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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 몸과 마음을 잇는 보이지 않는 강

by 신피질

신경계는 늘 우리 몸속에서 묵묵히 일하지만, 평소에는 거의 느낄 수 없는 존재다.


4년 전 잦은 골프로 어깨 뒷부분 만성 불편함에 회사 근처 정형외과에 갔더니 의사가 목주사를 놓았다. 주사 바늘이 들어가자마자 온몸이 떨리는 공포와 비명이 나왔다. 단순한 통증이 아니라 ‘신경이 다쳤다는 직감으로 주사를 바로 빼게 했다. 주사를 빼는 순간까지 이어진 두려움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도 목이 아닌 팔꿈치 근처 및 새끼손가락 주변에 가끔씩 찾아오는 마비감은, 신경이라는 세계가 얼마나 섬세하고 길게 뻗어 있으며, 한 번의 손상에도 깊은 여파를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


혈관은 피가 흐르고 림프관에는 림프액이 지나가지만, 신경은 액체가 흐르는 관이 아니다. 신경은 전기를 전달하는 세포들이 길게 이어진 구조물이다. *뉴런(neuron)*이라 부르는 세포 하나하나가 길게 뻗어 마치 전선처럼 연결되고, 그 끝과 끝이 만나는 지점—시냅스—에서는 액체도, 고체도 아닌 ‘전기와 화학의 짧은 반짝임’이 지나간다. 전선 안에 구리가 있는 것처럼 신경 안에 금속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속이 빈 튜브도 아니다. 뉴런의 막을 따라 이온이 이동하면서 전압이 변화하고, 이 전압이 파동처럼 흘러가 몸 전체로 정보가 전달된다. 인간의 감정 하나, 기억 하나, 손가락을 살짝 움직이는 그 작은 의도까지도 모두 이 전압의 흐름에서 나온다. 신경계는 흘러가는 액체의 세계가 아니라, 빛과 전기의 언어로 쓰인 또 하나의 자연이다.


뉴런의 세포체는 발전소처럼 단백질을 만들고, 그곳에서 뻗어 나온 축삭은 전신으로 뻗어나가는 전선이다. 신경세포는 축삭들로 연결되어 있고, 일부 말초 신경의 경우 단 하나의 세포가 1m 이상 길게 이어진 경우도 있다. 그 내부에는 세포핵 및 미토콘드리아등 세포의 모든 기능이 있다. 신경은 이온의 이동을 통해 전기 신호가 만들어지는데, 여기에 사용되는 이온은 주로 나트륨(Na⁺), 칼륨(K⁺), 칼슘(Ca²⁺)이다. 나트륨이 세포 안으로 들어오면 전압이 상승하고, 칼륨이 빠져나가면 전압이 떨어진다. 칼슘은 시냅스에서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는 스위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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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신경세포의 숲이다. 860억 개의 뉴런과 100조 개의 시냅스가 서로 얽혀 있다. 이 숲의 중심에는 시상과 시상하부가 자리한다. 시상은 대뇌피질 바로 아래에 위치한 ‘감각 중계센터’이며, 시상하부는 그보다 더 깊은 곳—변연계 내부에서, 뇌간 바로 위에 자리한 ‘생명 조절센터’다. 시상하부는 체온, 갈증, 배고픔, 스트레스, 호르몬 조절, 자율신경의 균형을 모두 관리한다. 의식이 있는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가 만나는 경계선이 바로 이곳이다.


심장은 우리가 제어한다고 해서 움직이지 않는다. 그 박동은 뇌간에서 보내는 자율신호와 심장 자체의 ‘박동세포’가 함께 결정한다. 호흡도 그렇다. 숨을 참는 것은 의식의 영역이지만, 골똘히 생각하다 보면 숨 쉬는 것을 잊는 일이 없다. 자율신경계가 계속 숨을 이어준다. 신경계는 두 세계를 모두 갖고 있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움직이는 체성신경계, 그리고 혈압, 심장박동, 소화, 땀 등 생명 유지 기능을 조절하는 자율신경계. 이 둘은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한데 얽혀 있다. 마음이 불안하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불면에 시달리면 장운동도 흐트러지는 이유가 바로 이 경계의 모호함이다. 신경계는 단순한 기계적 회로가 아니라, 감정·몸·의식이 결합된 살아 있는 생명의 직조물이다.


