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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업의 부활 — AI 시대, 기술과 공동체 결합

4부 산업을 다시 상상하다. 16장 농업의 부활-스마트팜과 자동화

by 신피질

우리나라 농가 수는 대략 100만 가구에 못 미치고, 농가 인구는 200만 명 남짓이다. 농가 인구 절반 이상이 65세 이상이고, 농림어업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1.6~1.8% 수준이다.


전국 평균 1인당 소득이 약 4천5백만 원이라면, 농업 부문과 농가 인구를 기준으로 계산한 농촌(농업) 1인당 소득은 약 2천만 원 정도다. 식량자급률은 기준에 따라 다르지만 ‘식량’은 50%, ‘곡물’은 20% 내외이고, 사료용 곡물까지 포함하면 20% 수준으로 더 낮아진다.


젊은 사람들은 더 많은 기회가 있는 도시로 떠났고, 농촌은 고령화되었다. 국토의 70%가 산이라 경작지가 넓지 않고, 논밭은 작은 필지로 쪼개져 큰 기계로 한꺼번에 작업하기 어렵다.

쌀 중심 지원이 이어지면서 밀·보리·콩 같은 다른 곡물은 급격하게 축소되었고, 비료·연료·노동 같은 비용은 오르는데 농산물 가격은 변동이 심하다. 기후가 점점 변덕스러워지고 병해충 위험이 커진 것도 부담이었다.


농업 교육은 점차 줄어들고, 전공과 현장의 연결은 부족했다.

장비를 들여도 유지·관리와 데이터 해석에서 막히는 경우가 많았다. 유통은 길고 복잡했고, 원료를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기반은 취약했다. 결과적으로 ‘많이 힘들고, 남는 건 적은’ 구조가 되었다.


네덜란드는 땅이 넓지 않지만 농식품 수출이 세계 최상위권이다.

비결은 흙만 보지 않고 데이터를 본 데 있다.

유리온실에서 온도·습도·빛·이산화탄소를 정밀하게 조절하고, 물과 영양을 꼭 필요한 만큼만 준다. 병해충은 카메라와 센서로 초기에 찾아내고, 온실의 열은 회수해 다시 쓰고, 태양광이나 지열을 보태 에너지 비용을 줄인다.

대학과 연구소, 종자 회사와 장비 업체, 물류 기업과 농가가 하나의 팀처럼 움직이게 제도를 설계해 두었기 때문에, 농민은 설비와 데이터, 판로를 묶어 운영할 수 있다.

네덜란드가 보여주는 메시지는 ‘면적’이 아니라 ‘정밀함’이 생산성을 만든다는 것이다.


덴마크는 협동조합의 힘이 강하다.

각각은 작은 농가지만, 가공과 유통, 수출을 조합이 묶어서 해 주고, 농민은 단순 납품자가 아니라 회사의 주주다. 유제품을 만드는 아를라푸드(Arla Foods)나 돼지고기를 가공·수출하는 데니시 크라운(Danish Crown)이 그런 방식으로 성장했다. 수익은 배당으로 농민에게 돌아오고, 남은 이익은 공동 설비와 연구, 복지에 재투자한다. 가축 복지와 환경 기준 같은 ‘비용’으로 보이는 것들도 실제로는 브랜드 신뢰와 해외 시장 접근의 조건이 되었다. 요약하면 “혼자 하지 않고, 함께 책임지고, 이익은 다시 지역으로”라는 단순한 원칙이 장기 경쟁력을 만든 셈이다.


한국도 변하고 있다.

시설원예와 딸기·버섯·잎채소 같은 품목을 중심으로 온실 안 환경을 자동으로 관리하고, 물 주기와 영양 공급을 자동화하고, 병해를 데이터로 미리 짐작하는 농가가 늘었다. 도입 전과 비교해 수확량이 20~30% 늘었다는 현장 보고도 이어진다.


정부는 스마트농업 지구를 지정해 보급형 모델을 확산하려 하고, 노지(비닐하우스가 아닌 밭)에서도 드론 살포나 관개 자동화 같은 실증이 확대됐다.

