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제2막

by Traum

언제가 나의 제2 막이였을까..


독일에 처음 왔을 때?

결혼하고 나의 가정을 꾸리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태어나고 난 후부터?

다시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잘 생각해 보니,

그 모든 큰 변화의 시점들마다 새로운 인생의 막이 열렸던 것 같다.


그러나 진정한 인생의 제2막은 이제부터인 것 같다.


독일 사람이 되었다.


3월 중순에 시민권을 받았다.

종이 한 장의 시민권이 뭐라고...

그날도 참 기분이 너무 묘했다.


오늘은 신분증.

아이들 것과 함께 받고 나와서, 갑자기 위경련이 일어나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즉시 화장실로 가서 펑펑 울었다.


좋고 기뻐서 운 것이 아니다.

그리 좋지도 기쁘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다.

그 모든 감정을 느끼기엔, 우리는 지난 20년 넘는 시간들을 너무도 고생했으며, 이곳에서 독일 사람들과 좋은 경험이 거의 없다. 스마트 폰은커녕 핸드폰도 보편화되지 않고, 집에 인터넷도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 이곳에 와서, 우리는 정말 볼 꼴 못 볼 꼴 다 보며, 지금까지 버텨냈다. 버텼다고 하는 게 맞나, 견뎠다고 하는 게 맞나, 그 조차 이제는 더 이상 표현이 안된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한국으로 갔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람들이 손가락에 꼽힌다.


옛날 독일 영주권은 당연한 결정이었으며,

지금 독일 시민권의 결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영주권과 시민권의 이유가 어딨겠냐만은,

우리에게 가장 큰 이유는,

모든 공무원들과 최소한의 접촉을 위해서였다.


너무도 숱한 날들을 숨죽여 울었으며, 너무도 숱한 날들을 듣고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

말도 안 되는 상식 밖의 부당함에 한숨조차도 숨겨야 했던 정말 무수히도 많았던 지난 모든 날들.


우리가 겪은 그러한 많은 날들은 우리에게는 아주 큰 아픔이자 고통이었기에, 그만큼의 시간을 주고 마음에서 떠나보낼 것이다. 억지로 지난 일이니 잊자고 하기엔 너무도 긴 시간들이라, 그것에 남은 힘까지 쓰고 싶지가 않아서이다. 시간의 흐름에 맡기고 싶다. 그리고 우리는 이곳에 있기에,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다만 두터워진 배짱과 수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눈만 마주쳐도 속이 훤히 보이기에 우리가 이젠 언제나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어떤 장면들은 영원히 떠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분명 웃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굳이 다이어리를 꺼내 찾고, 아주 깊이 생각해 보아야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울었다.

갑자기 매 순간의 기쁨과 고통의 모든 날들이 한 편의 아주 짧은 영상인 듯, 내 머리를 메웠다.

한참만에 동사무소에서 나와서, 지하철로 가는데,

위경련에 배가 단단하고, 눈은 붓고, 손에는 새로운 신분증이 쥐어져 있고, 한마디로 어질어질했다.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아이들도 반반의 감정이다. 기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고향이니, 나보다는 덜 신기할 것같다.


지갑에 넣은 이제부터 제2막의 인생이 열리는 나의 새로운 신분증이 아직은 낯설고 신기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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