신경계와 감정계는 분리된 시스템이 아니다. 감정의 중심인 변연계—특히 편도체는 공포·불안·슬픔 같은 원초적 감정의 본부다.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시상하부가 반응하고, 시상하부는 자율신경을 조절하며 심장박동과 혈압을 바꾸고, 이어서 호르몬계를 자극한다. 이것이 감정이 곧바로 몸의 변화로 이어지는 이유다. 슬플 때 장운동이 달라지고, 불안하면 손끝이 떨리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감기에도 잘 걸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척수는 변전소다. 뇌에서 내려오는 신호도, 팔·다리에서 올라오는 감각도 이곳을 거쳐 흐른다. 척수에는 31쌍의 척수신경이 있고, 각각은 수천~수만 개의 축삭이 묶인 케이블이다. 내가 경험한 목 주사 후 손가락 마비도, 이 케이블 중 일부가 자극되거나 손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경은 길고 섬세하며, 한 번 손상되면 회복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신경·혈관·림프는 거의 항상 함께 다닌다. 신경이 혈관의 산소를 필요로 하고, 면역은 신경을 보호한다. 생명은 분리된 시스템이 아니라 서로 얽힌 하나의 조직이다. 우리가 뭔가를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순간은 이 네트워크의 교향곡이다.


신경은 전신에 퍼져 있지만 그 구조는 혈관과 다르다. 혈관은 가지처럼 넓게 나누어지지만, 신경은 전신을 다시 나무처럼 구성한 뒤 그 선들을 서로 이어 붙인 거대한 네트워크다. 말초신경은 손끝과 발끝, 장기와 근육까지 이어져 있고, 그 모든 신경선은 척수로 들어간다. 척수는 기차역처럼 수많은 신경이 들어와 목적지를 찾는 중앙선이고, 척수는 다시 뇌와 연결돼 있다. 척수 중에서 목의 경부는 팔과 다리로 가는 신경이 모여 있어 12~14mm로 가장 두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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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오랫동안 뇌와 신경을 ‘열어볼 수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상자’로 여겼다. 전기를 발견한 이후에야 신경도 전기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이해했고, 20세기 중반 들어 뉴런과 시냅스의 화학적 구조가 밝혀졌다. 그리고 21세기 들어서는 신경망 전체의 지도를 그리는 ‘커넥톰(connectome)’ 연구가 본격화됐다. MRI보다 정밀한 도구로 우리가 보고 느끼는 순간 형성되는 신경 회로를 실시간으로 포착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현대의 과학은 신경을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끊임없이 변하는 패턴’으로 본다. 정적인 해부학에서, 동적인 네트워크 과학으로의 전환이다.



최근 로봇 손가락이 피아노를 치고, 바늘에 실을 꿰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집어 올리는 모습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로봇들은 고전적인 모터 제어가 아니라 ‘인공 신경망(ANN)’을 이용해 움직임을 학습한다. 인간의 신경계가 패턴을 학습하듯, 로봇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연결의 최적화’를 찾는다.


인간의 손가락은 40개 이상의 근육과 30개 이상의 관절 신경이 합쳐진 복잡한 구조인데, 로봇은 이를 모방하기 위해 다중센서와 딥러닝을 이용한다.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패턴을 통해 움직임을 최적화한다’는 원리는 거의 유사하다. 기술은 신경계를 닮아가고 있고, 신경계는 기술의 언어로 점점 더 해석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운동을 근육을 키우는 행위로만 이해하지만, 사실 근력보다 먼저 변하는 것은 신경이다. 새로운 운동을 하면 처음 몇 주 동안 근육량이 크게 늘지 않아도 힘이 붙는 이유는 신경계가 ‘근육 사용 패턴’을 학습하기 때문이다. 이를 **신경근 적응(neuromuscular adaptation)**이라 부른다. 운동은 신경 회로를 강화한다. 균형감각, 반응 속도, 집중력도 신경계의 기능이며, 나이가 들어 근육보다 먼저 약해지는 것은 바로 신경의 속도다. 노년기에 넘어짐 위험이 커지는 이유도 근력 부족이 아니라 신경 반응 지연 때문이다. 신경 건강은 몸의 건강을 넘어서, 삶의 품질과 직결된다.


신경계는 근육처럼 ‘연습’으로 강화된다.

걷기, 등산, 균형 운동: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의 회로를 동시에 자극한다.

적당한 스트레스, 충분한 수면: 수면 중 시냅스는 정리되고 새로운 연결이 자리 잡는다.

명상과 호흡조절: 자율신경의 균형을 찾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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