교육 쪽도 농업교육포털을 통한 온라인·현장 혼합 과정이 늘고, 청년 창업농은 교육·자금·농지·멘토를 묶은 ‘패키지’로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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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기능식품, 발효식품, 프리미엄 과채 가공품 같은 분야에서 수출 기록이 갱신되는 것도 고무적이다.


다만 좋은 사례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뿐, 지역 단위로 묶여 돌아가는 곳은 아직 많지 않다.


이제 현실적인 질문을 던져 보자.

인공지능 때문에 도시의 초·중급 사무직 일자리가 줄어든다면, 농촌은 청년에게 새로운 길이 될 수 있을까.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농업을 흙 일만이 아니라 ‘설비·데이터·공정’을 다루는 일로 다시 정의하면 된다.

드론으로 씨를 뿌리고, 필요한 곳에만 약을 뿌리고, 로봇으로 수확하고, 여러 파장의 빛으로 식물의 상태를 읽고, 물과 영양은 센서가 읽은 데이터에 맞춰 자동으로 조절한다.

여기에 날씨·토양·생육 정보를 한데 모아 ‘다음에 뭘 해야 할지’ 알려주는 예측 모델을 얹는다.

농가는 화면(대시보드)으로 농장을 경영하고, 지역에는 여러 농가의 데이터를 모아 처방을 만들어 주는 관제센터가 선다.

대학과 직업학교, 혁신밸리는 현장 실습과 데이터·브랜드 교육을 한 코스로 엮어야 한다. 코드를 조금 짤 줄 알고, 배관을 이해하고, 포장과 라벨을 스스로 기획할 수 있는 청년이라면 농업에서 충분히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방법은 구체적일수록 힘이 있다.

먼저 밀·보리·콩 같은 토착 곡물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 연도별 자급률 목표를 정하고, 전략작물 직불금(특정 작물을 심으면 보조해 주는 제도)과 계약재배(수확 전에 미리 약속하고 사 주는 제도), 공공비축(국가가 일정 물량을 사서 저장)을 묶어서 안정성을 높인다. 논과 밭을 번갈아 쓰거나 함께 쓰는 이모작·겸작 체계를 지역별로 설계하고, 값비싼 대형 장비는 조합이 리스나 공유 방식으로 운영한다. 품종은 기후에 강하고 병해에 잘 버티며 가공하기 좋은 쪽으로 개량하고, 씨앗은 지역 유전자원은행에서 관리해 ‘씨앗 주권’을 지킨다.


유통은 짧고 투명해야 한다. 산지에서 모으고, 미리 식혀(예냉) 품질을 지키고, 선별·포장을 거쳐 공동 브랜드로 직판·수출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지역 단위로 표준화한다. 원산지, 온도 이력(차갑게 보관한 기록), 탄소 배출 같은 정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게 디지털 인증을 붙인다. 이렇게 되면 가격이 흔들릴 때도 신뢰가 버팀목이 된다.


원료만 팔지 말고 가공으로 가치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과일은 퓌레나 농축액, 동결건조 가루, 추출물 같은 중간재로 바꾸고, 다시 고급 간식이나 소스, 바로 마시는 음료, 기능성 식품, 식물 단백질 제품 같은 완제품으로 확장한다. 위해(위험) 요소를 막는 위생 기준과 해외 규격은 공장을 짓는 단계에서 미리 충족하도록 설계하고, 공정에서 생기는 데이터는 자동으로 모아 품질의 들쭉날쭉함을 줄인다.


수출은 가까운 곳부터 확실하게.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고, 일본은 품질에 매우 민감한 시장이다. 한국은 이 두 시장 사이에 있다. 청결하고 안전하며 정직하다는 이미지를 지키면서, 생산부터 유통까지의 기록을 투명하게 보여 주면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다. 온라인 판매와 현지 채널을 함께 쓰고, 한류(음식·문화와 연동)를 제품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연결하면 효과가 커진다.


