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낯선 나라에 오자마자,
트램 안으로 까만 옷을 입은 남자들이 여러 명 우르르 몰려와 내 뒤에 앉더니, 하나로 묶은 내 머리 밑부분을 가위로 자르는 순간.
너무 놀라서 영어로 놀람과 분노를 표현했지만, 그 애들은 까르르 웃기만 했고, 트램에 타 있던 사람들은 그저 구경만 하고 있었다.
독일어 학원에서는, 우리가 알아듣지 못한다는 걸 아니까 선생님들이 자기들끼리 떠들며 비웃는 표정을 매일같이 지어 보였었다. 그 비웃음 만으로도 누구나 차가움을 느꼈던 매일같이 맴도는 이상한 분위기.
외국인청에서는 비자를 받아야 하는 우리가 모든 외국인보다 못한 취급을 받아도, 대응할 수 없는 진짜 수많은 날들...
우리의 체류가 그들에게 달려 있었으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체크카드(EC Karte)가 되지 않아 현금을 내면, 거스름돈과 영수증을 일부러 공중에 던지거나 바닥에 떨어뜨리고, 우리가 그것을 주우려 숙이면, 그들은 그 모습에 까르르 웃던 순간들…
집을 구하려고 월급 명세서를 보여줬더니
“청소부가 너보다 더 많이 벌겠다. 이걸 벌고도 너희가 부모냐?”
라는 말을 들었지만, 집을 구하는 게 우선이라 참아야 했던 날들.
지나고 보니...
내 머리를 잘랐던 남자애들은 성인이 아니라 12~16세 직업학교의 집에서도 통제 불능인 날라리들이었고,
옆에 타서 구경만 했던 것은 독일 사람들의 특징이었다.
절대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아무 개입을 하지 않는다.
왜? 본인 일이 아니니까.
학원 선생님들은 이 동네에서 유명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이면서, 외국인에게 독일어를 가르치는 척 웃음을 가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한참 후에 다른 학원 선생님에게 들어서 알게 되었다.
외국인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말을 더 해서 뭐 하겠나...
진짜 한숨만 나온다.
그런 이들에게 우리가 우리의 모든 개인정보와 성적표까지 보여주고 있었다는 걸…
그리고 저 집주인은 알고 보니 모든 외국인을 동물원의 동물만큼만 생각하는 사람에, 돈을 한 번도 벌어보지 않았던 사람, 세상에 어떤 월급이 존재하는지 아예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것.
그 외에도 생생하게 모든 것이 기억이 나는, 감히 셀 수 조차 없는 훨씬 넘는 상처와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데도,
“독일에 사니까 스트레스 없어서 좋겠다”
라는 말을 계속 들었다.
그 말까지 또 삼키며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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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토요일, 시험이 있던 날.
다 끝나고 나는 일부러 정말 쉬었다.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다.
그런데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왜 나는 이 많은 것을 참고, 또 참고, 또 참아온 걸까.
그렇게 사라져 버린 내 예쁜 나이들…
안타깝고 서글퍼져서 예전의 나에게 글을 썼다.
“너무 수고하고 있어.
그 많은 눈물과 서러움과 슬픔, 모두 결코 헛된 게 아니야.
조금은 울어도 돼.
몇 년 후, 아니 십몇 년 후에는 추억이 될 거야.
뭐가 그리 어려웠니,
왜 한국에 안 갔니,
왜 그랬니...
왜 계속 참아왔니...
너무 많이 참아왔잖아. 너무... 애썼어. 고생 많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