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학 리뷰

상실과 관련된 슬픈 단편들 <바깥은 여름>

상실로 슬프다 할지라도, 바깥의 찬란한 여름 햇살을 맞이하길..

by Nos

INTRO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은 생각도 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한 일입니다.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누군가를 잃더라도, 남겨진 이들은 남은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그 삶에 관한 단편소설의 모음집이 바로 <바깥은 여름>입니다.


<바깥은 여름>은 단편 소설로 총 7가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이를 잃은 부부, 노견을 잃은 어린아이,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아내 등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이들의 이야기가 소설을 관통하는 주요 테마네요.


남겨진 이들의 먹먹함과 공허함이 잘 드러나 있어서, 읽는 동안 마음이 참 저렸던 소설입니다.

동시에, 작가님의 뛰어난 문장에 감탄하기도 했던 소설이네요.

그 문장들을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책 속의 문장들


사람 얼굴을 보려면 자연스레 하늘도 같이 봐야 하는. 아이들을 길러내는 세상의 높낮이가 있었다. 그런데 엄마를 잃고 난 뒤 그 푸른 하늘이 나보다 나이 든 이들이 먼저 가야 할 곳을 암시한 배경처럼 느껴졌다.


아이의 눈높이와, 엄마를 잃은 아이가 바라보는 하늘과 그 슬픔을 아름답고도 슬프게 표현한 문장입니다. 몇 마디의 문장으로 슬픔을 이렇게 문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구나 싶었네요.


그런데 거기 내 앞에 놓인 말들과 마주하자니 그날 그곳에서 제자를 발견했을 당신 모습이 떠올랐다. 놀란 눈으로 하나의 삶이 다른 삶을 바라보는 얼굴이 그려졌다.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우리 사람은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 삶들은 모두 죽음으로 끝이 나버리는 게 우리 '존재'의 숙명이죠.

이 단편소설 속 화자는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아내입니다.

그 아내의 남편은 교사였는데, 남편은 자신의 학생을 구하기 위해 물속에 뛰어들었다가 그만 아이와 함께 물속에서 삶을 마감하고 맙니다.

남겨진 이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은 남편을 원망하던 아내는 어느 날 아이의 누나에게 편지를 받고 생각을 달리하게 됩니다.

자신의 남편은 그날, 죽음 속에 뛰어든 게 아니라 아이의 '삶'을 위해 자신의 '삶'을 걸고 뛰어든 게 아닐까라고 말이죠. 비록, '삶'이 또 다른 '삶'을 향해 뛰어들어 죽음으로 끝났다 할지라도, 분명 '삶'은 또 다른 '삶'을 죽음으로 건지기 위해 뛰어들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둘 다 '죽음'으로 끝나버린 비극이 참 마음 아팠던 문장입니다.


쓸모와 필요로만 이뤄진 공간은 이제 물렸다는 듯, 못생긴 물건들과 사는 건 지쳤다는 듯. 아내는 물건에서 기능을 뺀 나머지를, 삶에서 생활을 뺀 나머지를 갖고 싶어 했다.


생활을 단지 유지할 수 있는, 최저생계를 벗어난 여유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을 잘 표현해 낸 문장이네요.

저도 인턴을 하면서 최저 시급을 받으며 살았던 적이 있는데, 말 그대로 최저의 생활만 가능할 뿐 좀 더 풍족한 생활은 불가능하더군요. 무언가를 살 때에도 나의 선호보다는 가격과 기능만 보며 사게 되는 게 싫었습니다.

그러다, 요즘은 시험연구원으로 살면서 조금 더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 보니 내가 사고 싶은 나머지, 즉 필요와 기능을 벗어난 나의 '선호'를 살 수 있는 게 좋았습니다. 그 마음이 참 잘 표현되어 있었던 문장이네요.


그리고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참 짧고 덧없이 느껴져 버리지만, 어느덧 고개를 뒤돌아 보면 하루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어 있습니다. 가을의 그 무수한 낙엽들도 잘 뜯어보면 낙엽 하나하나가 쌓여있는 것처럼 말이죠.

책도 한 페이지들이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것처럼, 우리의 삶도 하루하루가 쌓여 이루어진 거대한 책입니다.

그 삶은 언젠가 치워질 낙엽처럼 덧없어 보일지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바스락 거리며 살아있습니다.


해가 지면 벌판 위로 순식간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지방 소도시는 서울보다 저녁이 빨리 찾아왔다. 강의를 마치고 버스에 오르면 온몸에 긴장이 풀렸다. 더불어 이상한 흥분과 각성도 약기운처럼 맴돌았는데, 어느 땐 누가 아무리 어려운 질문을 해도 대답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길에서 맞는 어둠은 매번 낯설었다.


작가님도 직장인 생활을 해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직장인의 퇴근길 감정을 참 잘 표현한 문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치열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향하는 퇴근길에 약간 넋을 놓고 있으면 가끔 이상한 흥분이 감돌 때가 있거든요.

오늘 정말 할 일이 많았고,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잘 해결해 낸 자신을 보며 자신감이 맴 솟을 때가 있습니다.

정말 퇴사하고 싶다가도, 갑자기 또 내일 출근해서 전쟁을 하고 싶기도 한 이 마음.

매번 정해진 지하철 노선을 따라 퇴근을 하고, 똑같은 밤을 맞이하지만 마음만큼은 매일 변합니다.

그래서, 내 감정에 따라 매번 찾아오는 퇴근길의 어둠은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어쩔 땐 낮보다 밝을 수도 있고, 어쩔 때는 칠흑보다도 더 캄캄한 착잡함이 나를 맞이할 수도 있죠.

그런 직장인의 퇴근길 마음을 잘 표현한 문장이네요.


END


우리는 모두 인생을 살면서 결국, 언젠가 사랑하는 이를 잃는 상실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상실을 겪은 우리는 겨울의 눈보라처럼 차갑고도 쓸쓸하면서, 절망적인 고독을 맛보게 되겠죠.

그러나, 우리가 그런 아픔을 겪었다고 해서 세상은 우리를 배려해주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 차갑디 차갑더라도, 바깥은 눈부실정도로 찬란하게 햇빛이 쏟아지는 여름일 수가 있습니다.

야속할 정도로 말이죠.

내가 누군가를 잃었거나 말거나, 세상은 야속하게도 강렬한 햇빛을 내쏟으며 굴러갑니다.


그러니,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 햇빛을 맞이하러 세상 바깥으로 다시 나서야겠습니다.

내 마음속 겨울은 결국 여름의 햇빛만이 서서히 녹여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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