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코스는 고행의 길이다. 3코스는 A코스와 B코스가 있다. A코스는 중간지대를 지나고 B코스는 해안가를 따라간다. A코스가 다소 길지만 오름을 오르는 등 다양해서 A코스를 선택했다.
모든 길이 항상 경이와 환희만 있겠는가! 3코스는 끝없이 지속되는 시멘트길, 그 길 옆으로 감귤농장, 무밭이 이어진다.
4월 제주 햇빛은 강렬하게 내리 비춘다. 그 강렬한 햇빛의 에너지로 감귤과 작물이 생산 활동을 한다.
혹시 제주도가 한라산과 용천수가 흐르는 해안으로 이루어지는 섬이라고 알고 있다면 올레길 3코스를 걸어보라.
그러면 제주가 농민의 땅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구획을 어떻게 처음 생겼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형태의 농장이 돌담을 사이에 두고 끝없이 오르내린다.
3코스는 창자처럼 꼬불꼬불하다. 농장과 농가만 있고 중간에 상가와 식당이 없어, 배낭에 간식거리가 없으면 걷는 내내 배고픔을 느끼며 걸을 수밖에 없는 길이다. 하지만 보행자가 배부른 행복을 항상 누릴 수 있겠는가?
(제주도 여인의 고달픔을 벽에 적은 글 )
3코스 조금 지나면 혼인지가 나온다.
전설에 따르면 제주 3 성인 고 양 부 씨가 바닷가에 떠밀려온 함 속에 있던 벽랑국 세 공주와 혼인을 이곳 혼인지에서 했다고 한다.
올레길은 널따란 혼인지 잔디 마당과 잘 꾸며 놓은 정원을 통과한다. 잔디에 있는 돌 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제주 3대 성 고, 양, 부 씨가 벽랑국 세 공주와 혼인했다는 곳- 혼인지)
농가를 지나 잠시 해안가를 지난다.
몽골에 항거한 삼별초가 여몽 연합군에 쫓겨 진도에서 제주도로 피신할 것을 대비해서 고려 조정에서 두 장군을 시켜 제주 해안가 150킬로에 석성을 쌓은 흔적이 있다.
그 시절에 인구도 많지 않았을 텐데 그 긴 지역에 돌 성을 쌓았을 백성의 고난이 서려 있는 곳이다.
중간에 통오름과 독자봉은 청량한 선물이다. 시멘트 길을 걷느라 거칠어진 발을 위안해 주고 부드러운 땅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기회이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발 밑에서 사각거리는 솔잎, 편백나무 잎, 활엽수 낙엽들과 제비 풀, 쑥과 잔디의 부드러운 느낌을 흠뻑 누린다.
대체적으로 3코스 길은 지루하다.
농토 길을 함부로 걸어 다니지 말라는 듯, 농로 길은 딱딱하고 건조한 시멘트 길이다. 어깨가 무겁게 누르고 발과 무릎도 뻐근하다.
어제 오후부터 밥 다운 밥을 먹지 못하고 한두 개 초콜릿으로 허기를 달랬지만, 배고픔을 면할 수 없을 정도로 역부족이다.
농로와 마을에는 식당과 상점이 거의 없다. 부지런한 농부는 식당에서 밥을 먹지 않는다.
배고플 때는 허리를 조여야 한다. 또 짐을 운반할 때도 허리띠를 조여야 한다. 허리와 다리인 하체에 하중을 얹고 땅을 딛고 가야 한다.
배낭이 점차 무거워져 어깨를 억누르고 발을 끌게 만든다. 어깨가 무거우면 사람은 가라앉는다. 어깨가 아플수록 허리띠를 더 단단히 조이니 배가 등에 붙는다.
( 3코스 단조로운 길 풍경 )
드디어 몇 시간을 걸어 중간 스탬프를 찍는 김영갑 갤러리에 도착했다.
근처에서 편의점과 식당을 찾았다. 오후 네 시인데 식당에 사람이 있었고 다행스레 주문을 받아줬다. 국밥이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순간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었다.
지끈거리던 머리도 맑아지며 피로가 한꺼번에 사라졌다.
배가 고프긴 했지만 국밥도 맛있다. 맛있는 국밥과 행복의 원천인 호르몬이 조화를 일으켜 몸에 기적을 만드는 것이다. 국밥 집주인에게 근처 숙소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자 직접 운영하는 농장에 카라벤이 있으니 그곳에서 자라고 한다.
새로운 경험이라 생각되어 선택했다. 카라벤 선택은 행운이었다. 카라벤 내에는 샤워가 가능한 화장실, 아늑한 침대, 부엌 시설과 와이파이 등 필요한 것이 모두 있었다.
감귤 농원을 직접 들어와서 농장의 삶도 엿볼 수 있었다.
이 농장의 감귤나무뿌리는 탱자이고, 여기에 감귤 줄기를 젖 붙여서 귤나무가 되었기 때문에 이런 감귤나무는 강한 탱자 모태 영향으로 생명력이 강하다는 것, 탱자가 모태여서 어떤 가지는 가시가 달린 채 위로 솟구쳐 전정을 자주 해야 된 다는 것, 작년에 귤이 열린 나무는 올해는 해갈이 한다는 것을 농장주에게 들었다.
꽃이 피기 전 꽃 몽우리도 처음으로 보았다.
(감귤 꽃 몽오리 )
농장주는 30년간 교사로 일하다 4년 전 은퇴 준비를 했다. 부산에서 주말에 왕복하며 농장을 가꾸다가 1년 전 퇴임하고 이곳으로 이사와 농장과 식당을 한다. 식당은 잘되고, 농장 일도 익숙해져서 정착에 성공했다.
지금은 남자의 로망인 자기 땅을 가꿀 수 있고 땅에서 하고 싶은 일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 행복하단다.
내일은 동네 어린이들 상대로 무료 교육을 하려고 횃불 아카데미를 연다. 교사 생활 동안 베풀지 못하며 살았는데 지금은 가능하면 기부도 하고 좋은 일을 한단다.
저녁에 그의 권유로 식당에 가서 동네분과 같이 제주 막걸리를 마셨다. 제주 서쪽 공항, 에어시티 혁신 도시 바람으로 땅값이 크게 올랐고 앞으로 더 오를 전망이라 한다.
동네 분은 식당 건물 주인이며 농원을 운영한다. 제주에 온 지 삼십 년이 되었고 이제 성공한 재산가로 해외여행을 자주 간다. 곧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로 여행을 간다고. 농장 주인이 형님으로 대접하며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한다.
제주에 오래 산 그에게서 몇 가지 정보를 들었다. 제주는 말들이 많아서 무덤을 넘지 못하도록 사방에 담을 쌓고 들어갈 구멍을 만드는데 구멍의 위치를 보면 무덤이 남자의 무덤인지 여자의 무덤인지 구분이 가능하다고.
또 무덤의 돌은 죽은 자가 쌓을 수 없으니, 당연히 죽은 자 주변 산 사람이 쌓는다.
따라서 무덤의 돌 담을 보면 죽은 자의 인품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죽으면서 자신이 평생 일군 밭에 가장 양지바른 곳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하고 후손은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후손이 양지바른 곳에 잘 모셔야만 효자 소리를 듣고 그러지 못하면 대부분 집성촌에서 사람대접 못 받는다.
제주에서 산을 오름이라 하고 묘를 산이라고 한다. 그래서 묘를 둘러쌓은 담을 산 담이라고 한다. 육지에서도 묘지를 산소라고 하니 이해된다.
( 제주의 밭에 있는 산 - 무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