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에 나는 다른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었다. 별 이유가 없어도 깔깔 웃고, 본인을 위해서 용돈을 스스로 벌어보고, 새벽까지 친구들과 놀고, 가끔은 친구들끼리 여행도 가고, 힘들게 도서관에서 과제와 시험공부를 맘 편히 할 수 있던 그 친구들이 너무너무 부러웠었다. 자기가 태어났던 집에서 쭉 산다거나, 자기가 익숙한 곳에 지내는 친구들 모두가 부러웠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럴 수 없었으니까...
20대 중반에 다른 친구들이 나를 부러워했다. 내가 멀리 떠나서... 전혀 떠날 것 같지 않았던 내가 멀리 간다니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할 말은 많았지만 하지 않았다.
그리고 타국에서의 결혼, 그리고 육아의 시작.
그때까지만 해도 친구들은 나를 보고 아무 생각이 없던 것 같다.
30대가 되니, 친구들이 나를 부러워한다. 벌써 애들이 이만큼 컸냐며, 좋겠다고 한다.
그 당시 나는 그 말이 듣기 별로였다. 멀리 떨어져 도움 하나 없이, 병원도 못 가며 애들을 키우고 있었던 나의 고생과 마음은 그 누구도 관심 밖이고, 그저 나보고 좋겠다는 말 뿐이라 나는 별로였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난 항상 안정되어 있지 않았다. 20년 동안 딱 6번의 한국 방문 때마다, 아이들과 우리 가족이 머무는 곳은, 나에게는 친정을 가나, 시댁을 가나, 완전하게 낯선 곳이었고, 내 눈에 익숙한 것이 하나도 없었으며, 또 독일은 언제나 나에게는 타국이다.
그러니, 한국을 가도 100% 편하지 않았으며, 독일은 언제나 불편하다.
그런 것들이 나의 거의 인생의 반이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마음에 넣고 그 불편한 마음을 접어두기로 하고 살고 있었다.
중요한 일처리들을 위해 아주 급하게 티켓팅을 하고 한국에 10일 동안 갔다 왔다.
내가 머물렀던 오빠네 집은, 내가 태어난 동네이고, 약 20년을 살았던 동네이다.
아주 크게 새로운 단지로 바뀌었지만, 나는 한 시간의 산책으로 그 모든 곳을 파악하고, 내가 살던 동의 위치까지 찾아낼 수 있었다.
오빠네 가족과 매일 웃고 울며, 지나간 추억을 회상하며, 2박 3일 속초 여행도 갔다 오고, 애기들이랑 하루 종일 놀고, 너무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왔다.
마음이 편안해짐을 매일 느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오빠에게 말을 했다.
" 오빠, 나의 한국 방문 중, 가장 편안한 것 같아. 이유가 뭘까? 처음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서 그런가? "
오빠가 이렇게 대답했다.
"너의 몸이 이곳을 기억해서 그래. 너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었을 때였으니까. 비록 너무 오래 걸리고 그동안 너무 마음고생 많았지만, 이제라도 너의 불안함을 해소시킬 수 있는 단서를 찾아냈으니, 지금 안정의 충전이 또 다 떨어질 때쯤, 또 오면 돼. 너의 불편함, 불안함은 언제나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을 만난다는 것이었을 거야."
오빠 말이 맞았다.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기도 하고, 오빠의 답이 정말 정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은 며칠을 아주 행복하게 지냈다. 독일의 아들들과 남편은 잠시 생각하지 않았다. 걱정했던 것과 전혀 달리 독일의 남자 세분은 아주 잘 지내고 있었다.
매일 엄청난 양의 일처리의 연속이었지만, 약 23년 만에 가보는 나의 고향은 그대로였으며, 몸이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하고, 머리가 기억하는 버스와 지하철을 타보았다.
때로는 아주 일상적이고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것들이, 누군가에겐 최고의 선물이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이라는 느낌이 될 수 있음을 새삼스레 느끼는 나날들이었다.
독일로 돌아오는 날...
아예 잠을 자지 않았으며, 많은 생각의 정리로 새벽의 반을 지새웠고,
공항버스 새벽 첫 차로 공항으로 향했다. 새벽 6시 전부터 얼마나 공항에 사람이 많던지...
다들 여행 가는 분위기였다. 그 와중에 나는 눈물이 자꾸 눈에 맺힌다.
갑자기 뜬 메시지, 1시간 지연이라고...
얼마나 좋은지. 한국에 1시간 더 있을 수 있겠네? 하며, 기뻐하는 나를 보았다.
20년 동안 내 안에 쌓여있던 나만의 불행했던 상처 같은 불안감의 원인은, 바로 익숙한 곳에 가보거나 지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음을 알게 된, 가장 큰 선물을 받은, 10일간의 꿈같은 여행이었다. 나의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그래서 정말 감사한 6월이고, 가장 큰 생일 선물을 받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