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에서~

by 한재영 신피질

주여,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올해는 제 삶에서 작은 전환점 같

은 해였습니다.


처음으로 제 삶의 생각과 사유를 글로 묶어 브런치스토리에 올렸습니다.

대단한 글은 아니었고, 독자도 많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제 글을 찾아와 읽어주신 분들이 계셨다는 사실은
제게는 과분할 만큼 소중한 인연이었습니다.


제 삶은 넉넉하지도, 깊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어쩌면 제 글은 쓸모없고 산만한 기록에 불과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들러 읽어주신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제가 과연 성숙한 삶의 깊이를 글에 담아냈는지,
아니면 단지 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AI와 각종 자료를 빌려
얕은 지식을 마치 제 것인 양 말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삶에는 정해진 가이드가 없는데,
지식을 쌓는 일이 과연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 일일까요.
저는 어쩌면 지식의 축적이 곧 삶의 확장이라는
착각 속에 머물러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한 줌의 지식을 한 솥의 지식처럼,
남의 생각을 내 생각인 양 포장하며
가상의 세계 속에서 스스로를 부풀려온 것은 아닐까,
그런 자괴감이 문득문득 고개를 듭니다.


저는 글재주가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글은 자주 핵심을 비켜가고,
제 삶의 얕은 표면만을 맴돕니다.


그 뻔함을 감추기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 보물을 찾으려
괜히 더 깊은 구덩이를 파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광산이 아닌 곳에서
보물을 기대하는 일처럼 말입니다.



주여,
이제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글을 더 이상 쓰지 말아야 할까요.
아니면 조용히 산책하고, 책을 읽고, 기도하며
친구들과 소소하게 어울리며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살아가야 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글을 쓰는 일은 제게 여전히 즐겁습니다.
얄팍한 호기심일지라도
생각을 정리해 문장으로 옮기는 일은
제 삶에서 꽤 소중한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주여,
그래서 다시 묻습니다.
이제 저는 어떻게 살아가면 좋겠습니까.


하지만 분명한 사실도 있습니다.
저는 외롭지 않고, 불행하지도 않습니다.
매 순간 제 안에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평온과 충만함이 있습니다.


가끔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하는
작은 초조함이 스쳐 지나가지만,
그 감정은 제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아침 햇살,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풀잎,
이미 누렇게 변해버린 잔디,
잎을 떨구고 마르는 붉은 산수유 열매,
미세먼지로 흐릿해진 하늘마저도
제게는 모두 신기한 기적처럼 다가옵니다.


주여,
제게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아니 어쩌면 미련 없이 사라진다 해도
세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저 자신에게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조용히 말해주십시오.


그리고 다만,
초조해하지 않고, 굳건히 서서
한 걸음씩 천천히 걸어갈 수 있도록
오늘을 살아갈 힘과 용기를 주소서.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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