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맨발 걷기와 사유, 15코스

by 한재영 신피질

이른 아침 바다는 하늘을 닮아 연회색을 띤다. 바다는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고요하고 파도는 서서히 해안가에 도착해서 사라진다.

밤새 죽어 있던 바다 한가운데서 거대한 해양 풍력 날개가 서서히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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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종일 기억하려고 안간힘을 썼던 천재 철학자 이름이 드디어 생각났다.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이다.

20대에 논리 철학 논고를 발표하고, 철학을 완성했다고 선언한 오스트리아 천재 철학자이다. 그의 어려운 언어 논리학을 이해하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그는 언어가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없다고 했고,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는 대상이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 대상의 실체는 사라지고 언어로 한정된 표상이 실체를 대체하여 실상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사과가 무엇인가라고 물어볼 때, 둥그렇고 붉은 과일을 연상하지만, 실제로 사과는 한 종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과의 성숙도, 지역 등 모든 것에 따라 수천, 수만 가지 차이가 있다. 또 한 개의 사과도 실체를 알려면, 먹어봐야 한다.


꽃이나 나무 이름도 그 이름이 그 실체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언어의 역사이다. 또 그들이 스스로 지은 이름이 아니라 그 지역 사람들의 생각 감정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자연에게는 굳이 필요 없는 것들이다.


내가 왜 꽃 이름과 식물 이름을 알려고 하지? 호기심이라는 욕망의 탯줄이 감고 있는 것이다.


불교 반야심경 핵심인 사람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다는 불생불사를 깨닫겠다고 매일 반야심경을 들으며 명상하고, 종교 및 철학 서적을 읽어봐도 육체 보존의 핵심인 의식주, 감각, 언어의 세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농경민이 주거 정착 이후, 만 년의 세월 속에 형성된 공포의 DNA가, 어제 오후 늦게 숙소를 찾지 못하고 깜깜한 밤에 고생하지 않을까 라는 두려운 생각을 강요했다. 농경민의 후손이 매일 짐을 지고, 새로운 숙소를 찾아 이동하는 유목민의 삶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어제 오후 4시 한림항에 있는 14코스 종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해안가 올레 코스를 한 시간 가까이 지나서 14코스를 지나쳐 15코스를 5km나 온 것을 뒤늦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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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곳이어서 숙소를 찾지 못할까 걱정돼서 다시 숙소가 있을 법한 번화가인 14코스 종점인 한림항으로 되돌아갈까 생각했지만 조금 더 가면 숙소가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계속 걸었다.

30분 정도 더 걸은 후, 곽지 해수욕장 근처 민박집을 보자마자 얼른 전화를 걸어 방을 구했다. 다행히 방은 깨끗하고 넓었다.


자동차로 여행을 하지 않고 도보 여행할 경우 숙소는 골칫거리이다. 오후 5시 지나면 온통 숙소 걱정이 일어나고 걸으면서도 숙소만 찾게 된다.


옛사람들은 어떻게 그 긴 여행을 했을까? 과거 숙소가 많지 않던 시절, 남쪽 도시인 부산이나 여수 순천에서 한양까지 괴나리봇짐을 지고 그 먼 길을 어떻게 걸어갔을까?

당시 산속에는 호랑이 등 생명을 위협하는 짐승들도 있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니 보부상들은 그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어떻게 전국을 이동했을까? 옛사람이 야생에 적응하는 능력이 현대에서는 많이 사라진 듯하다.

곽지해수욕장을 떠나 해안가 산책로를 걷다가 멈춰 서서 에메랄드색 바다를 본다.


끝없이 물결치는 파도 소리가 가슴을 후빈다. 까만색의 기괴한 용암과 비단처럼 고운 바다가 만든 흰색 포말이 선명하게 대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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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해안가를 걷다 보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시커먼 용암덩어리를 본다. 화산 폭발이 얼마나 거대했을지가 상상이 안 간다.


알고 보면 우리는 불덩이 위에 살고 있다. 지구 지각 판 밑에 불덩어리인 마그마가 호시탐탐 지각을 뚫으려고 하지 않는가?

지각은 30킬로 두께인데 마그마가 생성되는 지각의 바로 아래 맨틀은 3000킬로이고 온도가 4000도까지 올라간다 하니 지옥의 불구덩이보다 더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지구가 존재한다.

지구 불덩어리의 거대한 에너지가 중력을 만들어 태양과 맞짱을 뜨며 지난 45억 년 넘게 단 1미터도 끌려가지 않고 줄다리기하는 중이다.

지구의 엄청난 수고에 감사를 표한다.


알고 보면 나도 지구의 부분이고, 지구도 태양계이다. 태양이 사라진 지구는 없다.


내가 어제저녁 먹은 김치찌개도, 식사 후 마셨던 물도 모두 지구다. 내가 마신 산소도 내뿜은 이산화 탄소도, 내속에 있는 다른 생명체 수십 조 개의 박테리아도 모조리 지구이다.

지구가 또한 나다. 나 없는 지구도 우주도 없다. 지구도 우주도 모두 내 머릿속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단편적으로 몸과 생각이 자기라는 좁은 영역에서 살지만, 본래 우리 모습은 우주의 섭리 속에 있다.



최근 읽은 노르웨이 베스트셀러 작가 토마스 할란드 에릭슨은 그의 책 인생의 의미에서 인생의 첫 번째 의미를 결핍이라고 했다.


곽지해수욕장의 부드러운 모래와 시원한 바닷물, 표면을 잘 다듬은 현무암 바닥을 내 발바닥은 한동안 즐겼다. 이어진 길은 거친 아스팔트, 시멘트 거친 길이었다. 또 발바닥을 찌를 정도로 거칠고 부서진 잔 돌이 길게 이어진 애월산책로를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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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에게는 지독한 결핍이다. 그러다 방금 부드러운 잔디를 만났다. 결핍 뒤에 따른 호사다. 호사가 더욱 크다. 다시 거친 시멘트 길이 기다리고 있다. 저 멀리 공장 건물이 보인다. 호사, 즉 행복과 만족은 언제나 결핍을 앞세운다.

결핍은 존재를 절절하게 느끼게 한다. 걷다 보면 발과 허벅지 어깨에 가해지는 불편함이 내가 살아 있다는 절실한 의식으로 다가선다. 뾰쪽한 자갈을 밟는 것이 고통스러워도 가끔은 일부러 그런 결핍 속으로 몰아넣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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