 피맥을 먹기 시작했다. 살짝 알딸딸한 게 기분이 좋았지만, 주량이 1병 정도 되는 민기는 좀 아쉬웠다.
'아.. 하이볼을 살 걸 그랬나?'
좋아하는 포테이토피자와 맥주를 마시고 있었지만, 좀 더 취하고 싶었던 민기는 결국 편의점에서 도수가 좀 높은 하이볼도 하나 더 사 왔다. 생각보다 모텔 조명이 은근 분위기 있었다.
하이볼까지 마시기 시작하니, 조금 취기가 돌았던 민기는 기분이 좋아졌다.
돌이켜보니, 한심하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 무사히 편입한 대학 졸업도 했고, 인턴이지만 이렇게 일자리도 구해서 혼자 자립하지 않았던가.
동기들 중에는 졸업하자마자 바로 취직하지 않는 애들도 많았다. 휴학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애들은 '갭 이어'라고 해서 1년 정도의 진로 탐색기간이라고 가지는 애들도 있었다. 민기는 솔직히, 진짜로 진로를 탐색하려는 것보다는 휴식이 필요했던 게 아닌가 싶었다. 민기도 사실은 그런 갭이어를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넉넉한 형편도 아니었고 편입 때문에 이미 1년을 소비했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자신은 이미 1년을 남들보다 더 쓴 거나 마찬가지이니, 더 열심히 해야 했다.
수도권의 생활은 만만치 않겠지만, 민기는 젊음과 열정으로 버텨 낼 자신이 있었다. 술이 알딸딸하게 취한 지금은, 세상이 무섭지가 않았다.
오늘따라 유독 침대가 아늑했고, 모텔의 음산한 조명과 분위기마저도 포근하게 느껴졌다. 민기는 급하게 먹던 걸 정리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가벼운 숙취와 함께 깨어난 민기는 여유로움을 만끽했다. 오전 중에 청소를 끝내고 오후에 입주가 바로 가능하다 했으니, 그동안 푹 쉴 예정이었다.
막막하면서도 두렵고, 설레는 공기가 다시 민기를 감쌌다. 편입 때문에 첫 고향을 떠났던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어떤 사람을 만나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모르는데에서 오는 두려움. 그것을 이기는 감정은 독립감과 책임감이 섞인 설렘의 감정이었다. 앞으로 내가 하기에 따라, 내 사회생활이 결정되겠지. 지금은 인턴이지만, 정규직까지 척척 합격하여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겠다는 다짐을 하며 생각을 마무리했다.
집주인의 연락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청소가 다 끝났으니 오면 되고, 월세는 후불이라 다음 달에 주면 된다고 했다. 민기는 설레는 마음으로 짐을 정리해 자취방으로 향했다.
원룸은 저번에 봤을 때 보다 좀 더 깔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민기는 캐리어에 있는 짐부터 급하게 풀어 정리했다. 방이 좁아서 그런지, 몇 가지 물품만 풀어도 방이 어느 정도 찬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민기의 물품들로 가득 찬 이 공간은 오롯이 민기의 소유였다.
이곳에서 이제 민기의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자신의 힘만으로 모든 생활비를 벌어들이며 앞으로 살아가야 했다. 대학 때의 생활비보다는 좀 더 벌어들이겠지만, 생활은 대학때와 비슷할 것이다. 가끔씩 배달음식이라는 사치를 부리는 것과 소소하게 전자제품 하나를 사는 것 말고는 기본적인 생활만 유지하는 것. 빈곤은 아니지만 풍요는 아니고, 기본적인 생활 속에서 적당히 소소하게 사치를 부리는 삶이 자신에게 허락된 생활일 것이다.
그래도, 좋았다. 이 원룸이라는 공간과 그 외의 모든 필수품들은 이제 자신의 힘으로 벌어들이는 것이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말이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민기가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벌어들일 수밖에.
민기는 자신의 낡은 핸드폰을 보았다. 느리고, 배터리도 빨리 닳지만 할부금이 아쉬워 억지로 쓰고 있던 핸드폰. 첫 월급을 타면 이것부터 할부로 끊어서 바꾸리라.
한 번 더 청소를 말끔히 한 민기는,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낮잠에 들었다.
딱히 뭘 한 건 없지만 저녁이 되자 오늘은 순살치킨을 시켰다.
그의 통장 잔고에서 치킨값이 빠져나갔다.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을 때와는 좀 더 다른 생생한 마이너스였다.
그는 이제 자신의 통장 잔고에 플러스가 더 가득하게 만들리라 다짐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