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느낌이다.
숨이 차오르고, 깊은 한숨과 안도의 한숨이 반복되고…
갑자기 쓰고 있는 이 독일어가 너무 미치도록 싫어서
잠시 비어 있는 교실에 들어갔다 나오기도 했다.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르는 척.
1도 이해 안 가지만 100% 이해되는 척,
찜찜하지만 쿨한 척.
싫었지만 좋아하는 척.
답답하지만 개운한 척,
힘들었지만 가뿐한 척.
안 웃겼지만 웃긴 척,
아무 대꾸 안 하고 싶었지만, 마치 관심 있는 척.
온갖 ‘척’이라는 척은 다 했다.
그러고 나니 허무함이 밀려온다.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만 남는다.
2학년 반. 소그룹 아이들을 데리고 수학 공부를 하고,
잠시 쉬는 시간에 작은아들에게 문자가 왔다.
“엄마, 지난주에 본 프랑스어 시험 2개 틀렸어!!!!
그래서 우리 반에서 제일 잘했대. 너무 기뻐. 엄마도 기쁘지?”
놀랍고 기쁜 소식에 입가에 함박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억지 ‘척’이 아닌, 진짜 행복한 미소가. 너무 기뻤다.
“잘했어! 너무 축하해!!
근데 엄마는 조금 걱정도 돼.
형아랑 너랑 한꺼번에 쓰는 언어가 너무 많잖아.
적당히만 해도 돼. 그래도 이렇게 좋은 소식 들려줘서 고마워 :)”
라고 답장을 보냈다.
퇴근하기 직전, 큰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어제 독일어 시간에 했던 큰 프레젠테이션 점수가
‘만점’으로 나왔다고,
기쁨 가득한 목소리로 말해왔다.
그런데 나는 사실 엄청 중요한 이 프레젠테이션이
학교에서 어제 아들 차례였다는 사실을
어제 저녁이 되어서야 알았었다...
그래. 아이들은 잘 커가고 있다.
오늘 내가 했던 온갖 ‘척’들도
그럴 수 있는 하루였던 거라고 생각하려 한다.
그저 오늘을 살아내기 위해 필요했던 것들이었을 뿐.
아이들은 스스로에게 멋진 선물을 주며 자라고 있는데,
엄마가 못 버텨낼 게 뭐가 있겠나.
오늘 나는, 갑옷을 입은 듯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