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조심스러운 로맨스 소설 후기
우리가 흔히 접하는 작품들 중에서, 로맨스 장르의 남녀 주인공은 외모가 뛰어난 인물이 보통 나옵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도 드라마 속 설정은 '평범하다'라고 하더라도, 얼굴이 딱 봐도 평범하지 않은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이죠.
슬프지만,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본능적으로 선망하기에 외모지상주의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것 같기도 합니다. 다만, 지성과 교양으로 외모로 인한 차별을 겉으로 티를 안 내려고 할 뿐이죠.
갑자기 이렇게 불편한 이야기로 서두를 시작한 이유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여주인공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소설의 가장 특이한 점은, 작가님 특유의 문체보다 여주인공의 설정 때문입니다.
여주인공의 어떤 점이 특이하길래 제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까요?
바로, 여주인공이 '못생겼다'라고 대놓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이 스스로 못생겼다고 하며 묻는 말에, "알아."라고 대답하기까지 하죠.
이 점 하나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가 접한 로맨스와는 전혀 다른 로맨스가 탄생합니다.
음울한 로맨스가 말이죠.
그 음울함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작품 속의 주요 인물은 딱 3명입니다.
3명 모두 백화점 주차 알바를 하면서 서로를 만나게 됩니다.
1. 배우 아버지를 닮아 잘생기고 번듯한 19살의 재수생. 우리의 남주인공
2. 못생겨서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던 여주인공
3. 이 둘을 이어주는 유쾌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음울한 요한
1980년 ~ 1990년대의 배경 속에서, 이 셋의 우정, 사랑, 그리고 우울을 다룬 인생사가 소설의 주요 얘기입니다. 줄거리는 정말 별거 없는데, 작가님 특유의 비유와 문장부호, 세밀한 심리 및 배경 묘사로 읽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저는 기막힌 문장과 약간 아득해지는(?)듯한 비유로 가득한 문장들이 참 좋았네요.
몇 마디의 말로 캐릭터의 내면과 아픔을 드러낸듯한 문장들도 좋았습니다.
그 문장들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세상 모든 여자들과 달리 자신의 어두운 면만을 내보이며 돌고 있는 ‘달’입니다. 스스로를 돌려 밝은 면을 내보이고 싶어도... 돌지 마, 돌면 더 이상해...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달인 것입니다. 감춰진 스스로의 뒷면에 어떤 교양과 노력을 쌓아둔다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달인 것입니다. 우주의 어둠에 묻힌 채 누구도 와주거나 발견하지 못할... 붙잡아주는 인력이 없는 데도 그저 갈 곳이 없어 궤도를 돌고 있던 달이었습니다. 그곳은 춥고, 어두웠습니다.
못생긴 여주인공이 겪은 슬픔을 달로 비유한 문장입니다.
자신은 스스로 어두운 면만 보일 수밖에 없는, 달이 갑자기 뒷면을 보여주면 이상하듯 자신 또한 그럴 수밖에 없는 슬픔. 달은 빛을 반사해서 빛나기라도 하지, 자신은 빛조차 반사할 수 없는 어둠이라는 그 슬픔이 안타까웠습니다.
사랑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라 생활이었다.
남자주인공이 사랑이 사라지고 나서, 사랑의 부재가 느껴지는 삶은 삶이 아니라 생활이라고 독백하는 부분입니다.
사람의 삶에서, 의식주만 충족되면 생명은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 누가 생명만 유지하며 살아가는 삶을 원할까요? 우리는 모두 삶에서 행복을 느끼고 싶어 하고, 그 행복을 느끼는 방법은 각자가 다릅니다.
많은 이들은 연인을 사랑함으로써 이 행복을 느끼고 삶에서 충만감을 느끼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사랑을 쟁취하고 나면, 삶에서 일순간 더없는 행복을 느끼게 되죠.
하지만, 그 사랑이 사라지고 나면 더 없는 절망감을 맛보게 됩니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삶은 그저 생활일 뿐이라고 비유한 문장이 좋았네요.
그전까지... 저는 한 번도 뜨거운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습니다. 눈물은 더없이 차가운 것이었고, 그때의 제 마음도 그런 것이었습니다.
기뻐서 흘리는 뜨거운 눈물과, 서러움에 흘리는 차가운 눈물은 그 성질이 전혀 다르죠. 눈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은 똑같은데도 말입니다. 눈물도 차가운 눈물과 뜨거운 눈물이 있다는 것으로 비유하여, 여주의 심리묘사를 탁월하게 한 문장이었습니다.
그녀가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해 준 남자주인공이 고마웠네요.
그대로 세상의 끝까지, 봄의 마지막까지 걷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마도 그날이 그해의 봄의 절정이었다는 생각이다.
봄이라는 계절 속에서 상실감에 빠진 남자주인공의 심리를 이렇게 묘사할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연인들에게는 데이트하기 제일 좋은 계절인 봄 속에서, 남자주인공은 봄의 마지막을 빨리 맞이하고 싶은 상실감을 드러낸 문장이네요.
사실, 이 소설은 읽으면서 뭔가 좀 불편한 소설이긴 했습니다.
지금 리뷰를 남기는 저도 굉장히 조심스럽고 불편합니다.
작가님이 '못생긴' 여주라는 설정을 통해, 보편적인 코드를 벗어난 로맨스소설을 시작함으로써, 외모지상주의에 관한 화두를 꺼낸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님은 후기에서 대놓고 말합니다.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우선, 작가님이 사랑하는 아내가, 자신이 아주 못생겼더라도.. 그래도 자신을 사랑해 줄 거라는 질문으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아주 솔직하게 말합니다.
세상의 모든 남자와 마찬가지로 저는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 또 결코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다.
또, 인류는 단언컨대 못생긴 여자를 사랑해주지 않았다고도 하죠.
저 또한, 작가님과 똑같은 얘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는 비단 여성분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남녀를 바꿔도 똑같습니다.
이 소설에서 남자가 못생기고, 여주가 예쁜 설정으로 나왔어도 비슷하게 쓸쓸한 이야기가 탄생했을 것 같습니다.
남자주인공 또한 움츠러든 채, 혼자 묵묵히 일을 하는 설정이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거든요.
우리는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긴 하지만, 또 열광하기도 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예인, 아이돌 시장이 이렇게 큰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죠.
일상에서도 외모가 뛰어난 분들이 은연중에 받는 대우와 배려들만 생각해도, 외모지상주의는 솔직히 인간의 본성이라고 어쩔 수 없이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 외모 하나로 사람을 무시하거나 능력까지 폄하하는 일들은 하면 안 되는 것이죠.
여러모로 불편한 소설이고, 조심스러운 소설이지만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한 소설이었던 것 같습니다.
보편적인 기준치나 관념에서 벗어난 특정 소수자들이 받는 상처와 외로움, 고독과 슬픔에 관한 내용을 드러낸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 기준이, 우리에게 조금 불편하게 와닿는 '외모'를 다뤘던 것이죠.
불편하긴 하지만, 감정선이 섬세하고 1980 ~ 90년대의 배경과 청춘이 물씬 풍겨 나오는 소설이라, 그 시절의 감성을 느끼고 싶으시다면 한 번쯤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사실, 외모에 대한 내용을 무시하고서라도 그저 감성적으로 읽기 좋은 소설이거든요.
이상으로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