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오나 Nov 13. 2024

선택이 어려울 때, 나는

사실 선택에는 힘이 없다

5년 전, 일하기 힘든 광고주를 맡았다.

  5년 전, 일하기 힘든 광고주를 맡았다. 당일에 광고물 디자인 제작을 의뢰 받으면, 디자인팀에 제작을 요청하고, 완성된 광고물에 대해서 여러번의 피드백을 거쳐서(피드백은 많았지만, 수정할 수 있는 시간은 1시간도 채 안되는 경우도 많았다^_ㅠ) 온라인 광고를 설정하고, 그 바로 다음 영업일에 바로 광고가 나가고 데일리로 광고 리포트가 매일 나가는 그런 분초를 다투는 광고주였다. 오전에는 광고 리포트를 쓰고, 오후에는 광고 제작을 하고, 저녁 시간에는 광고를 설정하고, 매일매일 광고가 바뀌어야 하니 00시 자정에는 광고를 끄고 켜야했다. 매 시간마다 데드라인이 있는 것도 심장이 쫄리고 부담스러운데, 성취감도 없었다. 우리가 광고를 한다고 더 효과가 있는지도 확인할 수 없는 광고주였고, 광고 제작물에도 우리의 의견은 한 방울도 들어갈 수 없었다. 성취감도, 주인의식도 가지기 어려운 그 광고 캠페인을 정말 꾸역꾸역 1년간 해냈다. 내가 꾸역꾸역 해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 당시 팀 환경도 한몫했다. 중고 신입들과 1-2년차 신입만 있었고(1-2년차들은 모두 매니저 직급이었다) 중간 관리자가 없었기에, 광고주의 황당한 요청도 막아주는 이 없고 우리의 업무도 제대로 관리가 안 되었다.

  이런 팀 운영이 팀 안팎으로 문제가 있음이 알려졌을 때, 우리 실의 실장님이 바뀌었다. 실장님은 모든 실의 구성원들을 불러 상담 시간을 가졌다. 꾸역꾸역 해나간 1년간 회사 측에서 이 광고주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고, 광고 캠페인 담당자 변경을 요청드렸음에도 꽉 막힌 답변만 돌아왔기에 상담이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감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해당 광고 캠페인 담당자 변경은 어렵겠다고 미리 판단하고, 상담 시간에는 해당 광고주 캠페인 업무와 함께 성취감을 느낄 추가 캠페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1-2주간의 상담의 결과는 나에게는 꽤 속상한 결론였다. 알고보니 같은 광고주 캠페인을 맡은 친구들은 이 광고주 계속하면 퇴사하겠다고 강경하게 얘기를 했었던 것이다. 그렇게 강경하게 말한 친구들은 그 힘든 광고주 캠페인에서 빠지게 되었고, 나 포함 '퇴사' 얘기는 꺼내지 않은 사람들만 힘든 광고주 캠페인에 남게 되었다. 그 때는 내가 그런 의견을 내게 된 선택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몇 주 후, 우리를 상담한 그 실장님이 나가게 되었다. 실장님이 나간 후, 우리 실 사람들은 뿔뿔히 흩어져 각기 다른 본부의 다른 팀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나마 이 회사를 다닐 수 있었던 건 또래의 동료들인데, 친한 동료를 잃으니 회사 다닐 맛이 나지 않았다. 나는 맡은 일이 있다(힘든 캠페인)는 이유로 함께 그 캠페인을 하던 팀장님/팀원들과 함께 팀 단위로 다른 본부로 갈 수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다들 업무가 없었기 때문에 각각 팀에 한 두명씩 뿔뿔히 흩어졌다. 팀 단위로 이동한 우리와 달리, 1-2명이서 팀을 옮긴 친구들은 적응에 꽤나 어려움을 겪었다. 팀마다 팀의 문화도 꽤 달랐고, 우리 실이 시끌시끌할 동안 우리 실 외부 사람들이 우리를 썩 좋게 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을 정말 잘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또 고생을 하게 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한 1-2년 후에는 회사가 둘로 쪼개지는 일이 있어, 뿔뿔히 흩어진 친구들 중에서 반강제로 퇴사한 친구도 생기게 되었다. 내가 그 힘든 광고주를 함께 하겠다고 한 선택 때문에, 나는 팀끼리 이동할 수 있었고, 보다 안정적인 본부에 남아 오래 회사를 다닐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좋은 선택을 했을까 묻는다면 '그렇다'고 시원하게 답할 수는 없다. 왜냐면 퇴사하고 이직한 친구 중에서는 팀장까지 맡게 된 친구도 있고, 다른 업무를 하며 새로운 재미를 얻은 친구도 있었다. 그럼 회사에 남았던 내가 나쁜 선택이었을까.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도 남아있으면서 보다 안정적인 구조의 팀과 본부를 거치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성취감이 있는 캠페인도 진행할 수 있었다.


  신입내기 매니저들인 우리가 한 선택들 중에서 어떤 선택도 좋거나 나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오직 이것 하나만 깨달았다. 선택은 내가 원하는 미래를 가져다 주지는 않는구나. 내가 그 선택을 한 순간에는 이런 미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힘든 광고주만 하면서 '내가 이 광고주 업무로 갈려나가겠구만' 이라고만 생각했지, 우리 실이 폭파(?)하고 우리 실 매니저들이 다른 팀 혹은 다른 회사로 다 떠날 줄 알았을까. 


내가 선택한 이 길이 어디로 향해 가는지


사회생활 초반에는 내 선택이 중요한 줄 알았는데, 선택에는 힘이 없었다.

  선택에는 정말 힘이 없었다. 내가 선택한 방향보다 세상이 휘몰아치는 게 더 빨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선택을 앞둔 사람에게, '너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까 아무렇게나 해' 라고 김빠지는 소리를 하는 건 아니다. 선택에는 힘이 없지만, 내 방향성과 태도에는 힘이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결과가 영원한 것도 아니고, 원하는 결과가 100% 나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신뢰감 있는 마케터가 되고 싶어'라는 방향성을 갖고 임한다면, 오래 걸리더라도 자신의 방향대로 이루어진다. 내가 감히 판단해보기에는, 그 때 책임감 있게 일하는 매니저들은 모두 자기 자리에서 경쟁력 있고 능력 있는 중간관리자가 되었다. 물론 나 포함. 각자가 좋은 방향성과 태도를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A 선택지와 B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A를 고르더라도, B 선택지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무엇을 먼저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나도 이 부분에 공감한다. 우리에겐 여러 번의 선택이 있고, 그 하나의 선택이 내 인생을 모조리 결정짓지도 않는다. 삶이 Birth(출생)과 Death(죽음) 사이의 Choice(선택)이라지만, 선택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자. 

작가의 이전글 내 인생의 리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