협동의 형식은 덴마크에서 배울 수 있다. 작은 농가가 혼자 혁신하기는 어렵다. 조합이나 합자회사 같은 형태로 농가가 함께 설비와 데이터, 브랜드를 소유하고, 경영은 전문경영인과 농민대표가 함께 맡는다. 이익은 배당으로 나누되, 일부는 지역 기금으로 남겨 공동 설비와 연구, 복지에 재투자한다. ‘함께 위험을 나누고, 함께 이익을 나눈다’는 단순한 원칙이 오래 버티는 길이다.


인공지능은 전 과정에 들어갈 수 있다. 작물의 디지털 쌍둥이(컴퓨터 속 가상 모델)를 만들어 생육을 미리 시뮬레이션하고, 영상으로 병해를 찾아내면 경보만 울리는 게 아니라 바로 처방을 내고, 실제 결과를 다시 학습시켜 점점 똑똑해지는 순환을 만든다.

물과 영양 공급은 식물 상태에 맞춘 ‘처방전 자동화’로 바꾸고, 생산관리(ERP), 공정관리(MES), 검사관리(LIMS) 같은 기업용 소프트웨어는 농식품에 맞게 가볍게 쪼개 모듈로 제공한다. 장비는 표준 방식으로 연결해 특정 회사 제품에 얽매이지 않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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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입문–중급–고급의 계단처럼 이어져야 한다. 입문 단계에서는 현장 안전과 설비 기본, 중급에서는 데이터 수집과 간단한 자동화, 고급에서는 공정 설계와 해외 규격, 브랜드와 재무를 배운다. 학교–기업–농가가 함께 운영하는 실습을 의무화하고, 지역의 실제 문제를 과제로 풀게 한다. 졸업은 취업·창업·가업 승계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한다.


고령 농가는 체면을 잃지 않으면서 물러설 수 있어야 하고, 그동안 쌓은 기술은 멘토링으로 남겨야 한다. 도시에 있는 디자이너·개발자·마케터도 단기 체류 프로그램으로 농촌 기업을 돕게 하면 좋다. 농촌은 닫힌 마을이 아니라 열린 산업 캠퍼스가 되어야 한다.


정책은 점검표처럼 분명해야 한다.

전략 곡물의 자급률 목표와 직불·계약·비축을 묶은 제도를 법으로 규정하고, 지역 스마트 농·식품 단지를 확정해 집하·예냉·선별·가공·관제·교육이 한 곳에서 돌아가게 한다.


덴마크식 ‘농민 주주제’는 우리 식으로 하이브리드(협동조합+회사) 형태로 도입하고, 수출 규격은 공정 설계 단계에서부터 미리 맞춘다. 공공과 민간이 함께 쓰는 농업 데이터 저장소를 만들고, 장비와 소프트웨어가 서로 쉽게 연결되도록 표준을 깐다.


마지막으로, 보육·의료·문화 같은 생활 인프라는 인력 유치를 위한 ‘산업 설비’로 본다. 일이 있어도 살기가 불편하면 청년은 오래 머물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패를 허용해야 한다. 농업도 피벗(방향 전환)이 빨라야 한다. 정책·금융·보험이 그 속도를 뒷받침해야 혁신이 멈추지 않는다.


이렇게 조각들을 맞추면 무엇이 바뀔까.

농촌은 다시 기업이 된다. 농민은 월급만 받는 사람이 아니라 배당도 받는 주주가 되고, 청년은 흙과 데이터를 함께 다루는 ‘지식 농업자’가 된다.

지역에는 집하장 대신 관제센터와 가공 공장이 들어서고, 가격 대신 브랜드가 농가의 자존심이 된다. 지방의 중산층은 농업의 공급망 곳곳에서 자라나고, 도시는 과밀에서 조금씩 풀려난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고, 신뢰는 자본이며, 공동체는 플랫폼이다. 우리는 이미 산업을 여러 번 바꾸어 온 나라다. 이제 농업의 차례다. 땅은 작아도 기술과 신뢰로 깊어지고, 속도는 느려도 오래가는 길.

그 길 끝에서 한국은 식량을 자급하는 나라를 넘어, 미래의 식문화를 수출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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