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스토너의 삶을 관조하며 느낀 것들
이번에 소개해드릴 소설은 바로 <스토너>입니다.
1965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50년이 흐른 뒤에야 베스트셀러 반열에 들었다고 하는데요.
제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그저 우연히, 밀리의 서재에 소개되었을 때 표지가 참 예뻐서 읽은 게 전부였습니다. 그저 가볍게 읽게 된 소설이었지만, 소설은 저의 관심을 무겁게도 붙잡았습니다.
밀리의 서재에 여러 책을 담아서 번갈아 읽던 제가, <스토너>만큼은 한 번에 쭉 읽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소설의 어떤 점들이 저를 사로잡았는지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 내용에 대한 직접적인 스포는 없지만, 간접적인 설명과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스토너라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키가 크고 말랐지만 총명하면서도 순수한 이 남자는 가난한 농부 부부의 아들이었습니다.
부모는 당연히 스토너가 농과대학에 진학하여 농업을 이어받기를 기대하며, 스토너를 대학으로 보냅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스토너는 대학에서 문학의 길에 빠져들게 됩니다.
평소에 순종적이고 군말 없던 스토너가,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길을 선택한 용기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스토너는 그 용기 덕분에, 영문학과로 진로를 변경하게 되며 영문학과 교수의 길을 걷게 됩니다.
스토너의 본격적인 삶의 줄기는 교수가 되면서 뻗쳐나갑니다.
학문적인 욕구가 더 커지기도 하고, 사랑에 빠지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삶의 굴레를 겪게 됩니다.
대부분 부당한 일을 겪게 되지만, 그 속에서도 스토너 본인만의 행복과 즐거움이 언뜻 스며 나옵니다.
희로애락 중에서 "애"가 많은 스토너의 삶이지만, 그렇기에 희,로,락이 더욱 깊다고 해야 할까요?
그 삶을 관조하게 되는 것이 <스토너>의 주요 줄거리입니다.
"자네는 항상 세상에게서 실제로는 있지 않은 것, 세상이 원한 적 없는 것을 기대하니까."
- 스토너의 친구 데이브 매스터스가 스토너를 보며 한 말 -
스토너라는 인물은 참 순수하면서, 인내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농부의 아들로 밭일만 하며 살았던 그가, 대학에서 영문학에 빠져 진로를 바꾼 것만 봐도 그의 순수함을 알 수 있습니다.
문학에 단단히 마음을 사로잡혔기에, 그의 친구인 데이브가 스토너를 이렇게 평한 걸 지도 모릅니다.
문학이란 것은 세상에 실제로 있지 않은 가상의 이야기이니까요.
세상을 본떠 인물, 사건, 배경을 창조하고 그 속에서 이야기가 흘러가지만 결국은 세상에 없는 것이죠.
그렇기에 실제 세상보다 아름답고 유려한 이 가상의 세계에 빠져들다 보면, 우리는 세상에 없는 것을 원하게 될지 모릅니다.
흔히 말하는 운명 같은 사랑이나, 불굴의 의지로 무언가를 극복해 낸 사람의 이야기 같은 것들이죠.
그러나, 실제의 삶 속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극소수일 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생각보다 무미건조한 일상의 반복이죠.
그래서, 우리들은 영화, 소설, 드라마, 오락 등등 어떠한 가상의 세계를 즐기게 됩니다.
그 세계에서 즐거움을 넘어서, 어떠한 중요한 가치나 의미를 찾아내려는 사람이라면 조금은 각오를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없는 것을 원하게 되고, 기대하게 되면 세상 속에 절망을 맛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스토너는 여러 가지 절망을 겪게 됩니다.
이 말을 하고 나자 갑자기 그것이 정말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순간적으로 자기 말에 담긴 진실을 느낀 그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던 절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스토너의 삶은 정말로 평탄치 않았습니다.
작가님이 일부러 이렇게까지 괴롭히나 싶을 정도로요.
억지로 주인공을 불행에 빠지게 한 것도 아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이해관계속에서 스토너는 참으로 지독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스토너에게 삶의 빛은 있었습니다.
그 빛의 따사로움을 느끼면서 스토너는 자신의 소중한 사람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내뱉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다 잘 풀릴 겁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그 말을 하고 나서, 스토너가 느낀 내면이 바로 위의 문장입니다.
그 당시에는 분명 절망적이었고 인내심 많던 스토너도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낄 정도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소중한 연인이 분통을 느끼자 그녀를 달래주기 위해 내뱉은 문장 속에서, 스토너는 오히려 본인의 절망이 사라짐을 느낍니다.
자신보다 더 화를 내주는 그녀 덕분에 스토너의 절망이 사라진 걸까요?
이미 흘러간 과거보다, 눈앞에 있는 그녀의 마음을 달래주는 게 더 중요해서 그런 것일까요?
스토너의 삶은 정말로 슬픔과 무력함으로 가득하였지만, 이러한 위로의 순간들 덕분에 묵묵히 버텨나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이 소설은 정말 재미있지만 꽤나 고통스럽고 슬픈 소설입니다.
소설 속 절망스러운 상황을 바꾸기 위한 용기와 행동을 스토너는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토너에게는 분명, 기회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용기.
하지만, 그 용기를 내기보다는 그저 묵묵히 현재의 삶을 지속시켜 나갈 뿐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미련하게 보일만큼, 변화를 위한 용기를 내지 않았습니다.
스토너가 아예 용기가 없던 남자라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매료된 영문학의 길을 걷기 위해, 그 당시엔 전부였던 부모에게 용기 있게 말할 수도 있는 남자였으니까요.
하지만 그 용기를 내지 않고 그저 묵묵히 풍파를 견뎌내는 스토너의 모습은 이해가 되면서도 답답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용기를 냈으면 스토너는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분명히, 스토너 본인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그는 필요 이상의 용기를 내지 않고 그저 묵묵히 견뎌냅니다. 우리가 스토너에게 기대하는 모습들은 거의 일어나지 않고, 스토너의 삶은 슬프게 흘러갑니다.
저는 이러한 스토너의 삶을 관찰하면서, 인생은 정말 중요한 순간에 작은 행동 하나만으로 바뀌겠구나를 느꼈습니다. 그 작은 행동 하나를 위해서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역설도 느껴지더군요.
또, 스토너의 묵묵한 인내에서는 슬픔과 무력함을 느꼈습니다.
그가 사랑하는 것들이, 오히려 그의 족쇄가 되어 다른 사랑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것.
사랑의 역설이 가슴을 답답하게 짓누르는 느낌이었습니다.
도대체, 저는 스토너에게 무엇을 기대한 것일까요?
그의 극적인 용기로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스토리의 방향을 이끌어나가길 기대한 걸까요?
정작, 저 자신도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스토너보다 더 미련한 인물일 수 있는데도 말이죠.
우리 모두에게도 분명, 스토너에게 기대했던 용기와 행동력이 필요한 순간들이 다가올 겁니다.
스토너처럼 묵묵히 인내하며 버텨야 하는 순간도 있겠지만, 먼저 발자국을 내디뎌야 할 때는 두려움을 극복하며 내딛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에서 몇 없는 소중한 사람과 가치들을 지켜낼 수 있을 테니까요.
유려하게 흐르는 문장만큼이나, 부드럽게 흘러가는 스토리.
그리고 몰입할 수밖에 없는 상세한 내면묘사와 깊이 있는 문장.
책을 덮고 나면 밀려오는 복합적인 여운.
책의 표지처럼 묘한 가을 냄새가 나는 소설, <스토너> 리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