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여름방학.
어느 날부터 삐그덕거리는 찬 공기.
모두가 느낄 수 있다.
자주 보이는 아들이 더 좋은 거지.
돈 잘 버는 아들이 최고다.
반대하던 며느리는 최고가 되었고,
찬성하던 사위는 지워진 듯하다.
아들은 하룻밤이라도 못 자면 애가 닳아, 잠 못 자서 어떻게 하냐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태어난지 몇 개월 안되는 친손녀 때문에 잠 설치는 며느리는 걱정이고,
단 한 번도 누구의 도움 없이 타국에서 독박육아한 딸은
"당연한" 것이다.
나는 참다 참다가,
"하룻밤 2시간 잔다고 안 쓰러져. 나는 잠을 잘 자 본 날이 거의 없어, 거의 20년째 3~4시간만 자고 살아. 애들 키울 때, 병원도 못 가는데 추운 겨울에 집에서도 입김이 나는데, 혹시 자면서 이불 차버리고 아침에 감기 걸릴까 봐, 내가 놓칠까 봐 전전긍긍하며 살다 보니, 10분마다 깨는 게 습관이 돼서 아직도 그래"라고 하자,
"너는 익숙해졌나 보지, 피곤하면 자!
누가 자지 말라고 하던?
몸이 안 바쁘니까 잠이 안 오는 거 아냐?"
그래도 참는다. 그럴 수 있지. 안 보이니 그렇지.
그냥, 어쩌다가 이런 말을 듣게 되는 처지에 놓였을까,
슬픔도 아닌, 무덤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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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끝무렵, 비슷한 사건으로 서로가 멀어졌다가,
어느 날 내가 문뜩,
'한 번뿐인 인생, 뭐 하나..' 싶어서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다시 지내던 터였다.
게다가 5월 중순, 시댁의 나에 대한 험담을 직접 듣게 되었고, 나는 엄청난 쇼크를 받았다.
여러 차례 사과를 하심에도 내 마음의 분노가 풀리지 않았고,
그래서 사돈에 화가 난 그들은,
애들 데리고 와서 좀 쉬라고 해서 가게 됐던
한국행 여름방학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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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일정이 며칠 안 남은 날,
친척 동생이 말해준 내용이, 이건 아니다 싶어서..
나는 운전도중 조용히 말한다.
"지나간 일이지만,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한테 말도 안 되는 욕 하고 다니지 마..
내 얼굴에 침 뱉기야... 그것도 모든 걸 과장해서 사실도 아닌데, 그렇게 험담을 해, 제발 그러지 마,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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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리가 난 것이다.
애들 다 보는 앞에서. 난리가 난다.
집에 오자마자 진심 버라이어티 하다.
나는 순간, 너무 충격이 셌는지, 웃음이 난다.
그리고 다 큰 아이들에게 이런 상황을 겪게 한 것에 대해 너무 부끄러워진다.
정말 부끄럽고 어른으로써 엄마로서 말을 잃었다.
아이들이 다 컸다. 누구라도, 애들 때문이라도 그만둬야 하는 것이 상식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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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초 왔던 대로,
큰 캐리어 6개, 배낭 3개를 들고,
보이는 모든 우리의 짐을 구겨 넣어 허겁지겁 챙겨서
집을 나온다.
마치 바랬던 것처럼, 온몸을 써가며 알아서 잘도 던져준다.
그렇게 9월 초, 한국 방문 일정이 끝나기 2일 전,
나는 아이들과 저녁 8시에 거리에 있다.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덥다고. 목이 마르단다
큰 아들이 울면서 말한다.
"엄마 불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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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충격에서 아직 덜 벗어났던 나에게
2차 충격이 엄청 크게 온 것이다.
나는 눈물이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도 정신줄을 잡았다.
다 큰 아들 둘이 내 옆에 있으니까.
나는 다른 부모이고 싶었으니까.
이 정도 충격이야, 독일에서 받았던 수천수만 가지의 충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기에.
난 괜찮았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작은 구멍조차도 도망칠 곳과 힘이 없었다.
내가 맘 붙이고 갈 곳이 없는 것에 슬펐다.
독일은 이러하고, 고향은 저러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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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괜찮다.
시간은 흘렀고,
과거가 되었고,
1년 사이, 난 많은 것을 해냈다!
그리고 지금은 웃으며 매일 아침을 맞이하잖아!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